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220)
220화. 떡국
생각했다. 이 강추위를 감당하면서까지 볼 만한 가치가 있을까.
그런 마음에 크게 기대를 갖지 않았다.
새해의 해돋이를 본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할 생각으로.
그리고 연두에게 해돋이를 보여둔다는 사실에 의미를 두기로.
‘뭐, 제대로 처음 보는 해돋이인 만큼 카메라를 꺼내 두긴 했지만.’
예뻐 봤자 노을이 진 하늘을 보는 감상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굳이 따지면 새해에 보는 나름 의미있는 노을.
스스스.
그런데 한 순간에 생각이 바뀌었다.
빼꼼 고개를 내민 태양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러기는 충분했다.
그 미세한 빛이 하늘을 온통 물들이고 있었으니까.
노란빛도 자줏빛도 붉은빛도 아닌, 뭐라 정의할 수 없는 신비로운 색깔로.
이미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와…”
“색깔 봐. 진짜 미쳤는데?”
“구름도 거의 없어서 완전 잘 보여. 오길 잘했다..”
“근데 위에 있는 구름들은 색깔 미쳤네. 태양에 물들어가지고…”
“맞다! 소원 빌어야 하는 거 아냐?”
“그래야지. 그전에 영상부터 찍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다들 추위도 잊은 상태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물론 우리 일행도 예외는 아니었다.
입을 쩍 벌리고 하늘을 보던 동건이가 말했다.
“오우 쉣. 내가 하늘을 보고 감탄하는 날이 올 줄이야..”
예림이도 중얼거렸다.
“진짜 예쁘다..”
“불꽃놀이보다 예쁠 거라고는 생각 안 했는데. 그냥 새해니까 소원 빌 겸 온 거지.”
“나도.. 우리 소원 지금 빌어야 하나..?”
“조금만 이따가 빌자.”
그런 와중 동건이가 옆에 있는 우영이를 불렀다.
“우영아.”
우영이는 하늘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꾸했다.
“왜.”
“지금 하늘 그대로 그릴 수 있냐?”
“몰라. 그래서 집 가면 그려보려고.”
조금 의외의 대답이었다.
평소의 우영이라면 ‘당연하지.’라고 대답했을 텐데.
그만큼 녀석의 눈에도 지금의 하늘이 예쁜 걸까.
‘그나저나 착각인가.’
왜인지 하늘을 보는 우영이의 표정이 뭔가 씁쓸해 보였다.
녀석이 이런 표정을 짓는 걸 보는 건 처음인 거 같은데.
그런 와중 우영이는 중얼거렸다.
“많이 먹여야겠네……”
결국 나는 녀석을 향해 물었다.
“뭘 많이 먹여?”
“물이요. 저거 그리려면 붓에 물 많이 먹여야 할 거 같아서요. 어차피 단일 색으로는 표현 못 할 테니까 워터브러쉬 느낌으로……”
“…”
씁쓸해 보인다는 건 착각인 걸로 하자. 이 와중에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이쯤 되면 같이 미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시선이 향한 건 다름아닌 연두였다.
‘아니.’
사실 처음부터 쭉 내 시선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태양빛으로 물든 하늘, 그 정중앙에 선 연두의 뒷모습에.
직접 보지 않아도 지금 연두가 어떤 표정일지 짐작이 갔다.
동시에 떠오르는 순간이 있었다.
‘선동이 비밀장소에 갔을 때.’
밤하늘을 보는 연두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스윽.
그 순간 나는 카메라를 들고 있던 손을 떨궜다.
지금 카메라가 뭘 담고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초점이 여기저기 흔들리고 있지 않을까.
터벅. 터벅.
그렇게 나는 연두의 뒤로 다가갔다.
이후 쪼그려앉은 나는 양팔로 연두를 감싸안았다.
그제야 내가 왔다는 걸 알아챈 연두. 고개를 쏙 돌려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아, 아빠..?”
“고개 안 돌려도 돼. 그냥.. 연두랑 같이 해님 보고 싶어서 온 거니까.”
“아!”
한차례 생긋 웃음짓고는 다시 고개를 돌리는 연두.
그렇게 나와 연두는 꼭 붙어서 해가 뜨는 걸 바라봤다.
왜인지 무척 포근한 기분이 몸을 감쌌다.
연두가 입은 패딩이 폭신해서가 아니었다.
‘뭐라 해야 할까.’
설명할 수 없는 온기가 몇 겹의 옷을 뚫고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이윽고 연두의 입에서 자그마한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따뜨타다..”
“연두도 그래?”
“.. 아빠도 따뜨태요?”
“응. 아까는 추웠는데 이렇게 연두 안고 있으니까 엄청 따뜻한데? 난로처럼.”
“헤헤.. 연두도요…”
아무래도 온기가 전해진 건 나뿐만이 아닌 모양이다.
그 사실에 빙긋 웃음이 나왔다.
***
태양이 아까보다 더 고개를 내밀었다.
‘하늘은 더 진하게 물들었고.’
참, 아름다운 건 태양과 하늘이 전부가 아니었다.
여기는 공원이었고, 다리 아래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었다.
그 호수에 하늘이 그대로 비쳤다.
선홍색으로 물든 구름이 가득한 하늘이 비쳐 일렁이는 모습.
자연스레 한 마디가 나왔다.
“진짜 예쁘다, 그치.”
“네에..”
옆을 보니 얄미운 녀석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미묘한 표정으로 내 쪽을 바라보는 준수가.
“.. 왜 그렇게 보냐.”
“그냥. 다 컸구나 해서.”
“누가. 연두가?”
“아니, 너.”
이 자식이 뭐라는 거야.
누가 보면 나보다 한 열 살은 많은 줄 알겠다.
연두만 없었다면 무슨 개소리냐 했겠지만, 나는 애써 웃으며 물었다.
“하하, 준수야. 그게 무슨 소리니?”
“말끝 니로 끝내지 마라. 어제 먹은 거 올라오니까.”
“… 아무튼 뭔 소리냐고.”
“아니, 그냥.”
녀석이 씩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처음으로 니가 진짜 아빠같이 보여서, 방금.”
“…?”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이런 말이 다른 누구도 아니고 이 녀석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에.
한편 연두는 알쏭달쏭한 표정이었다.
준수녀석의 말에 뭐라 대꾸하려는데,
“오빠! 빨리!!”
주연이랑 예림이가 나를 부르며 달려왔다.
뒤에는 동건이랑 범재도 따라붙었고.
“응?”
“소원 빌어야죠. 해 다 뜨면 소원 안 이뤄져요.”
“아, 맞다.”
“다같이 빌어요, 우리.
“그래, 그러자.”
나는 바로 연두에게 설명해줬다.
“원래 해가 뜰 때 소원을 비는 거야, 연두야.”
“소원이요..?”
“응. 새해 해돋이에 해님한테 비는 소원은 이루어진다고 하거든. 연두가 가장 바라는 소원을 빌면 돼.”
내 말에 연두는 곧바로 해님을 바라봤다.
그리고선 입을 열었다.
“해님. 연두 소원은요…”
“잠깐!”
나는 다급히 연두의 말을 가로막았다.
놀란 연두가 의문사를 내뱉었다.
“으응..?”
“아냐. 소원은 속으로 비는 거야, 연두야.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게.”
“아! 연두 마음으로요..?”
“그래, 마음으로.”
그제야 연두는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옆에서 동건이가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
“아깝다. 연두 소원 들을 수 있었는데. 근데 뭐, 하주연 소원은 뻔하니까.”
주연이가 황당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 왜 갑자기 내 소원 얘기냐?”
동건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분명히 이런 소원이겠지. 해님.. 제발 제가 비욘떼, 아리아나 그랑데같은 세계적인 가수가 되게……”
짝!
“어억!”
“니 소원이나 신경 써, 멍청아!”
결국 등짝을 한 대를 얻어맞고야 마는 동건이였다.
아무튼 그렇게 소원 빌기가 시작됐다.
“유치하게 무슨 소원이야. 그런 거 다 미신……”
그렇게 말하던 우영이도 끈질긴 동건이의 집착에 결국 동참했다.
예림이, 주연이, 범재, 동건이, 그리고 준수까지.
어느새 연두도 두 손을 꼭 모으고 소원을 빌고 있었다.
나도 그 손을 겹쳐잡고 소원을 빌기 시작했다.
‘저기, 해님..?’
아무리 속마음이라지만 우스웠다.
사실 나도 우영이와 비슷한 유형이었으니까.
해한테 소원을 빈다고? 그게 이뤄지겠냐.
태양은 그냥 우리 태양계에서 가장 큰 천체이자 항성인 무생물인데.
‘이런 식으로 생각했겠지.’
따라서 평소라면 내가 태양을 향해 소원을 비는 일은 없었을 터였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빌고 싶었다.
정확히는 꼭 빌고 싶은 소원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나는 두 손을 모으고 간절하게 소원을 빌었다.
‘제 소원은……’
나와 해님밖에 들을 수 없는 소원을.
***
해가 완전히 떠오르고 밝아진 하늘.
이렇게 새해의 해돋이가 끝이 났다.
“우와, 사진 진짜 잘 나왔다.”
“캬! 역시 주원행님!”
“연두 이 사진 봐. 진짜 너무 귀여워…”
내 카메라를 들고 가서 사진을 보는 녀석들.
주연이가 신난 표정으로 말했다.
“오빠, 저 이거 원스타에 올리고 싶은데 사진 보내주실 수 있어요?”
“물론이지. 집 가서 바로 보내줄게.”
“아싸! 인생사진이다, 진짜…”
예림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인정. 신기하지 않아, 주연아?”
“뭐가?”
“우리는 백장 넘게 찍어야 하나 건질까 말까인데. 오빠가 찍으면 그런 사진이 너무 쉽게 나오잖아.”
“크크, 그니까. 이거 봐. 다 잘 나왔어.”
얘네들 또 비행기 태워주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카메라 성능이 좋아서 그래.”
아무튼 그렇게 사진 감상이 끝났다.
준수가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어떡할까? 다들 아침 안 먹지 않았어?”
먹었을 리가 없지. 그럴 시간이 없었으니까.
새벽에 일어나서 차를 타고 와 본 해돋이였다.
역시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와중 동건이가 입을 열었다.
“오기 전에 좀 알아봤는데요, 행님.”
“뭘?”
“식당이요.”
가만 보면 의외로 사전조사가 철저한 녀석이었다.
맨날 상남자 상남자 하는 거 치고는 계획파라고 해야 하나.
동건이가 말을 이었다.
“해돋이 명소라 그런지 주위에 유명한 떡국집이 있더라고요.”
“떡국?”
“네. 다양하게 팔긴 하는데 메인이 떡국인 그런 느낌적인 느낌. 대충 어떤 느낌인지 아시겠죠?”
느낌을 세 번이나 반복하는 녀석.
그와 별개로 확실히 어떤 느낌의 식당인지는 알 거 같았다.
허나 조금 걱정되는 게 있었다.
“오늘은 엄청 붐비지 않을까?”
“물론 예상했습니다.”
녀석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제가 나름 브레인 아닙니까, 행님. 그래서 조금 거리가 있지만 너무 멀지도 않은, 동시에 별점이 높은 식당을 찾아냈죠. 원래 높은 별점은 배신하지 않는 법이니까요, 흐하하!”
“오케이. 그럼 거기로 가자. 다들 떡국 괜찮아?”
예림이가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저는 좋아요! 우리 연두도 여섯 살 돼야 하니까.”
그 말에 연두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연두 여서쌀 안 대써요..?”
“원래 새해에 떡국을 먹어줘야 진짜 한 살 더 먹는 거야, 연두야.”
“.. 진짜 한 살?”
“응.”
연두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더니 말했다.
“아빠! 연두 떡국 머글래요! 빨리 여서쌀 되고 시퍼요…”
“하하, 그래. 빨리 먹으러 가자.”
이렇게 식사 메뉴가 정해졌다.
이후 우리는 곧바로 차에 탑승했다.
덜컥.
차에 탄 뒤 차창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어느새 태양은 완전히 떠올라 반짝이고 있었다.
‘잘 보고 갑니다.’
그나저나 연두는 아까 무슨 소원을 빌었으려나.
문득 궁금해진 순간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출발한다. 다들 안전벨트 매고.”
“네!”
“롸저, 댓!”
“연두야. 언니가 벨트 매 줄게.”
“네에..”
그렇게 우리는 태양을 뒤로하고 출발했다.
나이 한 살과 떡국을 같이 먹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