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331)
331화. 팬서비스
게임 속에서의 하룻밤은 꽃밭을 만들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보라색 파꽃부터 시작해서 각양각색의 꽃과 풀잎들이 정원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차원의 화면 속이긴 해도 무척 아름다웠다.
‘이제야.’
비로소 초록연두구역의 완성인 느낌이라 해야 할까.
설렘으로 가득 찬 연두의 표정.
그걸 실시간으로 보는 시청자들은 채팅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연두 표정 봐.. 하윽.. 내 심장…
-갓겜 인정합니다.
-꽃길만 걷자 연두야… :하트1:
-ㄹㅇ 힐링 그 자체다. 갓오레 때문에 피폐해진 정신 단번에 치유되네.
-초록님이 금손인 것도 한몫함 ㅋㅋ
-시청자 치솟는 거 봐 ㅋㅋㅋ 레전드 방송은 확정이네.
실제로 시청자 수가 급속도로 치솟고 있었다.
그에 비례해서 부담감도 상승했다.
차라리 의도적으로 시선을 두지 않는 편이 좋을 거 같았다.
‘그래.’
애초에 시청자 수를 생각하며 켠 방송이 아니었다.
연두와 함께 마이크래프트를 하는 모습을 시청자들과 공유하기 위함이지.
그렇다면 크게 의식할 필요는 없었다.
연두와 함께하는 이 시간에 집중하기로 하자.
“진짜.. 진짜진짜 예뻐요, 아빠..”
이미 연두는 그러고 있는 거 같으니까.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그래?”
“네. 보라색, 노란색, 빨간색, 그리고.. 초록색!”
착각이 아니라면 초록색을 유독 강조하는 거 같은데.
그렇다면 나도 강조할 색깔이 있었다.
꽃 사이사이를 메우고 있는 풀잎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연두색도 있는데?”
“네! 연두색이랑 초록색이랑 가치 이써요!”
“그러네, 같이 있네.”
서로 떨어지지 않는 모습이 어떤 부녀가 떠오르는데.
색깔로까지 꽁냥거리는 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 굳이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대신 시청자의 말을 빌려 얘기했다.
“어디.. 꽃길 한 번 걸어볼까, 연두야?”
“꽃길..?”
“응.”
방향키를 눌러 천천히 걸어갔다.
터벅. 터벅.
걸어가는 건 마이크래프트 특유의 캐릭터인 목각인형이지만.
꼭 실제로 꽃길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든다.
마찬가지인지 연두의 입가에서 미소가 떠날 줄을 몰랐다.
“연두는 조아요..”
“뭐가?”
“꽃길!”
해맑게 얘기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말 그대로 연두가 쭉 꽃길만 걸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런 와중 또 낯익은 친구가 눈에 들어왔다.
“양이다!”
이 녀석은 잊을 만하면 등장하네.
“아빠! 양이 아빠랑 연두 집에 와써요!”
꿀. 꿀.
뒤이어 돼지도 모습을 드러냈다.
뭐지. 꽃향기라도 맡고 찾아온 건가.
전에는 집터를 장악하고 있어서 불가항력이었지만, 지금은 딱히 방해가 되지 않았다.
‘연두도 좋아하고.’
따라서 무의미한 살상은 자제할 생각이었다.
그때 들려오는 고래의 목소리.
“형! 연두야! 집 한 번 들어와 봐.”
한동안 조용하다가 낸 목소리였다.
끼익.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집 안이 더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없었던 조명이 생겨나고 갖가지 가구도 보이고.
고래가 열일해 준 모양이었다.
‘그건 그렇고.. 잘 꾸몄네.’
어설픈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실제로 숲속에 이런 집이 있다면 장난이 아닐 거 같은데.
“고마워, 고래야.”
“에이, 뭘. 연두는 마음에 들어?”
“네! 완전 마음에 드러요!”
“크하하! 이게 나야!!”
알 수 없는 말을 뱉으며 고래가 말을 덧붙였다.
“연두도 한번 해 봐.”
“머를요..?”
“이게 나야!”
반복까지 하는 걸 보니 유행어인 모양이다.
약간 자뻑(?)같은 걸 할 때 쓰이는 유행어가 아닐까.
연두는 조금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
“이, 이게 나야..!”
“푸흣.”
나와 고래가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같은 말이긴 한데 느낌이 너무 달라서 코믹스럽게 느껴졌다.
채팅창 반응도 뜨거웠다.
-ㅋㅋㅋㅋㅋㅋㅋ 하이라이트 하나 나왔네.
-고래 은근슬쩍 자기 유행어 전파하는 거 보소 ㅋㅋ
-근데 너무 귀여워.. 이런 거 좀 많이 시켜줘…
-고래 미치도록 부럽다… 나도 연두랑 멀티하고 싶다…
-난 멀티 했는데 ㅋㅋ 꿈에서.
-이게 나야! 이게 연두야! 이게 천사야! 이게 세계 최고 귀요미야!!
유투브 댓글창을 실시간으로 보는 기분이다.
주접이 마구 쏟아졌다.
***
한동안 초록연두구역에서 게임을 즐기다가 세계관 이동을 결정했다.
갑자기 무슨 놈의 세계관 이동이냐고?
고래의 초대에 의해서였다.
“형.”
“응.”
“내가 만든 세계 한번 놀러 올래?”
마이크래프트의 재미 포인트 중 하나였다.
서로의 세계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
어떻게 보면 방금은 나와 연두의 세계관에 고래를 초대한 셈이었다.
‘집도 다 꾸몄고.’
충분히 즐겼으니 반대로 초대받아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그렇게 고래의 세계로 놀러 가기로 결정했다.
마이크래프트 비제이답게 고래가 지금껏 만든 세계는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자체적으로 투표를 진행하는 거 같았다.
“형님들. 연두랑 초록님 초대할 곳으로 어디가 제일 좋을 거 같나요?”
“성이요? 안 돼요. 박쥐 나오잖아요. 연두 박쥐 무서워한다고요.”
“뭐라고요? 좀비? 방송 종 칠 일 있어요?”
-자객이다!
-쳐 내! 이제 시작인데 방송을 끝내려고 하네, ㅁㅊ놈이.
-진지하게 추천하라고. 장난치지 말고.
-초콜릿공장 어떰? 연두와 초콜릿공장 ㅋㅎㅋㅎ
고래의 채팅창은 우리 채팅창에 비해 다소 매운맛이었다.
얼마간의 투표 끝에 들려오는 목소리.
“오, 좋다! 거기로 가죠!”
마음을 정한 듯 고래가 나를 향해 말했다.
“완성된 곳은 아니긴 한데, 초대할 테니까 넘어와, 형.”
“응.”
아직 어떤 세계인지는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초대장에 승낙 버튼을 눌렀다.
동시에 펼쳐지는 세계.
“어..”
어딘가 낯익은 공간이었다.
펑펑 눈이 내리는 하늘과 그 속에 우뚝 솟아있는 웅장한 성.
특징은 일반적인 성의 모습이 아니었다는 거다.
얼음.
얼음으로 이루어진 성이었다.
마치 연두와 함께 본 얼음왕국에서 엘사가 서 있던 곳처럼.
그 생각은 완벽히 적중했다.
“어서 오세요. 고래의 얼음왕국에.”
“.. 이걸 네가 다 만든 거야?”
“응.”
스케일 자체가 달랐다.
굳이 비교하고 싶지는 않지만 방금 있던 곳은 애들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역시 마이크래프트 비제이네.
이걸 다 만드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지.
“오늘만큼은 엘사가 아니라 연두공주를 위한 성이야.”
고래의 말을 받아 내가 연두를 향해 말했다.
“.. 그렇다는데?”
연두는 얼음왕국의 비주얼에 반쯤 넋이 나간 상태였다.
고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다시피 성이 아직 미완성이야. 디자인을 어떻게 할지 고민이 많아서.”
“그렇구나.”
확실히 배경은 완벽한데 성이 미완성이긴 했다.
그때 의외의 말이 들려왔다.
“형이 연두랑 같이 완성해봐도 되고.”
“그렇게 마음대로 손대도 돼?”
“응. 어차피 다 세이브돼서 막말로 성을 박살 내도 상관없어, 크하하!”
“아..”
세이브 기능의 캐리구나.
하기야 이런 완성도의 세계를 아무런 대책 없이 남의 손에 맡길 리가 없지.
아무튼 상관없다면야 몸을 사릴 이유는 없다.
“그럼 마음 놓고 뛰어논다?”
“응. 그리고……”
고래가 씩 웃으며 얘기했다.
“혹시 나중에 연두랑 또 마이크래프트 하면 얘기해. 내가 내 세이브 파일 다 공유해 줄게.”
“세이브 파일이라면……”
“지금까지 만든 세계들. 원래 아무한테도 공유 안 하는데 형이랑 연두라면 뭐.. 크하하!”
“하하, 영광인데?”
쉽지 않은 얘기일 터였다.
몇 년에 걸쳐 축적한 데이터를 전부 공유하겠다는 건.
아니나 다를까 고래의 채팅창은 ‘극락’이 도배되고 있었다.
“그럼 연두야.”
“네에.”
“아빠랑 같이 성 한번 완성시켜 볼까?”
“조아요!!”
활용할 자재는 투명하고 푸른 얼음벽과 눈 덮인 흰색 벽이었다.
얼음왕국의 성을 연상하며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웅장함을 더해주는 얼음계단부터 시작해서 하늘을 뚫을 듯한 뾰족한 성의 꼭대기까지.
“와.. 형 진짜……”
“응?”
“다시 봐도 안 믿긴다. 마크 처음 한다는 게. 그냥 이대로 형 버전으로 세계 완성해도 되겠는데?”
채팅창에서도 낯간지러운 칭찬들이 쏟아졌다.
-ㄹㅇ 미쳤다.
-망설임 1도 없이 휙휙 만드는데 완성도 보소 ㅋㅋ
-진짜 강좌 보고 만드는 거 같네.
-ㄴㄴ 강좌 보고 만드는 나보다 훨씬 잘 만듦 ㅋㅋㅋㅋ
-이게 재능러의 삶인가?
-마크를 좋아하는 똥손은 웁니다 ㅠㅠㅠㅠㅠ
애써 외면하며 속성으로 성을 완성했다.
그 가운데 엘사처럼 선 캐릭터.
“연두야.”
“네!”
“성 완성했으니까 아빠가 부탁 하나 해도 돼?”
“어떤 부타기요..?”
“노래 하나만 불러주라. 얼음왕국 노래.”
조금 고민하는 듯하더니 연두가 답했다.
“아라써요! 그런데……”
“그런데?”
연두가 세상 진지한 표정을 머금은 채로 물었다.
“머 불러요?”
“응?”
“가치 눈싸람 만들래랑 렛잇꼬 중에 머 불러요…?”
“흐흡.”
부를지 말지 고민한 게 아니라 이걸 고민한 건가.
예상 못 한 반전에 또 한 번 웃음이 번졌다.
채팅창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전자! 전자!
-닥후지! 렛잇고가 근본이지.
-장난하냐? 연두한테는 전자가 찰떡이라고.
-자꾸 전자전자하는 놈들 주전자로 뚝배기 깬다.
눈사람파와 렛잇고파의 격렬한 대립이었다.
***
늘 팬서비스는 확실한 연두였다.
‘같이 눈사람 만들래’로 시작해서 ‘Let it go’까지.
차례로 부르며 양측을 모두 만족시켜줬다.
이후 나와 연두는 신나게 얼음왕국 속을 뛰어놀았다.
‘재밌네.’
워낙 환경과 세계가 다양하다 보니 지루할 틈이 없었다.
한참이 지나고서 나는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연두의 표정에 아쉬움이 번졌다.
채팅창은 말할 것도 없었다.
울음 이모티콘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ㅠㅠ’가 떠올랐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이대로라면 어린이날이 지나가 버릴지도 몰랐다.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처럼 지금이 그 타이밍이었다.
“고마웠어, 고래야.”
“에이, 뭘. 나야말로 고맙지. 나락에서 극락 간 것도 모자라서 같이 멀티까지 했는데, 크하하!”
“다음에 또 같이하자.”
“빈말 아니지?”
“당연하지.”
그렇게 고래와 빠이빠이한 뒤 마이크래프트를 종료했다.
다만 이대로 끝내는 건 아쉬운 감이 있었다.
게임을 끈다고 방송이 꺼지는 건 아니었으니까.
‘마침.’
연두부에게 묻고 싶은 게 존재했다.
시청자들 대부분이 연두부인 만큼 지금이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나는 연두를 무릎에 앉힌 채로 말했다.
“방송을 끄기 전에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연두부..들한테.”
나름 용기 내서 붙인 호칭이었다.
내 말 한마디에 채팅창은 격하게 들썩였다.
-뭔데요? 초록님 질문 딱 대!!
-뭐든지 물어보세요 ㅎㅎ 대답 대기즁…
-연두부라고 불러 줬다.. 심쿵… :하트1:
-그가 내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는 나는 단지 퍽퍽한 두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는 비로소 말랑말랑 ‘연두부’가 되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생각 이상으로 호칭에 격하게 반응하는 연두부들이었다.
한편 연두는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시청자분드리 연두부에여..?”
아직 연두는 100% 매치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시청자와 연두부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우아……”
몰랐던 사실을 알았다는 표정.
그 모습에 웃음 짓다가 본론을 꺼냈다.
“제가 궁금한 건 다름이 아니라, 연두부 여러분이 연두튜브나 그 밖에서 특별히 원하는 콘텐츠가 있을지 궁금해서요.”
물론 지금처럼 영상을 올려도 문제는 없었다.
채널이 계속 성장하고 있는 데다가 영상에 대한 반응도 좋았으니까.
허나 그와 별개로 듣지 않을 이유 또한 없었다.
‘연두부의 의견.’
기왕 올릴 거라면 연두부가 원하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그래서 건넨 물음이었다.
연두의 어떤 모습을 보고 싶어 할지 궁금한 마음에.
곧바로 음성이 이어졌다.
“연두 이스 뭔들.”
영어가 섞여 있음에도 세상 정직한 발음.
전자녀 시스템이었다.
시청자들이 쓰는 채팅을 기계음으로 읽어주는 시스템.
뭐든 좋다는 말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전자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연시레 케미용!”
“댓글 읽는 거 보고 싶어요! 연두부 댓글 엄선해서 연두가 직접 읽는 콘텐츠!”
“요즘 핫한 룩북 영상이요!”
“예능 나가는 거 한 번 더 봤으면.. 흐아… 아직도 최고의 한 끼 틈만 나면 돌려봐요.”
“아는 형아 나가면 레전드일 듯.”
“배트맨이 돌아왔다!”
“개인적으로……”
생각지도 못한 콘텐츠가 잔뜩 등장했다.
이미 촬영을 마치고 업로드를 기다리는 룩북 영상도 있었으나 모르는 척했다.
스포를 할 수는 없었으니까.
‘진작에 물어볼걸.’
생각만 해도 재미있을 거 같은 아이디어가 많았다.
예능 출연은 섣불리 결정할 수 없지만 그 밖의 것들은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할 수 있었으니까.
원래 이걸 의도하고 켠 방송은 아니었는데.
뜻밖의 수확을 얻어가는 느낌이었다.
“감사합니다. 최대한 기억해서 앞으로 좋은 모습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자, 연두도 인사할까?”
“네에.”
화면을 보며 연두가 인사했다.
“고마씁니다, 연두부 여러분..!”
“하하.”
이런 인사말은 어디서 배운 건지.
금세 호칭을 적용해서 센스 있게 건네는 연두의 인사였다.
다시금 채팅창에 도배되는 단어.
-극
-락
-극
-락
-락
-극
…………
이렇게 극락 속에서 마무리됐다.
어린이날 방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