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257)
257화. 레전드 방송
예정되어 있는 여러 일정들이 있었다.
우선 청년작가 미술 공모전의 결과 발표.
예정된 발표 일자가 코앞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연두도 손꼽아 기다리고 있지.’
꼭 전에 동물원에 가기로 한 날을 하루하루 세던 때 같았다.
그때처럼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달력을 보며 질문하곤 했으니까.
“이제 몇 밤 자야 대요, 아빠..?”
“그건 왜?”
모르는 척 되물으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말.
“아빠 미술대회…”
그 모습을 보면 헷갈릴 정도다. 내 미술 공모전인지 연두가 참가한 공모전인지.
그만큼 연두는 내가 상을 타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실망시키지 않으려면 가장 낮은 상이라도 타야 할 텐데.
‘모르겠네.’
1차에 통과했다고 해도 이백여개의 작품 중 여덟 손가락 안에 들어야 했다.
가장 낮은 상인 ‘선정 작가상’을 수상하려 해도, 대략 25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는 뜻.
단순 수치상으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실 이렇게 따질 것도 없지.’
결국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연두티콘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얼마 전 제이디에게 다시 걸려온 연락.
“연두티콘 출시 일정이 잡혀서 연락드렸어요, 초록님!”
“아, 네. 언제로 잡혔나요?”
“3월 초가 될 거 같아요. 정확히는.. 3월 5일 저녁이요.”
비교적 공모전 발표보다는 조금 거리가 있는 출시 일정이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내가 놀란 부분은 따로 있었다.
“3월 5일이요..?”
연두티콘 출시일이 연두의 생일 바로 전날이라는 것.
되묻는 내 말에 제이디는 웃으며 답했다.
“놀라셨죠? 연두 생일 바로 전날이라.”
“알고 계시네요.”
“물론이죠. 저도 나름 연두튜브 애청자니까요, 후훗.”
이어지는 얘기를 들으니 출시 일자를 의도한 건 아닌 거 같았다.
일정을 잡고 나니 우연히 겹쳤다고 하니까.
그녀는 이어서 말했다.
“우연의 일치긴 하지만 되게 잘 된 거 같아요.”
“날짜가 겹치는 거 말씀이신가요?”
“네. 아직 연두한테 안 보여줬다고 하셨잖아요. 그럼 연두한테 무척 기억에 남는 생일선물이 되지 않을까요? 연두튜브 구독자분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확실히 궁금하긴 했다.
무려 72종에 달하는 내가 그려낸 연두의 모습들.
그걸 보고 연두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하하, 그랬으면 좋겠네요.”
청년작가 미술 공모전과 연두티콘 출시.
생각해 보면 일정이라기보다는 예정된 일이라 보는 편이 맞을 듯했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기보다는 기다려야 하는 일이니까.
‘해야 하는 일이라면.’
‘쑥쑥 한글완성’ 학습지 작화를 들 수 있었다.
현재 거의 작화의 마무리 단계에 돌입한 상태.
4단계가 끝인 걸 고려하면 거의 완성 단계라 보는 편이 옳았다.
‘처음에 비하면 작업 속도가 압도적으로 빨라졌지.’
내용은 서지혜와 동아리원들이 담당하니 내가 신경쓸 건 작화뿐이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건 동업자인 우영이와의 호흡이고.
호흡이 어떠냐 묻는다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답할 수 있었다.
‘완벽하다고.’
총 세 권의 학습지 작화를 함께하며 우리는 손발을 완전히 맞춘 상태였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뭘 원하는지 알았다.
기본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성향이 비슷한 것도 있고.
그래서인지 조금은 아쉽기도 했다.
곧 우영이와의 동업이 끝난다는 사실이.
뭐,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또 같이 작업하면 되지.
슥. 슥.
이 정도인가.
나는 떠오르는 일정을 모두 달력에 기록했다.
한눈에 보고 준비할 수 있도록.
‘기록할 수 없는 일정도 하나 있군.’
다름아닌 ‘최고의 한 끼’ 촬영일이었다.
출연은 확정이지만 아직 촬영 날짜는 전달받지 못한 상태였다.
방송사 측에서 일정을 조율하고 있는 거겠지.
‘그러고 보니 이것도 기다리는 거네.’
당분간은 기다려야 하는 일 투성이인 듯하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기다리는 날이 있었다.
수차례 덧칠된 달력의 어느 날짜.
사각.
그 위에 나는 다시 한번 펜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연두도 손꼽아 기다리는 날을 이렇게 동그라미로 표시하곤 하니까.
그래서 그 날이 언제냐고?
‘3월 6일.’
바로 연두의 생일이었다.
***
[토마토 스파게티 먹방!(feat. 면치기 & 비밀기지)]저번에 올린 요리 영상과 이어지는 영상이었다.
스파게티 먹방과 아이들과 함께하는 비밀기지 건설이 들어간 영상.
저번 영상에 댓글로 상당히 많은 원성 아닌 원성을 들었지.
-아니, 여기서 끊는다고요? 초록님??
-실실 웃으면서 보고 있는데 갑자기 검은 화면이 뜨네? 그 속에 뽀짝이들이랑 초록님이 아니라 커다란 내 얼굴이 비치네? 이거 뭐징.. 개꿀잼 몰카인가 ㅎㅎ
-이 보시오! 음식을 했으면 맛을 보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소!!
-잘 들어, 초록.. 당장 다음 영상을 내놓지 않으면 난 바지에 똥을 싸겠어.
-초록님 ㅎㅎㅎㅎㅎㅎㅎㅎㅎ
꽤나 오랜만에 보는 댓글창 느낌이었지.
확실히 댓글을 보고 나서 생각하니 끊는 타이밍이 너무하긴 했다.
그래서 빠르게 준비했지. 다음 영상을.
툭.
민심을 회복한 게 느껴지는 댓글창이 눈에 들어왔다.
-뭐냐구!! 빠른 업로드 뭐냐구!!!
┖제목만 봐도 즐겁네 ㅋㅋㅋ
┖아 ㅋㅋ 스파게티 먹방 딱 대! 면치기 딱 대!! 비밀기지 딱 대!!!
┖초록이형은 지건.. 말고 뽀뽀 딱 대! 일로 와!!
┖차라리 지건을 때려 ㅁㅊ놈아 ㅋㅋㅋㅋ
미안한데 둘 다 사양하고 싶다.
지건은 아파서 싫고 뽀뽀는 더더욱 싫으니까.
마음만 고맙게 받기로 하고 나는 댓글창을 넘겼다.
-아 ㅋㅋㅋ 진짜 미치겠네. 초록님 면치기 뭔데.
┖후루루루루룩 소리 오지네 ㅋㅋ 저게 진짜 면치기지. 피부로 먹기.
┖연두 바로 달려와서 얼굴 닦아주는 거 너무 예쁘네.
┖시은이 저렇게 현웃 터진 거 처음 본당 ㅋㅋ 얼음공주 느낌이었는데.
┖초록님 외모랑 달리 은근히 개그캐. 원래도 그랬는데 얼굴 공개하고 더 그런 듯 ㅎㅎ
┖한복 입었을 때랑 매치가 안 돼 ㅋㅋㅋㅋㅋ
┖근데 그래서 더 매력있음. ㅇㅈ? 어 인정.
-연두는 면치기하는 것도 세상 귀엽네..
┖세상 최대 난제. 연두 안 귀여운 모습 찾기.
┖mbti 검사하면 연두는 무조건 CUTE 나올 듯. 다른 게 나올 수가 없음.
┖ㅋㅋㅋ 인정.
┖시은이도 결국 면치기 ㅋㅋ 얼굴 빨개진 거 봐.
-그 와중에 초록님 손재주.. 진짜 감탄만 나온다…
┖아악!! 또 이렇게 끊는 게 어딨어요!!! 비밀기지 속에서 무슨 얘기 했는지 나도 알고 싶다구!!!
┖초록님, 당연히 3탄은 있는 거겠죠? (feat. 비밀기지 속 이야기) ㅎㅎㅎㅎㅎㅎㅎㅎㅎ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들어줄 수 없었다.
비밀기지 속 이야기는 말 그대로 비밀이니 말이다.
나와 연두, 그리고 시은이 셋만의 비밀.
***
영등포에 위치한 방송국 JBS.
국내를 대표하는 공중파 3대 방송사 중 하나.
드라마나 예능을 포함한 각종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방송국이었다.
어느 방송사든 효자 프로그램이 존재했다.
그걸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굳이 말할 것도 없었다.
시청률.
방송을 송출하는 방송국에 있어서 시청률보다 중요한 건 존재하지 않았다.
예능이든, 드라마든, 다큐멘터리든.
방송국 내의 모든 인력은 오직 시청률을 위해 움직였다.
터벅. 터벅.
JBS 소속 김석호 PD가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요즘 들어 그의 발걸음은 무척 가벼웠다.
막중한 임무 하나를 해결했으니까.
‘연두와 초록님의 섭외.’
PD로 일하는지라 방송국의 내부 상황은 물론 외부 사정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유투브 전성시대에 접어들며 연예인과 유투브 크리에이터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그에 따라 유명 크리에이터는 방송국의 섭외 대상이 되었고.
어떤 경우에는 톱 배우나 가수만큼이나 가치가 높았다.
그중에서도 많은 방송사에서 섭외하려는 대상, 바로 연두튜브의 연두와 초록님이었다.
떠올리는 동시에 자연스레 입가에 번지는 웃음.
‘진짜 귀여웠지.’
물론 유투브를 통해서도 알고 있었다.
섭외해야 하는 대상인만큼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었으니까.
처음에는 그럴 생각으로 봤는데 나중에는 헤어나오지 못한 게 함정이지만.
그게 더더욱 와 닿은 건 저번 통화였다.
“잘 부탁드릴께요, 피디님..!”
아직도 그 귀여운 목소리가 귀를 떠나지를 않았다.
잠깐의 통화만으로 알 수 있었다. 생각 이상으로 사랑스러운 아이란 걸.
그 증거로 전해 들은 소식이 있었다.
‘배트맨이 돌아왔다.’
경쟁 방송사의 프로그램이었다.
JBS의 효자 프로그램이 ‘최고의 한 끼’라면 MTBC는 ‘배트맨이 돌아왔다’였으니까.
부모와 아이의 일상을 보여주는 키즈 프로그램.
그 프로그램에서 연두튜브에 섭외 요청을 했다고 들었다.
‘거절당했다고 하고.’
솔직히 그 소식을 듣고 생각했다. 가망이 없겠구나 하고.
그런데 웬걸. 먼저 전화가 걸려왔다. 최고의 한 끼에 출연하겠다고.
그 사실을 전달했을 때 CP님의 목소리.
“.. 정말이에요?”
“네. 출연하겠다고 의사를 전달하셨습니다.”
“…”
최고의 한 끼 책임 프로듀서이자 직급상 CP에 위치한 서태우.
제작하는 프로그램마다 성공을 거듭해 PD계의 레전드라 불리는 사람이었다.
아직도 그의 반응을 잊을 수가 없었다.
“정말 잘했어요. 으하하! 포기 안 하고 계속 연락하더니..”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이해는 갔다.
섭외 사실 자체도 그렇지만 서태우는 모두가 아는 연두튜브의 팬이었으니까.
자연히 그 공은 김석호에게 돌아갔다.
‘딱히 한 것도 없는데.’
삼고초려 이상으로 연락을 하긴 했지만 결국 먼저 의사를 표해준 건 상대측이었다.
그렇게 말해도 계속해서 띄워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기분이 좋은 것도 어쩔 수 없고.
‘에라, 모르겠다.’
김석호는 그 기분을 그냥 만끽하기로 했다.
그래서인지 요즘 회사생활이 무척 즐거워진 상태였다.
오늘은 ‘최고의 한 끼’ 내부 회의 날이었다.
끼익.
회의실에 들어서니 중앙에 앉은 CP가 그를 반겼다.
“어서 와요, 김피디.”
이어지는 동료들의 인사.
김석호도 인사를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이후 시작된 회의.
“연두와 초록님을 게스트로 한 방송 편성에 관해서 말인데요.”
CP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팀원들.
서태우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주에 걸쳐 편성하는 것에 관해 모두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그 말에 팀원들의 눈이 확장됐다.
보통은 게스트 두 명 당 한 주의 편성이 일반적인 경우였으니까.
한 마디로 특별 편성을 하는 게 어떻냐는 제안이었다.
잠깐의 침묵 끝에 누군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예외적으로 편성하게 되면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껏 한 번도 없는 경우이니 의문을 제기할 만도 했다.
어떻게 보면 원칙을 어기는 느낌이기도 하니까.
“물론 그렇겠죠. 그래서 게스트를 늘릴까 합니다.”
“게스트를 늘린다구요?”
“네. 아직 미정이긴 하지만 두 분을 더 섭외한다면 이 주에 걸쳐 편성이 가능하겠죠. 방송의 특성상 충분히 자연스럽게 연출이 가능할 거 같고요.”
서태우 CP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한 회 분량으로 편성하기에는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해결책은 생각보다 쉽게 떠올랐다.
‘게스트 두 명을 늘리면.’
방송 분량은 물론 보다 재미있는 그림도 만들 수 있을 거 같았다.
게스트 섭외에 더해 초록님 측에 양해를 구해야 하긴 하겠지만.
충분히 해 볼 만한 시도임은 확실했다.
‘만약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앞으로도 이 방식으로 촬영을 할 수 있었다.
게스트 네 명을 한 번에 섭외해서 촬영하는 방식으로.
훨씬 일정을 소화하기 편해지겠지.
‘다만.’
시도를 하려면 그만큼 게스트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서태우는 그 확신이 있었다.
팀원들의 생각은 어떨까.
“확실히 게스트 두 명을 고집할 이유는 없네요.”
“맞아요. 한 번의 촬영으로 2회분을 편성할 수 있는 메리트도 크고.”
“게스트끼리의 리액션도 넣기 좋을 테고요.”
“특히 연두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죠. 리액션이 나올 수밖에 없게 만드니까.”
“하하, 진짜 그렇겠네요.”
자유로운 회의 분위기를 중시하는 CP 서태우.
그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뗬다.
‘다행이네.’
팀원들도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는 거 같았다.
이후에도 여러 얘기가 오갔다.
어떤 게스트를 추가로 섭외하는 게 좋을지부터 그 소식을 전달하는 문제.
그리고 촬영 일자를 정하는 것까지.
“초록님한테 이 소식을 전달하는 건.. 맡겨도 될까요, 김 피디?”
“네, 물론입니다.”
김석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렇게 마무리된 회의.
“그럼.. 한 번 찍어 봅시다. 레전드 방송.”
“넵!”
입을 모아 대답하는 팀원들.
서태우가 빙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다려지네.’
오랜만이었다.
이토록 촬영이 기다려지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