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294)
294화. 딸바보 이주원
끼익.
감자탕집 문을 열자 눈에 들어오는 성현이의 모습.
앉아있는 곳은 가장자리 테이블이었다.
‘한결같은 녀석이네.’
여기서 성현이와 밥을 먹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연두를 데려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도 둘이서 밥을 먹은 적이 있었다.
정확히 이 자리에 앉아서.
당시에 주고받았던 대화도 기억에 생생했다.
‘나 이거 준비할 생각인데. 직업상담공무원인 네가 보기에는 어떨 거 같냐?’
놀랍지만 내가 했던 말이다.
여기서 ‘이거’는 공인중개사 시험 준비를 뜻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우스운 일이었다.
‘내가 공인중개사를 준비하려 했다니.’
허나 당시에는 정말 진지한 생각이었다.
연두를 만난 것 이외에는 스스로 아무것도 변한 게 없던 그때.
나는 찾아야 했다. 내게 맞는 옷이 아닌 연두를 부양하기 위해 입어야만 하는 옷을.
‘생각 못했지.’
당시로서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맞는 옷과 입어야만 하는 옷.
그 두 개의 옷이 일치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은.
물론 시간이 지난 지금은 알았다.
‘둘 다 아니었어.’
미술을 논하기 이전에 공인중개사는 아니었다.
내게 맞는 옷도, 입어야만 하는 옷도.
사실 붙었을 거란 보장도 없다.
‘난도도 그렇지만.’
원하지 않는 시험을 억지로 준비하는 게 쉬울 리 없지 않은가.
만약 그랬다면 내 모습은 어땠을까.
뻔했다. 나는 나를 잘 안다.
‘연두를 위해서’라고 되뇌이며 나 자신을 계속 다그쳤겠지.
‘붙었을 거 같긴 해.’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 붙었을 거 같긴 하다.
나는 그렇게 나쁜 머리는 아니니 말이다.
허나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지금 입고 있는 옷보다 결코 어울리지 않았을 거란 사실이다.
그때의 성현이는 그걸 알고 있었던 걸까.
‘돌았냐, 너?’
분명히 그렇게 얘기했었지.
직업상담 공무원이 한 말이라기에는 거칠기 그지없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정답이었다.
또 무슨 얘기를 했더라.
‘애초에 네 적성은 왜 고려도 안 하는데?’
‘솔직히 너 재능 있었잖아.’
‘6년이 지났어도, 우리 아직 스물다섯이라고.’
‘적어도 한 번은 찾아가 봐, 홍수찬선생님. 도움이 되는 말을 해 줄 수도 있으니까.’
돌이켜보니 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로 진심이 담긴 이야기들이다.
심지어 그 진심은 성현이의 것만이 아니었다.
나머지 두 녀석 윤우와 준수.
‘셋이서 몇 번이고 했던 얘기라 했으니까.’
다른 사람은 알고 있었는데 나 혼자 부정했던 거다.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이 뭔지.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된 거.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연두로 인해서였지만.
이 녀석과 나눴던 이야기도 한켠에 분명히 자리잡고 있었다.
척.
자리에 앉자마자 들려오는 성현이의 목소리.
의아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뭐야, 왜 실실 쪼개면서 앉아?”
그래. 이래야 내 친구 유성현이지.
인사 대신 디스부터 하고 보는 게 우리 사이니까.
나는 웃음을 지우지 않고 대답했다.
“그냥.”
“그냥 뭐?”
“생각보다 어울리는 거 같아서. 직업상담 공무원.”
“…?”
뭐 잘못 먹었냐는 표정이다.
왜 그러지. 이제 밥 먹으러 왔는데.
“미, 미친놈아, 왜 이래. 어디 아프냐?”
“아프긴.”
태어나서 지금이 제일 건강한데.
피크닉 이후로 하체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고.
그런 얘기들을 삼키며 짧게 말했다.
“감자탕은 내가 쏜다.”
그렇게 말하자마자 녀석의 표정에 황당함이 싹 가신다.
동시에 한 마디가 귀에 들어왔다.
“개꿀!”
***
감자탕을 먹으며 대화를 시작했다.
자연히 나온 얘기.
역시 이 녀석도 기억하고 있는지 낄낄 웃으며 대답했다.
“킥킥, 맞아. 그랬지.”
“기억하냐?”
“당연하지. 그때 얼마나 골때렸는데. 생각만 해도 웃음벨이네.”
“.. 뭐가 웃긴데.”
“무슨 원피스에 루피인 줄 알았잖아. 나는 공인중개사가 오레와나르!”
잠깐만. 어떡하지?
이 자식 얄미워 죽을 거 같다.
어떻게 받아칠까 생각한 끝에 한 마디를 던졌다.
“너.. 직업상담 공무원이면서 지금 공인중개사 비하하는 거냐?”
“뭔 소리야. 울 아빠가 젊을 때 부동산 하셨는데.”
“.. 미안.”
이런 걸 요즘 말로 ‘탈룰라’라고 하던가.
당연한 얘기지만 비하가 아니라 단순히 나를 놀리기 위해 한 말이란 건 알고 있었다.
괜히 어설프게 받아치려다가 피만 봤네.
쩝. 쩝.
결국 복수는 포기하고 한동안 감자탕에 집중했다.
한창 식사하는 와중 들려오는 말.
“그래서.. 요즘은 어떤데.”
“뭐가?”
“만족스럽냐고.”
아까의 대화 흐름을 생각하면 바로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연두와의 일상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묻는 거란 건.
애초에 전자의 경우는 물을 필요가 없기도 하고.
‘알고 있을 테니.’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세상 행복하단 걸 알고 있을 터였다.
왜냐고? 틈만 나면 단톡방으로 티 내거든.
말로도 사진으로도.
“뭐, 좋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다행이네.”
“근데 고민이 생겼어.”
자연스레 나는 얘기를 꺼냈다.
작년과는 달라진 상황 속에서 발생한 또 다른 고민을.
늘어놓자면 복잡하지만 한 줄로 요약하면 간단했다.
“모르겠다는 거네.”
마침 이 녀석이 얘기를 다 듣고선 요약해 준다.
역시 직업이라 그런지 이해가 빠르네.
“정신없이 일하다가 하나둘 끝맺고 나니 모르겠다는 거잖아. 니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맞아.”
“흔하면서도 싱거운 고민이구만. 쩝.”
“.. 너 다른 사람 상담해 줄 때도 이렇게 말하냐?”
“그야 당연히 아니지.”
“…”
역시 열 받네, 이 녀석.
성현이는 물을 한 모금 들이키더니 중얼거렸다.
“원하는 거라……”
그러더니 툭 물음을 건넸다.
“연두튜브 채널아트 네가 그렸잖아.”
“어, 그랬지.”
“어땠냐?”
답을 생각할 필요도 없는 물음이었다.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즐겁고 설렜던 기억이니.
말로 전부 담을 수 없어 담백하게 대답했다.
“엄청 좋았지.”
“그럼 우영이였나? 걔랑 학습지 작화할 때는.”
“물론.. 좋았지.”
새로운 경험이었기에 무척 좋았다.
손발이 척척 맞는 누군가와 함께 협업하는 건.
그나저나 왜 자꾸 이런 걸 묻는 거지?
의도를 알 수 없는 성현이의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이번 공모전 작품 그릴 때는?”
“좋았지. 재밌었고.”
“연두티콘 그릴 때는?”
“당연히……”
이후에도 몇 번이고 이어진 질문.
그에 대한 내 대답은 공통되게 좋았다는 말이 들어가 있었다.
마침내 질문이 끝나고 성현이가 말했다.
“나왔네. 니가 원하는 거.”
“.. 뭐?”
“딱히 정해져 있지 않잖아. 다 좋았다고 말했으니까. 그럼……”
녀석이 말을 덧붙였다.
“넌 그냥 그림 그리는 거 자체를 좋아하는 거네. 특별한 무언가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앞으로도 쭉 그림을 그리고 싶은 거지.”
묘한 기분이었다.
말 자체는 당연한 얘기인데 미처 그 당연한 걸 깨닫지 못하고 있던 느낌이라 해야 할까.
확실히 그랬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그럴 수만 있다면 큰 야망이나 욕심같은 건 딱히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것조차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언제까지고 상황이 지금같으리란 보장은 없으니까.
자연히 한 마디가 나갔다.
“그것도 쉽지만은 않잖아. 그럼 확연한 방향성을 잡아두는 게 좋지 않나?”
“그렇지. 잡아두는 게 좋지.”
“제일 어려운 게 그거야. 방향성.”
그 말에 성현이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만들면 되지 않냐?”
“무슨 소리야?”
“니가 만드는 거지. 앞으로도 쭉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스템을.”
“.. 시스템을?”
“어.”
이 시스템은 뭘 뜻하는 걸까.
그걸 생각하는 순간 묵혀둔 갈증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한 번도 생각지 못했다.
‘시스템을 내가 만드는 거.’
꼭 회사가 아니더라도 소규모 작화팀을 예로 들 수 있었다.
물론 실현하기에는 아직 너무 일렀다.
시스템은 나 혼자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시작하는 것조차 능력이 필요하다.
‘그 능력은.. 커리어겠지.’
지금보다 나를 더 가치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했다.
빈 공간을 더 메워야 했다.
그 후에 논할 수 있는 문제였다. 시스템을 만드는 건.
‘하지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뛰었다.
감이 잡히지 않았던 방향성을 비로소 확립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진짜 내가 원하는 길을.
“고맙다.”
이 녀석은 그냥 툭 던진 얘기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그 무엇보다도 와 닿는 말이었다.
녀석은 괜히 손가락을 배배 꼬며 대답했다.
“오그라들게 고맙긴. 근데 야.”
“왜.”
“연두는 어때?”
“어떻냐는 게 뭘 말하는 건데?”
“우리 연두는 꿈 같은 거 없나? 사실 그게 더 궁금한데.”
녀석이 익살스럽게 웃으며 덧붙였다.
“나 진짜 사랑과 진심을 담아서 상담해 줄 수 있는데. 우리 연두의 미래와 진로에 대해.”
“나한테 좀 그러면 안 되냐?”
“원해? 내 사랑과 진심을.”
“아니. 생각해 보니까 아닌 거 같다.”
사양한 뒤에 말했다.
“꿈 생겼어, 연두.”
“진짜? 뭔데? 우리 연두 꿈이.”
연두 얘기가 나오니 텐션부터가 남다르다.
괜히 열 받아서 말했다.
“우리 연두라 안 하면 알려줄게.”
“그건 포기 못하는데.”
“그럼 안 알려줘.”
“… 리 연두.”
똑똑한 놈이다.
우리 연두에서 ‘우’만 쏙 빼고 말하네.
이쯤 되면 말해줄 수밖에 없겠다.
“피아니스트.”
“.. 뭐?”
“피아니스트라고. 연두 꿈.”
“허…”
녀석은 한숨을 툭 내뱉더니 말했다.
“누구 딸 아니랄까 봐 그 많고 많은 길 중에 그렇게 어려운 꿈을 골랐네. 하…”
과몰입 뭔데, 이 자식.
심지어 머리를 쥐어짜며 중얼거린다.
“우리 연두 고생하면 안 되는데. 으, 진짜……”
“.. 야.”
“니가 권했지! 아무리 우리 연두가 피아노랑 잘 어울려서 귀여워 죽을 거 같고 그래도 말이야! 아빠라는 놈이 딸 힘들 건 생각 안 하고! 어?”
“연두가 골랐어.”
“뭐?”
“어린이집 선생님이 피아노과 나오셨거든. 어린이집에서 치고 오더니 피아니스트, 아니 피아니스투가 될 거래.”
“피아니스투가 뭐야.”
“연두 발음. 그렇게 발음하더라고.”
“아, 잠깐만.”
녀석이 녹아내리는 제스처를 취하며 말했다.
“너무 귀엽잖아….”
역시 못 말리는 녀석이다.
연두부라고 하기에는 이미지가 안 맞아서 그렇게 부르고 싶지는 않지만.
누구보다 연두를 아끼는 녀석 중 하나라는 건 부정할 수 없으니까.
나는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정신 차려, 이 자식아.”
“뭐?”
“연두 아직 여섯살이야. 이 꿈이 얼마나 갈지 알고.”
“아! 그건 그렇네? 휴우…”
안도하는 녀석의 모습.
이렇게만 상담하면 세계 1위 상담사가 될지도 모르겠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하아..”
이번에는 내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성현이가 의아한 듯 묻는다.
“너는 갑자기 왜 그래?”
“그게 말이야.. 문제가 하나 있어, 우리 연두한테.”
“.. 뭐, 뭔데.”
녀석의 표정에 세상 심각한 표정이 떠오른다.
연두에게 문제가 있다는 말에.
허나 나도 농담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었다.
‘진짜니까.’
실제로 최근 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문제가 있었다.
다름아닌 내 딸 연두에 관해서.
나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그러시더라.”
“.. 뭐라 그러셨는데.”
“피아노에 관한 거야.”
“그니까 좀 말해 보라고. 문제가 뭔데, 대체.”
나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우리 연두가.. 천재같대.”
***
그 시각 단비어린이집.
딴. 따단.
어린이집 내부에 피아노 소리가 울려퍼졌다.
꽤 그럴 듯한 연주라 교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아니었다.
다름아닌 연두의 연주였다.
“우와…”
“연두 진짜 잘 친다……”
“짱이다…”
아이들이 피아노를 둘러싸고 연주를 감상하고 있었다.
삼총사의 일원인 시은이와 민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냥 헤벌레하고 있는 민우와 달리, 시은이는 말 그대로 넋을 놓고 연두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예쁘다.’
언제 봐도 제일 예쁜 단짝친구 연두지만.
유독 피아노 앞에 앉아있을 때는 더 빛이 나는 느낌이었다.
특히나 요즘은 더더욱 그랬다.
사르르.
귀를 간질이는 달콤한 선율.
부쩍 늘은 피아노 실력이 어우러져 연두는 더 반짝반짝 빛났다.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그러나 시은이를 포함해 그 누구보다도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 사람.
그 사람은 다름아닌 어린이집 교사 유미경이었다.
‘.. 웃음밖에 안 나오네.’
피아노과 출신인 그녀.
아무래도 전공자의 시선에서 연주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처음에는 아니었다.
‘그럴 의도로 가져온 게 아니니까.’
조금씩 쳐 주고 교양으로 알려줄 생각으로 가져온 피아노.
처음 피아노를 치는 연두의 모습을 봤을 때도 그 생각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음감이 되게 좋구나. 피아노를 치기에 최적인 손을 가졌구나.
‘그 정도였지.’
생각이 그 이상으로 나가지는 않았다. 허나 지금은 달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몇 번 피아노를 가르쳐주면서 느낀 사실.
‘음감과 손뿐만이 아니야.’
연두가 가진 건 그 두개가 전부가 아니었다.
우선 다른 아이들에 비해 습득력이 훨씬 빨랐다.
‘리듬감과 박자감도 남다르고.’
아직 어려운 연주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요소들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딱 잘라 어느 정도다 말할 수는 없으나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
연두는 음악적으로 재능을 타고났다고.
‘특히.’
그녀가 놀란 건 ‘감각’이었다.
뭐라 정의할 수는 없으나 연주를 보면 느껴지는 연주자의 감각.
달리 말하면 느낌 있게 연주하기.
그건 무작정 연습한다고 되는 것도 흉내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딴. 딴.
분명히 미숙한데.
아직 미숙한 부분이 잔뜩 보이는 연주인데.
신기하게도 그 속에서 느껴졌다. 느낌있게 연주하는 감각이.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즐기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연주하는 연두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보이는 표정.
진심으로 피아노를 즐기고 있다는 게 전해지는 미소였다.
자연히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매일같이 보는 연두의 아빠.
‘초록님이라 해야 하나.’
어린이집 교사이자 연두부로서 알고 있었다.
영상 속에서 드러난 연두 아빠의 음악적 능력을.
미안한 얘기지만 연두와 음악적으로는 완전히 정반대다.
“흥흥.”
다른 의미로 웃음이 새어나오니까.
하지만 다른 부면은 달랐다.
‘미술.’
비전공자이지만 초록님의 그림을 보면 느껴졌다.
미술에 대한 감각이.
어쩌면 그 감각이 연두에게 다른 분야로 발현된 건지도 모른다.
음악과 미술.
다른 분야지만 ‘예술’이라는 같은 틀 안에 속해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통점.
지금 연두를 보듯이 그림을 그리는 초록님의 모습에서도 그대로 느껴진다는 거다.
온전히 그림 그리는 걸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지만 정말 반칙이란 생각이 든다.
‘너무 잘 어울리잖아.’
그림을 그리는 초록님과, 그 옆에서 피아노를 치는 연두.
상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그래서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님.”
“네, 선생님.”
“막 진지하게 드리는 말씀은 아닌데.. 연두는 음악적으로 타고난 걸 수도 있을 거 같아요.”
“…!”
반쯤은 진심, 나머지 반은 농담과 장난을 섞어 건넨 말이지만.
그렇게 말하자 화들짝 놀라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생각하니 또 웃음 나네.
툭.
어느새 마무리된 연주.
고개를 돌린 연두가 생긋 웃으며 얘기했다.
“다 처써요,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