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215)
215화. 아빠
“산타할아버지가. 응…?”
연두의 커다랗게 부푼 눈, 상기된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들고 있는 봉투의 정체가 뭔지 깨달았다는 걸.
‘산타할아버지가 연두에게 보내는 편지.’
물론 여기서 산타할아버지는 아빠인 나였다.
허나 이번 편지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아빠가 딸에게 쓰는 편지와는.
그야, 저건 내가 산타할아버지에 한껏 몰입해서 작성한 거니까.
‘사실.’
편지를 써 보는 건 처음이라 작성하는 게 쉽지 않았다.
전하고 싶은 많은 얘기들을 두서있게 적어내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으니까.
왜 좀 그렇잖은가. 산타할아버지가 보냈다는 편지가 너무 허접하다면.
아무리 연두라도 의심을 가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내 국어실력을 총동원했지.’
최대한 깔끔한 문장들로 편지를 채우려 노력했다.
다행히 맞춤법은 틀리는 편이 아니라 신경쓰지 않고 적어낼 수 있었다.
몇 개 정도는 틀리게 적었어도 연두가 눈치 못 챘을 거 같긴 하지만.
‘아, 참.’
작성하면서 무엇보다 어려웠던 건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내 신분의 혼동이었다.
아빠로서의 신분과 산타할아버지로서의 신분.
편지를 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사적인 이야기들이 나오곤 했다.
오로지 연두와 나만 알 수 있는 이야기들이.
그래서 몇 번이고 지우고 다시 쓰기도 했고.
‘결국.’
어느 정도 타협한 부분도 있었다.
너무 신경쓰다가는 내가 담고 싶은 것들을 전혀 쓰지 못할 거 같았으니까.
그래. 솔직히 고백하겠다.
사실 어느 시점부터는 너무 몰입해서 이런 것들을 무시하고 썼다.
아빠와 산타할아버지의 영혼이 반쯤 섞인 채로.
‘부디.’
읽으면서 눈치채지 못하길 바랄 뿐이었다.
한편 편지봉투의 표지를 빤히 바라보던 연두는 자그맣게 입을 열었다.
“아빠.. 이거…”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확인시켜 주기를 원하는 눈빛이었다.
그렇다면 확인시켜줄 필요가 있겠지.
나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편지 같은데? 산타할아버지가 연두한테 보낸 편지.”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연두의 표정.
그중에선 놀란 감정이 가장 큰 거 같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산타할아버지가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에 대한.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만 하지.’
하얀색 배경에 붉은색 리본 매듭. 검은색 필기체로 적힌 담백한 문구까지.
보통의 편지와는 달리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표지.
진짜 산타할아버지가 보낸 편지라 해도 이질감이 없는 비주얼이었다.
‘특히 그걸 받는 게 다섯살 아이라면.’
연두의 표정에서도 일말의 의심도 느껴지지 않았다.
놀라움에서 설렘으로 서서히 바뀌어가는 표정.
당연히 궁금하겠지. 편지에는 어떤 내용이 적혀있을지.
이윽고 연두는 들뜬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빠.. 지금 일거도 대요..?”
나는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뭐, 그건 연두 마음이지. 산타할아버지가 연두한테 보낸 편지니까.”
“연두한테……”
쿡쿡.
뭐가 좋은지 편지지를 손에 쥐고 혼자 웃음짓는 연두.
그러다 결심했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럼 일글래여!”
그렇게 하라는 제스처를 취하자 연두는 그 자리에서 봉투를 열기 시작했다.
앞선 선물들과 매듭이 크게 다르지 않아 쉽게 열 수 있었다.
끈을 잡아서 당기기만 하면 알아서 풀렸으니까.
휘리릭.
매듭이 풀리고 편지봉투를 개봉하고 나면, 직사각형으로 반듯하게 접힌 편지지가 나온다.
편지지까지 모습을 드러내니 나도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혹여나 들키지는 않을까 염려도 됐고.
스윽.
조심스러운 손길로 연두는 편지지를 꺼냈다.
그리고 접힌 편지지를 펼쳐서 바라보더니 뭐라 중얼거렸다.
“…… 잘 쓴다.”
그 모습에 괜히 불안해진 나는 입을 열었다.
“뭐라고, 연두야?”
“글씨 짱 잘 써요! 산타할아버지..”
“하하, 그래?”
“네!”
나는 소리없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부러 공을 들여 또박또박 글씨를 쓴 게 효과를 보고 있었다.
‘평소의 나는 상당한 악필이니까.’
혼자만 알아볼 수 있는 필체를 구사한다고 해야 하나.
여튼 이번에 편지를 쓰면서 깨달았다.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리긴 하지만, 나도 예쁜 글씨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걸.
일차적으로 글씨체로 인한 의심은 피한 셈이었다.
편지를 보던 연두가 시선을 돌리더니 말했다.
“가치 일거요, 아빠..!”
“그럴까?”
그때 문득 떠오르는 한 가지 생각.
“연두야.”
“네에.”
“혹시 괜찮으면 아빠가 읽어줄까? 편지.”
이런 제안을 건넨 이유는 간단했다.
그 편이 의심을 조금 더 피할 수 있을 거 같은 생각이 들었으니까.
대답은 편지지와 함께 즉시 돌아왔다.
“네! 조아요..!”
***
내가 쓴 편지를 내가 읽어주게 된 상황.
연두는 눈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럼 읽는다?”
“네에..”
막상 읽기 시작하려니 몸을 감싸는 낯간지러운 기분.
애써 기분을 떨쳐내며 나는 편지를 읽어주기 시작했다.
처음은 산타가 연두에게 건네는 가벼운 인사말이었다.
“안녕, 연두야? 나는 산타할아버지란다.”
첫 문장부터 웃음이 가득 번지는 연두의 입가.
이다음은 안부를 묻는 내용이 이어졌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고 있니? 할아버지 선물이 실망스럽지는 않고?”
이렇게 읽으니 내가 쓴 게 아닌 거 같은 어색함이 느껴진다.
분명히 한 글자 한 글자 적어내려간 편지인데.
한편 연두는 제스처로 대답을 대신했다.
끄덕. 끄덕.
편지를 들으며 산타할아버지와 소통하는 연두.
잔뜩 편지에 몰입한 게 느껴져 읽어주는 입장에서도 신이 났다.
자연스레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선물을 직접 전해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하구나.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할아버지는 아이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면 안 되거든.”
이번에도 연두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 흐르듯 편지는 다음 내용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꼭 연두한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됐단다.”
우려와 달리 다시 읽으니 생각보다 흐름이 자연스러웠다.
그렇기에 연두도 이렇게 몰입할 수 있는 거겠지.
그리고 편지의 핵심 내용은 이제부터였다.
“그동안 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주지 못했지? 왜 나한테는 오지 않을까 생각했을 거야. 어쩌면 나는 착한 아이가 아니라서 그런 걸까 생각했을지도 모르고.”
사실 다음에 적힌 내용은 내가 연두에게 이미 전했던 말이었다.
‘연두는 착하지 안았나 바요…’라는 말에 건넸던 말.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산타할아버지가 되어 한 번 더 정확히 얘기해주고 싶었다.
어느새 묘한 표정으로 편지를 듣는 연두를 향해 말을 이었다.
“아니란다. 그건 연두가 아닌 할아버지의 잘못이야. 연두는 할아버지가 본 아이들 중에 가장 착한 아이니까. 그런 연두에게 지금껏 찾아가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구나.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단다.”
작성하면서 상당히 힘들었던 부분이었다.
산타의 입장에서 생각해도 지금껏 찾아가지 않은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었으니까.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는 말 이외에는 말이다.
‘뭘 적어도 변명이 되는 거 같았지.’
그래서 건네고 싶은 이야기와 함께 사과의 말을 적었다.
사과를 받아줄지는 연두의 몫이었다.
나는 잠시 편지 읽기를 멈추고 연두를 바라봤다.
어느새 붉게 달아오른 눈시울. 그런 채로 연두는 다시 한번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짧은 중얼거림과 함께.
“갠차나요, 할아버지…”
뭐지. 순간적으로 목이 매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분명히 방금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연두의 모습에 갑작스레 감정이 증폭된 건가.
“크흠..”
헛기침을 해서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선 다음 줄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뒷부분에 도달한 편지지.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많이 아프고 외로웠지?”
읽는 목소리가 떨리는 게 스스로도 느껴졌다.
편지를 쓰면서는 깊이 자각하지 못했다. 내가 어떤 내용을 적고 있는지.
대상인 연두의 앞에서 읽으니 비로소 자각이 됐다.
‘많이 아픈 내용을 적었다는 거.’
들려오는 목소리에 또 잠시 읽는 걸 멈췄다.
“으응..?”
외마디 의문사를 내뱉는 연두.
투명한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울었다는 사실에 스스로도 놀란 듯 연두는 옷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아픈 장면이었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편지의 내용은 이제 채 몇 줄도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나도 가까스로 감정을 추스르며 입을 열었다.
“이제는 아프지도, 외롭지도 않아도 된단다. 지금 옆을 한 번 볼래, 연두야?”
편지의 내용에 따라 연두는 붉어진 눈으로 옆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다름아닌 내가 서 있었다.
연두와 시선이 맞닿은 상태에서 나는 다음 문장을 읽었다.
“누가 있니?”
자연스레 연두는 대답을 건넸다.
“아빠.. 아빠가 이써요…”
“할아버지 생각이 맞다면 아빠가 있을 거야.”
“네, 마자요..”
“… 좋은 사람이란다. 연두가 믿어도 되는 사람.”
어쩌다 보니 주고받듯 이어지는 편지의 내용과 연두의 말.
그나저나 조금도 생각지 못했는데.
이런 감정으로 이 문장을 읽게 될 거라고는.
‘더 믿음을 주고 싶어서.’
산타할아버지의 신분을 빌려 쓴 재미있는 문장이었다.
나는 좋은 사람이니까 믿어도 된다고.
그 문장이 이렇게 다가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 할아버지는 구분할 수 있거든.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연두 아빠는…”
다시 한번 목을 가다듬고는 말을 이었다.
“연두 아빠는 정말 좋은 사람이란다. 어떤 상황에서도 연두의 편이 되어 줄.”
“.. 네. 아빠는 최고로 조은 사라미에요…”
“그러니까 전부 말해도 된단다.”
“뭘 말해도 대여..?”
“힘들었던 거. 아팠던 거. 무서웠던 거. 마음속에 숨기고 있는 이야기들.”
“…”
“전부 숨기지 않고 얘기해도 된단다. 연두의 아빠는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연두의 편이 되어줄 거니까. 할아버지를 믿으렴.”
울컥.
“흑. 흐윽…”
결국 편지는 연두를 펑펑 울게 만들었다.
지금껏 몇 번이고 꾹꾹 참았던 울음을.
당장 달려가서 안아주고 싶었다.
‘그전에.’
편지를 읽는 걸 마무리해야 했다.
이제 읽지 않은 문장은 단 한 줄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다음 크리스마스에 찾아올게. 그럼 안녕~”
유쾌하게 읽어야 하는 문장인데 그러질 못했다.
편지 하나 제대로 못 읽어주다니.
자책하며 옆에 편지를 내려놓는 순간.
포옥.
달려와서 내 품에 안겨드는 연두.
평소와 같이 조그마한데도 유독 품 안에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그나저나 이번에도 먼저 다가가 안아주지 못했네.
“흑, 아빠..”
“그래, 연두야.”
“산타할아버지.. 흐윽. 다음 크리스마.. 쓰에는 안 올 꺼에요.. 흐윽.”
“왜?”
“우는 아이에게는.. 선물 안 주시니까…… 그래도.. 연두 우러요…”
그치고 싶어도 그치지 못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모양이다.
내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몸을 떠는 연두.
이미 내 옷은 눈물로 젖어서 축축해진 상태였다.
나는 연두의 등을 토닥이며 대답했다.
“하하, 아냐. 마음껏 울어도 돼. 산타할아버지는 반드시 다음에도 오실 테니까.”
내 말에 연두의 울음은 더 격해졌다.
지금만큼은 이 상태로 가만히 두고 싶었다.
얼마나 흘렀을까.
잦아든 울음. 연두가 살며시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아빠..”
“응, 연두야.”
“……어써요.”
“.. 응?”
떨리는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연두 힘들어써요. 마니 아파써요. 외로어서…… 너무 외로어써요…”
눈을 피하지 않았다. 당황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더라도 그래야만 했다.
연두가 처음으로 상처를 드러내 보여주는 순간이었으니까.
가장 아프게 다가오는 건 마지막 부분이었다.
‘외로웠다는 말.’
어쩌면 연두가 가장 무서워했던 건 외삼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힘든 상황 속에서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
그 사실에서 오는 소외감과 외로움이 아니었을까.
‘나도 그랬으니까.’
돌이켜 보면 나를 가장 괴롭게 만든 것도 외로움이었다.
아빠가 떠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진 나.
그런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소외감.
‘상상할 수도 없어.’
나도 그랬는데 연두가 어땠을지는 짐작조차 불가능했다.
그렇게 힘든 상처를 꺼내서 보여준 거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찢어질 듯 아픈 기억의 흔적을.
이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아빠한테 얘기해 줄래?”
피하지 않고 연두의 상처를 당당히 마주하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네 편에 설 거라는 걸 확신시키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는 ‘아빠’의 모습이었다.
이후 나는 한참동안 연두의 이야기를 들었고, 산타가 선물해준 따뜻함 속에 연두와의 첫 크리스마스가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