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288)
288화. 연두부
눈앞에 떠오른 베스트 댓글란.
대망의 1위를 확인하기 전에 먼저 밑으로 시선을 향했다.
‘거꾸로 보는 게 제맛이지.’
제일 맛있는 건 아껴 뒀다가 마지막에 먹는 심리라고 해야 할까.
비유가 좀 아닌 거 같긴 하지만, 뭐 상관없겠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댓글.
‘1위는 아니어도.’
베스트 댓글란의 상단에 위치했을 정도면 많은 호응을 얻었다고 볼 수 있었다.
사실 팬네임 결정에 정해진 규칙 같은 건 없었다.
‘웬만하면 1위를 팬네임으로 정할 생각이긴 하지만.’
구독자들에게 내가 한 요청은 팬네임을 추천해달라는 것뿐이었다.
경우에 따라 다른 선택지도 가능하다는 뜻.
기대감 속에 나는 댓글을 확인했다.
-저는 팬네임으로 민트를 추천합니다! 이유는 초록 연두랑 색감이 잘 어우러지고.. 또 제가 민트를 짱짱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헤헿… :하트1: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귀여운 추천이었다.
아마 연령대가 다소 어린 친구가 적은 댓글이 아닐까.
사심이 들어가긴 했으나 추천 이유도 납득이 간다.
‘확실히 어울리지.’
척 보기에도 같은 계열의 색상 아닌가.
연두색, 초록색, 그리고 민트색.
함께 나란히 붙어있어도 전혀 위화감이 없는 색깔들이었다.
자연스레 그라데이션이 만들어질 정도로.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오, 저도 민트 추천이용!
┖민트는 사랑입니다… :하트1:
┖민트 진짜 좋아.. 색깔도 예쁘구.. 어감도 조코… 초연케미처럼 사랑이고…
┖민트초코 먹고 싶다… 흐어어….
이처럼 추천하는 사람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지만,
┖우엑…
┖여기 전국 민초단 다 모였네 ㅋㅋㅋ
┖존중하지만 이해할 수는 없는 그 맛… 민트…
┖극불호…
┖하지만 연두랑 초록님이 민트를 채택한다면.. 나는 민트를 사랑해 볼 거야…
┖ㅋㅋㅋㅋㅋ 나두…
댓글창은 난데없이 민트색이 아닌 민트맛을 둘러싸고 찬반이 나뉘고 있었다.
취향 문제인 만큼 다행히 다투고 있지는 않지만.
다시금 민트의 호불호가 얼마나 큰지 깨닫게 해주는 모습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은 엄청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민트라는 단어만 들어도 질색하고.’
굳이 따지면 나는 질색은 안 하지만 불호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치약 맛과 비슷하게 느껴지는데 나는 치약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연두는 어떠려나.’
아직 딱히 먹여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기회가 되면 한 번 먹여봐야지.
아무튼 ‘민트’는 보류로 두고 나는 다음 댓글로 시선을 옮겼다.
“오..”
이번에도 좋은 팬네임이 눈에 들어왔다.
-‘파레트’를 추천합니다! 연두, 초록, 그리고 누렁(노랑), 그 밖에도 다양한 색깔을 담을 수 있는 파레트! 우리는 마음속에 항상 연두랑 초록님을 담고 있으니까요! ㅎㅎ
감동이 느껴지는 추천 이유까지.
미술을 해서인지 더더욱 마음에 와닿았다.
답 댓글의 반응도 좋았다.
┖오옹!! 파레트 좋아요!!!
┖초록님 미술이랑도 관련 있고.. 저도 파레트에 한 표!
┖초연의 파레트… 너무 좋아…
┖연두색 물감으로 가득 채워지고 싶따… 너무 행복할 거 같아 ㅠㅠ
┖연두성분 가득! ㅋㅋㅋㅋ
민트 못지않은 호응을 얻고 있는 파레트.
이쯤 되니 나도 본격적으로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다음은 어떤 게 나올까.’
첫 번째와 두 번째 추천이 만족스러우니 자연히 올라가는 기대감.
이어지는 추천도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세 번째 추천 팬덤명은 새싹.
-연두처럼 순수하면서도 예쁜 꽃이랑 열매를 맺을 새싹! 추천합니다!
푸르른 이미지가 그려지는 추천이었다.
이 밖에도,
-연두한테 사랑받고 싶은 우리의 마음을 담아서… 연두가 사랑하는 또시지! 추천합니다 ㅋㅋ
-연두튜브 팬은 남녀노소 직업 불문이니까 크레용 어떤가요 ㅎㅎ 각양각색의 크레용, 아니면 크레파스?
-해님 어떤가요? 연두 보면서 웃음 짓는 해님들..ㅎㅎ
-하양 추천합니당! 연두색이랑 초록색으로 물들어갈 수 있도록…
-저는 솔이요! 솔은 소나무를 뜻하는데.. 소나무 잎처럼 항상 푸르른 마음으로 연두를 좋아하는 우리 마음을 담아서…
-저는 ‘욘두’를 추천………
함정카드가 하나 섞여 있는 거 같긴 하지만.
하나같이 마음에 쏙 드는 팬 애칭과 추천 이유였다.
내 비루한 작명 센스와 대비되는.
‘역시 우리 팬들이야.’
추첨을 받기로 결정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절대 나는 이런 명칭들 생각 못 했을 거다.
최고의 한 끼 MC 안정훈처럼 ‘연탄’ 같은 거나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나저나.. 고민이네.’
마음에 드는 게 너무 많아서 고민이다.
민트도 좋고, 새싹도 좋고, 또시지도 귀엽고, 하양도 뜻이 좋고, 솔도 마찬가지고.
전부 끌려서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다.
허나 전부 채택할 수는 없는 노릇.
‘골라야 돼.’
이렇게 좋은 이름을 많이 추천받았으니.
그중에 하나를 택하는 건 나와 연두의 몫이었다.
다만 아직 남은 한 가지 절차.
‘이제 보자.’
대망의 베스트 댓글 1위를 볼 차례였다.
***
가장 많은 호응을 얻은 추천 팬 애칭을 확인할 차례.
설레는 마음으로 최상단으로 커서를 올렸다.
스르륵.
동시에 눈에 들어오는 팬 애칭.
확인하는 동시에 눈과 입이 확장됐다.
‘.. 이거라고?’
익숙하면서도 예상치 못한 팬네임이 1위에 등극해 있었다.
어쩌면 내 이름이 될 수도 있었던 세 글자.
바로 ‘연두부’였다.
-저는 ‘연두부’를 추천합니다! 색깔은 연두의 마음처럼 새하얗고, 감촉은 연두의 볼처럼 말랑말랑하고, 또 초록님의 품처럼 부드럽고 푹신하죠. 무엇보다도 우리는 연두한테 초록님처럼 따뜻한 존재가 되고 싶으니까… 연두부(父)처럼요 ㅎㅎ
┖와.. 뜻 진짜 공감이다. 따봉 박고 갑니다
┖이분 배우신 분 ㄷㄷ
┖또시지파였는데 연두부파로 갈아탑니다 ㅋㅋ
┖어감도 ㅅㅌㅊ. 연두가 영상에서 ‘우리 연두부들 반가어요!’ 이러면 그냥 심장 부여잡고 쓰러질 듯.
┖읽자마자 나도 모르게 따봉 누름 ㅋㅋㅋㅋ 필력 ㅅㅌㅊ
┖부서지고 뭉개져도 상관없다… 오늘부터 나는 연두부다… 아무도 나 못 말려!!!
┖그래? ㅋㅋㅋ 지건!!
┖어억!!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쳤냐고.
너무 잔인한 거 아닌가.
톡 건드리면 부서지는 연두부한테 지건을 꽂다니.
그나저나 착각인가? 비명이 뭔가 나를 흉내 낸 거 같은데.
‘에이, 착각이겠지.’
그와 별개로 놀랐다.
많이 본 명칭이긴 하나 내가 아닌 팬 이름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못 했는데.
그것도 가장 많은 호응을 얻을 거라고는 더더욱.
허나 댓글을 본 지금은 이해가 갔다.
‘이런 뜻을 부여할 줄이야.’
연두부를 보고 나는 연두의 아빠라는 뜻밖에 떠올리지 못했는데.
이렇게 연두부의 이미지와 결부시킬 줄은 몰랐다.
그 덕에 훨씬 더 완성도가 높아진 팬네임이다.
‘욕심날 정도로.’
잠깐이지만 초록이 아니라 연두부가 되고 싶을 정도였다.
물론 진짜 그럴 생각은 없다.
초록. 이제는 내 이름보다도 익숙해진 호칭인데.
‘연두부라..’
지금껏 본 팬애칭 모두 마음에 들었다.
허나 아까 말했듯이 하나를 고를 필요가 있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와중 그래야 한다면…
‘1등을 고르는 게 맞겠지.’
가장 많은 팬들이 그 이름을 원한다는 뜻이니 말이다.
하지만 아직 확정할 수는 없다.
마지막 절차가 남아 있으니까.
‘주인공.’
연두튜브의 주인공인 연두의 의사를 들어야 했다.
사실 내 의견보다도 훨씬 중요했다.
마침 시간이 됐다.
‘가볼까.’
연두를 데리러 갈 시간이었다.
***
“자, 연두야.”
“네에.”
댓글을 보여주기 전.
먼저 적당한 위치에 카메라를 세팅해 뒀다.
팬 애칭이 어떻게 정해졌는지 영상과 함께 올리면 더 좋을 거란 생각이었다.
“구독자분들, 그러니까 팬분들이 이렇게 추천을 해 줬어.”
“팬분드리요..?”
“응, 우리가 앞으로 팬분들을 어떻게 부를지.”
댓글창을 켜 두고 하나하나 보여줬다.
“이분은 민트라는 이름을 추천했어.”
“민트가 머에요..?”
“민트는 이런 색깔이야.”
“우아.. 예쁘다…”
첫 후보부터 반응이 좋았다.
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한 번 불러 볼래, 연두야?”
“머를요..?”
“아빠 말을 따라 해 봐.”
머릿속에 워너비의 팬들을 향한 인사말을 떠올렸다.
조금 낯간지럽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시범을 보이기 위해서라면.
“안녕하세요, 민트!”
곧바로 연두가 내 멘트를 따라 한다.
생긋 웃음을 지으며.
“아, 안녕하세여, 민트..!!”
“…”
잠깐만. 이건 반칙 아닌가.
너무 귀엽잖아.
자칫하면 나도 모르게 민트파가 될 뻔했다.
휙. 휙.
이렇게 쉽게 마음이 움직여서는 곤란하다.
중심을 유지하자.
그렇게 한 다짐이 무색해지게,
“안녕하세여, 팔레투..!”
“새싹님들…!”
“하, 하양이들 안녕..?”
“솔님들……”
“반가어요, 또시지… 으응…?”
“푸흣.”
일부러 여러 느낌으로 시범을 보였는데.
하나같이 너무 귀여워서 갈대처럼 마음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파레트파가 됐다가, 새싹파가 됐다가.
그런 와중 또시지를 얘기할 때는 뭔가 이상한지 의문사를 내뱉는 연두의 모습에 웃음이 터졌다.
‘어떡하냐, 진짜.’
어느 인사말 하나 위화감 없이 찰떡처럼 어울린다.
그때였다.
“아빠..”
“응?”
“욘두는 머에요…?”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던지는 물음.
잠깐의 고민 끝에 어색한 미소를 띠며 대답해줬다.
“캐릭터 중 하나인데 나중에 보여줄게.”
“나중에요..?”
“응, 좀 많이 나중에.”
그렇게 말하고 재빨리 화제를 전환했다.
“그래서 연두야.”
“네, 아빠!”
“지금까지 나온 것 중에 마음에 드는 이름 있어?”
끙.
한동안 곰곰이 고민하는가 싶더니 연두는 대답한다.
“너무..”
“너무?”
“다 너무너무 조아요!”
아무래도 연두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
전부 마음에 들어서 고르기 힘든 듯하다.
그렇다면 이제 보여줄 차례다. 대망의 일등을 차지한 팬 애칭을.
“이게 가장 많은 팬분들이 좋다고 한 이름이야.”
“어, 어디 이써요..?”
“요기.”
눈앞에 떠오른 이름 연두부.
연두는 천천히 또박또박 댓글을 읽었다.
“연두으 마음처럼 새하야코.. 볼처럼 말랑말랑……”
화악.
자기 얘기가 나오자 빨개진 볼.
그러면서도 연두는 멈추지 않고 댓글을 읽었다.
“초록님으 품?”
“맞아, 품.”
“품처럼 부드럽고.. 푹씬…… 헤헤.”
내 얘기가 나오니 읽다 말고 배시시 웃음을 짓는다.
잠깐. 이러면 나 쑥스러운데.
결국 끝까지 스스로 댓글을 읽는 데 성공한 연두.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날 줄을 모른다.
그리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애써 웃음을 감추며 물었다.
“어때, 연두야?
“연두부…”
“아빠는 연두가 마음에 들면 연두부로 정하는 게 어떨까 싶은데. 가장 많은 팬분들이 원한 이름이니까.”
그 말에 연두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인다.
이후 대답했다.
“조아요, 연두부…”
“정말?”
“네, 정말!”
“한 번 정하면 못 바꾸는데?”
“바꾸지 안아요..!”
이렇게 말할 정도면 진짜 마음에 든 모양이다.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럼 말이야.”
“네에.”
“이제부터 연두는 구독자분들을 부를 때 이름을 붙여서 불러야 해. 물론 아빠도 마찬가지고.”
“이름을 부처서요..?”
“응, 이름을 붙여서. 한 번 불러 볼까?”
아마 마지막이 될 시범.
나는 나지막하게 인사말을 뱉었다.
“안녕하세요, 연두부 여러분.”
평범하게 담백한 인사말이지만 괜찮았다.
어떤 말도 평범하지 않게 만드는, 웃음 짓게 만드는 연두가 있으니까.
이윽고 들려오는 귀를 간질이는 목소리.
“안녕하세요, 연두부 여러분…”
아니나 다를까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동시에 생각이 들었다.
‘잘 정했구나.’
시간이 지나도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거 같은 예감.
이로써 마침내 정해졌다.
앞으로 연두튜브의 팬을 대표할 이름이자 애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