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27)
27화. 캐릭터(Character)
“서 연두.. 이 주원..?”
신세연이 한 혼잣말의 의미는 굳이 생각할 것도 없었다.
나와 연두가 성이 다르다는 걸 알아챈 거겠지.
참 빨리도 알아채네. 그게 하필이면 이 타이밍이라는 게 얄궂지만.
내가 지금 불안함을 느끼는 건 하나였다.
혹시 연두가 있는 이 자리에서 그녀가 말을 꺼내지는 않을까 하는.
열흘 동안 내가 알게 된 신세연은 정말 눈치가 없었으니까.
그런 그녀라면 직빵으로 물어볼지도 모른다. 왜 연두랑 주원 씨의 성이 다르냐고.
눈치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그런 사태는 막을 생각이었다.
이윽고 그녀의 입이 열렸다.
“연두…”
연두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내가 끼어들었다.
“잠깐만요!”
“까, 깜짝야!”
다급하게 내질러서인지 피해자가 속출했다.
신세연은 화들짝 놀라 말을 멈췄고, 시은이도 뒤로 후진했다.
“켁. 켁.”
그러나 가장 큰 피해자는 의외의 인물인 연두였다.
홀짝홀짝 모과차를 마시다가 내 목소리에 깜짝 놀라 사레가 들린 것이다.
그 모습에 덩달아 놀란 나는 다급히 연두의 등을 두드려줬다.
“괘, 괜찮아, 연두야?”
우스운 꼴이었다.
내가 큰 소리를 내서 벌어진 일인데, 정작 내가 당황하다니.
연두는 케첩처럼 빨개진 얼굴로 한참 헛기침을 하더니, 얼마 후에야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연두 갠차나요, 아빠…”
괜찮다는 말과 달리, 기침을 잔뜩 해서인지 금세 핼쑥해진 얼굴이었다.
어쩌지. 이거 너무 미안한데.
언제 가져왔는지 신세연이 내게 물을 내밀었다.
나이스 타이밍이다.
“감사합니다.”
나는 곧바로 물컵을 받아 연두의 입에 가져다 댔다.
홀짝. 홀짝.
그런데 마시는 모습을 보자니 웃음이 나올 거 같다.
곤란하네. 웃으면 안 되는 타이밍인데.
나는 간신히 입꼬리를 내리고는 말했다.
“저기, 연두야.”
“네에..”
“이건 모과차 아니고 물이야. 그렇게 조금씩 안 마셔도 돼.”
“아!”
연두는 큰 깨달음이라도 얻은 표정으로 물을 들이켰다.
벌컥. 벌컥.
그렇다고 이렇게 들이켜라는 말은 아니었는데.
이러다가 또 사레들릴까 걱정이다. 뭐, 시원해 보여서 좋긴 하지만.
“햐아…!”
이윽고 연두가 개운한 소리를 내며 컵에서 입을 뗐다.
“크크.”
옆에서 신세연이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연두는 예쁘기도 예쁜데 또래 애들이랑 뭔가 다른 거 같아요.”
“그런가요?”
“네. 다섯 살 애기한테 하기엔 좀 이상한 말이긴 한데, 엄청 맑고 순수하다고 해야 하나? 때 하나 안 묻은 느낌 있잖아요.”
전적으로 동감하는 말이었다.
연두와 나름 긴 시간을 함께한 나도 매일매일 놀라니까.
분명히 연두는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상처를 초월하는 신비한 매력이 존재한다.
‘오히려 주위를 밝게 만들어 주니까.’
처음에는 연두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해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연두와 함께 지내며 나는 깨달았다. 오히려 내가 치유 받고 있다는 걸.
물론 때때로 연두의 상처가 드러날 때는 아프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 나를 의지해 주는 순간은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기뻤다.
연두가 웃을 때는 나 또한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오글거리긴 하지만, 연두는 이름 그대로 하나의 색깔 같았다.
주위를 온통 자신의 색으로 물들이는.
“헤헤, 그래도 나는 우리 시은이가 최고지. 일로 와, 우리 딸!”
신세연이 웃으며 시은이를 끌어안았다.
막상 당사자인 시은이는 아무런 감흥도 없어 보이는 게 애잔하지만.
에이, 그래도 속으로는 엄청 기쁘겠지. 애당초에 되게 시크한 꼬마니까.
어쨌거나 보기 좋은 모녀의 모습이었다. 나는 씩 웃으며 둘을 바라봤다.
그런데,
포근.
보드랍고 따뜻한, 동시에 짧은 팔이 내 목에 감겼다.
“.. 연두야?”
“연두도 아늘래요.. 아빠랑..”
그러고 보니 나는 평소에 연두를 안아준 적이 거의 없었다.
연두가 내게 달려와 안긴 적은 많아도. 나 왜 그랬지?
갑자기 엄청 후회된다.
꼬옥.
나는 내게 안긴 연두를 힘껏 안아줬다.
초보 아빠라 자세가 어정쩡할지는 몰라도, 그저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누구보다도 연두 너를 아낀다는 걸.
그리고 연두의 귀에 자그맣게 속삭였다.
“미안해. 아빠가 먼저 안아줬어야 하는데.”
“헤헤.. 아빠 사랑해요..!”
이 말도 어린이집에서 가르쳐 줬나 본데.
나는 씩 웃으며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아닌데? 아빠가 연두 더 사랑하는데?”
“.. 아니에여!”
“그럼?”
“여, 연두가 아빠 하눌만큼 땅만큼 마니 사랑하는데..!”
“크크, 그래. 졌다, 졌어.”
아빠미소를 짓다가 정신을 차린 나는 눈앞의 시선을 확인했다.
이런. 너무 앞에 있는 둘을 생각 안 했다. 나 원래 이렇게 티 내는 성격 아닌데.
연두가 옆에 있으면 어쩔 수가 없다. 감정이 제어가 안 되니까.
“이길 수가 없네요, 이길 수가 없어.”
신세연은 엷게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더니 말을 이었다.
“그런데 주원 씨. 아까는 왜 갑자기 소리치신 거예요?”
“네? 아, 그건 혹시나 세연 씨가······”
“제가 뭐요?”
“.. 세연 씨. 아까 무슨 말 하려고 하신 건데요?”
“저 그냥 연두한테 모과차 입에 맞냐고 물어보려 한 건데.”
그런 거였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괜히 나 혼자 착각한 거라고?
아니, 근데 그전에 분명히 혼잣말하는 걸 들었는데.
결국 못 참고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아까 조그맣게 혼잣말······”
그러다 나는 말을 멈췄다.
검지를 입술 위에 올리며 미소 짓는 그녀를 봤으니까.
척 봐도 조용히 하라는 신호였다. 뭐야. 눈치챈 거 맞네.
***
신세연의 눈치가 의외로 빠르다는 걸 확인한 하루였다.
집으로 돌아간 나는 언제나처럼 연두를 씻기고 연고를 발라줬다.
스윽. 스윽.
거의 다 사라졌지만, 아직 몸에 푸르스름하게 변색된 멍이 몇 군데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아직 연두가 온 지는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았으니까.
유독 오래 남는 멍들이 있다. 볼 때마다 아프지만, 빨리 없애고 싶었다.
그때 연두가 나를 불렀다.
“아빠아.”
“응, 연두야.”
“연두 마니 하얘저써요..?”
처음에 연두에게 연고를 발라줬을 때가 떠올랐다.
나한테 이게 뭐냐고 물었지. 상처를 없애는 거라고 대답하고 싶지 않아서 둘러댔다.
피부를 하얗게 만들어 주는 약이라고.
하얘졌냐고 질문하는 걸 보면, 연두는 지금도 철석같이 그렇게 믿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응. 완전 하얘졌다. 곧 약 안 발라도 되겠는데?”
“진짜요..?”
“그럼, 진짜지. 이 약 바르면 앞으로 피부에 다른 색들은 절대 안 생기거든.”
빈말이 아니라 절대로 다시는 생기지 않을 거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우아… 짱이다!”
“크크, 연두야. 그 말은 어디서 배웠어?”
“미누! 미누가 맨날 짱이라고 해요.”
“민우? 연두 친구야?”
“네.”
“어떤 친구인데?”
“미누는 힘이 엄청 세대요! 산에 사는 호랑이랑 싸워서 이겼다고 해써요!”
“… 어떻게 이겼대?”
“주먹으로 호랑이 코를 때려서······”
신나서 얘기하는 연두를 보며 나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민우라는 녀석, 이제 다섯 살일 텐데 허언증이 대단하네.
연두가 너무 예뻐서 어필하고 싶었던 건가?
그렇다면 이해는 한다만, 뻥도 그럴듯한 뻥을 쳐야지.
결과적으로 연두가 그걸 철석같이 믿고 있다는 게 함정이지만.
***
한참 연두와 어린이집 얘기를 하다가 나는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곧장 ‘연두튜브’ 채널에 들어갔다.
오늘 올린 두 번째 영상의 조회수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영상 제목은 ‘연두의 김치볶음밥 먹기!’였다.
첫 영상부터 제목은 일부러 심플하게 짓고 있었다.
해외 구독자를 생각해서 영어자막도 넣어 봤는데, 유의미한 차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단순한 문장 빼고는 영작이 불가능해서 번역기를 돌려서 넣었는데.
설마 역효과가 나거나 하지는 않았겠지?
첫 영상만큼의 반응은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저 부정적인 반응이 아니길 바랄 뿐.
탁.
나는 긴장되는 표정으로 조회수를 확인했다.
“어어..?”
순간, 나는 눈을 의심했다.
벌써 조회수가 일만이 넘었다고? 아니, 올린 지 얼마나 됐다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열흘 전에 올린 첫 번째 영상 조회수도 함께 급증한 상태였다.
구독자가 늘어난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연쇄 효과인 건가.’
두 번째 영상으로 유입된 사람이 첫 번째 영상까지 찾아간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 열흘 만에 올린 건데 반응이 이렇게 뜨겁다니.
이게 연두의 힘인 건가.
“연두야. 이거 봐 봐.”
“어떤 거요..?”
“연두 네 영상을 만 명이 넘게 봤어.”
연두는 깜짝 놀라더니 손가락을 하나씩 폈다.
“하나, 두울, 넷, 셋, 일곱······”
“하하, 연두야. 그렇게 만 명을 세려면 내일까지 갈 거 같은데.. 지금은 엄청 많다는 거만 알면 돼.”
심지어 수를 세는 것도 틀린 연두였다.
넷 다음 셋, 셋 다음 일곱이라니. 처음 들어보는 순서 배열이다.
언제 한 번 일대일 숫자 강습을 진행해야 할 거 같았다.
지금은 사람들의 반응을 볼 차례였다.
늘어난 조회수와 구독자를 봤기에 이건 별로 두렵지 않았다.
탁.
댓글들이 우수수 떠올랐다.
-기다리다가 목 빠질 뻔.
-아니이.. 이미 설사 지렸는데 지금 오시면 어떡합니까 ㅠㅠ
-그래도 와 준 게 어디냐.. 그것도 십분 짜리 영상으로. 오늘도 연두는.. 미쳤다.
-홀렸다, 홀렸어. 벌써부터 다음 영상이 기다려지네.
-계란 사이다 볶음밥에 이어 다음은 무엇? 설마 또 열흘 후에 돌아올 생각은 아니겠죠..?
-내일도 연두해! 모레도 연두해!
기다림이 길었기 때문인지 복귀를 환영하는 댓글이 많았다.
물론 대부분의 댓글은 연두에 관한 게 주를 이뤘지만.
-김치 매워서 싫다고 발 동동 구를 때부터 나는 녹아내렸다..
└그러면서 원하는 메뉴가 안 매운 계란프라이래 ㅋㅋㅋ 소박한데 귀여워..♥
└맵다고 뛰어댕기는 거 봐. ㄹㅇ 사랑스러워 미칠 거 같다.
└나는 저번부터 연두 발끈할 때가 제일 귀엽더라. ‘리얼 꿀마시 아니에요!’에 이은 ‘아빠 연두한테 거짓말 해써요!’
└ㅇㅈ 연두야 더 화내 줘.
└ㅁㅊ놈아, 그건 아니지. 아기한테 화내 달라는 건 뭐야 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이번에도 나에 대한 댓글은 존재했다.
-연두 아빠 애잔해.. 안 맵게 하려고 김치 저렇게 쥐어짰는데 실패했어 ㅠㅠ
└먹고 하나도 안 매워하는 거에서 ㄹㅇ 억울한 게 느껴짐.
└놀라서 우당탕 물 주는 것도 ㅋㅋㅋ 그래서 얼굴은 언제 공개하죠?
└근데 편집도 아빠가 하는 건가? 뭔가 센스가 느껴지는디.
└인정 ㅋㅋ 싼마이한데 오지게 웃김. 연두 집안 뛰어다닐 때 천둥번개 효과 뭐냐. 거기서 육성으로 터졌다.
‘베어 믹스’에서 제공하는 무료 효과를 넣었을 뿐인데, 의외의 칭찬이었다.
아, 외국인들의 댓글도 한국인 못지않게 많았다.
긴 건 못 읽겠지만, 대충 봐도 좋은 반응으로 보였다.
쏘 프리티! 와우! 언빌리버블! 쉬스 어 엔젤 이런 것들이 보였으니까.
-Thanks for the English subtitles 🙂
이런 댓글이 있는 걸 보면 영어자막도 잘 넣은 거 같았다.
대충 자막 달아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으니까.
‘첫 영상은 운이 작용한 게 아닐까 했는데.’
이 정도면 정말 성공할지도 모르겠다. 연두튜브.
수익창출 조건도 벌써 만족했을지도.
단 두 개의 영상만으로 이 정도라는 게 새삼 놀라웠다.
그런데 정작 주인공인 연두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래, 연두야?”
“연두도 읽고 시픈데.. 사람들이 모라고 해써요..?”
“하하, 걱정 마. 아빠가 읽어줄 테니까.”
그렇게 2차 댓글 읽어주기가 시작됐다.
이번에는 필터링을 제대로 하고 읽어줄 생각이었다.
***
“연두야.”
“네, 아빠!”
“아빠가 말이야. 예전에 되게 잘했던 게 있었다?”
연두는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아빠가.. 잘했던 거..?”
“응. 연두가 한 번 맞혀 볼래?”
“요리!”
“아니야.”
“그럼.. 사진 찍기..?”
나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닌데, 땡! 그냥 아빠가 알려줄까?”
“시러요! 연두가 마출래요!”
“하하, 그래. 맞혀 봐.”
연두의 입에서는 별의별 말이 다 나왔다.
아는 단어란 단어는 다 이야기하는 거 같았다.
그러나 정답은 아슬아슬하게 나오지 않았다.
“으으…”
그렇게나 맞히고 싶은 건가?
못 맞춰서 분해하는 게 연두의 표정에서 느껴졌다.
뭐, 정답은 당연히 미술이었다. 그림 그리는 미술 말이다.
성현이 말대로 고등학교 때만 해도 나는 미술 선생님이 가장 큰 기대를 갖고 있는 학생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과거였다. 지금 다시 미대에 도전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또한 선생님을 다시 찾아가 조언을 구할 용기도 지금의 내게는 없었다.
그럼 나는 미술을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그건 아니야.’
엘리트 코스를 밟을 수 없다 해서 미술을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미술은 엘리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니까. 그래서 떠올린 아이디어가 있었다.
과거의 내가 지니고 있었던 미술적 감각을 연두튜브에 써먹을 수 있는 아이디어.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지금부터 보여줄게, 연두야.”
“네..?”
“아빠가 제일 잘했던 거.”
스윽.
이어서 나는 서랍 속에서 오래된 물건을 꺼냈다.
다시는 사용할 일 없다고 생각했던 도구들.
그걸 보는 연두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
“연두야. 일러스트가 뭔지 알아?”
“일러스트..?”
“응. 이제부터 아빠가 연두 너를 캐릭터로 그릴 거야. 세상에서 제일 예쁘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해 볼 생각이다. 연두튜브의 주인공 연두의 캐릭터화를.
이미 머릿속에 구상해 둔 이미지가 존재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쉰 후, 펜슬을 손에 쥐었다.
“후우..”
오랜만에 느껴 보는 감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