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248)
248화. 최소한의 행동
공모전 제출은 끝냈지만 이대로 집에 가긴 아쉬웠다.
혼자 온 것도 아니고 우영이와 함께 온 거니까.
“잠깐 카페에서 얘기나 하다 갈래?”
“네.”
우영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게 우리는 주위 카페로 향했다.
‘최대한 조용해 보이는 곳.’
전에 아름이랑 아이들이랑 갔던 카페가 가장 좋지만 거긴 너무 멀었다.
잠깐 대화하러 가기에는 더더욱 그랬고.
얼마 후 우리는 한 카페를 찾을 수 있었다.
‘괜찮네.’
규모도 크지 않고 내부에 사람도 별로 없어 보였다.
나는 우영이와 함께 카페 내부로 들어갔다.
카운터의 직원이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세요.”
“네, 안녕하세요. 뭐 먹을래, 우영아?”
“청포도에이드요.”
“하하, 또?”
처음 봤을 때부터 쭉 한결같은 입맛이다.
다른 음료를 먹는 걸 본 적이 없는 거 같은데.
그런데 알바생의 난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님. 죄송한데 저희가 메뉴 중에 청포도에이드는 없어서……”
“아, 그런가요?”
“네.”
체인점이 아니니 그럴 만도 했다.
우영이는 메뉴판을 보더니 곧바로 말했다.
“레모네이드로 할게요.”
“그럼 나도 같은 걸로. 레모네이드 두 잔 주세요.”
“네, 계산 도와드리겠습니다.”
“여기……”
카드를 내밀기도 전에 우영이가 휙 손을 내밀었다.
손에는 만 원짜리 한 장이 들려있었다.
“잠깐만. 내가 사려 했는데.”
“맨날 얻어먹었잖아요.”
이미 알바생은 지폐를 받아든 상태였다.
어쩔 수 없지. 이번에는 얻어먹을 수밖에.
“잘 먹을게.”
“네.”
나와 우영이는 각자 음료를 들고 구석의 테이블로 향했다.
밖에서 본 대로 다른 손님은 거의 없었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대화할 수 있을 듯했다.
우영이와의 대화라면 주제는 정해져 있었지만.
쪽.
한 모금을 쭉 들이키더니 우영이가 말했다.
“심사는 2차까지 있다고 했죠?”
“공모전?”
“네.”
“맞아.”
“그럼 1차 2차 결과 발표가 따로 있는 거예요?”
“응. 1차는 제출기간이 끝나고 이주 후쯤이라 알고 있고, 최종 발표는 그 후에 하는 거 같더라고.”
“특이하네요.”
우영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대부분의 공모전은 수상작만 발표하는 경우가 많았다.
1차와 2차로 나뉘어 있다는 것부터 일반적인 건 아니었다.
중얼거리는 우영이의 목소리.
“작품이 많아서 그런 건가.”
“그런 거 같기도 해. 작년에 응모한 작가 수를 봤거든.”
“몇 명이었는데요?”
“천명이 조금 안 됐어.”
크게 확장되는 우영이의 눈.
놀란 반응에 나는 물었다.
“왜?”
“생각보다 훨씬 많아서요.”
확실히 적은 수는 아니긴 했다.
미술대전보다는 아니지만, 일반적인 공모전의 응모인원은 가볍게 넘어서는 수치니까.
“아마 올해는 천명이 넘어갈 거야.”
“왜요?”
“공모전이 시행된 이후로 매년 큰 폭으로 증가했다고 하더라고.”
“두 번 할 만하네요, 심사.”
이후에도 나와 우영이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자연스레 화제는 미술 외의 이야기로 번졌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번에 해돋이 보러 갔을 때 기억나지.”
우영이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요.”
“그 영상 연두튜브에 올라가고 나서 인기가 꽤 많아졌어.”
“누구요? 형이요?”
“아니, 너.”
“…?”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녀석은 자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요?”
“응.”
“왜요?”
“은근히 연두 챙겨준다고. 나도 몰랐는데 진짜 그렇더라?”
“…”
녀석은 괜히 음료수를 들이키며 말했다.
“.. 딱히 기억 안 나는데.”
기억이 안 나면 뭐 해. 이미 연두튜브에 박제됐는데.
이렇게 모르쇠로 나온다면 생각이 있었다.
나는 장난스레 입을 열었다.
“그래? 연두 떡국 먹을 때 휴지 준 것도?”
“그거야.. 땅콩이 입에 묻은 것도 모르고 먹으니까 답답해서 준 거죠.”
뭐야. 기억 못 하는 거 아니네.
그럼 또 할 말이 있었다.
“해돋이 볼 때 연두 모자 씌워준 건?”
“감기 걸려서 콧물 흘리면 더럽잖아요.”
미꾸라지처럼 휙휙 잘도 빠져나가네, 이 녀석.
더 할 말은 많지만 여기서 멈추기로 하자.
우영이가 음료수 마시는 속도가 급격히 빨라진 게 느껴졌으니까.
***
우영이를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캣타워에 올라가 있던 누렁이가 쏙 고개를 내밀었다.
“냐아~”
“누렁이 잘 있었어?”
“냐.. 냐아…”
요즘 잘 먹어서 그런지 살이 붙은 느낌이다.
길냥이 출신이라 그런지 자유배식을 하면 금세 다 비워버린단 말이지.
‘배가 불러도 먹는 거 같아.’
이대로 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돼냥이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건강을 위해 식사량을 조절할 필요가 있을 듯했다.
얼굴을 부비는 누렁이를 쓰다듬는 와중 울리는 전화.
위이이잉.
발신인은 다름아닌 범재 아버지 오준석이었다.
나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오준석입니다. 잘 지내셨나요, 초록님?”
보라. 이런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초록님이라 불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모티콘 담당자 제이디도 나를 이렇게 부르고.
마치 개명이라도 한 기분이다.
“네, 사장님은요?”
“저야 물론 잘 지냈습니다. 아시겠지만 반응이 너무 좋으니까요.”
여기서 말하는 반응은 굳이 생각할 것도 없었다.
연두와 시은이의 모델컷을 말하는 거겠지.
오준석은 텐션이 오른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들이 모델을 한 옷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매진됐거든요.”
“다행이긴 한데 또 많이 바빠지셨겠네요.”
“괜찮습니다.”
오준석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연시’가 쇼핑몰 모델인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죠.”
“하하, 그런가요.”
“이번에 연두튜브 댓글 보고 엄청 웃었습니다. 제가 전생에 세계를 구한 게 틀림없다고. 혹시 보셨습니까?”
분명히 본 기억이 있었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오준석이 말했다.
“그 말이 맞는 거 같습니다.”
유쾌한 말에 이어 그는 내게 감사를 표했다.
예상을 하긴 했지만 좋은 결과로 이어져 정말 다행이었다.
자연스레 오준석과 나는 다음 일정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가능하시다면 이번 주 내로 두 번째 촬영을 하는 게 어떨까 싶은데……”
“네, 마침 저도 말씀드릴 생각이었습니다.”
한겨울인 만큼 빠르게 촬영을 감행할 필요가 있었다.
시즌이 넘어가기 전에.
그렇게 나는 두 번째 촬영 일정을 잡았다.
***
어린이집에서 연두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부엌 서랍으로 달려가는 연두.
쏙.
손을 집어넣어 무언가를 꺼낸다.
그건 다름아닌 고양이 전용 멸치캔이었다.
“누렁아..!”
본인 간식보다도 누렁이 간식을 더 잘 챙기는 여동생 사랑이 지극한 연두였다.
연두의 부름에 부리나케 달려오는 누렁이.
손에 든 캔을 보고 마구 얼굴을 비빈다.
“잠깐만! 언니가 줄께…”
그리고선 연두는 언제나처럼 나를 향해 캔을 내민다.
위험할 수 있기에 열어주는 건 내 몫이었다.
딸칵.
캔을 열어서 연두에게 건넸다.
연두는 숟가락을 들어 간식 그릇에 내용물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 스푼, 그리고 두 스푼.
다시 숟가락이 캔을 향하려는 순간.
“잠깐.”
내 말에 연두의 손이 그대로 정지했다.
그런 채로 시선은 나를 향한다.
“네에..?”
“이만큼만 주자, 연두야.”
평소에 주던 양의 절반이니 연두가 의아해할 만도 했다.
나는 미소를 띠며 설명해줬다.
“고양이도 많이 먹으면 살이 많이 찔 수 있거든.”
“살 마니 찌면 안 대요..?”
“응.”
“왜요..? 누렁이는 살 마니 쪄도 예쁜데…”
“그치. 근데 살이 많이 찌면 아플 수 있어. 병에 걸리기도 쉬워지고.”
내 말에 화들짝 놀라는 연두.
자연스레 손에 든 숟가락을 내려놓고는 말한다.
“누, 누렁이 아프면 안 대요..!”
“걱정하지 마. 많이 먹지 않으면 괜찮아. 지금 그릇에 있는 정도.”
“아..”
그제야 연두는 안심하며 간식 그릇을 내려줬다.
“맛있게 머거, 누렁아..”
“냐아~”
바로 그릇에 코를 박고 간식 섭취를 시작하는 누렁이.
그런데 웃픈 장면이 이어졌다.
한 번 코를 박고 짭짭대더니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든다.
슥. 슥.
그리고선 연두와 나를 번갈아 바라본다.
설마 평소보다 양이 작다는 걸 알아챈 건가, 이 녀석.
확실히 영리한 동물이다.
“냐아..”
누렁이는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다시 간식 섭취를 시작했다.
평소보다 작은 양에 그릇도 두 배로 빨리 바닥났지만.
이후 나는 연두와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연두야.”
“네에.”
“세상에는 엄청 많은 사람들이 살잖아. 연두랑 나이가 같은 아이들도 많고.”
연두와 나눠야 할 얘기가 있었다.
언제 얘기할까 했는데 지금이 그 타이밍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그중에는 몸이나 마음이 아픈 아이들도 있어. 그래서 힘들어하는 아이들.”
사실 말을 꺼내는 게 조심스러웠다.
어찌 보면 과거 연두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 수도 있었으니까.
연두는 나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아픈 아이들이요..?”
“응.”
사실 혼자서 생각해봤다.
구독자들이 연두튜브에 준 사랑을 보답할 가장 의미 있는 창구가 어디일지.
답은 그리 어렵지 않게 나왔다.
‘처음 연두튜브를 시작하게 된 계기.’
금전적인 것도 있었지만 그게 주된 목적은 아니었다.
연두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너는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걸 증명하듯 많은 사람들이 아낌없는 사랑을 보내줬다.
‘그렇다면 그 사랑을 누구와 나누는 게 좋을까.’
물음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었다.
바로 연두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아이들이었다.
세상은 정말 넓었다. 그런 만큼 쓰레기도 많았다.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상처받고 아픔을 겪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 역시 너무나도 많았다.
솔직히 깊게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도울 의지도 능력도 없었을뿐더러 나 혼자만 생각하기도 벅찼으니까.
그런데 연두를 만난 뒤 생각이 바뀌었다.
‘아니, 바뀔 수밖에 없었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현실은 생각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훨씬 끔찍하고 생각 이상으로 괴로웠으니까.
자그맣게 들려오는 연두의 목소리.
“.. 마니 아파요?”
“응?”
“아픈 아이들.. 마니 아파요..?”
묻는 목소리에서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이어서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는 연두.
자그맣게 말을 이었다.
“감기보다.. 주사보다 더 마니 아파요…?”
“…”
순간적으로 목이 메는 기분이었다.
질문에 담긴 의미. 감기보다, 주사보다 더 아픈 게 뭘지 알 거 같았으니까.
나는 애써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친구들도 있어.”
그와 동시에 맞닿은 살결에서 느껴지는 진동.
역시 떠올리게 해 버린 모양이다. 아팠던 기억을.
무의식적으로 나는 연두를 품에 안았다.
‘그래. 피할 수 없어.’
살다 보면 반드시 마주하게 될 터였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처럼. 어떤 방식으로든 말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피하지 말기로 하자.
“.. 아, 아빠?”
“연두야.”
“네에.”
“아빠 만나고 나서.. 연두는 안 아파졌어?”
지난날의 기억을 떠올릴 때면 아프겠지만, 적어도 나와 함께하는 일상은 아프지 않았으면 했다.
아팠던 기억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매 순간이 즐거웠으면 했다.
그래서 하는 질문이었다.
“네에.. 아프지 아나요…”
가늘은 미소와 함께 돌아오는 대답.
다행이었다. 아프지 않다고 말해줘서.
나는 연두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
“연두야. 그럼 도와주자.”
“.. 네?”
“연두가 아프지 않아진 것처럼. 다른 아파하는 아이들. 우리가 도와주자.”
“도아줄 수 이써요…?”
“물론이지.”
현실을 바꿀 순 없다.
그러나 이전과는 상황이 달라졌다.
‘능력이 생겼어.’
아파서 괴로워하는 아이들을 도울 능력이 생겼다.
그렇다면 도와야 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행동이니까.
“.. 도아주고 시퍼요!”
“하하, 그래.”
연두를 향해 보내준 사랑인 만큼, 그 사랑을 나눠줄 생각이었다.
어딘가에 있을 수많은 연두에게.
다시는 이유 없이 아프지 않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