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249)
249화. 다수결
이야기를 나누고 며칠 후, 연두와 나는 한 아동단체에 방문했다.
[Protect the children]초록색 건물에는 커다랗게 영어로 된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직역하면 ‘아이들을 보호하다.’라 해석이 가능했다.
아무 생각 없이 이 단체를 찾은 건 아니었다.
‘많이 알아봤지.’
적은 돈을 기부하려는 게 아닌 만큼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었다.
단체에 기부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하나였다.
‘투명성.’
나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그렇지 않을까.
기부하는 돈이 얼마나 투명하게 운영되느냐가 가장 중요했다.
단체가 많은 만큼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이슈가 있었다.
돈을 빼돌린다거나, 사용처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따라서 아무 곳에나 기부할 수는 없었다.
‘믿을 만한 곳.’
기부금을 온전히 아이들을 위해 사용하는 곳을 찾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 개인적으로 긴 시간을 들여 알아봤다.
이후 주위에도 자문을 구했다.
대상은 다름아닌 풀잎컴퍼니의 대표 윤수아였다.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만큼 나보다 더 아는 게 많을 거란 생각이었다.
공교롭게도 그녀의 입에서는 내가 알아본 곳과 같은 단체의 이름이 나왔다.
‘Protect the children’
그게 현재 눈앞에 있는 단체의 이름이었다.
신용할 근거는 여러가지가 있었다.
우선 세계 최대 규모의 아동 구호기구라는 것과, 창립된 역사가 무척 길다는 것.
‘1919년.’
비유가 조금 우습긴 하지만 우리 할머니보다 나이가 많았다.
단지 그게 이 곳을 택한 이유는 아니었다.
역시 가장 염두에 둔 건 투명성이었다.
‘창립 이래 한 번도 부정적인 이슈가 터진 적 없고.’
그에 더해 기부금 내역과 활용처를 투명하게 공개한다는 점.
이 단체에 기부하기로 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였다.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길 바랐으니까.
“그럼 들어갈까, 연두야?”
“네에.”
끼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보이는 내부.
본부임에도 인테리어를 비롯한 환경에서 소박함이 느껴졌다.
더욱 믿음이 가는 느낌이었다.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나요?”
뒤늦게 내 손을 잡은 연두를 본 남자가 말을 덧붙였다.
“와.. 따님이 너무 예쁘시네요.”
“감사합니다.”
이후 나는 후원하러 왔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남자는 나와 연두를 2층으로 안내해 줬다.
따라가는 와중 복도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한 여자.
또각. 또각.
구두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그녀를 보고선 남자가 손을 흔들며 불렀다.
“매니저님!”
부르는 소리에 이쪽을 향하는 그녀의 시선.
허나 문제가 있었다.
“.. 어?”
외마디 음성과 함께 여자의 눈이 커다랗게 부풀었다는 것.
생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하나뿐이었다.
연두랑 나를 알아본 거겠지.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다, 담당님. 왜 연두랑 초록님이 여기에 있어요..?”
“예?”
얼빠진 표정을 짓던 남자가 되물었다.
“연두랑 초록님이요?”
“.. 네. 담당님 연두튜브 모르세요?”
“어디서 본 거 같긴 한데..”
남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유명한 분들이신가 보네요. 저는 후원하러 오셨다길래 안내해 드리고 있었는데……”
“아!”
상황을 파악한 매니저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인사가 늦었네요.”
“아닙니다.”
“이건 제 명함입니다.”
남자가 부르던 호칭답게 매니저라 적힌 명함.
이후 그녀는 넌지시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연두튜브 엄청 팬입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내 손을 잡은 연두가 수줍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여..”
“어머! 먼저 인사해 준 거야? 고마워라…”
끼익.
그때 난데없이 옆에서 열리는 문.
놀라서 바라보니 말끔히 차려입은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무슨 일…… 어엉..?”
연두를 보고 떡 벌어지는 남자의 입.
이쯤 되니 자연스레 입가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다음에 나올 말은 예상이 갔다.
“연두??”
***
알고 보니 연두를 알아본 남자는 팀장이었다.
그가 직접 기부 컨설팅을 돕는다는 거 같았다.
“여기로 들어오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연두야.”
“네, 아빠..!”
옆에는 아까 인사를 나눈 매니저도 함께했다.
방에는 한 줄의 문구가 쓰여 있었다.
-우리가 아이를 구하면 아이가 세상을 구한다.
꽤나 마음에 큰 울림을 주는 문구였다.
다시 한번 후원 의사를 전달하자 팀장이 말했다.
“훌륭한 생각이시네요.”
“아닙니다.”
“혹시 생각하신 후원 대상이 있으신가요?”
옆에 앉은 연두를 살짝 살피고는 답했다.
“아픈 아이들. 몸과 마음이 아픈 아이들을 대상으로 후원하고 싶습니다.”
“.. 아픈 아이들 말이군요.”
일부러 학대 피해아동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
다행히 팀장은 내 말뜻을 알아들은 거 같았다.
이후 그는 미소를 띠며 연두에게 말했다.
“아빠처럼 연두도 도와주고 싶은 거니? 아픈 아이들.”
연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도아주고 시퍼요..!”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아프지 안아쓰면 좋게써서.. 아픈 건 무섭고, 또 마니 아야하니까……”
“그렇구나.”
팀장은 나를 보며 얘기했다.
“역시 정말 천사같네요, 연두는.”
“감사합니다.”
이들은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을 터였다.
지금의 밝은 연두의 모습 뒤에 아픈 과거가 있을 거라고는.
짠한 마음에 가볍게 연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헤헤..”
그러자 나를 보며 배시시 미소짓는 연두.
괜스레 또 마음이 또 저리는 느낌이다.
동시에 간절히 바랐다. 더는 연두와 같은 아픔을 겪는 아이들이 생기지 않기를.
이후 나는 건네는 용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기부액, 기부 방법, 기부 목적……’
막힘없이 적어내려갔다.
이전에 몇 번이고 생각했던 것들이니까.
“전부 작성했습니다.”
“아, 네.”
용지를 건네받은 팀장의 눈이 부풀었다.
“저기, 초록님..”
“네.”
“기부액. 오천만원 맞으신가요?”
“네, 맞습니다.”
확실히 적지 않은 액수이긴 했다.
그중 절반은 내가 창출한 수익이 포함되어 있었다.
당연했다. 연두와 함께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으니까.
괜찮다는 판단이 든다면 앞으로도 꾸준히 기부할 생각이었다.
“.. 정말 감사합니다. 아이들에게 분명히 큰 힘이 될 겁니다.”
그 말에 연두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이들.. 아프지 안아질 수 이써요..?”
“그래. 약속할게. 더이상 아이들이 아프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기로.”
옆에서 매니저도 덧붙였다.
“아버님이랑 연두가 정말 큰 일을 한 거야. 엄청 많은 아이들을 도와준 거야.”
그제야 연두는 옅게 웃어보였다.
진심으로 기뻐하는 게 묻어나는 미소였다.
이후 본격적인 컨설팅이 시작됐다.
후원금이 어떻게 쓰일지, 정확한 후원 대상은 어떤 아이들인지 등.
‘자세하네.’
그저 기부금만 툭 전달하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묻지 않아도 세부적인 것들에 대한 설명이 이루어졌다.
“끝으로는 후원자 측에 후원 결과에 대한 보고가 이어지게 됩니다.”
“그렇군요.”
“이해가 안 된 부분이 있다면 뭐든지 편하게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아뇨. 전부 이해했습니다.”
“하하, 다행이네요.”
미소를 띠며 그가 말을 이었다.
“끝으로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네.”
“개인 후원자의 누적 후원금이 4000만원이 넘어가면 ‘아너스 클럽’이라는 곳에 등재됩니다. 간단히 말해 개인 고액기부자 모임이라 할 수 있죠.”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한 번에 기부금이 4000만원을 초과했으니 등재 조건을 만족했다는 말이겠지.
여러 말들이 뒤에 이어졌다.
후원자의 벽에 올라간다는 것부터 그 밖의 이야기들.
팀장의 얘기가 끝나고 나는 말했다.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저는 익명으로 후원하고 싶습니다.”
“익명이요?”
“네. 혹시 불가능한 건가요?”
“아닙니다. 물론 가능합니다. 다만……”
무언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보였다.
“개인적으로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네, 말씀하세요.”
“저는 초록님이 기부 사실을 공개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유가 뭔가요?”
“선한 영향력 때문입니다.”
팀장은 많은 유명 연예인들을 예로 들었다.
그들이 고액을 기부하고 나서 그 영향으로 이어지는 기부 효과에 대해.
이후 그는 말을 끝맺었다.
“연두 튜브는 구독자가 이백만이 넘는 채널입니다. 게다가 키즈 채널이죠. 기부 사실을 공개한다면 분명히 선한 영향력이 발휘될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초록님이 내키지 않으신다면 그냥 흘려들으셔도 됩니다.”
사실 깊게 생각지 못했던 문제였다.
익명 기부를 생각한 이유는 딱히 그 외의 것들이 중요치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후원의 유일한 목적은 아이들을 돕기 위함이니 말이다.
허나 만약 이 말이 맞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더 많은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셈이니까.’
단 한 명이라도 더 도울 수 있다면.
충분히 기부 사실을 알릴 만한 가치가 있었다.
연두와 시선을 맞춘 뒤 나는 말했다.
“알겠습니다.”
***
서울의 한 대학교 내부.
테이블 위에 펼쳐져 있는 수많은 종이들.
미대생 여섯명이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아있었다.
“후우.. 이거 언제 끝내냐.”
“그니까.”
“생각보다 개오래 걸리네. 양 별로 안 많다고 생각했는데.”
박상영이 종이를 든 동기를 다그치며 말했다.
“빨리 좀 봐, 서도연! 뭐 이렇게 굼떠!”
“닥쳐. 너야말로 대충 보지 좀 마. 공모전 작품인데.”
“대충 보다니! 3초만 봐도 판단이 서는 걸 어떡하라고.”
그들이 보고 있는 건 바로 ‘전국 청년작가 미술공모전’의 작품들이었다.
보통 심사라고 하면 굉장히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거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특히나 출품작이 많은 공모전의 경우에는.
현실적으로 고급인력이나 권위자가 그 많은 작품을 하나하나 보는 건 어려웠다.
따라서 1차 심사같은 경우는 미대생들이 하는 경우가 많았다.
작품을 보는 최소한의 눈을 가진.
슥. 슥. 슥.
“아, 박상영 진짜. 좀 천천히 보고 주라고. 작품 쌓이잖아.”
최대한 객관적인 분류를 위해 그들이 나름대로 세운 선별방법.
바로 민주주의를 통한 다수결의 원칙이었다.
여섯명이 합격 불합격을 매겨서 합격 수가 더 많다면 살리는 걸로.
심사 기준은 처음부터 높게 잡은 상태였다.
왜냐고? 10%에서 20%를 남기는 걸 목표로 하라는 교수님의 말씀이 있었으니까.
“와, 진짜 수준 낮네.”
“큭큭, 이거 봐. 뭘 표현하려는 거냐, 이 그림은.”
아직 어린 대학생들인 만큼 수준 낮은 그림은 디스의 대상이었다.
물론 모두를 놀라게 하는 그림도 간혹 등장했다.
“야, 이거 대상각 아니냐?”
“최소 우수상은 받을 듯. 선이 미쳤는디.”
“디테일 보소.”
그런 그림같은 경우는 당연히 올 합격이었다.
사실 처음에 걱정한 게 있었다.
심사하는 인원이 짝수라 3대 3으로 의견이 갈리지 않을까 하고.
걱정과 달리 아직까지 그런 경우는 발생하지 않았다.
모두 전공생인 만큼 그림을 보는 눈이 있었으니까.
다만 취향에 따라 의견이 나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5대 1로 갈리거나 4대 2로 갈리는 경우.
“합격 두 명, 탈락 네 명이니까 탈락시킨다. 이견 없지?”
“응.”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탈락이지.”
처음에 확실히 정해둔 상태였다.
아무리 마음에 들더라도 다수결의 원칙에 따르기로.
그런데 심사의 첫 타자인 박상영이 입을 열었다.
“잠깐만.”
“응?”
“아까부터 느낀 건데 서도연 계속 나랑 반대로 찍는 거 같냐, 왜. 내가 합격표시하면 탈락시키고, 탈락표시하면 합격시키고. 견제 자제 좀.”
과 대표 진상답게 기어코 못 참고 입을 여는 박상영.
옆에서 한경우가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내뱉었다.
‘진짜 멍청하네. 이러면 좋아할 줄 아는 건가.’
사실 지켜보는 동기들은 전부 알고 있었다.
박상영이 서도연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심사의 끝자리에 위치한 서도연이 황당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헛소리 작작 하자. 심사할 때 니가 무슨 표시 했는지 보지도 않거든?”
“웃기시네.”
“웃긴 건 니 얼굴이고.”
“…?”
난데없이 얼굴 디스를 먹고서 벙찐 표정을 짓는 박상영.
서도연은 눈길도 주지 않고 심사에 집중했다.
그러던 와중 들려오는 박상영의 목소리.
“이건 또 뭐냐?”
또 그림 디스를 시작하려는 모양이다.
한심했다. 못 그린 그림이라도 최선을 다한 작품일 텐데.
별로면 그냥 넘기면 되지 욕할 건 또 뭐란 말인가.
“하, 진짜 색칠놀이도 아니고. 제목은.. 그 날의 감정? 중이병 오지네. 리얼 개나 소나 다 출품하나, 이 공모전은.”
디스를 쏟아낸 박상영은 불합격을 주고 옆으로 휙 넘겼다.
옆에 있는 한경우가 그림을 이어받았다.
이윽고 한경우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외마디 소리.
“.. 어?”
“뭐 해? 빨리 불합격시키고 넘기지.”
“이걸 불합격을 왜 시켜?”
“엥?”
“아니.. 미친놈아. 존X 잘 그렸잖아.”
두 손으로 종이를 펼쳐서 다시 한번 보고는 감탄사를 내뱉는다.
“와…”
“아니, 이게 잘 그렸다고?”
“더 볼 것도 없다.”
합격표시를 한 뒤 한경우가 그림을 옆으로 넘겼다.
극명하게 갈린 둘의 반응.
그런데 이번에는 또 반대의 반응이 이어졌다.
“느낌은 있긴 한데, 난해하지 않나?”
“야, 잠깐만. 진심이야?”
“어.”
결국 고민하다가 불합격 표시를 하고 옆으로 넘기는 학생.
약속이라도 한 듯 뒤의 두 명도 합격과 불합격을 번갈아 줬다.
이쯤 되니 마지막 차례인 서도연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어떤 그림이길래.’
친구들의 의견이 이렇게 상반되는지 말이다.
이윽고 그림을 받아드는 서도연.
“…?”
보자마자 강한 의문이 일었다.
‘.. 말이 돼?’
어떻게 이 그림을 세 명이나 탈락을 줬는지에 대한 강한 의문.
보는 동시에 색감에 빨려드는 느낌이었다.
동시에 소름이 돋았다. 그림이 주는 에너지에.
‘잘 그린 그림은 많았지만.’
이렇게 새롭고 강하게 와 닿는 그림은 처음이었다.
그림의 제목은 ‘그 날의 감정.’
궁금해질 정도였다. 그 날이 대체 어떤 날인지.
한동안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서도연은 펜을 들었다.
[xoxoxo]처음으로 의견이 3대 3으로 대립했다.
박상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맞잖아. 나랑 반대로 찍는 거.”
“하..”
서도연은 말을 섞을 가치도 없다는 듯 얘기했다.
“진짜 어떻게 이 그림을 떨어트린 거냐? 박상영은 그렇다 쳐도 너네 둘은 대체 왜?”
“잠깐만. 말이 심하다?”
박상영이 불쑥 끼어들었다.
“나는 그렇다 치라니. 그리고 그림이 별로니까 떨궜겠지. 다른 이유가 어딨겠어?”
“이게 별로여서 떨어지면, 니 그림은 똥통 깊숙이 떨어져야 돼.”
“.. 뭐? 듣자듣자하니까 진짜……”
순식간에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간신히 분위기를 가라앉힌 후 누군가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하냐, 이런 경우는.”
“3대 3인데.”
“보류해 둬?”
서도연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런 거 하나 만들자. 오디션 프로그램 같은 거 보면 있잖아. 슈퍼패스였나? 그럼 나 이 그림 살릴게.”
가만히 보고 있을 박상영의 진상력이 아니었다.
“그런 게 어딨냐? 처음에 그런 말 없었잖아.”
“그니까 지금 만들자고.”
“싫은데? 차라리 가위바위보를 하든지.”
오늘 완전히 작정한 듯한 모습이었다.
다시 불이 붙으려는 둘.
끼익.
그때 클래스의 문이 열렸다.
모습을 드러낸 건 다름아닌 교수 유호걸이었다.
놀란 학생들이 입을 모아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유호걸은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작품 선별은 잘 되고 있고?”
“네.”
“많이 진행했습니다.”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데 밖에서 조금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던데.”
“아…”
난처한 표정을 짓는 학생들.
결국 한경우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사실 지금까지는 문제가 없었는데, 그림 하나로 3대 3으로 의견이 갈려서요.”
“호오, 그래?”
“네. 그래서 어떻게 할지 얘기가 오갔습니다.”
유호걸은 흥미롭다는 듯 수염을 쓰다듬었다.
“3대 3이라… 그럼 이렇게 하는 거 어떤가?”
“어떻게요?”
“그 그림 심사에는 나도 참가하지. 그럼 내가 합격을 주든 불합격을 주든 4대 3 이 되겠지?”
그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민주주의 국가니까 다수결로 하자고.”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사실상 교수님이 정해준다면 다툴 이유도 없으니 좋은 일이었고.
학생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터벅. 터벅.
“그래서.. 그 그림은 어디 있나?”
그림을 들고 있던 서도연이 일어섰다.
“여기 있습니다.”
“아, 도연이. 고맙다.”
스윽.
교수가 주름진 손으로 종이를 건네받았다.
이후 그의 시선이 그림을 향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자리의 여섯 명의 학생은 모두 볼 수 있었다.
크게 흔들리는 교수님의 눈동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