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243)
243화. 김윤호
성공적으로 촬영을 마친 뒤 골목길을 나서려는데 보이는 한 카페.
[Route 081]아마 주소지를 활용해 이름을 지은 거 같은데, 시내의 일반적인 카페와는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인테리어도 잔잔한 데다가 내부에 사람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옆에서 아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페 되게 예쁘다..”
연두와 시은이의 시선도 어느새 카페를 향하고 있었다.
시끌벅적한 카페는 부담되지만 이런 곳이라면 괜찮았다.
나는 넌지시 입을 열었다.
“아름아. 혹시 오늘 일정 있어?”
“아뇨.”
“시간 괜찮으면 차나 한 잔 마시고 갈래? 오늘 도와주느라 힘들었을 텐데.”
“.. 진짜요? 괜찮아요?”
“나야 당연히 괜찮지. 그래서 묻는 건데.”
“저도 좋아요!”
생각 이상으로 좋아하는 아름이.
아무래도 많이 쉬고 싶었던 모양이다.
연두와 시은이에게는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을 듯했다.
“연두야!”
“.. 시으나!”
이미 손을 마주 잡고 총총 뛰며 기뻐하고 있으니까.
말 안 꺼냈으면 어쩔 뻔했어, 이거.
나는 망설임 없이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끼익.
앙증맞은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어머!”
우리를 맞이한 건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여성분이었다.
그녀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놀라더니 말했다.
“이렇게 멋지고 예쁜 분들이 우리 카페는 어떻게 알고 오셨대?”
“지나가다 보니 예쁜 카페가 있어서요.”
“호호, 고마워요.”
그때 아름이가 불쑥 끼어들었다.
“연두튜브 보세요, 사장님!”
“연두튜브?”
“네. 유투브 채널인데 엄청 멋진 이 오빠랑 엄청 예쁜 요 애기들 나오거든요.”
아름이가 양손으로 연두와 시은이를 감싸며 말했다.
부탁하지도 않은 홍보까지 해 주다니, 아직 조력자 역할에 충실한 아름이의 모습이다.
아주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그래요? 꼭 찾아봐야겠네. 근데……”
“네?”
“학생도 엄청 귀엽고 예쁜데, 학생은 어디 가면 볼 수 있어요?”
상대방을 기분 좋게 만드는 화법을 구사하시는 아주머니.
예상 못한 칭찬에 아름이의 얼굴에 수줍은 미소가 떠올랐다.
이 타이밍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아름이네 뷰티요.”
내 말에 아름이가 눈이 동그래져서 말했다.
“오, 오빠!”
“왜?”
“그렇게 갑자기 얘기하시면.. 영상도 아직 몇 개 없는데…”
“하하, 치사하잖아. 너만 얘기하는 건.”
능청스러운 내 말에 아름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연두와 시은이는 뭐가 그리 좋은지 쿡쿡 웃음 짓고 있다.
그러는 사이 사장님의 손이 움직였다.
사각. 사각.
“꼭 찾아볼게요. 연두튜브, 그리고 아름이네 뷰티.”
종이에 메모까지 하시는 사장님이었다.
얼마 후 테이블 위에 주문한 음료와 디저트가 놓였다.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와.. 진짜 맛있겠다…”
시선이 테이블 위에 고정된 아름이.
와플과 케이크, 그리고 처음 들어보는 무화과 캐러멜 스콘.
사장님이 특별히 추천해서 주문한 메뉴였다.
그 밖에도 톡톡 튀는 색감의 티(Tea)가 눈을 사로잡았다.
‘비주얼은 장난 아니네.’
음식 사진을 찍는 취미는 없지만 가끔은 예외가 있었다.
바로 지금 같은 때.
찰칵!
여기서 끝내면 아쉬웠다.
나는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셋이 같이 한 장 찍어줄게. 붙어서 앉아볼래?”
“오.. 좋아요!”
“네, 아빠..!”
아직 아이들은 꾸민 머리와 복장 그대로였다.
뿌까머리를 한 러블리한 연두와 고데기로 C컬(?) 웨이브를 넣은 한층 더 시크해진 시은이.
그에 더해 활기찬 에너지가 넘치는 아름이까지.
보기만 해도 기분 좋게 만드는 3인조였다.
“자, 그럼.. 하나, 둘, 셋!”
찰칵.
“잘 나왔다.”
이건 원스타에 업로드하는 게 좋겠군.
그런 생각을 하며 카메라를 집어넣으려는데,
“잠깐만요!”
“.. 응?”
“이렇게 끝내면 너무 아쉽죠, 오빠!”
옆에서 연두와 시은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뒤늦게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아쉬우면 안 되지.”
다시 한번 카페 내부에 촬영 소리가 울려퍼졌다.
찰칵!
***
우리는 마음껏 힐링의 시간을 즐겼다.
카페 내부에 사람이 없어서 온전히 우리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음식 자체가 힐링이었다.
‘너무 맛있어.’
특히 디저트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사장님이 추천하신 무화과 캐러멜 스콘.
카페의 디저트라기에는 너무 완성도가 높았다.
촉촉한 식감, 캐러멜 특유의 향, 중간중간 씹히는 쫄깃쫄깃한 무화과.
‘카페 디자인도 예쁘고 디저트도 맛있는데 손님이 없다니.’
외진 곳에 있어서 알려지지 않아서일 확률이 높았다.
어쩌면 사장님이 그걸 원하지 않을 수도 있고.
카페는 경제적으로 문제가 없음에도 자기만족으로 운영하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으니까.
어떻든 간에 처음으로 또 방문하고 싶은 느낌이 든 카페였다.
그런 와중 앞에서 연두를 향해 질문하는 아름이.
“여기서 뭐가 제일 리얼 꿀마시야, 연두야?”
“이거여..!”
역시 연두의 선택은 예상대로였다.
“무하과! 무화가가 제일 리얼 꿀마시에요..!”
“크, 역시! 언니랑 통했다! 무화과 캐러멜 스콘.”
“무화가 카라 스콘..?”
확실히 발음이 어렵긴 하지.
쿡쿡 웃던 아름이가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한 번 읽어볼래, 연두야?”
가리킨 곳은 카페의 벽이었다.
아무래도 사장님이 무화과를 많이 좋아하는 모양이다.
저런 것까지 벽지에 붙여놓은 걸 보면.
“무화.. 과으 효.. 능..?”
“와, 잘 읽는데? 근데 연두야. 으가 아니라 의.”
“으?”
난데없이 시작된 아름이의 발음 강습.
옆에 있던 시은이도 관심을 보였다.
“자, 따라해 봐, 연두야. 의!”
“으..!”
“의!”
“.. 으?”
쉽게 감을 잡지 못하는 연두의 모습.
시은이도 강습에 참여했다.
“연두야. 의라고 하면 돼. 무화과’의’ 효능. 이렇게.”
흡 잡을 데 없는 발음이었다.
자기만 발음이 되지 않는 게 답답한지 발을 동동 구르는 연두.
아름이가 더 자세한 설명에 들어갔다.
“쉽게 발음하는 법 알려줄게, 연두야. 의가 ‘으’랑 ‘이’의 중간 발음이거든? 그니까 으랑 이를 빠르게 이어서 말하면 돼. 의! 이렇게.”
오. 수준급의 설명이었다.
설명왕 주연이도 이건 이렇게 설명해줬을 거라 생각될 만큼.
과연 연두는 잘 알아들었을까.
“으랑 이.. 빠르게…”
알았다는 듯 중얼거리던 연두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으이..!”
“푸흣.”
결국 웃음이 터져버렸다.
알아듣긴 한 거 같은데 새로운 단어를 창시해버린 느낌이다.
이렇게 발음한다면 ‘무화과으이 효능’이라고 읽을 거 같은데.
“으응..?”
막상 연두는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는 눈치다.
그런 연두를 바라보며 웃음짓는 시은이.
가끔 시은이의 입에서는 저런 언니미소가 나오곤 했다.
이후 우리는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오빠.”
“응.”
그러던 와중 아름이의 입에서 맥락 없이 흘러나오는 말.
“깜빡하고 지금까지 못 물어봤는데. 오빠는 생일이 언제예요?”
켁. 켁.
예상치 못한 주제에 당황한 나머지 사레가 들렸다.
생일과 관련해서 연두를 속상하게 만든 전력이 최근에 있었으니까.
힐끗 눈치를 본 나는 대답했다.
“1월 19일. 조금 지났어.”
“헐.. 진짜요? 빨리 물어볼 걸. 생일선물 드렸어야 하는데…”
왜인지 시은이가 빨대를 입에 문 채로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고개를 휙휙 저으며 대답했다.
“아, 아냐. 괜찮아.”
“내년에는 꼭 챙겨드릴게요. 그리고.. 연두는 이제 생일 얼마 안 남았네?”
다행히 자연스레 이야기가 넘어갔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받았다.
“연두 생일 알고 있어?”
“당연하죠! 연두튜브 구독자라면 다 알 걸요? 3월 6일.”
“하하, 그렇구나.”
“연두 생일선물은 잊지 않고 꼭 챙겨줄게! 기대해도 좋아!”
연두가 살며시 고개를 들고는 말했다.
“연두 생일선물이요..?”
“응.”
“여, 연두 생일에 선물 줄 꺼에요…?”
나로서는 뭔가 짠하게 느껴지는 두 번의 물음이었다.
아름이는 곧바로 대답했다.
“당연하지! 벌써 연두한테 뭘 주는 게 좋을지 행복한 고민중인데?”
“.. 나도.”
“크크, 시은이도야?”
고개를 끄덕이는 시은이.
설렘으로 부푸는 연두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자연스레 연두와 내 시선이 교차했다.
찡긋.
입꼬리를 올리며 눈을 찡긋 감아보였다.
나까지 말로 하면 식상하니 눈으로 보내는 나름의 신호였다.
아빠도 연두를 위한 선물을 준비할 거라는 뜻이 담긴.
안타깝게도 연두는 전혀 눈치 못 챈 거 같아 보이지만.
그저 눈을 맞추며 배시시 미소짓는다.
뭐, 상관없겠지. 눈치채든 못 채든 생일은 다가오니까.
스윽.
나도 말없이 함께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이후에도 즐거운 시간이 이어졌다.
예상보다 더 긴 시간을 보낸 뒤 일어서기 직전.
“택시 타고 가, 아름아.”
내 손을 본 아름이가 깜짝 놀라 손을 저으며 대답했다.
“자, 잠깐만요, 오빠! 택시비 치고는 너무 많은데요..?”
역시 그냥 받지는 않는구나.
도와줬다는 명목으로 주면 안 받을 게 뻔해서 이렇게 건넨 건데.
그대로 손을 뻗은 채로 나는 말했다.
“시간 내서 도와줬잖아. 저번에도 그렇고 오늘도.”
“진짜 괜찮아요. 오빠 말대로 제가 돕고 싶어서 도와준 거니까요! 그리고 카페도 다 오빠가 쐈구요.”
어쩌지. 받을 생각이 전혀 없어보인다.
절대 뚫리지 않을 방패같은 느낌이라 해야 할까.
그런 와중 들려오는 아름이의 목소리.
“그럼요, 오빠..”
“응.”
“저는 진짜 괜찮은데 정 그러시면……”
아름이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제가 도움이 필요할 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한 번 도와주시는 거. 어때요..?”
“나?”
“네, 오빠요.”
“연두랑 같이?”
예상과 달리 아름이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연두는 보고 싶을 때 제가 가면 되잖아요. 이건 오빠한테만 해당되는.. 소원권..? 아무튼 그런 비슷한 거죠.”
지금으로서는 영문을 모르겠는 제안이었다.
연두는 몰라도 아름이가 딱히 내 도움이 필요할 일이 있나.
그럼에도 제안은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아름이도 그랬으니까.’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와 준 아름이였다.
그렇다면 나도 같은 방식으로 도와주는 게 맞았다.
확실히 돈보다는 그 편이 더 정 있으니까.
“혹시 부담되시면……”
“아냐.”
“네?”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불러. 바로 뛰어가.. 지는 않고, 차 타고 갈 테니까.”
장난스러운 내 말에 쿡쿡 웃는 아름이.
이렇게 아름이와 나의 구두계약이 성사됐다.
***
슥.
핸드폰을 든 채로 나는 고민에 빠져있었다.
발신 버튼을 눌러야 할지 말아야 할지.
010 – xxxx – xxxx
화면에 찍혀 있는 생소한 번호.
현재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의 이유는 방금 한 할머니와의 통화였다.
꽤나 길었던 통화의 주제는 한 가지였다.
‘설날에 있었던 일.’
정확히는 할머니의 집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신경쓰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역시 그럴 수는 없었다.
그야, 마냥 신경 끄고 있을 입장이 아니었으니까.
그 장소에는 없었으나 어느 정도 예상은 할 수 있었다.
설날에 시골집에서 오갔을 이야기들에 대해.
그래서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 잘 마무리됐으니 신경 끄라니까.’
‘아뇨. 알고 싶어요.’
몇 번의 물음 끝에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설날에 할머니와 친척들 간에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 네? 누가요?’
할머니를 통해 들은 이야기는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물론 들어맞은 것도 존재했다.
친척들이 연두에 관한 얘기를 꺼낼 거란 것, 그 과정에서 더러운 욕망을 드러낼 거란 것.
역겨워 치가 떨릴 정도로 그 예상들은 완벽히 들어맞았다.
허나 다른 내 예상은 빗나갔다.
‘없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할머니의 편은 하나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걱정했던 거다.
친척들을 저지할 능력이 있다는 말에도 불안함을 떨쳐낼 수 없었기에.
너무 힘든 싸움을, 무거운 짐을 할머니 혼자 지게 만드는 게 아닐지.
그렇지만 단 한 사람, 예외가 있었다는 듯했다.
연두를 데려가겠다는 이모부와 대립하며 할머니의 편에 선 친척이.
‘김윤호.’
할머니의 막내아들이자 내게는 외삼촌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연은 거의 없지만 어릴 적 아빠한테 전해들은 건 조금 있었다.
가족한테도 쉽게 정을 안 붙이지만, 누나 하나만큼은 그렇게 좋아하고 잘 따랐다고.
그 누나는 다름아닌 내 어머니 김하연이었다.
‘자세히는 모르겠어.’
현장에 없었으니 정확히 알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전해 듣는 걸로 모든 걸 파악하는 건 더더욱 불가능하고.
그래도 머릿속에 맴도는 말이 있었다.
‘행복한 애들 안 건드리고 가만히 냅두는 건 쉽잖아.’
외삼촌 김윤호의 입에서 나왔다는 말.
왜인지 그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찌됐든 중요한 건 하나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친척이 나와 연두를 위해 나섰다는 것.
솔직히 장례식장에서 본 이미지를 생각할 때는 상상이 가지 않았다.
감정 없는 표정으로 연두의 손을 잡고 들어오던 그의 모습을 생각하면.
그래. 솔직히 내게 친척들은 전부 같은 범주 안에 들어있었다.
‘쓰레기.’
그렇게 한데 묶어서 생각하는 게 편했다. 돌이켜 보면 편협한 사고였다.
좋은 사람은 아닐지언정, 그들이 전부 같지는 않았으니까.
할머니와의 통화를 끝내고 다시금 장례식장의 그 날을 떠올려봤다.
‘생생해.’
주고받은 말 한마디 한 마디가 전부 생생했다.
이모부와 날 선 말들을 주고받은 것까지.
자연히 끄트머리에 앉은 김윤호의 모습도 떠올랐다.
처음 들어올 때를 제외하고, 그는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예 그 이야기에서 동떨어진 사람처럼.
그저 방관했다고 하는 게 맞을까.
‘방관이라..’
척 듣기에 좋은 단어는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떳떳할 수 있나? 방관했다는 이유로 김윤호까지 한데 묶어서 쓰레기라 말할 수 있는 건가?
이 물음들만큼은 확실히 답할 수 있었다.
아니라고.
자칫하면 나 역시 김윤호와 같은 입장일 수 있었다.
심지어 나는 귀찮을 거 같다는 이유로 연두가 오기 전에 자리를 뜨려 했다.
떳떳한 행동은 절대 아니었다.
아마 당시 김윤호와 내 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터였다.
‘상관하고 싶지 않았겠지.’
그런데 그랬던 사람이 나섰다.
가만히 있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상황에서.
자기가 아닌 나와 연두의 안위를 위해.
김윤호라는 사람을 포장하려는 건 아니다.
장례식장에서의 그의 모습을 포장하려는 건 더더욱 아니다.
애초에 내가 누굴 포장하거나 용서할 만한 자격도 없으니.
다만, 고마웠다.
나와 연두를 위해 나서 줘서.
나는 어리고 약했다.
아닌 척했지만 무서웠다. 친척들이 나와 연두에게 할 수 있는 일들이.
설령 그게 불가능하다고 해도 말이다.
‘내가 원했던 건.’
친척들과 싸워서 내가 옳다는 걸 증명하는 것도, 다른 그 무엇도 아니었다.
그냥 지켜지길 원했다.
연두와 함께하는 일상이. 딱 지금처럼만.
나는 몰라도 연두가 다치는 건 싫었다.
그건 악몽과도 같았다.
연두를 지키려면 억지로 강한 티를 내야 했고, 의지할 구석이 필요했다.
김윤호가 그 역할을 해 줬다.
‘행복한 애들 안 건드리고 가만히 냅두는 건 쉽잖아.’
정확히 내가 바라는 말을 친척들을 향해 해 줬으니까.
결과적으로 할머니와 함께 나와 연두의 일상을 지켜줬다.
그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알 바 아니었다.
단지 그 사실만으로도 내가 전화를 걸 이유는 충분했다.
툭.
길었던 고민 끝에 나는 발신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