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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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화. 운전수 준수
“우리 불꽃놀이 보러 가요!”
생각지 못한 단어가 주연이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말일과 새해를 언급하길래 뭔가 연관성이 있는 게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예를 들면 해돋이라든가.’
불꽃놀이는 조금 뜬금없게 느껴졌다.
아, 혹시 31일 밤에 꼭 만나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건가.
생각해 보면 해돋이같은 건 가족들이랑 보러 가는 경우도 많지.
“주연아.”
“네.”
혼자 생각해 봐야 의미는 없었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왜 해돋이가 아니라 불꽃놀이야?”
“아, 그게.. 사실 저희도 해돋이를 보러 갈까 했는데요.”
“응.”
“뭔가 좀 애매할 거 같아서요. 해 뜨는 거 보려면 해돋이 명소 이런 데 가야 하는데, 그럼 좀 멀리 이동해야 하는데, 지하철 타고 간다고 치면 딱 그 앞에 내려주는 게 아니라서……”
주연이는 이런저런 이유들을 늘어놨다.
해돋이를 보러 가게 되면 발생할 수 있는 애로사항을.
그리고 그건 전부 한 가지 사실에서 비롯되는 문제였다.
‘차가 없다는 거.’
당연하게도 주연이를 포함한 애들은 차가 없었다.
그렇다면 결국 문제는 나였다. 내가 자동차가 없기 때문에.
면허라도 있으면 렌트해서 가면 되는데 면허도 존재하지 않고.
씁쓸함을 느끼는 사이 주연이의 말은 쭉 이어졌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31일 밤에 근처에서 불꽃놀이를 한다는 걸 봐서 거기라도 가자고 말이 나왔어요. 그냥 보내기는 아쉬우니까.”
‘거기라도’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었다.
불꽃놀이는 해돋이를 가기 어려워서 고른 차선책이라는 걸.
‘물론.’
어떤 규모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불꽃놀이 역시 무척 예뻤다.
하늘을 수놓는 형형색색의 불꽃들.
아직까지 연두랑 한 번도 본 적 없기도 하고.
‘하지만.’
불꽃놀이는 꼭 이번에만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장소만 알아본다면 언제든 가서 보면 되니까.
더군다나 내 생각에는 불꽃놀이 역시 장소가 상당히 중요했다.
기왕이면 명소에서 보는 게 좋겠지.
‘해돋이는 달라.’
명소에서 봐야 하는 건 같지만 언제든 볼 수는 없었다.
새해 아침에 보는 해돋이가 의미가 있는 거니까.
그렇게 판단한 나는 입을 열었다.
“주연아. 그니까 넌 불꽃놀이보다는 해돋이가 더 보고 싶다는 거지?”
“그쵸. 가능하기만 하다면요..?”
“애들도 생각이 같아?”
“네. 새해 날씨도 좋다는데 다들 되게 아쉬워해서.”
“그럼 알겠어.”
주연이는 아리송한 목소리로 물었다.
“.. 뭐를요?”
“한 번 알아볼게.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나.”
“어떻게요? 오빠 면허 없으시잖아요.”
“…”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정곡을 찌를 줄이야.
나는 애써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 설마 내가 무면허 운전을 하겠다는 건 아닐 거 아냐.”
“흐흐, 그건 그렇죠.”
“금방 연락 줄게.”
“네, 오빠!”
툭.
전화를 끊고 나는 곧바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면허도 차도 빌릴 수 없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둘 다 있는 사람을 빌리는 건 가능하니까.
“여보세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라 말하기도 전에 말이 이어졌다.
“웬일이냐? 네가 먼저 전화를 다 하고.”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대꾸했다.
“좀 서운한데? 우리가 꼭 일이 있어야 연락하는 사이인가?”
“허, 너한테 이런 멘트를 들을 줄이야.”
황당함을 머금은 준수의 목소리.
나는 지체없이 방금 뱉은 말과 모순되는 용건을 꺼냈다.
“준수 너 차 있지?”
“어. 근데 차는 갑자기 왜.”
“좀 빌리자.”
“…?”
맥락없이 꽂은 돌직구에 당황한 듯한 침묵.
얼마 지나지 않아 준수가 말했다.
“차를?”
“응.”
“너 면허 없잖아.”
뭐라 말하기도 전에 녀석이 말을 이었다.
“무면허 운전은 안 돼, 미친놈아.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연두가 있다고, 너!”
연기톤으로 변한 목소리.
진심이 아니라 장난으로 들어섰다는 소리였다.
설마 내가 진짜 무면허 운전을 할 거라 믿을 리는 없으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아.”
준수는 한껏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차는 빌려준다. 근데 조건이 있다.”
“뭐?”
“주원이 너 혼자 타라. 그리고 네가 다치거나 감옥에 가게 되면 연두는 내가 맡는다. 서약서 쓰면 빌려……”
“집어치워, 미……”
아차. 옆에 연두가 있는 것도 까먹고 비속어가 튀어나올 뻔했다.
어쨌거나 진짜 미친놈이네, 이거.
‘내가 괜히 이중인격자라 저장한 게 아니지.’
이 녀석은 점잖은 탈을 쓴 또라이였다.
또라이에게 말려들면 나만 손해지. 얻을 거만 얻어내기로 하자.
한 번 숨을 고르고 나는 입을 열었다.
“내가 말을 덜 했는데, 차를 빌리는 게 아니라 너를 빌리자는 거야.”
“나를 빌려? 그게 무슨 소름 돋는 소리야.”
“시끄럽고 1월 1일에 뭐 하냐.”
“1일? 딱히 뭐 안 하는데.”
“그럼 운전 좀 해 주라. 해돋이 보러 가게.”
“해돋이? 크흡.”
녀석은 웃참(웃음 참기)를 하는가 싶더니 폭소를 터트렸다.
“개그하냐? 니가 뭔 해돋이를 보러 가.”
“…”
“그리고 알잖아. 나 아침잠 많은 거. 그렇게 빨리 못 일어나.”
“……가고 싶대.”
결국 나는 필살기를 꺼냈다.
“.. 뭐?”
“연두가 너랑 같이 가고 싶대. 윤우랑 성현이랑 너 중에 누구랑 가고 싶냐고 물어보니까.”
막상 옆에서 연두는 아리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 통화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지 않을까.
미안하다, 연두야.
“.. 진짜?”
한편 장난기가 쫙 빠진 준수의 목소리.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못을 박았다.
“응, 옆에 있는데 인사할래? 준수삼촌이야, 연두야.”
일부러 이름을 얘기하며 핸드폰을 건넸다.
인사요정 연두는 언제나처럼 공손히 인사했다.
“안녕하세여, 준수삼촌..!”
“…”
“으응..?”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의아한 표정을 짓는 연두.
그와 동시에 핸드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자, 연두야.”
“.. 네에?”
“연두가 좋아하는 준수삼촌이랑 같이 가자. 해님 보러.”
너무나 쉽게 통한 필살기.
이렇게 운전수 준수삼촌의 섭외가 완료됐다.
***
사실 윤우를 제외하면 자동차는 전부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성현이가 아닌 준수를 부른 이유는 간단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연두가 가장 좋아한다는 건 뻥이었다.
‘차가 크니까.’
단지 그 이유였다. 애들을 전부 태우려면 차가 커야 하니까.
성현이의 세단으로는 전부 타는 게 불가능했다.
아무튼 운전수는 이렇게 준수로 결정됐다.
‘일행이 있다는 걸 얘기하는 게 조금 어려웠지만.’
내 뛰어난 언변으로 그럴듯하게 둘러댔다.
집들이 때 서로 얼굴을 보고 떠든 기억이 있기에 얘기가 편했지.
사실 다 제쳐두고 가장 큰 건 연두파워였다.
‘연두가 너랑 같이 가고 싶대.’에서 사실상 게임 셋인 느낌이었으니까.
“아빠.”
그때 옆에서 들려오는 연두의 목소리.
혹시 내가 방금 한 거짓말에 관해 얘기하려는 건가.
그럴 만도 했다. 운전수를 섭외하긴 했지만 거짓말은 거짓말이니까.
나는 사과할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응, 연두야.”
“.. 불꼰놀이가 머에요?”
그런데 연두의 입에서는 전혀 다른 질문이 나왔다.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불꽃놀이?”
“네에.”
“하늘에서 불꽃이 막 튀기는 거야. 예쁘게.”
스스로 생각해도 정말이지 저렴한 설명이었다.
뭐라 덧붙이려는 찰나, 왜인지 연두는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 안 뜨거어요?”
“응?”
“불꽃 안 뜨거어요..?”
하기야 본 적이 없으니 상상할 수도 없겠지.
불꽃놀이가 어떤 모습인지.
나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엄청 멀리 튀겨서 보는 사람한테는 안 닿거든.”
“아…”
“그럼.. 우리 불꼰놀이 하러 가여..?”
불꽃놀이는 하는 게 아니라 보는 건데.
굳이 트집은 잡지 않았다.
“아니. 불꽃놀이는 다음에 보고, 이번에는 해돋이 보러 갈 거야.”
“해도지..?”
“응, 해돋이. 이제 3일만 지나면 1월 1일이거든. 새해라고도 하고.”
“새해..”
이해가 쉽도록 설명을 덧붙였다.
“새해가 되면 연두는 여섯살이 되는 거야.”
“우아… 세 밤만 자면요..?”
“하하, 그렇지.”
“그럼 연두 선동이오빠한테 반말해도 대요?”
이건 또 무슨 말이지.
잠깐 혼동이 오는 사이 연두는 말을 이었다.
“연두도 여섯 살 대니까..”
“푸흣.”
그제야 무슨 말인지 깨달은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냐, 연두야. 반말하면 안 돼.”
“왜여..?”
“연두만 나이를 먹는 게 아니거든. 선동이도 여섯살에서 한 살 더 먹어서 일곱살이 될 테니까. 그럼 연두보다 한 살이 많아지는 거지. 아빠도 스물다섯에서 스물여섯살이 되고.”
“아! 마따..”
“크크.”
깨달음을 얻은 듯한 표정에 다시 한번 웃음이 나왔다.
이윽고 연두는 살짝 풀이 죽은 듯 중얼거렸다.
“그럼 연두는 계속 선동이오빠한테 존댓말 해야 해요…”
묻는 게 아니라 아쉬움을 머금은 혼잣말이었다.
평생 선동이가 오빠라는 사실을 깨달은 모습.
미소를 띠며 바라보던 나는 넌지시 입을 열었다.
“왜, 연두야? 선동이오빠한테 반말하고 싶어?”
조금 고민하던 연두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에..”
“그럼 나중에 물어봐. 반말해도 되냐고.”
이번에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대답한다.
“안 대요..”
“왜 안 돼?”
“그럼 선동이오빠 이러케 말해요.”
연두는 미간을 찡그리고는 말했다.
“반말하지 마!”
“크흡.”
생각지 못하게 여러 번 터지네, 오늘.
가끔 보면 연두는 다른 사람을 기가 막히게 잘 따라한다.
지금도 얼굴만 달랐지 진짜 선동이같았고.
조금 생각한 나는 연두를 향해 해결책을 제시했다.
“연두야.”
“네에.”
“나중에 선동이 또 만나잖아?“
귀를 기울이는 연두를 향해 말을 이었다.
“그럼 야자타임을 하자고 해 봐.”
“.. 야자타이미요?”
“응.”
“그게 머에요..?”
“잠깐동안 나이가 어린 사람이 상대보다 나이가 많아지는 거야. 그럼 잠깐동안 연두가 선동이 누나가 되는 거지.”
“여, 연두가 누나요?”
“응.”
야자타임에 대해 듣고 기대감으로 부푼 연두의 표정.
나 역시 상상만으로도 재밌을 거 같았다.
청학동에서 온 거 같은 꼬맹이 선동이가 연두를 누나라 부르는 장면은.
문득 그런 상상에 빠져있는데,
“아빠.”
“응, 연두야.”
“근데 해도지는 머에요? 해님 보는 거에요..?”
“…”
본격적인 연두의 질문공세가 시작됐다.
***
서늘한 새벽의 공기를 맡으며 나서는 외출.
집을 나서기 직전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다섯 시 조금 전인가.’
연두의 표정은 아직 잠이 다 깨지 않은 듯 몽롱했다.
그럴 만도 하지. 이런 시간대에 나가는 건 처음이니까.
“그럼 갈까, 연두야?”
“네에..”
끼익.
새벽인 만큼 바깥은 아직 새까맣게 어두웠다.
여기가 시골이었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겠지.
바깥에 나오니 느껴지는 게 있었다.
‘맑아.’
일기예보에서도 새해의 날씨는 맑을 거라고 했지.
아무래도 그 예보에 오류는 없는 거 같았다.
춥긴 하지만 무척 맑은 날씨였으니까.
쏘옥.
연두의 왼손을 잡고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반쯤 뜬 눈으로 나를 보며 배시시 웃음짓는 연두.
잠깐 그렇게 서로 웃다가 아파트 입구로 걸어갔다.
슥.
입구 한편에 세워진 커다란 SUV가 눈에 들어왔다.
보는 즉시 알 수 있었다. 준수의 차라는 걸.
나는 곧바로 문을 열고 들어가며 말했다.
“하이.”
건넨 인사에 답이 돌아왔다.
“안녕, 연두야.”
그 답이 나를 향한 답이 아니었다는 게 문제지만.
연두도 준수에게 꾸벅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여, 준수삼촌..”
“목소리가 잠겼네. 우리 연두도 졸리구나?”
“조금요.. 그런데 이제 깰 꺼에요..!”
“하하, 그래?”
“네. 조금씩 깨고 이써요..”
“하암.. 삼촌은 졸려 죽겠다. 최근 들어 이렇게 일찍 일어난 건 처음이거든. 이 시간까지 안 자 본 적은 있어도.”
“.. 갠차나요, 삼촌?”
“응, 연두 보니까 졸음이 확 가시는데?”
이 상황 뭐지. 왜 이렇게 대화가 자연스러운데.
준수 이 자식은 왜 이렇게 자상한데.
평소 연두랑 내 대화라 해도 믿을 거 같다.
괜히 심통이 난 나는 입을 열었다.
“뭐냐? 너 왜 내 인사 안 받아.”
분명히 얘기하지만 질투는 전혀 아니었다.
그냥 내 인사를 안 받아서 열이 받았을 뿐이지.
준수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뭐야. 우리가 언제 인사 꼬박꼬박 주고받았다고. 자, 안녕! 됐음?”
“.. 우리 연두는 뭐냐?”
“그게 왜. 너희 연두라고 할 수는 없잖아.”
그건 그러네.
어느새 녀석의 대화 흐름에 말려버린 느낌이다.
이래서는 무슨 말을 해도 손해만 볼뿐이었다.
내 흐름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됐어, 출발해.”
“연두 안전벨트 매고.”
“내가 챙길 거야! 운전이나 해!”
허나 녀석의 한 마디에 무산돼 버렸다. 흐름을 기다린다는 다짐은.
역시 친구녀석들만 만나면 다혈질이 되는 느낌이다.
스륵.
안전벨트를 채워주는데 들어오는 연두의 표정.
살짝 눈치를 보는 느낌이다.
‘설마 싸우는 줄 안 건가.’
하기야 그럴 만도 했다.
우리에게는 일상이지만 제삼자가 보기에는 티격태격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니.
안전벨트를 채워준 나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연두를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마, 연두야. 아빠랑 바보삼촌이랑 그냥 장난치는 거니까.”
“네에..”
그런데 앞에서 또 한 마디가 들려왔다.
“네 쪽이 바보삼촌이지?”
“…”
애써 미소를 띠며 말했다.
“.. 출발하자, 친구야.”
“큭큭, 그래.”
오늘 유독 당하기만 하는 느낌인데.
부르릉.
아무튼 녀석의 흐름 속에 자동차가 출발했다.
함께 해돋이를 보러 갈 일행을 데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