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213)
213화. 최고의 선물
연두만의 산타로 변신할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진짜 산타 복장으로 변신하겠다는 건 아니었다.
정확히는 굳이 그럴 이유가 없는 거지만.
‘잠이 든 상태니까.’
한 번 잠들면 어지간해서는 쉽게 깨지 않는 연두였다.
그러니 서두를 필요도 조바심을 낼 이유도 없었다.
그저 준비해 둔 선물들을 트리에 두기만 하면 내 역할을 다하는 셈이었다.
오직 연두만의 산타클로스의 역할을 말이다.
‘.. 얼마나 좋아할까.’
지금껏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울음을 꾹꾹 참을 정도로 받고 싶어했던 크리스마스 선물.
그걸 알기에 꼭 이번 크리스마스를 최고의 날로 만들어주고 싶었다.
선물을 봤을 때의 연두의 표정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벅차오르는 기분이었다.
‘좋아.’
나는 곧바로 선물을 감춰둔 장소로 이동했다.
이런 상황을 예상해서 일부러 내 방에 숨기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연두에게 들킬 우려가 있었으니까.
생각 끝에 선택한 장소는 바로 신발장의 맨 위칸이었다.
‘열어도 연두의 시선에 닿지 않지.’
허나 내 눈에는 잘 보였다.
미리 포장해서 올려둔 각양각색의 선물들이.
빙긋 웃으며 나는 손을 뻗어 선물을 꺼냈다.
맨 앞에 나와있는 작은 선물부터, 조금 깊숙이 들어있는 커다란 선물까지.
끙.
전부 꺼냈는데 마지막 선물이 난관이었다.
손이 닿긴 하는데 잡히지는 않는 경계선에 위치하고 있었으니까.
이게 180을 찍지 못한 178의 무력감인가.
‘그러고 보니 전에 동건이네 애들한테는 177이라 말했지.’
오해할까 봐 하는 말인데 지금 1cm 올려 말하는 게 아니었다.
얼마 전에 병원에서 쟀을 때 178.4가 나왔으니까.
키를 잰 텀이 워낙 기다 보니 그 사이에 조금 큰 모양이었다.
‘아쉽단 말이지.’
0.1cm만 높게 나왔으면 반올림해서 179라고 하고 다녔을 텐데.
뭐, 그래도 1cm 큰 게 어디야.
다음에 녀석들을 만나면 말해줘야겠다. 이 유의미한 결과물을.
아무튼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투욱. 툭.
‘왜 안 잡히는데..!’
까치발을 딛고 손을 뻗으며 나는 소리없이 아우성쳤다.
잡힐 듯하며 잡히지 않는 마지막 선물.
턱도 없었으면 포기했을 텐데 아슬아슬하게 안 잡히니 더 오기가 붙었다.
‘사실.’
현명한 방법은 그냥 의자를 가져와서 꺼내는 거였다.
허나 그건 내 자존심이 용납하지 못했다.
내가 올린 건데 내가 못 꺼내는 건 말이 안 되지.
나는 이를 악물고 선물을 꺼내는 데에 열을 다했다.
어찌 보면 제삼자가 보기에는 이게 더 추한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하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후 한참을 그렇게 실랑이한 끝에,
스윽.
선물을 손에 쥐는 데 성공했다.
그래, 이거지. 못 할 리가 없지. 그렇고 말고.
짜릿한 쾌감을 느끼며 나는 선물을 꺼냈다.
그런데 문제는 곧바로 발생했다.
흥분한 탓인지 손에서 선물을 놓쳐버린 것.
놓친 선물은 그대로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쾅!
몸에 닭살이 돋게 만드는 육중한 사운드였다.
얼어붙은 나는 선물을 주울 생각도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설마 이걸로 깬 건 아니겠지. 소리가 상당히 커서 그럴 만도 했는데.
그대로 자세를 고정한 채 방문을 바라보다가.
“휴우..”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방에서는 아무런 미동도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연두가 깊게 잠을 자서 망정이지 큰일 날 뻔했다.
‘이래서 쓸 데 없는 객기를 부리는 건 피해야 한다는 거지.’
그래도 어떻게든 성공했다. 고비가 있긴 했지만.
나는 바닥에 둔 선물들을 들어 품에 안았다.
행동을 개시할 시간이었다.
***
선물을 들고 나는 트리 앞으로 이동했다.
아직 트리에서는 조명들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원래는 그냥 트리 앞에 두려 했는데.’
트리를 보니 머릿속을 스치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선물들을 이 트리에 매다는 게 어떨까 하는.
즉, 선물이 주렁주렁 달린 나무를 만드는 거다.
‘비주얼적으로도 예쁠 거 같고.’
애초에 장식물을 매달도록 설계된 트리라 그리 어렵지도 않을 터였다.
생각한 이상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슥.
나는 곧바로 작은 선물을 손에 들었다.
트리에 거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히 떠올랐다.
선물을 포장하는 데 쓰인 끈 매듭을 활용하는 걸로 충분했다.
‘이 끈을 이용해서 걸면 돼.’
당황스러울 정도로 손쉽게 거는 걸 성공한 첫 번째 선물.
난이도를 확인했으니 거리낄 건 없었다.
쏙. 쏙. 쏙.
내가 준비한 선물은 총 여섯개였다.
연두의 나이를 고려해서 맞춘 선물의 개수였다.
지금껏 받지 못한 것까지 전부 한 번에 보상해 주고 싶었으니까.
‘물론.’
하나하나 고심 끝에 고른 선물이었다.
센스가 부족한 터라 연두가 좋아할 거라 확신은 못 하지만.
그래도 일부러 다른 사람의 도움은 받지 않았다.
첫 선물인 만큼 직접 고른 선물로 채우고 싶었기에.
참, 이러면 한 가지 의문이 들지 모른다.
연두는 다섯살인데 왜 선물은 여섯개를 준비한 건지.
혹시 내년 것까지 미리 주는 거냐 묻는다면 당연히 그건 아니다.
여섯 번째 선물은 다른 선물들과 조금 달랐다.
고른 게 아니라 내가 직접 준비한 선물이니까.
‘크리스마스인 걸 떠나서.’
전부터 내가 연두에게 주고 싶었던 선물.
그걸 크리스마스라는 날을 통해 전달하는 것뿐이었다.
그런 만큼 나는 가장 윗부분에 선물을 걸었다.
연두를 위해 손수 준비한 여섯 번째, 아니 마지막 선물을.
그때였다.
스슥.
느껴지는 인기척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지? 설마 연두가 낸 소리인가?
슬프게도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다시 올라오는 닭살 속에 나는 고민에 빠졌다.
‘여차하면 숨어야 해.’
연두가 방문을 열고 나오면 트리 뒤에 숨을 생각이었다.
몸이 커서 완벽하게 숨을 수는 없겠지만.
그럼 연두는 트리에 걸린 선물과 나를 보고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묻겠지.
“누, 누구세여..?”
그럼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아마 최대한 근엄한 목소리로 입을 열겠지.
“크흠.. 나는 산타할아버지란다. 안녕, 연두야?”
“.. 산타할아버지?”
“그래. 연두에게 선물을 주려고 찾아왔단다. 그동안 못 준 선물들도 함께.”
연두는 설레는 표정으로 눈을 반짝이며 대답할 테지.
“우아… 진짜여?”
“그럼. 산타할아버지는 거짓말 안 해.”
“헤헤, 연두 아빠도 거짓말 안 하는데!”
“그, 그러니? 허허…”
“네에.. 저기.. 산타할아버지!”
“잠깐!”
“으응..?”
“가까이 오면 안 돼. 원래 산타할아버지는 모습을 드러내면 안 된단다. 지금 이렇게 들킨 것도 아주 큰 실수……”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는 산타할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순수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연두의 표정.
들켰을 때의 상황과 대화가 자동으로 머릿속에 시뮬레이션됐다.
그런 와중에도 몸은 당장이라도 숨을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이윽고 긴장감 속에 눈에 들어왔다. 망상을 멈추게 만드는 무언가가.
“후아……”
나는 무릎을 잡고 큰 숨을 내뱉었다.
모습을 드러낸 건 예상과 달리 연두가 아니었으니까.
노란 털, 쫑긋 세운 귀, 요리조리 팔랑거리는 꼬리.
다름아닌 연두의 여동생 누렁이였다.
“너였구나. 놀라 죽는 줄 알았다, 이 녀석아.”
나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누렁이는 아무렇지 않게 다가와 내 다리에 볼을 비볐다.
나는 피식 웃으며 녀석을 품에 안았다.
“너도 같이 볼래? 언니 선물.”
“냐아…”
“쉿, 조용!”
“냐아..?”
“…”
이게 대답냥이의 무서움인가.
그래도 소리가 작아 연두가 깰 거 같지는 않았다.
안심한 뒤에야 비로소 들어오는 트리의 모습.
자연스레 입 밖으로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 하하, 예쁘네.”
선물이 열매처럼 주렁주렁 달린 트리.
연두를 놀라게 만들기에는 충분한 비주얼이었다.
트리를 봤을 때의 연두의 모습이 머릿속에 재생됐다.
나는 누렁이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어때, 누렁아? 언니가 좋아할 거 같아?”
“냐아.. 냐아!”
“뭐? 나는 안 주냐고?”
“냐아..!”
“짜식. 너도 조만간 챙겨줄게. 엄청 맛있는 간식으로.”
기분이 좋아진 나는 누렁이와 대화까지 주고받았다.
얼마 후에 누렁이를 바닥에 내려줬다.
녀석은 또 어딘가로 총총 달려갔다.
‘아, 참!’
그러고 보니 잊고 있던 사실이 있었다.
티를 내줘야지. 산타가 왔다 갔다는 티를.
나는 미리 준비한 산타클로스 모자를 들고 왔다.
‘빨간색 털모자.’
이걸 걸 곳은 처음부터 정해둔 상태였다.
그곳은 바로 크리스마스트리의 뾰족한 꼭대기였다.
스윽.
나는 망설임 없이 털모자를 꼭대기에 걸어 올렸다.
이제 더 이상 남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짧았던 산타의 직분을 벗어던지고 연두의 옆에서 잠을 청하는 거 말고는.
마지막으로 나는 트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허허, 연두어린이. 지금처럼 예쁘고 착하게 자라렴. 아빠는 계속 좋아해 주고.”
산타할아버지로서 하는 마지막 대사.
사심이 가득한 한 마디를 첨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후 나는 씩 웃으며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시 연두의 아빠로 돌아갈 차례였다.
***
눈이 부셨다. 나도 모르게 반쯤 떠진 눈.
따사로운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아침인가.’
자연스레 고개를 돌려 연두를 바라봤다.
“어?”
자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초롱초롱한 눈빛의 연두와 시선이 맞닿았으니까.
뭔가 잠에서 깬 지 시간이 조금 흐른 느낌이었다.
‘.. 설마 본 건가?’
먼저 나가서 선물이 달린 트리를 본 건 아닐까.
괜한 조바심에 나는 입을 열었다.
“언제 일어났어, 연두야?”
“방그미여…”
입가에 잔뜩 미소를 머금은 채로 대답하는 연두.
왜인지 기분이 무척 좋아보였다.
‘방금이라..’
다행히 일어난 지 오래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당연히 밖에 나가서 선물을 보지도 않았겠지.
하기야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선물을 봤으면 이렇게 태연할 리 없으니까.’
신이 나서 선물을 가지고 총총 달려왔을 게 분명했다.
이렇게 자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니라 흔들어서 깨웠을 테고.
아무튼 나로서는 다행이었다.
“기분이 좋아 보이네, 연두야?”
“네, 조아여..”
“하하, 왜?”
“크리스마스니까!”
의외로 단순했구나. 신이 난 이유.
나는 피식 웃으며 얘기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히히, 아빠도요! 메리 크리스마쓰..!”
인사를 주고받은 후, 연두는 무언가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아빠. 산타할아버지는 크리스마스에 오죠..?”
알면서도 확인하고 싶어서 묻는 질문인 게 느껴졌다.
나는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그렇지.”
“언제 오시지…”
이걸 어쩐다. 이미 왔다 가셨는데.
그랬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하는 연두의 표정.
나는 장난스레 넌지시 입을 열었다.
“어쩌면 말이야, 연두야.”
“네에.”
“이미 왔다 가셨을지도 몰라.”
“.. 산타할아버지가요?”
“응, 산타할아버지가.”
연두는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오늘이 크리스마스인데..”
“맞아. 오늘이 크리스마스지. 근데……”
나는 차근히 설명해줬다.
크리스마스가 시작되는 시점이 언제인지.
사실상 새벽으로 넘어간 시점부터 크리스마스는 시작이었다.
“연두는 그전에 잠들었잖아.”
“네에.”
“그 사이에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두고 가셨을지도 모르지. 집 어딘가에.”
나는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원래 산타할아버지는 사람들이 잠이 든 새벽에 활동하시거든. 아이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면 안 되니까.”
“왜 모습을 드러내면 안 대요? 산타할아버지..”
“음.. 글쎄? 그건 아빠도 잘 모르겠네?”
산타할아버지가 아빠인 걸 들키면 안 되거든.
그 말을 목구멍으로 꾹 삼켜냈다.
한편 연두는 무언가 떠오른 듯 손뼉을 치며 말했다.
“.. 마따!”
“응?”
“시으니도 그래써요. 잠잘 때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주고 갔다고…”
“하하, 그래?”
“네!”
세연씨도 새벽에 활동하는 모양이네.
뭔가 상상하니까 재미있는 그림이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한 번 찾아볼까? 산타할아버지가 두고 가신 선물이 있는지.”
세상 설레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연두.
나는 연두의 손을 잡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 순간을 놓칠 수는 없지.’
나는 잊지 않고 서랍 안에 넣어둔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연두의 모습을 담기 시작했다.
방문을 열고 나가는 와중 연두가 나를 불렀다.
“.. 아빠.”
“응, 연두야.”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어디에……”
‘어디에 두셨을까요?’라 물어보려 했던 거 같은데.
안타깝게도 연두는 질문을 끝맺지 못했다.
툭.
발이 멈춘 연두를 따라 내 발걸음도 멈췄다.
“…”
한 곳에 고정된 연두의 시선.
그게 어디인지는 굳이 말할 것도 없었다.
트리.
분홍색, 파란색, 주황색, 노란색, 초록색, 그리고 연두색.
여섯 개의 선물이 트리에 매달려 저마다의 색상을 뽐내고 있었다.
꼭대기에 달린 빨간색 산타모자도 빼놓을 수는 없었다.
‘상황 때문인가.’
아침인데도 어제 새벽에 혼자 볼 때보다 훨씬 예뻐 보였다.
참, 누렁이가 있긴 했구나.
아무튼 무척 예뻐보였다. 아침햇살을 머금은 선물나무는.
아마 이런 크리스마스트리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지 않을까.
옆에서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연두야.”
“이써요.. 선물…”
이윽고 연두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선홍색으로 물든 채로 파르르 떨리는 볼.
그렇게 연두는 행복감을 가득 머금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산타할아버지가 오셔써요! 연두한테.. 연두한테도요..!”
목소리에서 어떤 감정인지가 전해졌다. 뿌듯한 마음에 덩달아 벅차오르는 기분.
정체는 숨겼지만 감정을 숨길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나는 환한 표정으로 연두를 품에 안고는 말했다.
“축하해, 연두야.”
순간적으로 우습지만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내가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거 같은 기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