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250)
250화. 4대 3
“…”
수십년에 걸쳐 미술대학의 교수생활을 이어온 유호걸.
백발이 될 만큼 나이가 들긴 했지만, 그의 성향은 굉장히 젊은 편에 속했다.
특히 미술을 대함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랬다.
어떠한 편견이나 원칙에도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으니까.
미술작품을 감상할 때, 항상 유호걸이 머릿속에 새기고 있는 문장이 있었다.
‘작가의 손을 떠나면, 더이상 그 작품은 작가의 것이 아니다.’
말의 의미는 간단했다.
감상자가 누구이든 원작자의 정확한 의도를 아는 건 불가능하고, 결국 각자의 관점에서 해석하게 된다는 것.
누군가는 최고라 평하는 그림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졸작이 될 수 있었다.
사람마다 그림을 보는 눈이 다르고, 해석이 다르고, 느낌이 다르니까.
‘정답은 없어.’
그림은 수학이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그림이라도 절대적인 정답이 되는 건 불가능하다.
허나 그 논리대로라면 어떤 작품도 가치를 매길 수 없게 된다.
미술대전이나 공모전을 하는 것도 의미가 없어진다.
‘결국 가치를 매겨야 하지.’
모순되지만 그래야만 했다.
유호걸 자신도 본인의 가치를 스스로 입증해 낸 끝에 교수 자리에 오른 거니까.
어찌 보면 가장 주관적인 분야에서 객관성을 확립해 평가해야 하는 셈이었다.
매년 새로운 학생들의 수많은 작품을 보고 성적을 줘야 했다.
이상과 모순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따라서 유호걸은 작품 감상에 나름의 원칙을 세웠다.
피할 수 없다면 최대한 객관적인 감상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가 생각할 때 감상에 있어 가장 바탕이 되는 게 최소한의 지식을 아는 것이었다.
‘그림의 역사, 최소한의 규칙, 재료에 대한 이해, 제작 방법.’
그림을 감상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었다.
1차 심사의 목적도 그 점에 있었다.
최소한의 지식을 갖춘 제자들로 하여금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작품들을 가려내는 것.
그런데 그 생각이 틀렸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틀린 거 같다.
‘기준에 못 미치는 작품.’
유호걸은 두 가지로 인해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첫째는 들고 있는 그림을 보고 받은 충격, 다른 하나는 이 그림이 자칫하면 탈락했을 거라는 사실에서 오는 충격.
아까 말했듯 그림을 보는 모든 이의 시선은 전부 다르다.
하지만 최소한의 객관성은 확립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이 그림이 1차에서 탈락하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이유를 대라면 막힘없이 수십가지를 댈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
‘Deformation.’
데포르망, 데포르메이션, 데포르마시옹 등으로 다양하게 발음하는 단어.
사전적 의미는 변형 또는 왜곡이었다.
일반적으로 추상화에서 가장 강조되는 성질이었다.
틀을 깨부수고 자신만의 감정이나 생각을 의도대로 일그러뜨리는 것.
형태가 분명히 들어오지 않는 탓에 얼핏 보기에는 와 닿지 않을 수 있었다.
허나 일그러뜨리는 것의 전제를 생각해 보면 답이 나왔다.
기본기가 완벽할 때 비로소 변형이 가능해지니까.
‘피카소.’
그 예로 세계적인 화가 피카소를 예로 들 수 있었다.
추상 미술의 대명사로 알려진 피카소.
초창기 피카소의 그림은 흔히들 생각하는 그림과 달리 전혀 독특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석적인 그림 그 자체였다.
완벽한 기본기와 섬세함, 전통에 가까운 사실적인 그림.
피카소의 일화로 알 수 있는 교훈은 하나였다.
기본기가 받쳐주지 않는다면 변형을 가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
추상적으로 때운 느낌이 아니라, 화자의 의도대로 추상화시키는 건 더더욱.
보고 있는 그림은 후자에 속했다.
‘직관적으로 다가오니까.’
추상화임에도 감정과 정서가 직관적으로 다가왔다. 데포르망을 훌륭히 구현했다는 뜻이었다.
그밖에도 눈에 띄는 요소는 많지만 그전에 묻고 싶었다.
유호걸이 그림에서 눈을 떼고 제자들을 바라봤다.
“그래. 이 그림에 대한 의견이 3대 3으로 나뉘었다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통과시키자고 한 세 명은 누구지?”
서도연과 한경우를 포함한 세 명의 손이 올라갔다.
자연히 나머지는 탈락을 주장한 제자가 된다.
사실 밖에서 다투는 목소리를 들었다.
‘상영이, 그리고 도연이.’
유호걸은 먼저 박상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상영이.”
교수의 부름에 박상영은 바로 대답했다.
“네, 교수님!”
“물어봐도 될까? 이 그림에 불합격을 준 이유를.”
“아..”
색칠놀이냐. 중이병이냐. 구리다.
악담을 늘어놓던 아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교수의 면전에서 그렇게 얘기할 수는 없었으니까.
“하하, 그게.. 그림이 좀 과하게 추상적이라 생각해서요. 조금 난해한 느낌도 들고.. 와 닿지가 않는다고 해야 할까요?”
어색하게 웃으며 답을 마치는 박상영.
교수는 무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럼.. 도연이?”
“네, 교수님.”
“도연이는 왜 이 그림에 합격을 줬는지 얘기해 볼래?”
서도연은 곧바로 대답을 시작했다.
“우선은 그림을 봤을 때 바로 느껴지는 게 컸습니다. 특히 색채의 역동적인 느낌이 인상 깊었고요.”
직관적인 감상에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대답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 후에는 형태가 눈에 들어왔는데요. 구도, 비례, 배치로 세분해서 감상하니 더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림 속에서 각 대상이 차지하는 비율이나 구도가 다양한 느낌을 연출하는 게 보여서요. 예를 들면 사선 구도를 활용해서 긴장감이나 불안감이 표현하는 듯한 부분이나, 그 밖에도……”
대답을 듣는 와중 유호걸의 입가에 옅게 번지는 미소.
이유는 간단했다.
그림을 정확히 이해하고 답하는 게 느껴졌으니까.
“그랬구나.”
“네. 그리고 ‘그 날의 감정’이라는 제목도 새삼 와 닿았습니다. 대체 어떤 날이었길래 이런 그림을 그린 건지 궁금해져서…”
듣고 있는 박상영으로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는 답변이었다.
중이병 같다며 신랄하게 까 내린 제목이었으니까.
이윽고 서도연의 답이 끝나고 교수가 말했다.
“잘 들었다. 그럼 아까 얘기한 대로.. 나도 표를 행사하도록 하지.”
스윽.
“그럼 나머지도 부탁하마.”
말은 그렇게 했으나 생각은 달라져 있었다.
떨어진 작품도 하나하나 직접 다시 확인할 생각이었으니까.
그렇게 유호걸이 자리를 떴다.
한동안 멀뚱히 서 있던 여섯 명의 학생.
“보자.”
누군가의 말을 시작으로 그들의 시선이 고정됐다.
‘xoxoxo’
3대 3으로 갈렸던 의견.
그 일곱 번째 칸에는 교수님이 그린 모형이 추가되어 있었다.
‘O’
오해할 여지없는 커다란 동그라미.
학생들 사이의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
콩닥. 콩닥.
연두와 나란히 소파에 앉아있었다.
심장이 뛰는 게 느껴졌다.
“아빠…”
“응, 연두야.”
“연두 마니 떨려요..”
“.. 아빠도.”
부녀가 나란히 앉아서 떨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청년작가 미술공모전의 1차 심사 결과가 나오는 날이 오늘이기 때문.
‘얼마 안 남았어.’
결과 발표 예정시각도 거의 다다른 상태.
합격 불합격 통보는 문자메시지로 날아오게 되어 있었다.
물론 1차에만 해당됐다.
‘최종 수상 여부는 인터넷으로 확인해야 하니까.’
뭐, 그건 나중 일이었다.
아직 1차에 붙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니 말이다.
핸드폰을 잡은 손이 달달 떨렸다.
공모전 결과를 기다리며 이렇게 떨어보는 건 처음이었다.
꼬옥.
그때 내 손을 잡는 따뜻하고 자그마한 손.
다름 아닌 연두의 손이었다.
“갠차나요, 아빠..!”
“응?”
“아빠가 더 잘 그릴 꺼에요!”
“하하, 그래?”
“네..!”
전국 청년작가 미술공모전. 연두에게는 다소 어려운 공모전 명칭이었다.
따라서 표현을 조금 쉽게 바꿔서 설명해준 상태였다.
‘누가누가 더 그림 잘 그리나.’ 공모전에 참가했다고.
그런 내 말에 연두가 되물었지.
“그럼.. 그림 잘 그리기 대회에여..?”
“그렇지.”
틀린 말은 아니니 그렇다고 답했다.
그 뒤부터 연두는 나보다도 더 관심을 쏟고 있었다.
내가 참가한 그림 대회에 대해.
결과 메시지를 기다리는 사이, 연두가 나를 불렀다.
“아빠..”
“응.”
“그러면.. 연두는 아빠 그림 언제 볼 수 이써요..?”
“대회가 끝나서 결과가 나오면.”
아니다. 또 있구나.
나도 모르게 조금 처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니면 1차 심사에서 떨어지거나. 그래도 볼 수 있어.”
“.. 아빠가 떨어지면요?”
“응.”
“시러요!”
연두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말했다.
“연두 아빠 그림 안 볼 꺼에요..!”
자연스레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척 봐도 내 그림을 보기 싫다는 게 아니었다.
아빠가 대회에서 떨어지는 게 싫은 마음에 하는 말이지.
‘이걸 어쩐다.’
공모전에 참가한 걸 괜히 말했나 싶기도 하다.
떨어지면 나보다도 연두가 더 속상해할 거 같으니까.
그런 와중 귀에 들어오는 소리.
띠링!
연두와 나를 동시에 흠칫하게 만드는 알림 소리가 들려왔다.
핸드폰 화면에는 메시지 표시가 떠올라 있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 나와 연두의 시선이 맞닿았다.
‘0306.’
지나치게 단순한 핸드폰 비밀번호.
툭.
클릭과 함께 눈앞에 문자메시지가 떠올랐다.
가장 먼저 보이는 첫 문장.
-축하드립니다.
그 문장을 보는 순간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미치지 않고서야 탈락을 축하할 리는 없으니까.
애써 흥분을 가라앉히고 뒤 내용을 읽었다.
-이주원 작가님의 작품 ‘그 날의 감정’은 전국 청년미술 공모전의 1차 심사에 합격하셨습니다. 최종 결과는……
뒤늦게 옆에서 들려오는 연두의 목소리.
“.. 대따.”
“…”
“합격이에요, 아빠! 합격..!”
소파에서 일어나 방방 뛰는 연두.
아무래도 오늘은 축배를 들어야 할 거 같았다.
물론 술이 아닌 포도주스로.
***
찰칵.
“됐다.”
내 말에 총총 달려오는 연두와 시은이.
방금 사진을 끝으로 무려 네 번째 촬영 일정을 끝마치게 됐다.
“와.. 사진 진짜 예쁘다..”
오늘의 촬영 조력자는 바로 신세연이었다.
그녀는 사진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진짜 어떻게 이렇게 찍지..?”
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오늘 감 좀 잡지 않았어요?”
“네, 안 그래도 저 사진 찍는 거 좀 늘었어요. 주원씨가 알려준 대로 찍으니까 확실히 더 낫더라구요.”
간단한 몇 가지 요소를 알려준 상태였다.
구도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부터 인체 비례를 생각해서 찍어야 한다는 것 등등.
어려워 보이지만 적용은 비교적 쉬운 것들이었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시은이를 향해 물었다.
“그치, 시은아? 엄마 많이 늘었지?”
“응.”
오. 시은이가 그렇다면 정말 그런 건데.
안 늘었으면 아니라고 단호하게 대답할 아이니까.
딸의 대답에 신세연은 뿌듯한 미소를 띠며 또 물었다.
“그럼 연두 아빠가 잘 찍어, 아니면……”
“아저씨.”
“…”
괜히 더 나갔다가 내상을 입고 마는 신세연이었다.
나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오늘 도와줘서 고마워요.”
“아니에요. 오히려 나오니까 좋은데요?”
“하하, 다행이네요.”
오늘 촬영지는 집에서 꽤 떨어진 공원이었다.
거리가 있는 탓에 차를 끌고 왔고.
‘확실히 편해.’
차가 없었다면 이 정도 거리를 촬영하러 오는 데도 크게 애를 먹었을 터였다.
예상치 못하게 촬영에 있어서도 큰 이점을 얻고 있었다.
운전 실력이 상승한 건 덤이고.
‘오늘도 만족스럽네.’
전체적으로 편안한 옷의 컨셉에 맞춰 촬영 장소로 공원을 선택했는데.
다행히 생각한 느낌의 결과물이 나온 거 같았다.
뭐, 연두랑 시은이가 힘내 준 덕이지.
“고생 많았어, 얘들아.”
“네, 아빠!”
“네, 아저씨.”
고생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촬영 자체는 일 느낌이 전혀 없었다.
찍는 나도 즐거웠고 아이들도 내내 즐겁게 촬영에 임했으니까.
촬영을 마치고 공원을 거닐다 보니 어두워지는 하늘.
“그럼 슬슬 돌아갈까요?”
“네.”
아이들도 아쉬움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차가 있어서 집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뒤에 탄 신세연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진짜 능숙해진 거 같아요.”
“뭐가요?”
“운전이요.”
“아.”
나는 장난스레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 안 놀라네요. 엔진 소리에.”
문득 떠올랐다.
처음 내 차에 탔을 때 시동 거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던 그녀의 모습이.
“그, 그건……”
왜인지 연두와 시은이도 바짝 붙어서는 쿡쿡 웃었다.
그러다 둘이서 뭐라 뭐라 속닥거린다.
들리게 좀 얘기해 주지. 나도 궁금한데.
끼익.
그런 즐거운 분위기 속에 차가 멈췄다.
안타깝지만 헤어질 시간이었다.
“도착했어요.”
“아, 그러네요? 벌써 도착했네.”
신세연이 시은이를 보며 말했다.
“집 앞이야, 시은아. 내리자.”
그런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펼쳐졌다.
도리. 도리.
왜인지 시은이가 고개를 저었다.
옆에 있는 연두의 손을 꼭 잡은 채로.
신세연이 당황한 듯 말했다.
“왜, 시은아? 무슨 일 있어?”
“.. 엄마.”
“응.”
전혀 생각지 못한 말이 시은이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나 오늘만 연두네 집에서 자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