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299)
299화. 소녀와 환상의 숲
“사탕 하나 주면 안 자바먹지!”
수용 게이지를 넘는 귀여움에 순간적으로 입꼬리가 치솟을 뻔했다.
허나 그래서는 이 연기가 끝나버리고 만다.
방금 시은이와 연두의 멘트를 듣고 생각했다.
역대급 컨셉샷이 탄생하겠구나 하고.
‘내가 물거품을 만들 수는 없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간신히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고는 앞을 바라봤다.
여전히 두 아이는 완전히 연기에 몰입중이다.
세상 시크한 표정으로 서 있는 시은이와, 크르릉거리며 나를 노려보고 있는 연두.
난 떨리는 목소리로 발연기를 펼쳤다.
“드, 드리겠습니다..”
공교롭게도 주머니 속에 사탕이 들어있었다.
하나를 꺼내 연두가 내민 모자 속에 쏙 집어넣었다.
그리고선 겁먹은 표정으로 말했다.
“.. 이제 저 안 잡아먹나요?”
“네에.. 아니, 그래!!”
“푸흣.”
이번에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눈에 빡 힘주고 잡아먹을 거라 겁을 주더니 존댓말을 하는 걸 보고.
아차 하고는 말을 바꾸는 모습도 귀엽다.
‘웃어버리긴 했지만.’
다행히 사전에 준비한 연기는 모두 끝난 상태였다.
이렇게 나는 사탕을 바친 다음 잡아먹히지 않고 해피엔딩.
사진도 충분히 찍었을 터였다.
웃으며 연기를 끝내려는데, 내가 간과한 게 있었다.
“이 봐.”
재차 들려오는 싸늘한 두 글자.
시은이의 목소리였다.
뭐지? 사전에 짠 대본에 의하면 여기까지가 끝이었는데.
뭔지는 모르겠지만 대꾸하는 수밖에.
“네, 네..?”
날카롭게 노려보는 시은이를 향해 대답했다.
오해할까 봐 하는 말인데 절대 실제로 쫀 게 아니다.
집주인이라는 내 역할에 몰입한 것뿐이지.
뒤이어 시은이가 물었다.
“내 사탕은 어디 있지?”
그제야 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거 애드리브구나.
사전에 전혀 협의가 되어있지 않던 대사였다.
‘생각도 못했어.’
둘 다 어린 나이인 만큼 컨셉을 잘 소화할 수 있을지부터 의문이었는데.
애드리브까지 칠 거라고는 정말이지 상상도 못 했다.
심지어 잠깐 당황하던 연두도 옆에서 말을 덧붙인다.
“마자! 시은이 사탕도 줘야 안 자바먹을 거야! 어흥!!”
세상 무서운 위협이다.
호랑이처럼 무섭게 연기해 달라니까 정말 호랑이 울음소리를 낼 줄이야.
그나저나 연두까지 애드리브를 치다니.
아까 오피스 세트장에서 시은이를 혼내며 울상을 짓던 연두가 맞나 싶을 정도다.
연기에 적응한 걸까. 타락천사 분장이 용기를 준 걸까.
뒤적. 뒤적.
손을 넣어보니 주머니에 사탕이 더 있긴 하다.
하지만 그냥 줄 수는 없었다.
둘의 찰떡호흡 애드리브를 보자 나도 연기 욕구가 불타올랐거든.
머릿속을 회전하는 시나리오. 애드리브는 애드리브로 맞선다.
“드리겠습니다.”
능청스레 대사를 뱉었다.
당연한 반응이라는 듯 싱긋 웃으며 어깨를 으쓱하는 시은이.
나는 옅게 미소를 띠며 말했다.
“하지만 그냥 드릴 순 없죠.”
“.. 응?”
무섭긴 하지만 위협에 굴복하지 않는다.
나는 침착하게 답했다.
“기브 앤 테이크라고 아십니까, 시은님?”
“기브 앤 테이크..?”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것도 있어야 한다는 거죠. 사탕을 드리려면 저도 받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제야 시은이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역시 이해가 빠르네.
“.. 뭐가 받고 싶은데?”
애드리브의 핵심은 지금부터였다.
정확히 내가 바라던 흐름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저는 먹을 건 필요없고 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보고 싶은 거?”
“네. 시은님의 애교가 보고 싶습니다.”
평소라면 하지 못했을 요구.
하지만 연기의 범주인지라 자연스럽게 얘기를 꺼낼 수 있었다.
더군다나 애드리브를 시작한 쪽도 시은이고.
“애교..?”
세상 당황한 표정을 짓는 시은이.
얼마 지나지 않아 중얼거리듯 한 마디가 이어진다.
“하, 할 줄 모른다..”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왜냐고? 정확히 예상한 대답이었으니까.
나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럼.. 연두님이 시범을 보여주면 되겠군요!”
“으응..?”
정확히 이게 내 계획이었다.
시은이 애교만 보려는 척 하면서 연두 애교까지 보기.
사심이 가득 묻어나는 발상.
“흐흡.”
카메라가 있는 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세연씨의 웃음소리가 틀림없었다.
웃길 만도 하지. 셋이서 계획도 없던 애드리브를 한참 주고받고 있으니.
“자, 어쩌시겠습니까?”
원래라면 그냥 나를 잡아먹고 사탕을 뺐는다는 선택지도 있겠지만.
흐름이 내 쪽으로 넘어온 이상 그런 선택지는 배제된 상태였다.
결국 눈앞에 펼쳐졌다.
“이, 이이잉…”
매번 같은데도 볼 때마다 웃음이 번지는 연두의 마성의 애교가.
토끼 귀와 화사한 분장이 어우러져 평소보다 더 강력하게 심장을 파고든다.
시범 치고는 너무 강력한데.
화악.
막상 시은이는 얼굴이 한껏 붉게 달아오른 상태다.
수줍음 가득한 소악마의 모습.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나는 빙긋 웃으며 입을 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떼기 직전이었다.
‘끝내려고.’
장난을 치긴 했지만 싫은 걸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많이 부끄러워한다면 멈추는 게 옳았다. 이미 충분히 재미있었으니까.
그런데,
“이..”
자그맣게 목소리가 새어나오는가 싶더니.
“이, 이이잉…”
그대로 나는 시은이의 첫 애교를 영접할 수 있었다.
장난 아니게 귀엽네.
정작 본인은 하고선 쑥스러워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지만.
쏙.
말없이 나는 모자에 사탕을 더 넣었다.
하나가 아니라 주머니에 있는 사탕 전부를.
사실 이 정도로도 부족했다.
‘사탕가게라도 차려야 할 판이니.’
우습지만 방금 본 장면을 떠올리면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때 옆에서 들려오는 박수소리.
짝. 짝. 짝.
세연씨가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다가왔다.
“아, 진짜 대박.. 너무 웃겨…”
“하하, 괜찮았어요?”
“네. 저 진짜 TV에서 시트콤 보는 줄 알았잖아요.”
촬영자이자 유일한 시청자인 세연씨는 우리의 연기에 대만족한 모양이다.
이렇게 성황리에 끝이 났다.
연시와 내가 함께한 즉석 애드리브가.
***
할로윈 세트장 말고도 여러 세트장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중세풍 세트장과 고궁 느낌의 세트장이었다.
중세풍 세트장에서는 의도치 않게 내가 또 참가했다.
의외로 세연씨가 아이디어 뱅크였다.
그에 따라 내가 맡게 된 역할은 두 공주님을 지키는 집사.
공주님은 당연히 연두와 시은이였다.
‘느낌이 장난 아니었지.’
중세풍에 빠질 수 없는 고풍스러운 그림과 찻잔, 양초, 그리고 전화기.
세트장의 완성도는 역시나 상상 이상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엘레강스하게 차려입고 빨간색 페도라까지 쓴 연두와 시은이는 정말 중세의 공주님같았다.
두 어린 공주님을 지킬 집사가 없어서는 곤란했다.
‘그래서 변신했지.’
다름아닌 내가 집사로 변신했다.
정장을 입고, 지팡이를 들고, 수염까지 붙여서.
촬영 후 본 내 모습은 굉장히 오글거렸다.
‘셋의 반응은 사뭇 달랐지만.’
고맙게도 잘 어울린다며 엄청 띄워줬지.
아쉬운 건 하나였다.
집에 있는 누렁이까지 특별출연했으면 그야말로 완벽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그 후의 촬영지는 고궁 세트장이었다.
‘가장 많이 놀랐던 곳.’
개인적으로 꼽는 베스트컷이 나온 장소이기도 했다.
하드캐리한 소품은 양산이었다.
고궁 앞에 쪼그려 앉은 연두와 시은이, 그리고 손에 든 흰색 양산.
다시 봐도 감탄이 나오는 A컷 중의 A컷이었다.
‘가길 잘했어.’
사진만 얻은 게 아니었다.
세연씨 덕에 촬영 장면 대부분을 영상으로도 남긴 상태였다.
여러모로 즐거웠던 촬영인 만큼 연두부로부터 엄청난 호응을 얻지 않을까.
‘물론.’
얻은 것 중 가장 값진 건 따로 있었다.
영원히 내 머릿속에 남을,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었다.
***
[연두의 유투브 크리에이터 파티 1탄!(feat. 쇼미더 댄스!)]-드디어 올라왔다 ㅋㅋ
┖파티 영상! 기다리고 있었다고!!
┖역시 다른 영상으로 보면 맛이 안 살지 ㅋㅋ 연두튜브로 봐줘야지 ㅇㅈ?
┖의상부터 미쳤다. 연두 파티의상이라니.
┖진짜 반칙 아니냐. 뭘 입어도 잘 어울려. 이렇게 강렬한 레드까지 소화해버리네?
┖하늘에서 천사복 입다 왔는데 소화 못 할 옷이 어딨겠음 ㅋㅋㅋ
-근데 이 시점으로 보니까 진짜 미쳤네 ㅋㅋ
┖그니까. 연두 인기 봐 ㅋㅋ 말 안 거는 크리에이터가 없어.
┖이 날 초록님도 레전드. 기럭지로 지구 뿌시는 줄.
┖생방으로 볼 때 진짜 연예인 온 줄 알았음. 정장에 코트 걸치고 걸어가는데 ㅋㅋㅋ
┖걍 빼박 파티 주인공.
임팩트 있는 파티 의상 때문인지 유독 비주얼에 관한 댓글이 많았다.
아무래도 나에 관한 댓글은 많이 낯간지럽긴 했지만.
연두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장난 아니었으니까.’
원래도 그렇지만 파티날은 아름이의 금손을 거쳤으니 말이다.
웃으며 시선을 내리자 들어오는 댓글.
-하준아.. 아무리 너라도 연두는 양보 못 한다.
┖키즈튜브 투탑의 만남…
┖나 진짜 깜짝 놀란 게 영상 보면 하준이 원래 철벽 장난 아닌데 ㅋㅋ 연두한테는 너무 적극적이더라.
┖그럴 수밖에 없지. ‘연두’인데.
┖ㅇㅈ ㅋㅋㅋ
-근데 춤 멋지게 추고 손 내밀 때 멋있긴 하더라.
┖ㅇㅈ 인소 남주같은 느낌.
┖안 돼!! 우리 연두는 못 준다!!! 정 가려거든 나를 밟고 가라!!!!
┖.. 그렇게 글쓴이는 하준이의 현란한 팝핀 스텝에 밟혔다고 합니다…
┖감자소년 출동해! 포크레인소년 출동해!!!
┖빨리 연두남친 시무 3837조 누가 가져와라. 하나하나 확인해보자, 하준아 ^^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연두부들의 엄청난 주접.
하준이가 워낙 멋지게 나온 터라 견제하는 댓글도 상당히 많이 보였다.
문득 궁금해진 나는 옆에 있는 연두를 향해 말했다.
“연두야.”
“네, 아빠.”
“혹시 연두는 선동이오빠가 좋아, 저번에 파티에서 만난 하준이오빠가 좋아?”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연두가 중얼거린다.
“둘 다 조은데…”
물러설 내가 아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좋은 오빠를 꼽자면?”
“그럼.. 비미리에요!”
“당연하지. 아빠는 비밀 엄청 잘 지켜.”
그제야 연두는 마음먹은 듯 말했다.
“선동이오빠..”
“하하, 그렇구나.”
예상한 대답이었다.
확실히 파티에서의 춤이 장난 아니긴 했지만.
감자소년 선동이와의 추억을 넘어서기엔 부족할 거라 생각했다.
‘선동이녀석, 들으면 엄청 기분 좋겠는데.’
왠지 모르게 그 장난꾸러기녀석이 보고 싶었다.
연두를 향해 넌지시 물었다.
“보고 싶지 않아?”
“누구요..?”
“선동이오빠.”
고개를 끄덕이며 연두가 대답했다.
“네, 보고 시퍼요.. 그리고……”
“그리고?”
“할머니도..”
그러고 보니 할머니를 뵌 지도 꽤 오래됐네.
연락은 꾸준히 하고 있긴 하지만.
‘조만간 또 한 번 찾아뵈야겠어.’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댓글창을 닫았다.
***
댓글은 봤지만 유투브 창을 끌 수는 없었다.
달리 확인해야 할 게 있었으니까.
‘왔네.’
쪽지함에 알람이 떠올라 있었다.
알림 설정을 해 놓은 터라 발신인은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눌러보니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안녕하세요! 어린이 동화책 출판사 ‘푸르른 숲’입니다!]쪽지가 온 시간을 본 나는 조금 당황했다.
보낸 지 얼마 안 됐을 거라 생각했는데 벌써 하루가 지났네?
여러모로 신경쓸 게 많아서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뭐, 괜찮겠지.’
설마 상대방이 목 빠져라 내 답장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그보다 보내왔을 원고의 내용이 기대가 됐다.
먼저 쪽지의 내용을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답장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초록님.
저번 쪽지와 달리 이번 내용은 간결했다.
원고를 첨부했다는 말과 함께 꼭 함께 작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내용까지.
사실 긴 말이 필요없는 문제긴 했다.
중요한 건 결국 원고가 마음에 드냐 하는 거니까.
달칵.
망설임 없이 첨부된 파일을 눌렀다.
동화책인데도 상당히 커다란 분량의 파일.
눈앞에 떠오른 건 첫 페이지였다.
‘이건.. 제목인가?’
전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의도치 않게 계속 비슷한 이미지와 엮이는 거 같다고.
그렇지 않은가.
‘연두, 초록, 풀잎컴퍼니, 푸르른 숲.’
공교롭게도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눈앞에 떠오른 동화 제목 역시 그런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들었으니까.
그래서인지 더 호기심이 동했다.
[소녀와 환상의 숲]곧바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
스륵. 스륵. 스르륵.
얼마나 넘겼을까.
원고의 중간 지점에 도달하고 나서야 나는 마우스를 멈췄다.
묘한 표정을 얼굴에 띄운 채.
‘.. 뭐지, 대체?’
자연히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
스토리가 별로라 그런 건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별생각 없이 보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홀린 듯 빠져들어 읽고 있었으니까.
나를 멈추게 만든 요인은 따로 있었다.
‘소녀와 환상의 숲’
제목 그대로였다.
이 동화는 환상의 숲을 배경으로,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였다.
거기서 내가 주목한 건 바로 소녀였다.
‘.. 닮아 있어.’
그림은 없지만 생생하게 느껴졌다.
동화 속 소녀는 신기할 정도로 닮아있었다.
내 옆에 앉아있는 연두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