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260)
260화. 고비
[결과 발표]가장 위에 떠올라 있는 키워드.
‘.. 떴다.’
예정시각에 정확히 맞춰 떠오른 공지였다.
쿵. 쿵.
빨라지는 심장박동을 느끼며 나는 마우스 커서와 함께 시선을 내렸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좌측에 떠오른 상의 종류.
대상, 우수상, 선정 작가상.
스윽.
굳이 밑부터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위에 내 이름이 없다면 차례로 확인하며 내려가면 되는 일이니까.
그에 따라 상의 가치는 내려가긴 하겠지만.
‘굳이 처음부터 눈을 낮출 필요는 없지.’
그런다고 해서 정해진 결과는 바뀌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따라서 ‘대상’이었다.
내 시선이 처음으로 향하는 곳은.
스윽.
곧바로 눈에 들어왔다.
대상 수상자의 이름 세 글자가.
-이주원
“…?”
손을 올려 눈을 비볐다.
다시 화면에 적힌 이름을 바라봤다.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내 이름 석 자가 보란 듯이 대상 수상란을 차지하고 있었으니까.
“아빠..”
아직 연두는 보지 못한 모양이다.
화면이 꽉 차서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으슬. 으슬.
온몸에 소름이 올라왔지만 일부러 내색하지 않았다.
이주원. 흔한 이름이다.
우리 학교에 나 말고 두 명이나 더 있었을 정도로.
‘작품 이름.’
수상작의 작품명을 보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었다.
허나 그런 와중에도 거센 심장박동은 제어가 불가능했다.
대상인가. 진짜 대상인 건가.
그런 생각과 함께 심장이 세차게 뛰었으니까.
[그 날의 감정]그리고 마침내 작품명까지 확인하는 순간.
억누르고 있던 감정이 물 밀듯이 솟구쳤다.
“.. 대상이다.”
“으응..?”
“연두야.. 대상이야.. 아빠가 일등했어!”
수상하지 못했다면 내색하지 않았을 안타까움과 슬픔.
허나 기쁨과 희열은 그에 해당되지 않았다.
또 그려야 하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니까. 지금의 이 감정을.
“.. 진짜.”
“응?”
“진짜다.. 이주원.. 연두 아빠 이름……”
이제야 화면 속 내 이름을 본 모양이다.
뒤이어 느껴지는 연두의 떨림. 무릎에 앉아있어서 그 떨림이 그대로 전해졌다.
격한 떨림에 걱정이 된 나는 말했다.
“혹시 우는 거 아니지, 연두야?”
슥.
곧바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연두.
다행히 눈물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그 어느 때보다 환하디 환한 웃음이 보였다.
“아빠가.. 아빠가 일등이에요..!”
휙. 휙.
주먹을 꾹 쥔 채로 수영하듯 허공에서 발을 젓는 연두.
“흐흐.”
내 무릎 위라 이 정도지, 서 있었다면 폴짝폴짝 뛰고 난리도 아니었을 듯하다.
지금도 내가 양팔을 벨트 삼아 연두를 제어하고 있으니까.
‘놓으면 다칠 거 같단 말이지.’
이후에도 연두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나는 웃으며 장난스레 입을 열었다.
“그러게. 누구 아빠길래 이렇게 일등을 했을까?”
“헤헤, 연두 아빠…”
“응? 누구라고?”
“연두 아빠에요! 연두 아빠가 일등해써요..!”
“호오, 그래?”
“네에.”
배시시 웃음짓는 연두.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했는데 그 말은 틀린 거 같다.
배가 아니라 수십 배, 아니 수백 배인 거 같으니까.
‘나보다 더 기뻐하는 연두를 보니.’
한동안 나와 연두는 부둥켜안고 기쁨을 나눴다.
이후 다시 화면을 향하는 시선.
작품에 대한 상세 평가, 즉 수상 이유는 시상식에서 들을 수 있었다.
‘상금은 말할 것도 없고.’
갤러리에 전시되며 개인전과 그룹전을 지원받는다.
오직 대상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그런데 신기했다. 그런 특권을 떠나서 정말 순수하게 기쁘다는 사실이.
학창시절에 상을 받았을 때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
이 감정이 주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고마워, 연두야.”
“네에..?”
한껏 흥을 발산하던 연두가 멈추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뭐가 고맙다는 건지 의아한 모양.
“하하, 글쎄.”
이렇게 넘기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걸 얘기하려면 오늘 하루로는 부족할 거 같으니까.
***
“축하해요, 형.”
이번에도 특유의 화법을 구사하는 녀석.
전화를 받자마자 본론을 꺼낸다.
“공모전 말하는 거 맞지?”
“네.”
수상 사실을 얘기해준 것도 아닌데 먼저 연락한 걸 보면 발표일을 미리 파악하고 있었다는 건데.
이걸 고마워해야 할지,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뭐, 일단 축하해 준 거니까.
“고마워.”
“뭘요. 이제 형 그림 볼 수 있겠네요.”
“똑같은 말을 하네.”
“똑같은 말? 그게 무슨 소리예요?”
“연두도 그랬거든. 이제 아빠 그림 볼 수 있겠다고.”
“아하.”
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진짜 우영이 네 말대로 됐네.”
“대상 받은 거요?”
“응. 아마 네가 처음일 걸? 출품한 그림도 안 보고 대상 받을 걸 맞추는 건.”
“딱히요.”
우영이의 말투는 시종일관 너무나도 평온했다.
수상을 당연히 예상했다는 듯 태연한 목소리였으니까.
그런 목소리로 녀석은 말을 이었다.
“출품작은 몰라도 형 그림은 알잖아요. 그럼 합리적으로 추론 가능한 거니까 놀랄 만한 일은 아니죠.”
“그럼.. 내가 대상받을 거란 걸 100% 확신했어?”
“네. 제가 참가했다면 얘기는 달라졌겠지만요.”
“…”
여전하긴 하지만 아무튼 고마운 일이었다.
그만큼 내 그림을 좋게 봤다는 거니까.
“그림은 전시되죠, 형?”
“응, 갤러리에 전시될 거야.”
“그림은 그때 보면 되겠네요. 괜히 홈페이지로 보는 것보다 나을 거 같아서요. 형도 갈 거죠?”
“물론이지.”
자신의 작품이 전시되는 갤러리인데 안 가는 게 이상했다.
뒤이어 들려오는 우영이의 말.
“그럼 같이 가요.”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그래. 그러자.”
“아, 그리고……”
“그리고?
“그 애도 같이 가면 되겠네요. 크흠..”
어색하게 말을 끝맺고는 괜히 헛기침을 내뱉는 녀석.
“그 애?”
“.. 땅콩이요. 땅콩도 형 그림 아직 못 봤다면서요.”
그제야 우영이의 말의 의도를 파악한 나.
자연히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하여튼 속 보이는 녀석이라니까.’
그냥 연두가 보고 싶다고 하면 될 걸 뭐 이리 돌려 말하는지.
애써 모르는 척 대답해줬다.
“그래, 같이 가자.”
툭.
끊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또 걸려오는 전화.
발신인을 확인한 나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누가 현재 사제관계 아니랄까 봐.’
발신인은 다름아닌 홍수찬선생님이었다.
나한테 청년작가 미술공모전 참가를 권한 선생님.
툭.
전화를 받는 동시에 들려오는 목소리.
“너 맞지?”
다짜고짜 너 맞냐니.
말투가 우영이한테 영향을 받으신 건가.
일단 물음에 있는 그대로 답을 건넸다.
“네, 저 맞아요.”
“네가 누군데.”
“주원이요.”
“아니, 그건 알고, 이 녀석아.”
“…?”
정정한다.
우영이보다 더 신박한 화법을 구사하고 있다.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다짜고짜 누구냐고 하시면 뭐라 대답해요.”
“공모전 대상 말이야.”
선생님은 고조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 날의 감정. 그게 주원이 네 작품명 맞아?”
역시나 예상한 대로의 의도였다.
홈페이지에 떠오른 결과 발표를 보고 연락을 하신 게 틀림없었다.
나는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그렇게 말씀하셔야 알죠.”
“잔말 말고 얘기나 해. 네 작품 맞아?”
“맞아요.”
“뭐?”
“제 작품 맞아요. 그 날의 감정.”
“…”
얼마간 흐르는 침묵.
기분 나쁜 정적은 아니었다.
정적을 깬 건 홍수찬선생님의 목소리였다.
“.. 내가 말했지, 이 녀석아.”
“어떤 말이요?”
“너 아직 안 죽었다고. 대상 탈 거라고.”
그 말에 나는 조심스레 얘기했다.
“저기, 선생님.”
“뭐.”
“이런 상황에 할 말은 아니긴 한데.. 쌤한테 그런 얘기를 들은 기억은 없는 거 같은데요.”
거짓말이 아니었다.
참가를 권하신 건 사실이지만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은 없으니까.
우영이가 대신 전해준 것도 아닐 테고.
뒤이어 귀에 들어오는 호통같은 대답.
“마음속으로 수십 번 말했어, 이 자식아!”
너무 당당해서 웃음이 나왔다.
“아니, 그런 격려를 왜 마음속으로 하세요. 들어야 의미가 있는 거지.”
“자만하면 안 되니까.”
“…”
뭔가 이 말은 장난으로 들리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학창시절 때도 선생님은 내게 칭찬을 거의 하지 않았다.
가장 뛰어난 제자라 생각했다는 것도 전혀 몰랐을 정도로.
‘교육 철학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우습게도 기분이 좋았다.
지금 그 교육철학이 내게 적용되고 있다는 건, 아직도 나를 제자라 생각한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니까.
“감사해요, 선생님.”
진심이 담긴 인사를 건넸다.
들려오는 멋쩍은 대답.
“감사는, 짜식.”
“작품은 갤러리에 전시된다는데, 혹시 시간 되시면 같이 가요.”
“그야 당연히 가야지.”
홍수찬선생님은 장난스레 한 마디를 덧붙였다.
“참고로 우수상이면 안 갔다.”
“와, 그건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선정작가상이면 연락도 안 하셨겠네.”
“원래 대한민국은 성과주의야, 이 녀석아.”
사제간의 유쾌한 대화를 끝으로 통화가 종료됐다.
‘.. 고맙네.’
전부 고마웠다.
나보다 더 기뻐해준 사랑하는 딸 연두, 다소 시니컬하게 축하해준 우영이.
그리고 성과주의를 깨우쳐 준 홍수찬선생님까지.
‘몰라서 그렇지.’
소식을 알았다면 축하해줬을 사람은 더 많았다.
그 사실이 무척 기뻤다.
기쁨을 나눌 사람들이 그만큼 많이 생겼다는 게.
***
대상의 기쁨이 지나가고 시간이 흘렀다.
어느새 다가온 ‘최고의 한 끼’ 촬영일.
‘여기가 JBS인가.’
영등포에 위치한 방송국 JBS, 오늘 촬영을 할 장소였다.
생각보다 커다란 건물이었다.
“들어가자, 연두야.”
“네에.”
끼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맞이하는 직원.
“안녕하세요. 연두랑 초록님이시죠?”
“네,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여..!”
나와 연두가 차례로 인사를 받았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이후 모습을 드러내는 새로운 남자.
삼십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초록님, 연두야!”
초면인 거 치고 굉장히 친근한 목소리.
그와 동시에 낯익은 목소리였다.
“일찍 오셨네요. 다른 게스트분들은 아직인데.”
“조금 일찍 출발해서요.”
“통화는 많이 나눴지만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는 건 처음이네요. 저는 김석호 PD입니다!”
“아, 피디님이셨군요.”
역시나 나랑 여러번 연락을 취했던 피디였다.
직접 마중을 나온 거 같았다.
그는 연두에게도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 연두야! 저번에 전화로 얘기한 삼촌인데 기억하니?”
“네! 가치 리얼 꿀마시 먹기로 한 피디님..!”
“헉. 그렇게 기억하면 안 되는데…”
한차례 당황한 그는 말을 이었다.
“아무튼 만나서 정말 반가워. 근데 연두 너..”
“으응..?”
“진짜 예쁘구나? 와…”
말 그대로 순수한 감탄이었다.
수줍음에 붉어진 연두의 볼.
“그럼 연두랑 같이 안내해 드릴게요. 촬영 준비도 해야 해서.”
“아, 네.”
사전에 들은 바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촬영에 들어가는 게 아니란 거.
‘준비가 필요하다고 했지.’
내게는 다소 당황스러운 준비이긴 했다. 그래도 피할 수 없었다.
다들 한다는데 나만 안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동 끝에 도착한 어느 문 앞.
끼익.
김석호가 망설임 없이 문 손잡이를 돌렸다.
그와 동시에 들어오는 내부.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세 명의 여성.
예상은 했지만 당혹스러운 장면이다.
김석호가 그녀들을 향해 인사한 뒤에 말했다.
“미리 얘기한 대로 잘 부탁드릴게요.”
“네, 피디님.”
피디가 고개를 돌려 나를 향해 말했다.
“저는 잠깐 가 봐야 해서. 준비가 다 되셨을 때쯤 다시 오겠습니다. 괜찮으시죠?”
아주 괜찮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이윽고 그가 방을 나갔다.
연두와 나를 향하는 세 명의 시선.
왜인지 눈동자가 굉장히 반짝인다.
“연두 진짜 귀엽다..”
“영상으로만 보다가 실제로 보니까……”
“초록님도 실물……”
다 들리게 얘기할 거면 굳이 속닥일 필요 없는데.
이후 그중 한 명이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JBS 메이크업 아티스트 우채영이라고 합니다. 오늘 연두랑 초록님을 예쁘게 멋있게 만들어드릴 거구요. 물론 이미 그러니까 그것보다 훨씬 더요.”
“아.. 네.”
이후 나머지 두 명도 본인을 소개했다.
미리 들은 바에 따르면 여기서 옷도 지정해준다는 걸로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들려오는 말.
“우선 옷부터 갈아입고 나서 들어가야 할 거 같은데요.”
이어서 스타일리스트가 의상을 건넸다.
“피팅룸에서 갈아입어 주시면 될 거 같아요. 그리고.. 연두 갈아입는 건 제가 도와줘도 괜찮을까요?”
“네, 잘 부탁드릴게요.”
연두와 마주보고 손을 흔들며 피팅룸으로 들어갔다.
옷을 갈아입는 내내 머릿속은 다른 생각에 빠져있었다.
앞으로 내게 일어날 일에 대한 생각이었다.
스르륵.
갈아입고 피팅룸을 나오자 얘기가 들려왔다.
“와.. 진짜 잘 어울리시는데요?”
“비율이 좋아서 그런지 핏이 되게 잘 떨어진다.”
“감사합니다.”
칭찬에 인사는 했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내가 어떤 옷을 입은 건지도.
그때 들려오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유채영의 말.
“연두는 나오는 데 시간이 꽤 걸릴 거 같으니, 초록님 먼저 시작해도 될까요?”
“시작이라면…”
유채영은 해맑게 웃으며 답했다.
“메이크업이요.”
촬영에 앞선 첫 번째 고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