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244)
244화. 붕붕이
길었던 고민 끝에 누른 발신 버튼.
띠. 띠. 띠. 띠.
몇 차례의 통화연결음이 고막을 울렸다.
이후 낮게 깔린 피곤해 보이는 음성이 들려왔다.
“.. 여보세요.”
장례식장 때 들었던 목소리가 틀림없었다.
얼떨결에 자기소개 대신 인사말이 먼저 나갔다.
“안녕하세요.”
“.. 누구세요?”
누구냐고 묻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방금 할머니에게 번호를 받은 뒤 예고 없이 건 전화였으니까.
바뀐 내 번호를 김윤호가 알 리도 없고.
“주원이에요. 이주원.”
이름을 말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김윤호는 바로 알아챈 거 같았다.
나른한 목소리에 변화가 느껴졌으니까.
“.. 주원이?”
“네, 삼촌.”
“…”
얼마간 이어지는 정적.
먼저 입을 연 건 외삼촌 김윤호였다.
“.. 그래. 오랜만이네, 주원아.”
“통화 가능하세요? 혹시 일하는 중이시면 저녁에 다시 걸게요.”
“괜찮아. 휴가거든.”
“휴가요?”
“응.”
휴가 중인데 목소리가 이렇게 피곤해 보인다니.
어쩌면 이게 외삼촌의 평소 목소리일지도 모르겠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특별한 게 있어서 전화드린 건 아니고요.”
“그래.”
“감사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할머니한테 들었거든요. 설날에 있었던 일.”
짧은 김윤호의 대답.
“그랬구나.”
“네.”
“이렇게 전화까지 할 만한 일은 아니었는데. 너도 나랑 통화하는 게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닐 테고. 그리고……”
그가 실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형 장례식장에서 봤잖아. 감사인사를 할 만큼 좋은 사람 아니란 거.”
“적어도 나쁜 행동을 하지는 않으셨죠.”
“어린애가 상처받는 걸 지켜보는 것도 나쁜 행동이지. 그리고 마냥 지켜본 것만도 아니야.”
“.. 네?”
“기억하지? 내가 그 아이를 데려왔던 거.”
기억하지 못할 수가 없지.
그 날의 장면은 하나도 빠짐없이 머릿속에 생생한데.
확실히 연두의 손을 잡고 장례식장에 들어온 건 김윤호였다.
설마 내가 모르는 둘의 시간 속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처음 보자마자 감이 왔지. 애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건. 차 태워서 데려오는 내내 얼마나 서럽게 울던지.”
김윤호는 내가 보지 못한 연두의 모습을 말해줬다.
그리고선 하나의 물음을 덧붙였다.
“그걸 보면서 내가 어쨌는지 알아?”
대답하라고 건넨 물음은 아니었다.
곧바로 김윤호의 말이 이어졌다.
“장례식장 때랑 똑같아. 아무것도 안 했어. 눈물을 닦아주지도, 머리를 쓰다듬지도,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지도 않았지.”
“.. 왜요?”
“나 따라오겠다고 할까 봐. 그럼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갈 테니까.”
김윤호의 말뜻은 간단했다.
아무것도 안 했다고 면죄부를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그로 인해 연두에게 상처를 줬으니까 말이다.
이후 그는 말했다.
“그러니까 나한테 고마워할 필요 없다, 주원아. 그리고.. 미안하다. 네 딸한테 상처를 줘서.”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내가 모르는 아팠던 연두의 모습을 듣는 거였으니까.
허나 한 가지는 확실히 느껴졌다.
‘진심이란 거.’
외삼촌의 사과에는 진심이 묻어났다.
그렇다면 나도 내 진심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었다.
“저한테 하는 사과는 받을게요, 삼촌. 그리고.. 그래도 감사해요.”
달라지지 않은 내 태도에 조금 놀란 듯한 목소리.
“.. 뭐?”
“어쨌든 설날에 저랑 연두를 위해 나서신 거잖아요.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니까. 몰랐던 얘기를 들었다고 해서 이번에 감사하지 않을 이유가 되지는 않죠.”
“하하..”
미묘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후 김윤호가 말했다.
“자식은 자식이구나.”
영문 모를 말에 대꾸했다.
“.. 네?”
“아니, 그냥.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누나랑.”
“누나라면.. 엄마 말인가요?”
“응.”
보통은 엄마를 닮았다면 칭찬으로 받아들일 텐데.
이 타이밍에 나오니 칭찬인지 아닌지 애매했다.
이어지는 말은 더더욱 그랬다.
“그리고 주원이 너는.. 나랑도 닮은 구석이 있는 거 같네.”
자연스레 되묻는 말이 나갔다.
“제가 삼촌이랑요?”
“.. 그렇게 싫어할 줄은 몰랐는데. 하긴, 싫어할 만 하지. 심한 욕해서 미안하다.”
“아뇨, 그런 게 아니라..”
“하하, 장난이야, 장난.”
이 양반 장난도 칠 줄 알았나?
자기를 닮았다는 게 심한 욕하는 거라니.
과거의 나보다도 자학이 더 심한 느낌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뇨, 맞아요.”
“응?”
“저도 생각했거든요. 닮은 구석 있다고.”
“그래? 영광이네.”
“.. 왜요?”
“그냥 해 본 말이야.”
“…”
내내 심각한 얘기를 주고받았는데.
어쩌다 보니 다소 풀어진 듯한 통화였다.
아무튼 내 할 말은 전했다.
“나중에 기회 되면 식사나 한 번 하시죠.”
“괜찮겠어?”
“저야 뭐.”
“그래. 그럼 나중에 한 번 보자.”
마지막으로 나는 한 마디를 건넸다.
“그리고 혹시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연두한테도 사과해 주셨으면 해요.”
“그건 정말 안 되겠는데.”
사과하기 싫다는 게 아닌 건 알고 있다.
오히려 연두의 입장을 생각해서 하는 말일 테니.
‘거부감.’
연두가 외삼촌에게 거부감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나도 딱히 그런 상황을 원치는 않았다.
그래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연두가 원한다면요.”
“.. 그래.”
이렇게 마무리됐다.
생각했던 것과 조금은, 아니 많이 달랐던 외삼촌 김윤호와의 통화가.
***
통화가 끝나자마자 나는 붓을 잡았다.
이젤 위에 있는 건 다름아닌 미술 공모전 그림.
그림의 주제는 전에 말했듯 ‘그 날’의 감정이었다.
‘연두를 처음 만났던 날.’
외삼촌과의 통화를 마치고 바로 붓을 잡은 이유는 간단했다.
통화로 인해 더욱더 분명해졌으니까.
내가 표현하려는 건 단지 아름답기만 한 것들이 아니었다.
‘내 옆에 앉아서 떨고 있던 연두, 앞에서 오가던 대화들, 그 속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
하나도 빠짐없이 색깔로 표현하고 싶었다.
제한되어 있는 건 없었다. 경계도 틀도 존재하지 않았다.
네모난 종이 속은 모든 걸 쏟아낼 수 있는 공간이었으니까.
스윽. 슥.
방금의 대화를 통해 더 잘 알게 되었다.
그 날 그 장소에서 가장자리에 앉아있던 김윤호라는 사람에 대해.
또한 내가 보지 못했던 연두의 모습까지.
그에 따라 종이 위 그림은 달라지고 변화했다.
슥. 스슥.
마냥 검게 칠하려던 곳 위에는 새로운 색상이 요동쳤다.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처럼.
내 감정 역시 꿈틀댔다.
‘검은색, 회색, 푸른색, 붉은색, 하얀색.’
다양한 색깔들이 교차하고 대립했다.
하나도 놓치거나 빼놓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는 온전히 그 날과 마주할 수 없었으니까.
연두가 가장 좋았다고 말했던 그 날과.
더 깊게, 더 명확하게, 더 선명하게. 더 유려하게.
붓을 든 손은 점점 빨라져 끝내 종이 위를 춤췄다.
마음속에는 아무런 부담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며 처음이었다. 이토록 해방감이 드는 건.
‘감정을 그린다.’
어찌 보면 지금껏 내가 그렸던 그림 중에 가장 추상적인 그림이었다.
명확한 무언가를 그리는 게 아니니까.
모순적이게도 그게 나를 가장 자유롭게 만들었다.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게.
‘목적지는 정해져 있지 않아.’
이 그림의 완벽한 이상향, 끝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
실시간으로 길을 만들어낸다고 해야 할까.
어디로 갈지 모르겠지만, 가는 데에 있어 망설임은 없었다.
한참 동안 나는 붓과 종이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툭.
붓을 내려놨다.
“후우..”
길게 숨을 내뱉는 동시에 몸이 축 처지며 머리에 이는 현기증.
힘이 빠질 정도로 정신을 집중한 탓이었다.
따끔거리는 눈으로 그림을 바라봤다.
입가에 자그맣게 번지는 미소.
‘역시 모르겠네.’
보는 이에게 닿을지는 모르겠다.
그림을 통해 내가 전달하려 한 감정이.
허나 한 가지.
‘숨기지 않았어.’
감정을 조금도 숨기지 않고 그려냈다는 것.
그거 하나만큼은 확실히 얘기할 수 있었다.
고개를 들어 달력을 바라봤다.
‘.. 좋아.’
공모전 작품의 접수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
어느새 찾아온 주말.
외출 준비를 마친 나는 연두와 함께 소파에 앉았다.
“그럼 볼까?”
“네에..!”
툭.
[아름이네 뷰티]구독한 몇 개의 채널 중 하나인 아름이의 채널.
알다시피 ‘뷰티’를 다루는 채널이었다.
채널에 들어간 건 연두와 함께 영상을 보기 위해서였다.
평소에도 챙겨보지만 꼭 이번 영상은 꼭 봐야 할 이유가 있었다.
‘연두랑 시은이가 등장하니까.’
이든의 작업실에서 아름이가 연두와 시은이의 머리를 스타일링해줄 때.
놓치지 않고 내가 찍은 영상이었다.
아름이한테 유투브에 올리라고 영상을 보내줬고.
달칵.
클릭과 동시에 영상이 흘러나왔다.
짧은 인트로 이후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아름이.
“오늘도 아름이네 뷰티를 찾아주신 여러분! 모두 환영해요! 뷰티풀~”
역시 이게 안 나오면 섭하지.
아름이가 만든 인사말이자 유행어 뷰티풀.
요즘은 연두도 애용중이었다.
“뷰티플..!”
이거 봐라. 연두도 손을 흔들며 화답한다.
이후에는 본격적인 영상이 재생됐다.
먼저 연두의 머리를 손질해주는 아름이의 모습.
“뿌까머리는요. 이렇게 하는 거예요, 오빠. 앞머리를 5대 5 가르마로 똑같이 나눈 다음에.. 높이 묶어서 틀어올리는 거죠. 이렇게요!”
“그렇구나.”
“그리고 이건 포인트! 살짝 머리카락을 빼서 옆으로 흘러내리게. 어때요?”
“오.. 진짜 예쁜데?”
“오빠도 하실 수 있어요! 금손이잖아요!”
“하하, 고마워. 집 가서 시도해 봐야겠다.”
어쩌다 보니 리액션 담당은 나였다.
손질하면서 계속 내게 설명해 준 덕에 영상으로 보기에도 무척 좋았다.
기본적으로 아름이의 채널은 ‘뷰티’를 구독자에게 알려주는 채널이니까.
한편 연두는 입을 헤 벌린 채로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자신의 머리가 뿌까머리가 되어가는 모습에.
“우아..”
“예쁘지, 연두야.”
“네에.”
“나중에는 아빠가 해 줄게. 뿌까머리.”
동그랗게 부푼 눈으로 묻는 연두.
“.. 진짜여?”
“그럼. 아빠 금손이잖아.”
“헤헤.. 마자요!”
이 정도 자뻑은 이해해 주길 바란다.
사실 한 번 본 걸로는 따라할 자신 없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이 영상이 있으니까.’
내게는 뿌까머리 교본이나 마찬가지였다.
영상을 보고 연습하면 충분히 할 수 있었다.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나름 손재주 하나는 자신 있으니까.
“시은이 머리는 더 쉬워요. C컬로 이렇게 웨이브를 주면……”
C컬. 이것도 보고 꼭 시도해 보기로 하자.
그나저나 영상을 보며 새삼 느껴지는 사실.
이제 진짜 잘하는구나. 영상편집.
‘중간중간에 넣는 대사 하며 각종 효과까지.’
보면서 불편함이 느껴지는 부분이 한 군데도 없었다.
하루가 걸린다고는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영상의 퀄리티 아닌가.
그런 면에서 아름이는 증명해 낸 셈이었다.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걸.
“진짜진짜 재미따..”
“그래?”
“네.”
연두가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아빠.”
“응?”
“.. 연두도 해 조도 대요?”
“뭐를?”
“뿌까머리.”
“…?”
놀란 나는 입을 열었다.
“아빠한테?”
“네에.”
“뿌까머리를?”
설마 해서 되물었지만 돌아오는 건 연두의 끄덕임이었다.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연두.
그 표정을 보고 차마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된다고 할 수도 없어.’
상상이 안 간다. 아니, 상상하기도 싫다.
내가 뿌까머리를 한 모습은.
결국 나는 현실적인 답을 건넸다.
“근데 연두야. 뿌까머리를 하기에는 아빠 머리가 너무 짧은데?”
“아!”
“위로 묶을 머리카락이 없을 거야.”
다행히 연두는 납득한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아빠 머리 길면 그때 예쁘게 해 줘, 연두야. 알겠지?”
그 정도로 길 일은 없겠지만, 이라는 말은 꾹 삼켰다.
연두는 해맑은 미소를 띠며 답했다.
“네!”
“하하, 그래.”
이렇게 스무스하게 상황을 넘기고,
스륵.
화면을 내리니 눈에 들어오는 아름이 채널의 댓글창.
-감사합니다 ㅠㅠ 덕분에 뿌까연두로 눈 힐링했어요. 뷰티풀~
┖새해 영상에 이어 이번에도 이런 캐리를…
┖이 언니 극호감 ㅎㅎ
┖인정. 보고 있으면 나까지 밝아지는 기분.
┖초록님이랑 친해서 금손인가? 연두랑 친해서 귀여운가? 아니면 둘 다인가?
┖셋 다임 ㅋㅋㅋㅋㅋㅋ
┖설명도 엄청 잘해줌. 귀에 쏙쏙 들어오게. 떡상각 ㅋㅋㅋ
-연두랑 시은이 진짜 너무 예뿌당.. 흑흑…
┖저렇게 예쁘게 하고 어디 갔니, 얘들아? 언니도 데려가 ㅠㅠ
┖이 영상에는 초록님 목소리만 나오네 ㅠ 얼굴 보고싶당..
┖’연두 뿌까머리 해 주기!(feat. 초록)’ 기대해도 되죠, 초록님?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연두는 뿌까머리를 하고 초록님은 갓을 쓰는 걸로… ㅎㅎ
잠깐이지만 연두튜브 댓글창을 보는 거 같은 착각이 들었다.
피식 웃으며 나는 손을 움직였다.
-고마웠어, 아름아. 파이팅!
짤막하게 댓글을 남겼다.
그걸 보며 옆에서 배시시 웃음짓고 있는 연두.
슥.
영상도 봤으니 이제 미뤄둔 외출을 나설 차례였다.
“이제 가 볼까, 연두야?”
“네에..”
“우리가 뭐 하러 간다고?”
“.. 붕붕!”
연두가 잔뜩 신이 난 목소리로 외쳤다.
“예쁜 붕붕이 사러요..!”
그래. 말 그대로였다.
오늘 드디어 마음먹은 상태였으니까.
오랫동안 연두와 함께 탈 붕붕이를 사기로.
끼익.
설레는 마음으로 현관문 밖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