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336)
336화. 쿠폰북
“저즈면 안 대니까..”
보라색 카네이션.
비와 함께 등장한 뜻밖의 선물이었다.
토독. 톡.
가느다란 빗방울이 떨어진다.
우산 안으로는 가슴팍에 꽂힌 카네이션과 함께 나를 올려다보는 연두의 환한 웃음이 들어온다.
그 모든 게 겹쳐 보이며 묘한 기분이 느껴졌다.
뭉클하다고 해야 할까.
‘생각 못 했어.’
정확히는 의식하지 않고 있었다.
5월 8일이 어버이날이라는 건 알았지만, 그 날에 내가 무언가를 받는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으니까.
어버이날에 대한 내 기억은 하나뿐이었다.
어릴 적에 학교에서 아빠에게 줄 카네이션을 접었던 기억.
그마저도 굉장히 흐릿하고.
“추카해요, 아빠..”
이제는 새로운 기억이 하나 더 생길 예정이다.
자녀로서가 아니라 어버이로서 영원히 남을 소중한 기억이.
아마 이 장면은 절대 잊지 못할 거 같았다.
사락.
애써 태연하게 미소를 띠며 물었다.
가슴팍의 카네이션에 살짝 손을 댄 채로.
“이건 연두가 접은 거야?”
“네.”
“역시 그렇구나.”
역시라고 한 이유는 간단했다.
표현이 조금 우습긴 하지만 카네이션은 주름이 무척 많았다.
가방에 들어있던 걸 꺼내서인 것도 있겠지만, 그걸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주름들이 존재했다.
‘한 번에 만든 게 아니야.”
한 번에 접었다면 훨씬 더 깔끔하고 정교한 모양의 카네이션이 만들어졌겠지.
그와는 정반대였다.
최소 수십 번은 접었다 편 흔적이었으니까.
헤매고 또 헤맨 끝에, 시련(?) 끝에 탄생할 법한 카네이션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오히려 그래서 더 기뻤다.
예쁘게 접으려 입술을 앙다물고 집중했을 연두의 시간들이 그려졌으니까.
그 사이 연두가 다시 자그맣게 입을 열었다.
“미아내요, 아빠..”
“응?”
“연두는 색종이 잘 못 저버서.. 예쁜 카네이선 못 만들어써요…”
아쉬움이 가득 느껴지는 목소리.
그 뒤에는 나도 미처 생각지 못한 중얼거림이 이어졌다.
“색종이도 엄청 마니 썼는데……”
“.. 색종이를 많이 썼다고?”
“네에.”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이 한 장 말고도 시도한 많은 종이들이 있었을 거라고는.
풀 죽은 표정의 연두를 보며 말했다.
“그럼 연두야.”
“네.”
“마음에 안 들어서 계속 다시 접은 거야?”
끄덕.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이게 마지막으로 접은 거겠네?”
“네.”
“이건 연두 마음에 들었어?”
도리. 도리.
예상대로 도리도리다.
아까 말한 것처럼 꼬깃꼬깃해 예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연두는 숨을 휴우 내쉬며 말했다.
“또 접고 시펐는데..”
“그런데?”
“보라색 색종이가 하나도 업써져써요..”
“하하, 하나도?”
“네.”
더 접을 종이가 하나도 없었다니, 얼마나 많이 시도한 걸까.
그 모습이 그려지며 애틋한 마음에 미소가 번졌다.
한편 또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으니는 엄청 예뻤는데.. 카네이선…”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시은이가 색종이를 기깔나게 접는다는 얘기는 여러 번 들은 적 있으니까.
동시에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연두야.”
“네, 아빠.”
“시은이한테 도와달라고는 안 했어?”
묻고 나서야 아차 싶었다.
의도와 달리 듣는 입장에서 서운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그런데 연두는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안 해써요.”
수줍은 듯 말을 덧붙인다.
“주고 시퍼서..”
“응?”
“연두가 만드러서 주고 시퍼서요.. 아빠한테…”
평소에는 시은이나 주변 친구에게 곧잘 도움을 구하는 연두였다.
전에 나를 도와주려 결성했던 삼총사도 그렇고, 이번에 브레멘음악대를 보고 만든 단비음악대도 그렇고.
연두는 뭐든지 혼자 하는 것보다는 함께하는 걸 좋아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바로 옆에 숙련된 종이접기 달인인 단짝 시은이가 있었을 텐데도.
그런데도 힘겨운 길을 선택한 거다.
방금 말대로 스스로 만들어서 주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쩌지.’
사랑스러워서 당장 안아주지 않고는 못 배길 거 같았다.
우산 들고 있어서 안 되는데.
동시에 점점 더 값지게 느껴졌다. 가슴팍에 꽂혀있는 카네이션이.
***
포옹은 잠시 미뤄두고 입을 열었다.
아까부터 하려던 말을 꺼내기 위해.
“연두야.”
“네.”
“아쉬워하지 않아도 돼.”
“..왜여?”
아리송한 표정의 연두를 향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연두는 이 꽃이 예쁘지 않다고 생각해서 아쉬워하는 거잖아. 맞지?”
“네, 마자요..”
“그런데 말이야. 선물이라는 건 받는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지가 중요한 거거든.”
“받는 사라미요..?”
“응. 그리고 이 꽃은 연두가 아빠한테 선물로 준 거잖아. 그럼 받는 사람이 누구지?”
답정너인 질문이었다.
바로 연두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빠. 아빠에요..”
“맞아. 그러니까 아빠가 이 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제일 중요한 거지.”
“…”
나를 빤히 바라보는 연두.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이어질 내 말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씩 웃으며 입을 뗐다.
“예뻐.”
“.. 네?”
“가장 예뻐. 아빠가 살면서 본 어떤 꽃보다도.”
놀라서 토끼눈이 된 연두를 향해 주어를 덧붙였다.
“연두가 준 이 카네이션이.”
진심이었다.
살면서 이 카네이션보다 예쁜 꽃을 본 기억은 없으니.
연두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말한다.
“아, 아닌데..”
“왜?”
“마니 안 예쁜데.. 아빠가 연두한테 준 안개꼬치 더 더 예쁜데..”
“푸흣.”
여기서 안개꽃이 비교 대상으로 등장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분명히 크리스마스 때 연두한테 선물로 준 꽃이었지.
나는 장난스레 똑같이 말을 받았다.
“아닌데?”
그리고선 웃으며 말했다.
“안개꽃도 예쁘지만 아빠는 연두가 준 이 꽃이 훨씬 예뻐.”
아까 말했듯 선물은 받는 사람이 어떻게 여기는지가 중요하다.
연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이 카네이션이 가장 예뻤다.
혼란스러워하는 연두를 향해 말했다.
“이렇게 예쁜 선물도 받았으니까..”
“…”
“원하는 거 하나 말해봐, 연두야. 뭐든지 들어줄게.”
나도 모르게 입 밖에 나갔다.
불과 3일 전, 어린이날에 뱉었던 멘트가.
“안 대여!”
그런데 뜻밖의 반응이 돌아왔다.
이 타이밍에 이렇게 단호한 연두의 반응이 나올 줄이야.
의아해하는 나를 향해 연두가 말했다.
“선생니미 그래써요!”
“뭐라고 하셨는데?”
“어버이날은.. 부모니미 주인공인 날이라고…”
3일 전에 내가 한 말에서 주어만 바뀌었다.
어린이에서 부모님으로.
이윽고 연두는 단호하게 덧붙였다.
“그러니까 오늘은.. 아빠가 주인공이에여..!”
“하하, 아빠가?”
“네.”
장난스레 말을 건넸다.
“그럼 뭐야? 오늘은 연두가 아빠가 원하는 거 하나 들어주는 거야?”
왜인지 연두는 대답하는 대신 알쏭달쏭한 한 마디를 뱉었다.
“또 이써요..”
“응?”
“아빠 줄 선물.. 또 이써요..!”
그렇게 말하고서 연두는 손을 넣어 다시 뒤적이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은 선물주머니 같은 가방 속을.
얼마 지나지 않아 모습을 드러내는 네모 모양의 형체.
“여기..”
전혀 예상 못 한 또 하나의 선물이었다.
***
또 하나의 선물을 받아들고 집에 도착했다.
“흐흐.”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내가 이런 걸 다 받아보게 될 줄이야.
스윽.
먼저 카네이션을 서랍 속에 살포시 넣었다.
연두에게 비밀상자가 있듯이 이곳이 내게는 비밀장소였다.
아빠가 준 색연필부터 시작해서 소중한 물건이 가득 들어있는.
탁.
서랍을 닫고 거실로 나섰다.
소파에 앉으니 누렁이가 쏜살같이 달려와 옆에 자리를 잡는다.
“요 녀석, 안 돼.”
“냐아..”
“언니 자리 비워둬야지.”
잠깐. 막상 누렁이를 들어서 무릎 위로 옮기려니 헷갈린다.
연두 자리가 내 옆자리인지 무릎 위인지.
‘몰라.’
이미 든 이상 내려놓기도 뭐하고.
이번만큼은 특별히 내 무릎 위를 요 녀석에게 선사하기로 했다.
지금 내가 어울리지 않게 자뻑을 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주인공이니까.’
연두도 공인했듯 오늘만큼은 내가 주인공이니 말이다.
나는 연두의 부모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누렁이의 부모이기도 했다.
따라서 어버이날은 이 녀석도 해당이라는 뜻.
“그러니까.. 너도 말 잘 들어야 된다?”
“냐아!”
“알아듣고 대답하는 거 맞지?”
휙. 휙.
재차 묻는 말에는 대답 없이 꼬리만 휙휙 흔든다.
가만 보면 일부러 이러는 거 같기도 하단 말이지.
역시 의심이 간다.
‘이 녀석.. 고양이가 아닐지도 몰라.’
녀석을 무릎에 두고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눈앞에 펼쳤다.
연두가 준 두 번째 선물.
네모난 종이 위에는 커다랗게 세 글자가 쓰여있었다.
[쿠폰북]그렇다.
두 번째 선물은 바로 어버이날 쿠폰북이었다.
일정한 크기로 나뉜 칸 안에 아기자기한 그림과 글자가 쓰여 있었다.
연두의 글씨체와 그림체였다.
‘이걸 쓰면 된단 말이지.’
쿠폰을 사용하면 해당 내용을 연두가 들어주는 구조였다.
보기만 해도 웃음이 번지는 쿠폰 가득이었다.
찰칵. 찰칵.
기념사진을 빼놓을 수는 없지.
연달아 사진을 찍는 사이, 쿠폰북 제작자인 연두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빠..”
“일로 와, 연두야.”
비워둔 옆자리에 연두가 걸어와 앉았다.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빠는 이거 보고 있었어.”
“아..”
수줍은 표정이 떠오른다.
그런 연두를 향해 궁금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근데 연두야.”
“네.”
“이 쿠폰. 연두가 생각해서 만든 거야?”
“연두도 생각하고.. 선생니미랑 친구드리랑 가치 생각해서 만들어써요..”
확실히 그래 보이긴 했다.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쿠폰도 보이는가 하면, 연두가 생각해서 넣은 듯한 쿠폰도 보였으니까.
쿠폰북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렇구나. 근데.. 혹시 오늘 안에 다 써야 하는 거야?”
만약 그렇다면 되게 아쉬울 거 같았다.
이런 건 아껴서 적재적소에 하나씩 사용하는 맛이 있는데.
다행히 연두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여!”
“그럼?”
“내일도 써도 대요..”
“모레는?”
“모레도요..!”
기한이 없다는 뜻이었다.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다음 질문을 던졌다.
“또 궁금했던 게 있는데.”
“네에.”
“이 쿠폰 옆에 있는 숫자는 뭐야?”
사실 이게 가장 궁금했다.
각 쿠폰별로 1부터 10까지의 숫자가 쓰여있는데 뭘 나타내는 건지 감이 오지 않는다.
지웠다 다시 쓴 흔적도 보이고.
숫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연두가 대답했다.
“이만큼..”
“응?”
“이만큼 쓸 수 이써요.. 연두 쿠폰…”
“아! 그러니까.. 이 숫자만큼 쓸 수 있다는 거지?”
“네..”
1회권이 아니었다니.
내 입장에서는 이보다 좋을 수가 없었다.
먼저 한 쿠폰으로 시선이 향했다.
[뽀뽀 쿠폰]분홍색 하트와 함께 ‘쪽’이라는 의성어가 쓰여있는 뽀뽀 쿠폰.
중요한 건 숫자였다.
-10
“아싸!”
이번에는 입 밖으로 쾌재가 나왔다.
최고 숫자인 10회권이라니.
오늘부터 럭키세븐이란 말은 없다. 럭키 텐이다.
스트리밍에서는 무려 달풍선 333개에 해당하는 리액션인 볼 뽀뽀인데.
‘물론.’
굳이 먼저 말하지 않아도 해주는 볼 뽀뽀이긴 하지만.
언제든 쿠폰을 명분 삼아 뽀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보다 혜자일 수가 없다.
이를테면 지금 같은 경우.
“쓸게.”
“으응..?”
“아빠 지금 쓸게. 뽀뽀 쿠폰.”
그 말과 함께 왼쪽 볼을 톡톡 두드렸다.
평소 부탁할 때와의 차이점은 이렇게 능청스러울 수 있다는 거다.
제삼자가 보기에는 조금 재수 없을 수 있지만 어쩌겠는가.
오늘만큼은 내가 주인공인데.
쪽.
곧바로 볼에 느껴지는 기분 좋은 촉감.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말했다.
“이제 아홉 번 남았네?”
“네에.”
미소를 띠며 다시 뽀뽀 쿠폰을 바라봤다.
아까도 보긴 했지만 숫자에 다소 이상한 면이 있었다.
숫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연두야.”
“네.”
“10을 쓰기 전에 다른 숫자를 썼던 거야? 지우고 다시 쓴 거 같은데.”
의아한 건 숫자 0이 너무 많다는 거다.
100 정도의 숫자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너무 큰 숫자였다.
비록 지워져 흔적만 있는 상태이긴 했지만.
이윽고 연두의 대답이 들려왔다.
“으응.. 지우고 다시 써써요..”
“연두가?”
“네.”
“왜 다시 썼는데?”
연두가 우물쭈물하더니 대답했다.
“선생니미 쓰고 시픈 만큼 숫자 쓰라고 했는데..”
“그런데?”
“연두한테 안 댄다고 해써요. 10까지만 쓸 수 이따고…”
조금 곱씹어본 뒤에야 어떤 상황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푸흣.”
간단한 이야기였다.
쓰고 싶은 숫자를 쓰라 했더니 연두가 너무 큰 수를 써 버린 거겠지.
밸런스가 파괴되니 당황한 선생님이 제한을 둔 걸 테고.
‘이제 보니.’
다른 쿠폰도 마찬가지였다.
지워진 흔적에는 하나같이 숫자 0이 잔뜩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중에 쓴 숫자가 전부 10인 건 아니었다.
연두의 말을 들으니 또 비하인드가 존재했다.
‘전부 10으로 쓰지 못하게.’
쿠폰별로 다른 숫자를 쓰도록 제한을 두신 거 같았다.
마침 쿠폰도 총 10장이었고.
조금 아쉽긴 하지만, 쿠폰의 소중함을 알기에는 딱 적합한 밸런스였다.
‘물론.’
이 순간 가장 귀여운 건 연두였다.
쓰고 싶은 숫자를 쓰라는 말에 신이 나서, 적을 수 있는 가장 큰 수를 적었을 걸 생각하니.
토라져서 숫자를 지우는 모습도 상상이 됐고.
소리 없이 웃다가 입을 열었다.
낮은 음성으로.
“연두야.”
“네.”
바뀐 목소리 때문인지 연두가 흠칫 어깨를 들썩이며 대답한다.
나는 목소리를 그대로 유지하며 말했다.
“각오는 됐지?”
“가고..?”
“응, 각오.”
이제 쿠폰북에 대해서는 완전히 파악을 완료한 상태.
남은 건 하나였다.
이 쿠폰북을 활용해 한 번 제대로 누려 볼 생각이었다.
일 년에 한 번뿐인 주인공이 된 오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