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239)
239화. 침묵
“안 들어오고 서서는 뭐 해?”
짤막한 한 마디를 던지고는 안으로 들어가는 민홍임.
그들은 괜히 서로 눈치를 살피다가 말했다.
“.. 들어가죠.”
“그래요. 당신도 빨리 들어와.”
뒤쪽에서 담배를 태우는 남자는 최성조.
“후우..”
이주원의 이모부로, 장례식장에서 가장 날카롭게 언쟁을 주고받았던 남자이기도 했다.
그는 반쯤 태운 담배를 손에 든 채로 대답했다.
“먼저 들어가 있어. 이거만 마저 피우고 따라 들어갈 테니까.”
“아, 진짜.. 무슨 여기까지 와서 담배를 피워.”
“애들도 없는데 뭐 어때.”
확실히 평소 설날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약속이라도 한 듯 어느 가정도 아이를 데려오지 않았으니까.
우연이 아니었다.
아직 직접적으로 얘기는 안 했지만 모두 알고 있었다.
자신들의 아이가 듣기에는 정서상 좋지 않은 얘기가 오가게 될 거란 걸.
사실 그들로서도 꺼내야 하지만 꺼내기 불편한 주제였다.
그러니 딱히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쉽게 들어가지 못하고 서 있던 건.
허나 언제까지고 멀뚱히 서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
민홍임의 말에 그들은 하나둘 집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다소 어색한 인사말도 이어졌다.
“.. 잘 지냈어, 엄마? 별 일 없었지?”
“건강하시죠?”
“여기는 오랜만에 왔는데도 그대로네요, 하하하.”
애써 작위적인 웃음을 머금고 말문을 트려는 이도 있었다.
그럼에도 민홍임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동도 없었다.
스르륵.
그런 와중 열리는 문.
담배를 다 태우고 들어온 최성조였다.
“문이 좀 삐걱거리네, 이거. 손 좀 봐야겠는데?”
이후 그는 민홍임을 보고 말을 이었다.
“안녕하세요, 장모님. 흠.. 별 일은 없으시죠?”
민홍임의 입가에 비릿한 실소가 흘렀다.
또 별 일 없냐는 소리다. 어떻게 이렇게 인사말이 하나같이 똑같을 수 있는지.
평소에 가끔 통화만 해도 알 수 있는 문제인데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민홍임의 입에서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별 일이 있는 게 이상하지. 시간이 지난 거 빼고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는데.”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뼈가 있는 말이었다.
이전과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말은.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최성조의 대답이 이어졌다.
“에이, 달라진 게 없긴요. 보니까 주원이랑 사이가 되게 좋아지신 거 같던데요? 그리고.. 우리 연두랑도요.”
“…”
친척들조차 얼어붙게 만드는 태연함이었다.
장례식장에서 한 번 본 게 전부인 아이를 ‘우리 연두’라고 부르다니.
더군다나 그 아이 앞에서 벌어졌던 상황도 있는데.
그러나 여전히 민홍임의 표정에는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더욱더 무거워진 집안 내부의 분위기.
“이, 일단 절부터 드리죠.”
“그렇지, 참.”
싸늘한 분위기 속에서 어색한 절이 이어졌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만수무강하시고……”
한 사람이 끝나면 다음 사람, 다음 사람이 끝나면 또 그다음 사람.
이토록 형식적인 세배가 어디 있을까.
민홍임의 입가에 다시 스치는 비릿한 실소.
‘그래. 원래 이랬지..’
생각해 보면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늘 명절 때 새배를 받을 때마다 이런 기분을 느꼈으니까.
진심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새해 인사.
그럼에도 지금 유독 이런 기분이 드는 건 단순히 연두에 관한 문제 때문만은 아니리라.
눈앞의 이어지는 세배를 보면서도 머릿속에는 다른 장면이 떠오르고 있었다.
“새해 복 마니 바드세요, 할머니..!”
“새해에는 더 건강하셔야 해요.”
쥐방울과 손주의 세배와 새해 인사.
특별한 인사말은 아니었지만 확연한 차이가 존재했다.
둘의 표정에서는 확연히 느껴졌으니까.
지금 상황으로서는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찾아낼 수 없는 ‘진심’이.
스르륵.
세배가 끝날 무렵, 뒤늦게 열린 문.
“.. 다들 와 계셨네. 늦어서 죄송해요.”
그는 민홍임의 막내아들 김윤호였다.
이주원의 외가 친척들 중에서는 비교적 가장 어린 축에 속하는 남자였다.
장례식장에 연두를 데리고 온 장본인이기도 하고.
“잘 지냈어, 엄마? 자주 못 와서 미안해. 연락도 거의 못하고.”
그나마 가장 다른 첫인사였다.
민홍임은 시선을 맞추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옆에서 김다영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다 인사드렸어, 윤호야. 너도 절 올려.”
“아, 응, 누나.”
김윤호는 가방을 내려놓고 민홍임의 앞에 앉았다.
그리고선 세배를 올렸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는 더 건강하시고.”
김윤호를 마지막으로 끝난 세배.
원래 세배는 일방적인 인사가 아니었다.
서로 인사하며 덕담을 주고받는 게 풍습이었으니까.
“.. 그래. 전부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이렇게 마무리됐다면 나름 훈훈했을 터였다.
진심을 떠나서 제삼자가 보기에 위화감 없는 명절의 모습이었으니까.
그러나 모두가 예상했듯 상황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 흠. 이렇게 전부 모인 김에 할 얘기가 있는데요.”
이번에도 얘기를 꺼내는 건 최성조였다.
뻔뻔하게 보일지 몰라도 누군가의 입장에서는 총대를 메는 걸로 보이기도 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그의 입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아니나 다를까 최성조는 말을 이었다.
“연두에 대해서요.”
피할 수 없는 주제가 튀어나왔다.
***
모두가 예상한 피할 수 없는 주제.
침묵 끝에 입을 연 건 민홍임이었다.
“자네가 그 아이에 대해 할 얘기가 있나?”
계속 말을 아끼던 모습과 달리 정곡을 찌르는 날카로운 물음.
당황한 최성조가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예? 아니, 그야……”
그것도 잠깐, 최성조의 얼굴이 냉정해졌다.
어차피 깔기로 한 철판, 할 말을 아낄 생각은 없었다.
“연두 말입니다. 저희 집으로 데려와서 키울까 해서요.”
커다래지고 벌어지는 주위 친척들의 눈과 입.
최성조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때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주원이녀석 손에 맡겨야 했지만.. 이제는 안정이 됐거든요. 사실 도의적으로 저희가 키웠어야 하는 건데.”
“…”
“주원이도 아직 많이 어리지 않습니까. 와이프가 없으니 제대로 된 가정으로 보기도 뭐하고.. 저희 집에서 크는 게 아이 정서상으로도 좋을 겁니다.”
장례식장 때와 마찬가지였다.
한 번 입이 트이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말을 늘어놓는 것.
얼핏 보기에는 청산유수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상은 완전히 모순적인 이야기였다.
장례식장. 그 자리에 있었던 친척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냥 제안해 본 거지, 뭐. 솔직히 내가 못할 말 한 건 아니잖아. 주원이 나이도 스물다섯이면 다 컸고. 연두라고 했나? 애랑 나이 차이도 우리에 비하면 그렇게 많이 안 나고! 어? 일단 한 번 같이 살아보는 거 어떻냐는 거지. 평생 데리고 있으라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둘이 비슷하잖아. 주원이도 이서방 죽었을 때 혼자됐는데 지금까지 잘 살았고. 경험자로서 애한테 힘이 될 거 아냐, 힘이!’
전부 최성조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시간이 흐른 지금 바뀐 건 하나였다.
당시 뱉은 명분들을 다르게 활용하고 있었다.
아이를 어린 친척에게 떠넘기기 위한 용도에서 이제는 뺏어오기 위한 용도로.
그걸 전부 들은 친척들이었으나 트집을 잡을 수는 없었다.
그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입장이었으니까.
하나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애기가 살기에는 우리 집이 환경이 더 좋을 거 같은데요.”
“경제적으로 더 여유로운 집에서 데려가는 게 맞지 않을까요?”
최성조가 발끈해서 대답했다.
“아니, 경제적 여건이 뭐가 중요해? 애기 밥 먹이고 학교 학원 보낼 능력만 있으면 되지. 그리고.. 애기를 얼마나 사랑으로 키울 수 있느냐가 중요하죠. 더군다나 우리는 애도 둘이나 있고요.”
황당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이미 아이를 데려가는 건 기정사실화 하고선 누가 데려갈지 떠들어대고 있었으니까.
누군가는 언쟁에 끼어들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또 누군가는 입술을 잘근 깨물고 있었고.
결국 언쟁이 종료된 건 민홍임의 한 마디였다.
“최서방.”
민홍임의 부름에 최성조가 대답했다.
“네, 장모님.”
“아이를 데려가면 사랑으로 키울 자신이 있는 모양이야.”
최성조의 눈이 반짝였다. 평소 장모님의 성격은 잘 알고 있었다.
그에 비해 지금 건네는 어조는 상당히 온순했다.
이야기 역시 긍정적인 반응으로 느껴졌고.
‘결국 중요한 건 장모님이야.’
다른 친척들과 다퉈 봐야 좋을 건 없었다.
애를 데려가는 데 있어서 가장 크게 작용하는 건 말할 필요도 없이 장모님의 의사였다.
그걸 알기에 최성조가 힘차게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 자네 자식들만큼이나?”
“당연히 그래야죠!”
“그런데 내가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하하, 뭐든지 말씀하세요. 걱정되시는 게 있으면.”
“다른 집도 그렇고, 자네 애들은 왜 안 데려왔나? 보고 싶었는데.”
최성조로서는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아이를 데려갔을 때의 애로사항에 대해 얘기할 거라 생각했으니까.
“제 자식들 말입니까?”
“그래. 준우랑 진서 말이야.”
“아, 그게.. 아무래도… 애들이 듣기에는 좀 무거운 얘기가 오가지 않을까 해서… 다음에 올 때 꼭 데려오겠습니다.”
이렇게 말고는 달리 답할 말이 없었다.
민홍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느껴지네. 자네가 애들을 얼마나 많이 아끼는지. 자식들한테 민감한 이야기가 나올 거 같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 데려가지 않을 정도니까 말이야.”
“.. 네. 그렇죠. 연두도 그렇게 아껴줄 겁니다.”
이상했다. 대답하면서도 뭔가 위화감을 떨칠 수 없었다.
말실수를 한 것도 없는데 찔리는 기분이라 해야 하나.
이어지는 민홍임의 말을 듣고서야 그는 위화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왜 달랐나?”
“.. 네?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동석이 장례식장에서 말이야. 애를 앉혀두고 많은 얘기를 한 거 같던데. 특히 자네가.”
얼어붙은 최성조와 주위 친척들.
민홍임은 개의치 않고 태연함을 유지하며 말을 이었다.
“굳이 책임질 필요가 있냐든지, 누가 맡는 게 좋을지로 다툰다든지, 보육원에 맡기는 게 어떻냐든지. 그걸 몰골이 엉망인 채로 우는 다섯 살 애를 앉혀두고 얘기했다고 들었는데.”
“아, 아니, 장모님… 뭔가……”
“방금 자네 애처럼 아껴줄 수 있다는 그 아이를 앞에 앉혀둔 채로 말이야.”
평소에 그저 툭툭 거칠게 쏘아붙이는 민홍임의 모습이 아니었다.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며 정확히 모순을 지적했다.
누구도 반박할 수 없도록 논리적으로.
“다시 한번 묻지.”
처음으로 민홍임의 표정이 날카롭게 바뀌었다.
그런 채로 그녀는 말을 이었다.
“최서방. 자네가 그 아이에 대해 할 얘기가 있나?”
***
“건드리지 마.”
“…”
“최서방. 자네를 포함해서 여기 있는 누구도. 주원이와 연두, 그 애들의 일상을 건드리지 마. 손끝 하나도 대지 마. 그랬다가는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단호한 말에 아무도 반박할 수 없었다.
최성조도 똥 씹은 표정으로 인상만 구기고 있고.
민홍임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연두튜브 영상을 하나라도 봤으면 알 거다. 그 아이가 얼마나 행복해하는지. 얼마나 잘 크고 있는지.”
이 말에는 멈칫하는 사람이 몇 있었다.
그야, 그들 중에서는 연두튜브를 계속 봐 온 사람도 존재했으니까.
따라서 알 수밖에 없었다.
영상 속에서 세상 누구보다 행복해하는 연두의 모습을.
“아무도 주원이보다 그 아이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는 없어. 그리고.. 아까 어른이라는 말을 들먹였지.”
“…”
“내가 보기에는 너희, 그리고 자네들 중 그 누구도 주원이보다 어른이 아니야.”
사실 손주에게 얘기했듯 민홍임에게는 패가 존재했다.
꺼내면 모두가 연두를 포기하게 만들 만한 패가.
그럼에도 꺼내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보고 싶지 않으니까.
이러나저러나 배 아파서 낳은 자식들이었다.
더이상 추해지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말만으로 납득시키고 싶은 마음이었다. 연두를 포기해야 하는 이유를.
민홍임은 꼭 해야 할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다 알겠지만 그 아이는 우리와 혈연관계가 아니다. 여기 중 어느 누구도 관여할 자격이 없단 소리지. 내 아래로 들어오긴 했지만, 자격요건을 충족하면 바로 주원이한테 부모 자격을 양도할 거다. 주원이가 그 아이의 아빠니까.”
“.. 그래도 동석이 딸이잖아요.”
“장례식에서도 그렇게 말했나? 동석이 딸이니까 거두자고.”
“…”
아니, 정확히 그 반대였다.
따져 보면 우리랑은 남 아니냐고. 거둘 필요 없는 거 아니냐고.
모두가 머릿속으로 공유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그렇기에 다시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허나 단 한 사람, 예외가 존재했다.
“.. 없으셨잖습니까.”
그건 다름 아닌 최성조였다.
여기서 침묵했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된다는 위기감에 무턱대고 나간 말.
날카로운 민홍임의 물음이 이어졌다.
“뭐?”
“그 자리에 없으셨잖습니까.”
최성조의 생각은 간단했다.
함께 앉아있는 친척들은 적인 동시에 같은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해도 가로막지 않을 테지.
그렇다면 일단 중요한 건 연두, 그 아이를 얻어내는 것.
그것만 가능하다면 다른 문제는 그 이후에 해결하면 됐다.
“그 자리에 장모님은 없으셨죠. 지금 하신 얘기들은 전부 주원이녀석한테 전해 들으신 걸 테고요.”
“…”
“저로서는, 아니 저희로서는 억울한 부분이 많습니다. 주원이녀석의 편파적이고 어느 정도는 악의적인 말로 인해 사실관계가 곡해되고, 장모님은 그걸 곧이곧대로 믿으시는……”
역시 처음에 꺼내는 게 어렵지 헛소리를 늘어놓는 건 쉬웠다.
얼마나 인간이 추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장면.
역시 그의 예상대로 아무도 말을 가로막지 않았다.
“하…”
누군가의 한숨이 흘러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자연스레 멈춘 최성조의 말.
차가운 어조의 한 마디가 그를 강타했다.
“적당히 좀 합시다, 매형.”
쭉 어두운 표정을 유지하다가 나선 남자.
그는 다름아닌 이 자리에서 가장 어린 김윤호였다.
“…?”
난데없는 태클에 벙찐 표정의 최성조.
전혀 예상치 못한 대상에게 말을 가로막혀 충격이 더 컸다.
가장 과묵하고 조용한 타입의 김윤호에게서.
김윤호는 최성조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요. 저도 할 말 없어요.”
“윤호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가만히 있었으니까요. 매형이 애기 주원이한테 떠넘길 때, 장모님한테 맡기자고 할 때, 보육원에 보내자고 할 때.”
“보, 보육원에 보내자고는 처제가 그랬지! 이 자식이 어딜 나한테 다 떠넘기려고.”
말하고 나서야 그는 실수를 깨달았다.
나머지 얘기는 전부 한 걸 인정한 꼴이 되어버렸으니까.
처제의 매서운 말도 이어졌다.
“왜 갑자기 내 얘기를 꺼내요!”
“…”
최성조의 호통에도 김윤호는 눈도 깜빡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말 함부로 하시지 마세요. 준우랑 진서랑 달리, 저는 매형 자식 아니니까.”
“.. 뭐? 이 새끼가……”
“하하, 정말 그때랑 변한 게 없으시네. 주원이가 한 얘기 기억 안 나세요? 이모부만 어른 아니라고.”
분을 못 이기는 최성조를 향해 김윤호는 말을 덧붙였다.
“엄마 말이 맞아요. 여기에서 주원이보다 어른 없어요.”
“…”
“아까 말했듯이 저는 장례식장에서 가만히 있었어요. 아무 말도 안 하고. 왜냐고요? 귀찮았거든요. 애? 불쌍하긴 한데 그게 뭐 어쩌라고. 이제 다섯 살 된 데다가 더럽기까지 한데. 딱 봐도 형한테 학대당해서 상처도 클 테고. 멀쩡한 애도 자신 없는데 그런 애를 내가 어떻게 책임져? 지금 일하는 것도 바빠 죽겠는데. 그냥 조용히라도 있는 게 상책이지.”
말할수록 격해지는 감정이 느껴졌다.
그런 채로 김윤호는 실소를 뱉으며 말했다.
“이게 나란 놈이에요.”
“너, 너…”
“어쩌면 하고 싶은 말 필터 안 거치고 다 하는 매형보다 더 비겁할지도 몰라요.”
비겁하다는 말에도 이번에는 최성조조차 끼어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근데요.”
“.. 윤호야.”
떨리는 목소리로 동생을 부르는 김다영.
김윤호는 나지막이 말을 덧붙였다.
“걔는 했어요. 주원이.”
“…”
“하하, 걔가 애 손 잡고 자리 박차고 일어날 때. 바보같긴 한데 진짜 더럽게 멋있더라고요.”
한동안 그 누구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입을 연 건 김윤호였다.
“난 몰랐는데. 연두튜브 오늘 처음 알았는데. 오기 전에 봤어요. 진짜 행복해 보이더라. 신기할 정도로. 그게 가능한가? 몇 년을 학대받은 애가 지옥에서 벗어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행복하게 웃는 게.”
김윤호가 다시 최성조의 눈을 바라봤다.
그리고선 말했다.
“다시 말할게요. 나, 아무것도 안 했어요. 그냥 방관했지.”
“…”
“그러니까 매형. 피차 비슷한 입장에서 최소한의 양심은 지킵시다. 책임지고 나서는 건 어려워도……”
어느새 모두가 김윤호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들을 바라보는 민홍임의 표정도 평소와는 달랐다.
이윽고 김윤호가 길었던 말을 끝맺었다.
“행복한 애들 안 건드리고 가만히 냅두는 건 쉽잖아.”
모두가 침묵하게 만드는 한 마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