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232)
232화. 준비
어느새 일주일 뒤로 다가온 설날.
새해 인사 영상은 정확히 1월 25일, 설날에 맞춰서 올릴 생각이었다.
‘그러려면 슬슬 준비할 필요가 있겠지.’
카메라 외에 새해 영상 촬영에 필요한 준비물은 딱히 존재하지 않았다.
굳이 꼽자면 두 가지 정도를 들 수 있긴 한데.
그중 하나는 이미 준비되어 있는 상태니까.
바로 새해 영상의 메인 의상인 ‘이든’표 한복이었다.
택배가 온 날, 오준석과의 통화 이후 바로 연두에게 입혀본 한복.
아직도 한복을 입은 채 치마를 잡고 나를 바라보던 연두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당시 내 감정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이랬다.
‘놀라움.’
여러 부면에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짧은 시간동안 이런저런 생각과 의문이 교차했던 거 같다.
한복이 이렇게 아름다운 의류였나. 어떻게 이런 색감을 낸 거지.
이런 옷에 대한 감탄에 더불어 새삼 들었던 한 가지 생각.
‘.. 진짜 예쁘구나.’
옷의 모델인 내 딸 연두는 정말 말도 안 되게 예뻤다.
꼭 조선시대의 어여쁜 아기 공주님을 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옛 표현을 빌리자면 ‘곱다’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렸다.
그런 연두는 세상 맑디맑은 미소를 띠며 내게 말했다.
“.. 아빠도!”
“응?”
“아빠도 입어요.. 한복..!”
안 그래도 입어볼 생각이었는데, 연두 때문이라도 안 입어볼 수가 없었다.
“하하, 그럴까?”
“네에..”
괜히 나는 못 이기는 척 한복을 입어봤다.
남자 한복은 여자 한복과 사뭇 달랐다.
허리를 여미어 입는 다소 통이 넓은 바지, 허리 아래까지 내려오는 저고리, 남자 한복의 꽃인 두루마기.
‘아, 조끼도 있었지.’
허나 겉으로 보이는 건 역시 ‘두루마기’였다.
여자 한복으로 치면 저고리와 치마에 해당하는 부분이었으니까.
그리고 다시 한 번 나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감탄의 이유는 조금 달랐지만.’
연두를 봤을 때는 옷이 완전히 주인을 만난 느낌이었다.
괜히 ‘연두 맞춤 한복’이 아니라는 느낌.
반면에 내가 나 자신을 보고 놀란 이유는 하나였다.
보는 즉시 머릿속에 떠올랐던 속담.
‘옷이 날개다.’
조금 과장일지 몰라도 말 그대로 날개를 단 느낌이었다.
연두와 무슨 차이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뭐랄까. 뭐라고 설명해야 이해가 편할까.
‘그래.’
연두는 천사가 제 옷을 찾아 입어서 더 빛이 나는 거라면.
내 경우는 분에 맞지 않는 좋은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잘 어울렸지.’
어떤 옷을 입고 스스로 감탄한 건 처음이었으니 말이다.
내가 옷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타입인 탓도 있지만.
오준석이 얼마나 나를 신경써서 만들어준 건지 느낌이 오는 옷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보다도 더 좋아한 건 다름아닌 연두였다.
“.. 우아.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머시써요, 아빠…!”
평소에도 그렇지만 유독 더 진심이 느껴졌던 연두의 말.
낯간지럽긴 했지만 동시에 굉장히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신나서 몇 장이나 연두와 함께 사진을 찍었을 정도니까.
‘지금은 잘 보관해 뒀고.’
언제든 깨끗한 상태로 꺼내 입을 수 있도록 보관해 뒀다.
아무튼 이렇게 새해 인사를 위한 메인 의상은 준비된 상태.
남은 준비물은 하나였다.
‘아니, 물건이 아니니 준비물은 아니구나.’
새해 영상을 찍을 때 꼭 부르기로 한 조력자가 있었다.
다름아닌 영상편집 학원의 동료 아름이였다.
안 그래도 예쁜 연두를 최고로 예쁘게 꾸며주기로 한 고마운 조력자.
‘상상이 안 되네.’
전혀 따로 꾸미지 않고 한복만 입었는데도 그렇게 예뻤는데.
작정하고 꾸미면 어떤 모습일지, 쉽사리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직접 봐야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언제든 도와주겠다고 했으니.’
조력자 또한 준비된 상태라고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신경써야 할 건 단 하나였다.
나. 영상을 통해 나를 드러낼 준비를 갖춰야 했다.
‘그리 대단한 건 아니지만.’
꽤 긴 시간 동안 영상을 통해 교류한 구독자들이었다.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연두의 아빠다운 모습으로 다가가고 싶었다.
연두의 옆에서 인사하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도록 말이다.
그게 설날 새해 인사 영상을 위해 내가 할 유일한 준비였다.
***
요새 꽤 많은 일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우선 운전면허 시험 일정이 잡힌 상태였다.
사실 운전면허 자체가 그리 취득이 어려운 면허는 아니었다.
스케줄을 올인한다면 2주 내로도 딸 수 있는 수준이니 말이다.
허나 현재 내가 운전면허를 따는 데만 몰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 밖에도 해야 할 일들이 많았으니까.
뭐, 별로 상관은 없었다. 기껏해야 몇 주 더 밀리는 수준 아닌가.
조금 늦게 딴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바로 딸 자신은 있고.’
달리 말하면 두 번 응시할 자신이 없었다.
학원에 다니면서 확신이 생겼다. 한 번에 딸 수 있겠다는.
그만큼 순조롭게 수업에 따라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면허와 더불어 연두티콘 제작에도 유의미한 변화가 존재했다.
바로 ‘움직이는 이모티콘’ 제작에 들어갔다는 것.
세 종류의 이모티콘 중 마지막 단계라 볼 수 있었다.
‘확실히 가장 시간이 오래 걸려.’
하나의 이모티콘이라도 완성하려면 여러 컷을 그려야 했다.
‘큰 이모티콘’과 달리 중복되면 안 되기에 전부 창작해내야 했고.
하지만 그런 거 치고 작업이 그리 고되지는 않았다.
‘즐거우니까.’
과정을 즐긴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몸소 체감하고 있었다.
연두의 다양한 모습들을 구상해서 그려내고,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어내는 일련의 과정.
그건 나로 하여금 상당한 성취감을 가져다줬다.
시작할 때는 멀게만 느껴졌던 72종의 이모티콘.
이제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다. 완성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이에 더해 최근 나에게 또 다른 성취감을 주고 있는 게 존재했다.
‘공모전 그림.’
‘전국 청년작가’ 공모전에 제출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지 수없이 생각했다.
공모주제가 자유주제인 만큼 그려야 할 분야가 한정되어 있지 않았다.
뭘 그려도 상관없다는 뜻이었다.
‘오히려 그래서 더 어려웠지.’
그리고 싶은 연두의 모습이 너무 많았다.
떠오르는 게 없는 것도 문제지만, 경우의 수가 너무 많은 것도 문제였다.
그러던 와중 생각의 관점을 조금 달리하니 떠오른 아이디어가 있었다.
‘꼭 연두의 모습을 그릴 필요는 없어.’
지금껏 그린 그림들.
연두튜브의 채널아트, 연두의 초상화, 팬미팅 때 그린 연두.
하나같이 내가 보거나 생각하는 연두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었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조금 다른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다.
‘색다르면서도 내가 진짜 그리고 싶은 그림.’
그런 생각 끝에 떠오른 아이디어가 바로 ‘내 감정’이었다.
정확히는 연두와 처음 만났던 날의 내 감정.
아직도 어린이대공원에 갔을 때 관람차에서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가장 좋았던 날이 언제냐고 묻는 내 질문에 답하던 연두의 모습이.
“그 날이 언제인데?”
“……을 때.”
“응?”
“아빠를 처음 만났을 때…”
처음 만난 날. 그 날을 연두는 ‘가장 좋았던 날’로 기억했다.
따라서 나도 똑바로 마주하고 싶었다.
혼란스러운 감정. 당황한 감정. 설렜던 감정. 아팠던 감정. 놀랐던 감정.
수많은 감정이 뒤섞였던 그 날의 기억을 되살려서.
‘정확하게.’
당시의 내 감정을 숨김없이 그려내 보고 싶었다.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질지 모른다.
솔직히 전해질지도 모르겠다. 내가 전달하려는 걸 심사위원들이 느낄 수 있을지.
허나 그런 걸 신경쓰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그리고 싶은 걸 그리고 싶으니까.’
설사 다른 사람이 공감할 수 없더라도 말이다.
만약 내가 그 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데 성공한다면.
탈락하더라도 스스로는 만족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어찌 보면.’
수상보다도 내게는 더 큰 목표이자 지향점이었다.
성공한다면 비로소 나도, 그 날을 가장 좋았던 기억으로 남길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런 생각 속에 손이 움직였다.
핑그르르.
언제나처럼 손 위를 경쾌하게 회전하는 붓.
수없이 많은 감정 중 하나의 감정을 그려낼 시간이었다.
***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라원 셰프 이호연입니다.”
뜻밖의 연락이었다.
저번에 사과받은 이후로는 첫 연락인데.
그는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잘 지내셨나요?”
“네.”
“아,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어제도 연두는 여전히 귀엽더군요, 허허.”
진짜 빠짐없이 챙겨보는 모양이네.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한 번 찾아뵙기로 했는데 못 찾아뵀네요. 최근에 여러모로 일이 많아서……”
“아닙니다. 편하실 때 언제든 찾아주시면 됩니다. 제가 죄송한 마음에 초대드린 건데요.”
몇 차례 대화가 오가고 그가 말했다.
“사실 제가 전화드린 이유가 있는데..”
그럴 거라고 예상하긴 했다.
아무런 용건 없이 전화할 정도로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으니까.
이호연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전적으로 초록님 의사이니 내키지 않는다면 그냥 흘려 들으셔도 됩니다.”
“네,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제가 출연하는 ‘최고의 한 끼’라는 프로그램. 알고 계시죠?”
“물론입니다. 즐겨 보는 프로니까요.”
전에 얘기했듯 내가 거의 유일하게 즐겨 보는 프로그램이었다.
특히나 요리에 관심이 생긴 후로 더더욱 그렇고.
이호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피디님이 저한테 개인적으로 부탁을 하셨습니다.”
“부탁이요?”
“네. 그 부탁이…… 연두랑 초록님한테 게스트 섭외 요청을 전해 달라는 거였습니다.”
이 말에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연두랑 저를요..?”
“네.”
“게스트로는 유명 연예인분들만 나오시는 거 아닌가요?”
“대체로 그렇긴 하지만.. 연두는 웬만한 연예인의 파급력을 뛰어넘으니까요.”
이어서 그는 연두를 섭외하게 된 배경에 관해 이야기해 줬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랬다.
‘저번에 연두를 언급하는 방송이 나간 후.’
‘최고의 한 끼’ 시청자 게시판이 들끓기 시작했다는 모양이다.
연두와 나를 게스트로 섭외해 달라는 요청으로.
당연히 상황을 파악한 피디가 이호연에게 개인적으로 부탁한 거고.
“사실 부탁을 받긴 했지만.. 연락드릴지 말지 굉장히 고민 많이 했습니다. 구독자로서 초록님이 얼굴 공개를 하지 않는 것도 알고, 저번에 제가 한 실수도 있으니까요. 어찌 보면 이렇게 된 것도 제 실수에서 비롯된 거고요.”
그는 이어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래도 당사자인 초록님한테 이런 부탁을 받았다는 사실 정도는 말씀드리는 게 옳은 거 같아서요.”
확실히 어떤 입장인지 이해가 갔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호연에게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좋은 편에 속했다.
‘프로그램에서도 호감형이고.’
영상을 통해서라고는 하지만 내 요리 스승님이니까.
무엇보다도 연두를 좋아해 주는 연두튜브 구독자이기도 하고.
나는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당연한 건데요.”
“제안은 연두랑 같이 잘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그거랑 별개로…… 식당도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
내 말에 호탕한 웃음과 함께 대답이 돌아왔다.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
이틀이 지나갔다.
어느새 ‘설날’까지는 단 5일만이 남은 상태.
이제 정말 영상을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툭.
어딘가로 나는 전화를 걸었다.
조력자인 아름이에게 거는 전화는 아니었다.
뚜. 뚜.
얼마간 지속되는 통화연결음.
달칵.
통화가 연결되고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주도 전화한다, 이 놈의 조대새끼.”
예상했겠지만 외할머니 민홍임이었다.
나는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하하, 잘 지내셨어요?”
“흥, 잘 지내긴. 죽지 못해 살고 있지.”
“에이, 왜 이러실까. 예쁜 손주랑 연두 보는 재미에 푹 빠져 계신 거 아는데.”
“까불지 말어!”
역정을 내시는 걸 보니 정곡을 찌른 모양이다.
얼마간 정다운 대화가 이어졌다.
그런 거 치고 다소 격한 느낌이긴 했지만.
“그래서.. 왜 전화했어?”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뭔데.”
“얼마 후에 설날이잖아요.”
“그려.”
“그때 서울 올라오실 수 있어요?”
“내가? 너랑 쥐방울이 아니고 이 할미가?”
나는 재빨리 대답했다.
“들어 보세요.”
“뭘.”
“저번 집들이 때 못 오셨잖아요. 아직 저희 집 구경도 못 시켜드렸고요. 물론 가는 거 어렵지 않지만……”
사실 조금 어렵긴 했다.
그래도 지금 하는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다.
“집 구경도 시켜드리고 세배도 드릴 겸 초대드리고 싶어서요.”
“어쭈. 말은 잘 하네.”
“진심이에요.”
나는 조심스레 덧붙였다.
“오실 수 있으세요, 할머니?”
“몰라, 이것아!”
대답을 들은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할머니어’로 번역하면 알겠다는 뜻이었으니까.
‘다행이네.’
힘들다고 하시면 연두와 함께 찾아뵐 생각이었다.
허나 그렇게 되면 영상 촬영에 다소 지장이 있을 수 있었다.
아름이의 도움을 받기에도 상황이 애매해지고.
오신다고 하니 마음이 놓였다.
허나 꺼내려고 한 본론은 이게 아니었다.
할머니와 나눠야 할 중요한 얘기가 남아있었으니까.
‘나를 공개할 거란 거.’
공개하기로 생각은 했지만, 단순히 마음먹기에 달린 건 아니었다.
야기할 수 있는 여러 문제점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친척들 문제였다.
전에 시골에서 말했을 때 할머니는 이렇게 얘기했다.
“할미가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하마. 네가 뭘 하든간에 그 녀석들이 너랑 쥐방울의 일상을 건드리는 일은 없을 거다. 절대로. 그러니 넌 신경쓰지 말고 눈치도 보지 마. 그냥 하고 싶은 걸 해.”
우려를 표하는 내게 할머니가 건넨 말.
듣고서 아무런 의문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근거도 알 수 없었고.
허나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와 연두 편에 서 줄 거라는 것.’
그거 하나만큼은 분명히 전해지는 할머니의 말이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전보다 더 자세하게 들어야 했고, 내 생각에 관해서도 얘기해야 했다.
그야, 설날은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으니까.
나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할머니.”
“또 뭐.”
“설날에 새해 인사 영상을 찍을 생각이에요.”
“근데.”
“그 영상에서, 저도 연두랑 함께 인사할 생각이고요.”
쭉 생각했던 이야기의 본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