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321)
321화. 첫 연습
“연두야.”
“.. 네.”
“아빠랑 영상 하나 찍자. 연두튜브에 올릴 영상.”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평소와 달리 대놓고 찍는 콘텐츠를 찍어볼 예정이다.
어떻게 보면 새로운 시도라 볼 수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연두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아리송한 표정이긴 하지만.
다시 입을 열려는 찰나에 들려오는 대답.
“네! 찌거요!”
“응?”
아직 뭘 찍을 건지 조금도 얘기하지 않았는데.
생각 외의 세상 쿨한 대답이었다.
다만 연두의 대답에는 한 가지 조건이 존재했다.
“근데.. 먼저 이거 정리해야 해여…”
연두가 가리킨 건 다름아닌 바닥에 널브러진 옷가지들이었다.
찍을 땐 찍더라도 정리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깔끔한 연두의 면모가 엿보이는 부분이었다.
‘하긴.’
문득 편의점에 함께 출근할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도 연두는 거의 청소요정이나 다름없었지.
시키는 것도 아닌데 자기 키만한 빗자루를 들고 바닥을 쓸곤 했으니까.
“안 돼.”
하지만 나는 단호히 대답했다.
깔끔한 건 좋지만 지금 이걸 치우는 건 곤란하다.
왜냐고? 멋대로 널브러뜨려 놓은 거 같지만 바닥의 옷들은 나름의 규칙성이 존재하니까.
철저히 내 의도 하에 엎어져 있는 옷가지들이었다.
‘눈치채지 못하고 있지만.’
내팽개치듯 놓아둔 터라 연두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안 된다는 내 말에 또 아리송한 표정이다.
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잠깐 여기 앉아볼래?”
“어디여..?”
“여기.”
옷을 치우러 갔던 연두가 다시 내 쪽으로 향했다.
혹여나 바닥에 떨어진 옷을 밟을까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이윽고 우리는 바닥에 기대앉았다.
스윽.
카메라를 잠시 내려놓고 핸드폰을 꺼냈다.
말로 설명해줄 수도 있겠지만, 생소한 콘텐츠인 만큼 영상을 보여주는 게 빠를 거 같았다.
어떤 느낌인지도 말보다 더 와닿을 테고.
‘먼저 인덕이.’
인덕이의 채널에 들어간 나는 최신 영상을 클릭했다.
아까 보면서 무척 웃었던 영상이다.
“인더기오빠다..!”
연두의 환호 속에 재생된 영상.
역시나 인덕이가 서 있는 곳도 장롱 앞이었다.
그래. 촬영 장소를 보면 느낌이 오겠지만 지금 유행하는 콘텐츠는 바로 룩북이었다.
[인더기의 룩북!]오타가 아니다.
저번에 파티에 가서 물어보니 연두의 발음 때문에 구독자들이 자신을 ‘인더기’라 부른다는 모양이었다.
이제는 원래 이름보다 더 익숙하다고 했지.
‘뭐, 이해는 가.’
나한테도 그런 애칭(?)이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가서 ‘룩북’이라 함은 간단했다.
평소 입는 코디를 편집을 가미해 음악과 함께 보여주는 거였다.
‘단순히 외출시 복장뿐 아니라.’
집 앞에 나갈 때의 편한 복장, 운동할 때의 복장, 그리고 잠을 잘 때의 복장까지.
뭐든간에 평소 입는 옷이라면 상관없었다.
인덕이의 경우에도 장소에 따라 코디가 달라졌다.
뿜. 빰. 뿜. 빰.
신나는 음악과 함께 인덕이의 첫 패션이 등장했다.
운동인의 상징인 언더셔츠 차림.
우락부락한 인덕이의 몸을 만나니 사이즈가 의미가 없어진다.
그에 더해 인덕이는 포즈까지 취한다.
흡사 보디빌더들이 자주 취하는 근육이 부각되는 포즈.
파팟.
다시 보는 건데도 불안하다.
터지지 말라고 만든 기능성 의류인데 터질 거 같으니.
결과적으로 터지지는 않긴 하지만.
“우아…”
순수하게 감탄한 연두의 표정.
이후에도 인덕이는 다양한 패션을 선보였다.
그 와중에 등장한 옷이 있었다.
입은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등장(?)만 한 옷이긴 하지만.
“…”
슬픈 음악으로 바뀌고 인덕이가 옷 하나를 쳐다본다.
그 옷은 다름아닌 팬미팅 때 준 ‘하트 포즈 연두’ 에디션이었다.
당시 있었던 작은 사고(?)로 티셔츠 속 연두가 조금 통통해지긴 했지만.
“푸흣.”
결국 이 부분에서 다시 웃음이 터졌다.
이렇게 슬플 수가 없다.
티셔츠를 바라보는 인덕이의 눈빛이.
스윽.
손을 뻗다가도 만지지도 못하고 단념한다.
더 망칠 수는 없다는 듯.
콘셉이 가미된 거 같긴 하지만, 후회하는 인덕이의 마음이 잔뜩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결국 ‘하트 포즈 연두’ 에디션은 입지 않은 채로 영상이 종료된다.
‘엄청 많았지.’
실제로 댓글에도 이 부분에 관한 언급이 무척 많았다.
연두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연두 티서츠는 왜 안 이버요..?”
“왜냐면.. 인덕이오빠가 조금 크잖아?”
“네에.”
“그래서 티셔츠를 지키려고 안 입는 거야. 입으면 늘어나거나 찢어질까 봐 소중히 간직하려고.”
“아!”
바로 이해한 듯 연두는 되물었다.
“연두 비밀상자에 있는 아빠 그림처럼요?”
“응, 맞아.”
찰떡같은 비유였다.
쑥스럽긴 하지만 연두가 내 그림을 비밀상자에 보관하는 것도 같은 이유였으니까.
밖에 뒀다가 찢어지거나 손상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하나만 더 볼까, 연두야?”
다음은 고래의 영상이었다.
고래의 패션센스가 드러나는 패션이 잔뜩 나오고, 역시 하이라이트는 마지막이었다.
고래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고래탈의 등장.
어푸. 어푸.
유명 스트리머답게 헤엄치는 흉내까지 낸다.
고래가 하는 수영이라기에는 너무 사람같은 게 함정이지만.
이번에는 연두도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흐흣. 고래오빠 진짜 우껴요, 아빠..”
“하하, 그래?”
아무래도 연두의 관점에서는 고래의 영상이 승인 거 같았다.
더 이해할 수 있는 직관적인 감성이라는 점에서.
그와 별개로 이 정도면 충분했다.
‘알았겠지.’
어떤 느낌인지 충분히 알았을 테니.
이제 보는 게 아니라 직접 촬영할 시간이었다.
연두의 룩북을.
***
“조아요!”
재밌게 영상을 본 뒤라 그런지 연두는 너무 신나게 제안에 응했다.
사실 그전부터 뭔지도 모르고 좋다고 하긴 했지만.
본격적인 촬영에 앞서, 나는 간단하게 촬영장을 세팅했다.
‘필요한 건 두 개.’
우선 ‘화려한 조명’이 필요했다.
반짝이는 스탠드를 가져와 무대를 비췄다.
남은 건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아빠..”
무대의 주인공인 우리 연두였다.
화려한 조명이 감싸지 않아도 빛이 나는 내 딸 연두.
허나 조명까지 받으니 더욱더 빛을 발했다.
‘좋아.’
이제 촬영을 개시할 차례였다.
기왕이면 평소에 자주 보여주는 코디 말고도 다양한 패션을 보여주고 싶었다.
예를 들자면 이런 느낌.
“자, 연두야.”
널브러진 옷 중 한 세트를 꺼내들었다.
상하의가 같은 무늬로 통일된 민트색 추리닝 세트였다.
공교롭게도 아직까지 보여준 기억이 없었다.
‘추리닝을 입은 연두.’
내게는 익숙한 모습이었다.
집 앞에 간단히 뭘 사러 가거나 할 때는 애용하는 복장이었으니까.
촬영할 때 입은 적이 없을 뿐이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추리닝을 입은 연두는 장난 아니게 귀여웠다.
‘그래도 추리닝만 입으면 허전하니.’
스윽.
거치대에 걸린 모자를 하나 씌워줬다.
발랄한 주황색 챙모자.
여기서 포인트는 그냥 쓰는 게 아니라 반대로 써 줘야 한다는 거다.
“여기 봐 봐, 연두야.”
“네.”
잠깐. 처음부터 너무 센데?
모자를 반대로 쓴 게 탁월한 선택이었다.
또렷한 이목구비가 드러나며 연두의 꽃미모가 빛을 발했다.
이거 곤란한데. 추리닝 복장이 전혀 수수하지 않다니.
스스.
놓치지 않고 카메라로 그 모습을 담았다.
순간 아이디어가 떠오른 나는 말했다.
“연두야. 아빠 한 번 따라해 볼래?”
그렇게 말한 나는 한 포즈를 취했다.
손을 브이자로 하고 조금은 건들거리게 앞에 펼치는 자세.
이런 걸 뭐라 하더라.
‘스웩.’
그래. 힙합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 ‘스웩’이었다.
아는 형아에서는 강호등이 비슷한 포즈를 하곤 했지.
연두가 어정쩡하게 나를 따라 포즈를 취했다.
“이, 이러케..?”
스웩이라기에는 다소 소심한 동작이다.
가까스로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응. 근데 조금 더 자신감 있게. 스웩~”
“스, 스엑!”
“푸흣.”
결국 못 참고 웃음이 터졌다.
스웩이 뭔지 모르면서도 스웩 넘치는 연두의 포즈에.
지금 이 순간만큼은 연두가 곧 힙합이었다.
“짱 잘했어, 연두야.”
“히히.”
“그럼 그 자리에서 점프 한 번 해 줄래?”
“점프요..?”
“응. 근데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야 해.”
이 콘텐츠 특유의 편집을 위해서라면 점프 장면을 딸 필요가 있었다.
연두는 고개를 끄덕이고선 행동을 취했다.
주먹을 꼬옥 쥐고선 연두가 뛰어올랐다.
슈웅. 탁!
착지까지 완벽했다.
동시에 느껴졌다. 설명을 요구하는 연두의 눈빛이.
일단 행동하고 본 뒤에 궁금해하는 모습에서 또 한 번 웃음이 나왔다.
뭐, 나중에 영상을 보면 자연히 알게 될 터였다.
‘지금은 아무 변화도 없지만.’
편집을 거치면 마치 마법처럼 다음 장면으로 슝 넘어가게 될 테니.
이렇게 말하니 되게 신기해 보이는데.
실상은 엄청나게 간단한 편집 기법이었다.
‘다음은..’
룩북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잠옷 차림이었다.
꿈나라에 빠져들 때 입는 복장.
이든의 고정 모델답게 연두는 척척 자세를 취했다.
코오.
순식간에 잠에 든 모습의 연두.
하나같이 너무 귀엽다 보니 부작용이 있었다.
자꾸만 시선이 카메라 초점이 아닌 연두를 향한다는 것.
‘뭐, 괜찮겠지.’
촬영 장소가 고정된 만큼 초점 이동이 거의 필요하지 않았다.
아직 추리닝과 잠옷 외에도 옷은 넘치도록 많았다.
한동안 즐거운 촬영이 이어졌다.
***
다음날 어린이집에 등원한 연두.
자유시간인 만큼 아이들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동화책을 읽고 있었다.
평소라면 연두도 인형을 손에 들고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톡. 톡톡.
연두의 두 손은 다름아닌 무릎 위에 있었다.
가만히 놓여있는 건 아니었다.
작은 무릎 위를 경쾌하게 두드리고 있었다. 마치 건반을 누르듯.
“솔파 파미레.. 도레 미파…”
그리고 실제로 그게 맞았다.
연두는 무릎 위를 건반 삼아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어린이집에서의 규칙이 하나 존재했다.
‘악기는 음악시간에만 만지기.’
모든 아이들에게 적용되는 규칙이었다.
아무런 제약 없이 악기를 만질 수 있게 했다가는 혼잡해질 게 불 보듯 뻔했으니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규칙이 필요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악기에 한한 규칙인 만큼 시뮬레이션은 자유였다.
시끌벅적한 와중에도 연두의 하얀 손가락은 계속해서 움직였다.
혼자 그러고 있는 건 비단 연두뿐만이 아니었다.
“흥, 흐흥.”
무척 소심한 사운드이긴 하지만 시은이도 무언가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레나도 마찬가지였다.
따로 제스처를 취하지는 않았지만 머릿속에는 바이올린 생각뿐이었다.
세 아이 모두 이러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약속.
셋이 입을 모아 한 약속이 있었다.
따로 열심히 연습한 다음 단비 음악대의 첫 연습을 하자고.
그 날짜가 바로 오늘이었다.
정확히는 악기 사용이 가능해지는 오늘 음악시간.
째깍. 째깍.
점점 그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설렘에 콩닥이는 심장.
얼마 지나지 않아 기다리던 음악시간이 찾아왔다.
그와 동시에 셋은 한데 모였다.
“시으나! 레나야!”
“응!”
“연두야!”
서로 눈을 맞춘 세 아이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됐다는 의미의 신호였다.
단비 음악대의 대망의 첫 연습을 시작할 시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