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324)
324화. 숲
화창한 오후.
나는 산 입구에 서 있었다.
[운화산]숲다운 숲을 어딜 가면 볼 수 있을까.
인공적으로 조성한 곳도 있겠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숲 그 자체를 눈에 생생히 담고 싶었다.
그런 곳은 내가 알기로 하나뿐이었다.
바로 숲이 우거진 산이었다.
물론 산이라고 해서 인공적인 요소가 없는 건 아니다.
애초에 산 자체가 오를 수 있도록 인공적으로 등산로를 꾸려 놓은 장소니까.
‘하지만.’
산은 넓고 모든 공간이 등산로인 건 아니다.
숲 자체를 느낄 수 있는 공간도 분명히 존재할 터였다.
특히나 내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이 곳 운화산은 더더욱 그랬다.
그래서 차를 타고 달려서 이 곳을 찾은 거고.
“그럼 올라가 볼까?”
지체할 이유는 없었다.
참고로 방금 내가 뱉은 말은 혼잣말이 아니다.
“네, 아빠..!”
봐라.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가.
편한 바지에 얇은 하늘색 바람막이를 입은 등산복 차림의 여자아이.
다름 아닌 내 딸 연두였다.
‘되게 신나 보이네.’
그럴 만도 했다.
처음 갔던 산이 무척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을 테니.
그때가 언제냐고?
시골.
할머니가 계신 시골에 김장하러 갔을 때였다.
선동이를 따라서 산을 올라가 ‘선동이의 비밀장소’에서 별을 봤던 기억.
틈만 나면 연두는 당시의 기억을 회상하곤 했다.
‘장난 아니긴 했지.’
살면서 본 아름다웠던 장면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연두와 함께였다는 점에서 더더욱.
가깝기만 했다면 그 장소를 다시 한번 찾았을 텐데.
‘뭐, 나중에 가서 보면 되니까.’
연두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나는 시선을 돌렸다.
남은 일행이 한 명 더 있었다.
선우영.
작화 동료인 우영이였다.
산에 가기로 결심하자마자 바로 우영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로 본론부터 꺼내는 녀석 특유의 화법으로.
“같이 어디 좀 가자.”
“어디요?”
“산.”
“…?”
다짜고짜 산을 가자는 말에 벙찐 반응을 보였지.
마치 주말에 등산을 가자는 부장님의 말을 들은 사원 같다고나 할까.
“갑자기 산은 왜요?”
나는 차근차근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설명을 다 들은 우영이는 의아한 듯 입을 열었다.
“.. 근데 형.”
“응.”
“직접 가는 것보다는 찾아보는 게 빠르지 않아요? 사진이나 영상으로.”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확실히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실제로 찾아보기도 했고.
‘우습게도.’
그럴수록 더 갈증이 생기는 느낌이었다.
직접 보지 않고는 느끼지 못할 거 같은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해야 할까.
그 얘기를 하고 나서야 우영이는 수긍했다.
“알겠어요.”
이유는 확실히 알아들은 느낌이었다.
100% 공감을 하는 거 같지는 않았지만.
함께 그리는 그림인 만큼, 우영이에게도 꼭 도움이 되길 바랐다.
이 곳, 운화산이.
“가자, 우영아.”
“네.”
이렇게 출발했다.
연두와 나, 그리고 우영이가 함께하는 숲 속 탐험대가.
***
텐션이 한껏 오른 연두.
가장 젊은(?) 만큼 탐험대의 선두를 차지했다.
걱정이 된 나는 입을 열었다.
“연두야, 천천히.”
“네!”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야 해.”
연두는 고개를 끄덕이며 총총 뛰어올라갔다. 저 기세가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반대로 우영이는 묵묵히 옆에서 발걸음을 옮겼다.
연두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나는 넌지시 물었다.
“등산 좋아해?”
우영이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별로요.”
“왜?”
“힘들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안 좋아했어요.”
“어렸을 때?”
“네.”
“그래도 몇 번 가긴 갔나 보네?”
왜인지 흐르는 잠깐의 침묵.
우영이가 짧게 답했다.
“아빠가 좋아했거든요. 몇 번 끌려갔죠.”
“아.”
눈치가 없었네.
되묻지 말 걸 그랬다.
괜히 어색하게 웃으며 화제를 전환했다.
“하, 하하.. 그래도 공기는 엄청 좋네.”
“그래요?”
“안 느껴져?”
“비염이 있어서요.”
“…”
이런 느낌 오랜만이다.
최근에는 우영이랑 말이 나름 잘 통한다고 생각했는데.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하긴.’
미술 외의 대화는 딱히 한 적이 없긴 하다.
나도 말주변이 없다 보니, 일상적인 대화는 힘이 들었다.
0개 국어 구사자의 비애였다.
“아빠! 우영이오빠!”
타이밍 좋게 귀에 들어오는 연두의 목소리.
저만치에서 손을 흔들며 우리를 부른다.
“빨리 와여..!”
“그래.”
피식 웃으며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조금 가까워지자 우영이가 연두를 향해 말했다.
“야, 땅콩.”
“네?”
“너 그렇게 빨리 가다가 나중에 힘들어하면 놓고 간다.”
연두는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연두는 하나도 안 힘드러요!”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힘들어하면 놓고 갈 거라고.”
“나중에도 안 힘드러요!”
첫 등산이라 그런지 상당히 자신감이 넘치는 연두였다.
지켜보던 나는 대화에 끼어들었다.
“호오, 정말?”
“네에!”
“그럼 연두 힘들어하면 우영이오빠 말대로 놓고 가도 돼?”
당연히 진심이 담긴 얘기는 아니었다.
이렇게 말하면 연두가 어떻게 반응할지가 궁금했을 뿐이지.
이윽고 들려오는 대답.
“네! 노코 가도 대여!”
절대 안 된다고 말하거나 울먹일 줄 알았는데.
생각 외로 너무 단호한 답변이었다.
뒤이어 더 깜짝 놀라게 만드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우영이오빠..”
가장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우영이를 향해 연두가 건넨 한 마디 때문이었다.
“느림보.”
“…?”
처음이었다.
연두가 역으로 먼저 우영이를 향해 도발하는 모습을 보는 건.
우영이도 잘못 들은 건가 싶은지 눈이 땡그래졌다.
“무.. 뭐?”
“헤헤. 우영이오빠 느림보에요! 느림보 거부기!”
느림보에 거북이까지 추가됐다.
우영이가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
“땅콩. 너 그런 말 어디서 배웠냐.”
“동하책에서요!”
왜인지 알 거 같은 기분이었다.
연두가 읽은 동화책이 뭔지.
역시나 이어지는 말에서 또 다른 동물이 등장했다.
“연두는 토끼에요! 거부기보다 훨씬 빨라요!”
이쯤에서 드는 의문이 있었다.
연두는 동화책을 끝까지 읽은 걸까.
읽었다면 둘의 경주가 어떻게 끝나는지 알고 있을 텐데.
“하, 하하. 그래. 어디 보자. 누가 더 빠른지.”
역시 우영이답게 도발에 완전히 응한 모습이다.
이런 걸 뭐라더라.
‘자강두천.’
그래. 요즘 말로 자강두천이었다.
풀어 말하면 자존심 강한 두 천재(?)의 대결.
이렇게 동화책 밖에서 시작됐다.
토끼 연두와 거북이 우영이의 2차전이.
***
대결은 정확히 동화책과 같은 양상으로 흘러갔다.
연두는 토끼처럼 총총 뛰어올라가 거리를 더 많이 벌렸다.
그에 조금도 개의치 않고 우영이는 속도를 유지했다.
“헉. 허억..”
이게 그 결과였다.
연두의 거친 숨소리가 이제는 코앞에서 들렸다.
틀렸다. 완전히 체력이 다한 연두였다.
‘그럴 만 하지.’
천천히 올라갔다면 모를까.
짧은 보폭으로 계속 달려서 올라가는데 힘이 안 빠지는 게 이상했다.
그게 가능하면 우리 연두 운동선수 시켜야지.
‘안쓰럽긴 하지만.’
나는 가만히 뒷모습을 지켜보며 걷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연두에게 나름의 교훈이 될 거 같아서였다.
서두르는 것보다 천천히 가는 게 더 빠른 길일 수 있다는 걸.
‘또 한 가지.’
너무 귀엽다는 이유도 있었다.
오빠에게 지지 않으려고 힘든 와중에도 끙끙거리며 올라가는 모습이.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우리 토끼님?”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에 연두가 흠칫 몸을 떨었다.
우영이가 말을 이었다.
“저 멀리 있었던 거 같은데 언제 이렇게 가까워졌지? 손 뻗으면 닿겠는데? 아까 뭐라고 했더라? 느림보 거북이?”
“…”
역시 일말의 자비도 없는 녀석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우영이의 손이 연두에게 닿았다.
“잡았다.”
“..!”
거의 반사적으로 연두는 말했다.
“잘모태써요..”
“자, 그럼 이제 느림보는 누굴까?”
“…두.”
“응? 잘 안 들리는데?”
“연두요..”
기어코 패배 선언까지 받아내고야 마는 우영이였다.
그때였다.
우영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잠깐. 땅콩 너 울어?”
예상 못했는지 세상 당황한 목소리다.
정확히 말하면 연두는 우는 게 아니라 울먹이고 있었다.
그러더니 우영이와 나를 번갈아 보며 말한다.
“…… 가지 마세요.”
“응?”
“연두 마니 힘든데.. 노코 가지 마세요…”
승부에서 져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까 힘들어하면 놓고 간다는 말을 담아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생각 못했어.’
어쩐지 너무 열심히 올라간다 했네.
우영이가 수습에 나섰다.
“.. 아, 안 놓고 가. 바보냐? 그냥 한 말이지 그걸 진지하게……”
횡설수설하는 걸 보니 잔뜩 당황한 게 틀림없다.
그 사이 나는 연두를 번쩍 안아 올렸다.
“당연하지.”
“으응?”
“말이 안 되잖아. 아빠가 연두를 놓고 간다는 게.”
그제야 연두의 표정에 안도감이 번진다.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힘들다고 했지?”
“.. 네.”
아무래도 지금인 거 같았다.
내 하체를 검증할 타이밍.
“아빠한테 업혀.”
“연두 무거운데……”
“괜찮아.”
스윽.
연두는 솜털처럼 가벼웠다.
***
“아빠!”
“응?”
“저기! 저기..!”
업힌 와중에 갑자기 어딘가를 가리키며 잔뜩 흥분한 연두.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
휘리릭.
나무를 타고 있는 녀석이 있었다.
“다람쥐네.”
“도토리 먹는 다람지에요..?”
“응, 그 다람쥐야.”
“우아…”
처음으로 만난 숲 속 동물.
비로소 숲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우리는 속도를 올려 빠르게 산을 올라갔다.
‘역시.’
이로써 증명됐다. 내 하체는 약하지 않다는 게.
벌써 연두를 업은지 한참이 흘렀는데 딱히 힘들지 않다.
그냥 등산가방을 멘 정도의 느낌이었다.
터벅. 부스럭.
그대로 한참을 등산로를 따라 올라갔다.
간판이 보였다.
[1km]곧 도착이었다. 참고로 목적지는 산 정상이 아니었다.
잘은 몰라도 꼭대기에 오르려면 하루종일 걸어야 할 터였다.
어쩌면 도중에 내일이 올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높은 산이니까.’
따라서 애초에 정상에 오를 생각은 없었다.
산에 오기로 한 목적도 정상을 찍는 게 아니니 말이다.
목적지 역시 다른 곳에 위치했다.
“거의 도착했어.”
“네.”
이 녀석, 의외로 체력이 좋단 말이지.
지금도 딱히 힘들어하는 기색이 느껴지지 않는다.
조금 더 걸은 끝에 마침내 도착했다.
“햐.”
목적지 바로 옆에 있는 전망대였다.
휴식도 취할 겸 잠깐 이 곳에서 해야 할 게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 아닌가.
슥. 슥.
가방에서 준비해 온 것들을 꺼냈다.
간단한 과일과 보온병, 그리고 대망의 컵라면이었다.
산에서 먹는 음식은 라면만 한 게 없었다.
“라면 좋아해?”
“네.”
다행히 라면은 좋아하는 모양.
매운 걸 못 먹는 연두를 위해서는 특식을 준비했다.
이름하여 사리곰탕면이었다.
‘최근 들어서는.’
연두도 아주 조금씩 매콤한 음식에 도전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은 무리였다.
일반적인 라면의 맵기를 감당하는 건.
해결책은 간단했다. 안 매운 라면을 먹으면 된다.
‘건강식은 아니지만.’
애초에 라면은 건강하려고 먹는 게 아니다.
오늘같은 날은 먹어줘야 했다.
컵라면을 맛있게 끓이는 방법은 별 거 없었다.
좌르르.
선보다 살짝 아래까지 물을 부어주는 게 포인트였다.
보글. 보글.
뚜껑을 덮었다.
기다리다가 시간에 맞춰 뚜껑을 열었다.
동시에 터졌다. 침샘이.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기가 막힌 비주얼이었다.
“연두야.”
“네에.”
“아빠가 신기한 거 보여줄게.”
입맛을 다시는 연두의 앞에서 둥그런 컵라면 뚜껑을 손에 쥐었다.
반으로 접고, 또다시 반으로 접는다.
그다음 중간에 손을 넣어 펼치면 완성된다.
짠.
뚜껑으로 만드는 간이 컵이었다.
종이컵을 써도 되긴 하지만 이게 또 감성이 있지 않은가.
신기해하는 연두의 손에 쥐어줬다.
“여기 담아서 식혀먹으면 돼.”
이후에는 먹방이 펼쳐졌다.
등산을 하는 이유는 이 순간을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산에 올라서 먹는 음식은 아래에서 먹는 것보다 체감상 최소 두 배는 맛있으니까.
후루룩.
후룩.
면치기 소리가 이어졌다.
연두는 물론이고 우영이도 국물까지 깡그리 한 컵을 비웠다.
“진짜 마시따…”
연두의 표정은 감동 그 자체였다.
헤 벌린 입에 방울토마토 하나를 쏙 넣어줬다.
입을 다물자 다람쥐처럼 바로 볼이 빵빵하게 부푼다.
오물. 오물.
입가심도 빼놓을 수는 없지.
우영이에게도 준 뒤 나도 입에 방울토마토를 던져넣었다.
청량한 과즙이 입 안에서 터졌다.
‘죽이네.’
이로써 짧지만 임팩트 넘쳤던 식사가 끝났다.
***
식사도 마쳤으니 이제 남은 건 하나였다.
“가자.”
“네, 아빠..”
우영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목적지는 바로 옆이었다.
정석적인 등산로를 벗어나, 좁게 나 있는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걸어가면 나오는 장소.
터벅. 터벅.
얼마나 걸었을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수록 길 주변이 나무로 무성해지는 게 느껴졌다.
울창한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기분 좋은 바람.
바스락.
등산화 아래로는 나뭇가지들이 밟혀 부서지는 소리를 냈다.
슬슬 느낌이 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머릿속으로 그리던 숲의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툭.
얼마 후, 셋의 발걸음이 동시에 멈췄다.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절로 웅장해지게 만드는 진짜 ‘숲’의 모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