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303)
303화. 파투너
미팅 장소는 출판사 ‘푸르른 숲’이었다.
상대측이 먼저 우리 쪽으로 오겠다는 의사를 표했으나 그럴 경우에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업무에 관한 얘기를 나눌 텐데 시끌벅적한 카페에서 볼 수도 없고.
‘미팅룸을 대여할까 생각도 했지만.’
기왕이면 어느 한쪽의 홈그라운드에서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나와 연두의 홈그라운드인 우리 집, 초록연두구역으로 초대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먼저 물어봤다. 회사로 방문해도 되냐고.
“물론이죠! 초록님만 괜찮으시다면……”
그렇게 우리가 출판사로 방문하기로 했다.
경기도에 위치한 푸르른 숲.
그리 먼 거리도 아닌 데다가 차가 있어서 부담은 없었다.
“안녕하세요, 형.”
“어, 왔어? 뒤에 타.”
“네.”
덜컥.
모자를 눌러쓴 우영이가 인사하고는 뒷좌석에 탑승했다.
뒤에 타야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안녕하세여, 우영이오빠!”
“.. 그래, 땅콩.”
뒷좌석 카시트에 앉은 땅콩.. 아니, 연두를 지켜줄 사람이 필요했으니까.
우영이녀석이 땅콩이라 부르니 자꾸 나까지 혼동이 온다.
이러다 입 밖으로 툭 나오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근데 우영아.”
“네.”
“모자는 왜 그렇게 눌러썼어? 평소에는 잘 안 쓰지 않나?”
“아, 모자.”
우영이는 모자를 다시 고쳐 쓰며 말했다.
“어제 그림 그리다 늦게 잠들었거든요.”
“근데?”
“그래서 늦게 일어나서 머리를 못 감고 나왔어요. 나름 미팅 자리인데 예의 없는 건가.”
“하하…”
정말 모든 게 그림과 연관되어 있는 느낌이다.
옷에 기름을 쏟은 채로 와서 카페에서 테라핀 냄새를 풍기던 것도 그렇고 오늘 머리를 못 감은 이유까지.
여담이지만 머리가 작아서인지 모자가 잘 어울리긴 한다.
나는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그런 이유라면 오히려 올라가겠다.”
“뭐가 올라가요?”
“신뢰감이.”
본의 아니게 머리 안 감은 걸로 그림을 향한 열정을 어필하게 생겼다는 뜻이다.
말뜻을 파악했는지 우영이가 실소를 뱉었다.
“대신 도착해서는 조금만 올려.”
“모자요?
“응. 너 지금 눈이 거의 안 보여서 좀 오싹하거든.”
기선제압을 하고 들어가기에는 나름 좋은 전략이 될 수 있겠으나.
그럴 의도는 조금도 없으니 말이다.
고개를 끄덕이는 우영을 보고 슬슬 출발하려는 순간.
“헤헤..”
왜인지 연두가 우영이를 보며 웃음지었다.
그 시선을 느꼈는지 우영이가 조금 당황한 듯 입을 열었다.
“뭐야. 땅콩 너……”
괜히 혼자 찔린 듯 우영이가 말을 이었다.
“머리 안 감았다고 지금 비웃는 거야?”
도리. 도리.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젓는다.
당연하다. 그런 이유로 비웃을 연두가 아니니까.
그 와중에 모자를 더 푹 눌러써서 시선을 봉인한 우영이가 되묻는다.
“그럼 왜 실실 웃냐.”
“고마어서..”
“뭐?”
해맑게 웃으며 연두가 재차 답했다.
“아빠 도아줘서.. 고마어서요..”
“뭐야, 싱겁게.”
“연두도 한 번 도아줄께요!”
“한 번이 아니지.”
“으응..?”
“저번에 도와준 것도 있잖아, 바보야. 약속한 거 기억 안 나?”
“아!”
어떤 약속인지는 나도 들어서 알고 있다.
기억난 듯 연두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뭔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한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한 후 빽 소리친다.
“.. 연두 바보 아니에요!”
발끈 포인트가 있었구나. 그나저나 이 정도면 재주다.
웬만해서는 발끈하지 않는 연두를 만날 때마다 꼭 한 번은 소리치게 만드는 것도.
막상 우영이는 피식 웃으며 들은 척 만 척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본다.
“으으..”
나야 자주 보는 연우케미라 어색하지 않았다.
연두부가 본다면 우영이의 안티팬이 다소 양산될 수 있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아, 참. 우영아.”
“네.”
그러고 보니 만나면 꺼내려던 얘기가 있었다.
“작가님한테 물어봤거든. 너랑 같이 그려도 되냐고.”
“네.”
“뭐라 대답하셨을 거 같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우영이가 대답했다.
“당연히 환영했겠죠.”
역시나 자신감이 넘친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맞아. 그리고..”
“그리고요?”
“너랑 나를 ‘환상의 파트너’라고 하시더라, 하하.”
오글거리긴 하지만 들을 때도 그렇고 생각할 때마다 왠지 모르게 웃긴 표현이었다.
나만 꽂혀서 웃긴 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당사자인 우영이에게도 전해주고 싶었다.
“풋.”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우영이도 뻘하게 실소를 뱉었다.
“원고 보고 생각은 했는데……”
“뭐?”
“그 작가님 확실히 보는 눈이 있네요.”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우영이도 표현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그때 연두가 살며시 입을 열었다.
“파투너..”
파트너를 얘기하는 거 같은데.
피아니스투도 그렇고 연두는 ‘트’ 발음을 잘 못하는 게 확실하다.
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파트너 말이야, 연두야?”
“네!”
이윽고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아빠. 파투너가 머에요..?”
“그러니까 파트너는……”
뭐지? 설명이 되게 간단할 줄 알았는데.
막상 머릿속에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무의식 중에 그나마 생각난 단어를 뱉었다.
“동반자?”
뱉자마자 입을 두드렸다.
표현이 이상하잖아.
문제는 다음으로 떠오른 단어가 더 그러했다는 점이다.
“커플?”
아니, 생각만 하지 왜 자꾸 말로 뱉는데.
파트너와 동반자. 파트너와 커플.
아예 관련이 없지는 않은데 미묘하게, 아니 상당한 차이가 있다.
“크크.”
우영이녀석은 남 얘기인 것마냥 혼자 실실 웃고 있다.
그러던 와중 또 떠오른 단어.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번에는 딱 알맞은 표현이었다.
연두도 잘 알면서 파트너와 완벽히 대치되는 단어.
“케미!”
나랑 우영이가 호흡이 잘 맞는다는 걸 환상의 파트너라 표현한 거니까.
케미가 잘 맞는다고 바꿔 얘기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연두튜브 댓글창을 자주 보는 연두도 잘 아는 표현이었다.
“아!”
역시 이해한 모양이다.
신이 난 나는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환상의 파트너라는 건 나랑 우영이오빠 케미가 좋다는 거야.”
“네.”
“그러니까 초선케미가 좋다는 거지. 이해……”
그런데 이번에도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케미까지는 좋았는데 앞에 두 글자가 붙으니 느낌이 완전 달라진다.
한편 완전히 이해한 연두는 생긋 웃더니 한 마디를 뱉었다.
“연두 짱 조아해요!”
“뭘?”
“초선케미..!”
하기야 몇 번이고 이와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많은 케미 중에서도 연두는 초선케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곤 했으니까.
‘연두가 미는 케미라니.’
이러면 부정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뒤늦게 생각해 보니 두 글자 단어가 떠오른다.
그냥 짝꿍이라고 설명해 주면 됐겠네. 참 멀리도 돌아왔구만.
부르릉!
민망함을 떨칠 겸 나는 세게 액셀을 밟았다.
***
열심히 달린 끝에 도착한 출판사 푸르른 숲.
싱그러운 명칭과는 달리 평범한 회사 건물이었다.
‘당연하지.’
회사를 숲처럼 꾸며놓지는 않았을 거 아닌가.
차에서 내려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출판사 ‘푸르른 숲’은 3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띠링.
벨을 누르자 문이 열렸다.
서글서글한 얼굴의 남자가 문을 열어줬다.
“어서 오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제가 쪽지 보냈던 편집자 서하늘입니다!”
“아, 그렇군요. 반갑습니다.”
그는 이어서 우영이와 연두에게도 차례로 인사를 건넸다.
“미팅룸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작가님은 미팅룸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모양이었다.
복도를 조금 걸어 미팅룸 문 앞에 도착했다.
편집자가 살짝 노크한 뒤에 문을 열었다.
삐그덕.
문에서 재미있는 소리가 나네.
열린 문틈 사이로 한 사람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목소리를 듣고 예상하긴 했는데, 생각보다 더 어려 보이는 외모였다.
“후우.. 릴랙스. 릴랙스. 캄 다운.. 마인드 컨트롤…”
그나저나 뭐지.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선 뭐라 중얼거린다.
혼잣말을 보니 영어를 굉장히 애용하는 거 같은데.
자세히 보니 귀에 강낭콩 비슷한 걸 끼고 있다.
그제야 깨달았다.
‘모르는 거구나.’
음악이라도 듣는 건지 우리가 들어간 걸 전혀 모르는 눈치다.
초면에 이런 말 하기 미안하긴 하지만 빈틈이 많은 사람이네.
편집자가 어색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하하.. 작가님도 참.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네.”
그가 가까이 다가가서 조은서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우앗!”
깜짝 놀란 조은서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얼마나 세게 일어났는지 왼쪽 강낭콩이 떨어져 나갈 정도였다.
그 강낭콩은 또르르 굴러와 내 발 앞에 멈췄다.
스윽.
다소 난잡한 첫만남이었다.
강낭콩을 주워서 그녀에게 내밀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조은서 작가님이시죠?”
“헉…”
반쯤 정신이 나간 표정으로 입을 틀어막더니 그녀는 아차 하고 강낭콩을 건네받았다.
그리고선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맞습니다. 제가 조은서입니다!”
“아, 네. 저는……”
“초록님이시죠!”
자기소개까지 대신 해 주다니.
배려심이 넘치는 분이시네.
“꺄야, 연두야! 그리고 이 분은.. 우영씨 맞으시죠?”
우영이가 아차 하고 모자를 살짝 올리며 대답했다.
“네, 안녕하세요.”
“진짜 반가워요. 저 되게 팬이거든요.”
조은서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초면인데 죄송해요. 놀라서 횡설수설해가지고……”
“아닙니다.”
“아, 어서 앉으세요!”
그녀의 말에 따라 우리는 테이블에 착석했다.
다소 혼잡한 첫 만남.
그렇게 시작됐다. ‘소녀와 환상의 숲’의 미팅이.
***
테이블 위에 준비되어 간식거리와 음료.
연두를 위해서인지 알록달록한 마카롱도 준비되어 있었다.
“마카롱이다..!”
“흐흥.”
귀여워 죽겠다는 듯 그런 연두를 바라보는 조은서.
이러려고 데려온 건 아닌데.
자연스레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어주는 연두였다.
먼저 입을 뗀 건 편집자 서하늘이었다.
“우선 말씀드리고 싶은 건……”
본격적인 미팅의 시작에 나는 귀를 기울였다.
편집자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얘기는 다름아닌 계약조건이었다.
그 얘기가 조금은 극단적이었다는 게 문제지만.
“계약조건은 전적으로 원하시는 방향에 맞춰서라도 함께 일을 진행하고 싶은 게 저희의 입장입니다.”
놀란 이유는 간단했다.
일방적인 구애도 아니고 나도 원고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는 의사를 표한 상황인데.
처음부터 이렇게 나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으니까.
끄덕. 끄덕.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조은서작가도 같은 입장인 모양이다.
‘뭐지. 저 표정은.’
조금 과장하면 협상할 마음이 아예 없어보였다.
계약이 성사되기만 하면 우리가 어떤 조건을 불러도 받아들일 거 같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그 생각은 착각이 아니었다.
“.. 진심이신가요?”
얼마나 황당했으면 내 입에서 그 말이 나왔겠는가.
내가 조건을 부르기도 전에 상대가 먼저 부른 조건을 보고 나온 반응이었다.
다시 과장해서 말하면 그 조건은 내가 불공정 계약을 했다는 이유로 수갑을 차고 잡혀가도 이상할 게 없는 치우친 계약조건이었다.
“네,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인데……”
이런 협상은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다.
계약을 꼭 진행해야 하는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물론 내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 네?”
둘은 내 말을 잘못 알아들은 거 같긴 하지만.
나는 이런 치우친 계약조건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단지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유가 아니었다.
‘안 돼.’
계약은 서로의 이익을 위해 있는 거라 생각하니까.
내가 상대의 입장이라 해도 납득할 수 있을 만한 계약이 받아들일 수 있는 최소 요건이었다.
당장이 아니라 미래를 생각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면 이 계약은 성사가 불가능하다.
‘알고 있어.’
업계의 평균 조건은 잘 알고 있었다.
거절한 후 내 쪽에서 다시 제시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평균 조건보다 좀 더 나은 계약이었다.
“정말.. 괜찮으세요?”
이번에는 맞은편에 있는 둘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저는 이렇게가 좋습니다.”
“…”
“너도 괜찮지, 우영아?”
환상의 파트너한테도 물어봐야지.
전혀 관심 없는 듯 우영이는 한 마디를 뱉었다.
“네, 형이 괜찮으면요.”
전혀 생각지 못한 그림인지 둘의 표정에 이채가 가시지 않는다.
하기야 좋은 조건을 굳이 마다하는 게 이상해 보일 수도 있다.
허나 내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건 제쳐두고서라도.’
연두튜브의 운영자이자 연두의 아빠로서 마음에 걸릴 만한 계약은 하고 싶지 않았다.
혹시나 안 좋은 얘기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은가.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았을 거란 건 같겠지만.
이 주제를 종결짓기 위해 나는 끝으로 물었다.
“괜찮으신가요?”
“네, 저희야 당연히.. 괜찮습니다.”
이렇게 가장 중요한 문제에 관해 합의가 끝났다.
본격적인 미팅의 시작.
좋은 분위기 속에서 조은서가 말했다.
“참! 꼭 묻고 싶은 게 있었는데..”
“뭔가요?”
“조금 뜬금없을 수도 있지만.. 어떻게 저한테 원고를 보고 싶다는 답장을 주시게 된 건지 계속 궁금해서…”
“아.”
있는 그대로 답해주는 수밖에.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지금 굉장히 열정적으로 마카롱을 먹고 있는 공주님과 관련이 깊었다.
나는 연두를 가리키며 말했다.
“연두가 골랐어요.”
“.. 네?”
부연설명이 필요했다.
여러 쪽지를 두고 고민하던 중 연두한테 도움을 구하자.
망설임 없이 한 쪽지를 가리켰다는 일련의 과정을.
“그 쪽지가……”
“네. ‘푸르른 숲’에서 보내주신 쪽지였습니다.”
“와, 대박…”
쭉 그러기 했지만.
연두를 바라보는 조은서의 눈빛에서 하트가 뿜어져 나올 것만 같다.
그러다 그녀는 또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
“아, 초록님!”
“하하, 네.”
“통화할 때 제 원고를 보고 궁금한 점이 있으셨다고..”
나도 잠깐 깜빡하고 있던 문제였다.
사실 물어보기에 조금 우스울 수도 있는 질문이지만.
결심한 이상 안 묻고 넘어갈 수는 없다.
“단순히 제 착각일 확률이 높긴 하지만..”
“네.”
“원고 속 소녀를 보는데 자꾸 연두랑 겹쳐 보이더라고요. 혹시나 해서 그걸 작가님께 여쭤보고 싶었는데……”
만약 전혀 연관이 없다는 답이 나온다면 본의 아니게 뜬금없는 딸바보 면모를 어필하는 거밖에 되지 않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건넨 질문이었다.
“초록님…”
왜인지 상기된 조은서작가의 목소리.
이윽고 귓가에 들어왔다.
놀라다 못해 온몸에 닭살이 돋게 만드는 이야기가.
“정말 그걸 느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