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347)
347화. 비공식 상담
“왔어, 주원아?”
윤영이 누나가 미소를 띠며 나를 반겼다.
마주 앉으며 답했다.
“응. 누나는 잘 지냈어?”
“나야 뭐.”
그녀는 싱긋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우리 주원이 안부는 물을 필요도 없겠지?”
“무슨 소리야?”
“아아~주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 게 연두튜브에 거울처럼 훤히 보이는데, 뭐.”
굉장히 놀리는 듯한 어투이기는 하지만 부정할 수는 없었다.
순도 100% 진실이었으니까.
민망해진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을 돌렸다.
“누나는 다 좋은데 그거 좀 하지 마.”
“응? 뭐?”
“내 이름 앞에 우리 붙이는 거.”
“아하. 그냥 주원이라 안 하고 ‘우리’ 주원이라 하는 거?”
“… 놀리는 거지?”
굳이 ‘우리’에 강세를 넣는 걸 보면 일부러 놀리는 게 틀림없다.
내 물음에 윤영이 누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한다.
“에이.. 설마! 누나가 그런 거로 놀리고 그럴 사람이니? 잘 알면서.”
미술심리치료사 아니랄까 봐.
아주 상대를 들었다 놨다 하는 데 능하다.
이어서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근데 왜 싫은데? 그렇게 부르는 게.”
이대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는 없지.
마찬가지로 나도 장난스러운 텐션으로 답했다.
“애 취급하는 거 같아서.”
“.. 엥?”
학창시절 때야 누나랑 나이 차이가 크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둘 다 성인이었다.
나름 어른이 된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입장에서 더 이상의 애 취급은 용납 못 한다는 말이다.
“아직 누나 시간이 옛날로 멈춰 있나 본데, 나 이제 스물여섯 살이야.”
“아, 그치. 맞아.”
“친동생인 윤우랑 동갑이라 감이 잘 안 올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녀석보다 정신연령도 훨씬 높고.”
“그리고? 또?”
“심지어 나는 여섯 살이나 된 예쁜 딸도……”
아니, 잠깐만.
뭔가 흐름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기분이다.
어른이라는 걸 설명하는 게 아니라 애가 아니라고 변명하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완전 애 같잖아.’
고개를 들어보니 윤영이 누나는 턱을 괸 채로 내 말을 유도하고 있다.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그래. 여전히 나를 완전히 애 대하듯 하고 있었다.
“.. 누나.”
“흐흣, 미안, 미안!”
그제야 누나는 턱을 괸 손을 풀며 말했다.
“야, 좀 봐주라. 내가 주원이 널 언제부터 봤는데. 기저귀 차고 아장아장 돌아다닐 때부터……”
“내가 윤우를 처음 만난 게 고등학교 입학했을 때인데?”
“.. 헉.”
그 순간 깨달았다.
말로 이 누나를 이겨 먹으려고 하면 안 되겠다고.
도저히 승산이 보이지 않는 강적이었다.
비로소 최윤영은 장난기가 빠진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튼 주원이 네가 성인 되고서 우리가 만난 적이 거의 없잖아.”
“그렇지.”
“그래서 내 머릿속에 주원이 네 이미지는 고등학교 때 모습이 강하단 말이지? 주원이 너도 알다시피 그때의 너는……”
“아, 알겠어! 얘기 안 해도 돼!”
가만히 뒀다가는 기억하기도 싫은 내 과거가 튀어나올 거 같았다.
결국 체념한 나는 말했다.
“그냥 마음대로 불러. 누나 부르고 싶은 대로.”
사실 별 상관은 없었다.
나를 초록이라 부르든, 주원이라 부르든, 우리 주원이라 부르든.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알겠어! 네가 말한 거다?”
“.. 마음대로 하세요.”
이렇게 내 호칭은 굳어진 거 같았다.
***
“흐흐, 맞아. 그때 그랬지. 윤우랑 너 되게 자주 투닥거렸잖아.”
식사가 나오고 자연스레 화제는 과거 이야기로 번졌다.
굳이 나눌 생각은 없는 대화였는데, 막상 나오니 재미있어서 신나서 말을 주고받았다.
어쩌면 윤영이 누나의 특기가 발휘된 덕일지도 모른다.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능력.
“그랬지.”
“윤우 말로는 주먹다짐도 몇 번 했다고 하던데.”
“주먹다짐까지는 아니고, 뭐.”
굳이 옛날에 싸운 얘기를 해서 뭐 하겠는가.
영양가도 없고 딱히 교훈을 얻을 만한 이야기도 아닌데.
그런데 그때.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한 마디가 이어졌다.
“그래? 자기가 항상 이겼다고 하던데.”
“.. 윤우가?”
“응.”
“진짜 윤우가 그렇게 말했다고?”
끄덕. 끄덕.
“허…”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백번 양보해서 비긴 적은 있어도 진 적은 없다.
이 자식. 아무리 친누나라고 해도 그런 거짓말을 치다니.
“누나는 그걸 믿었어?”
“믿었지.”
심지어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한 번 싸우고 나면 얼마간은 주원이가 자기한테 못 까불었다고 하던데.”
“…”
반대로 말해 놨다.
황당해서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동시에 억울했다. 나는 진실을 말할 친누나도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이걸 연두한테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왜? 아니야?”
“맞을 리가 없잖아.”
“그럼?”
“생각해봐. 피지컬적으로 보나 순발력으로 보나 생긴 걸로 보나 누가 더 강할 거 같아?”
“글쎄.. 비슷한 거 같은데.”
“천만에.”
절대 내가 이겼다는 걸 어필하고 싶은 건 아니다.
잘못 알려진 사실을 바로잡고 싶을 뿐.
한참 동안 나는 누나에게 말해줬다. 3년간 이어진 윤우와 내 싸움에 대해.
이렇게 말하긴 하지만 살벌하게 싸운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게 함정이다.
둘 다 싸움을 잘하는 편은 아니었거든.
“.. 알겠어?”
“풉.”
난데없이 입을 가리며 웃음을 터트리는 윤영이 누나.
나는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뭐야. 설마 친동생 아니라고 안 믿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그렇게 어른이라고 그러더니. 아직 애구나 싶어서.”
“…”
그제야 깨달았다.
방금 내가 굉장히 없어 보이는 열변을 토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도 아닌 윤우 녀석과 엮인 탓이다.
“.. 잊어줘.”
마음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을 듯했다.
찬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아, 참.”
그때 무언가 떠오른 듯 또 입을 여는 최윤영.
이번에도 과거 얘기였다.
“그것도 기억난다.”
“뭐?”
“주원이 네가 좋아했던 여자애.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데..”
“아…”
결국 그 얘기까지 나오는 건가.
이게 학창시절 내 지인을 만나면 발생하는 부작용이었다.
뭐라 말하기 전에 먼저 윤영이 누나가 말했다.
“듣기로는 그 애랑 이어지기도 전에 되게 안 좋게 쫑났다고 하던데. 그것도 거짓말이야?”
“그건 맞아.”
사실 애초에 이어질 가능성도 없었다.
서로 좋아한 것도 아니었던 데다가, 한 사건으로 인해 그나마 있던 관계마저 끊어졌으니까.
단지 그뿐인 이야기였다.
수년이 흐른 까마득한 과거 이야기에 불과하다.
“근데 그 여자애도 널 좋아했다던데?”
“그것도 윤우가 그래?”
“응.”
이 녀석 진짜 안 되겠네.
입은 공기처럼 가벼워 말하지 않는 게 없는 데다가 이야기의 태반은 날조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건 아냐.”
“흐응, 그렇구나.”
“근데 그건 왜? 별로 떠올리고 싶은 기억은 아닌데.”
“아, 미안.”
사과하고선 그녀가 말했다.
“그냥 주원이 네 연애사를 들은 건 그게 유일한 거 같아서. 연애사도 아니긴 하지만.”
이건 딱히 놀리는 뉘앙스가 아닌데도 뭔가 씁쓸하다.
팩트폭행이라 그런가.
또 물을 홀짝홀짝 마시는 사이에 최윤영이 말했다.
“만약에 말야.”
한 노래 제목이 떠오르는 멘트.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말을 이었다.
“만약에 그 애를 지금 다시 만나면 어떨 거 같아?”
뭘 말하려는 건가 했더니.
뜸 들인 거 치고는 싱거운 물음이었다.
나는 바로 대답했다.
“아무 생각 없을 거 같은데?”
“호오, 그래?”
“응. 그게 벌써 몇 년 전인데. 잘 기억도 안 나.”
“아니, 그냥 궁금해서. 그런 말 있잖아. 남자는 첫사랑을 못 잊는다는 말?”
물어보지도 않고 내 첫사랑이 그 애라고 단정하는 것도 웃기긴 한데.
나는 피식 웃으며 입을 뗐다.
“헛소리야.”
“응?”
“그런 게 어딨어. 그냥 못 잊는 사람이 따로 있는 거지.”
조금 놀란 듯하더니 그녀는 말했다.
“오.. 방금 너 되게 연애박사 같았어.”
“…”
역시 쉽지 않네.
그래도 나름 재미있었다.
흑역사가 가득한 학창시절도 이제는 웃어넘길 수 있는 추억이 된 모양이다.
***
생각보다 길어진 여담.
그 뒤에 본격적으로 연두 이야기가 나왔다.
“이거 한번 볼래, 누나?”
“뭐?”
스윽.
조심스레 내 보물 1호를 꺼냈다.
아빠가 돼서 자랑 한 번 안 하고 넘어갈 수는 없지.
테이블 위에 쿠폰북을 펼쳤다.
“아, 이거!”
의외로 바로 알아보는 최윤영.
아직 연두튜브에는 안 올렸는데 알아보는 걸 보니 원스타그램도 보는 모양이다.
어버이날 당일에 사진은 찍어서 올렸거든.
“이거 그거지? 연두가 만든 어버이날 쿠폰북.”
“응, 맞아.”
“어머.. 너무 귀엽다. 그림 그린 거 봐.”
쿠폰북을 만지작거리며 언니미소를 짓는 윤영이 누나.
괜히 내가 다 뿌듯하네.
확실히 이런 걸 보면 내가 진짜 아빠가 됐다는 걸 실감한다.
‘아까도 그랬고.’
전혀 관계없는 옛날 이야기를 할 때도 계속 머릿속에는 연두가 떠올랐다.
생각회로 자체가 그쪽으로 돈다고 해야 하나.
그래. 이쯤 되면 인정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딸바보.
완전히 딸바보 아빠가 됐다는 걸 말이다.
최윤영이 쿠폰북을 보며 말했다.
“많이도 썼네. 뽀뽀 쿠폰, 안마 쿠폰, 애교 쿠폰…… 아주 행복하지 않으실 수가 없겠네요, 우리 주원씨.”
“하하, 뭘 또 새삼스럽게.”
“머든지 아빠 소언 하나 들어주기 쿠폰! 이건 언제 사용할 생각이야?”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기다리고 있어.”
“응? 뭘?”
“최상의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어.”
너무 진지했던 탓일까.
최윤영은 그런 내 모습이 웃긴지 또 한 번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선 말했다.
“빨리 오길 바랄게. 그 최상의 타이밍이.”
“고마워.”
이어지는 연두에 관한 이야기.
자연스레 최윤영의 입에서 먼저 조금은 진지한 물음이 흘러나왔다.
“요즘 연두는 어때?”
누나로서가 아닌 미술치료사로서 하는 질문으로 느껴졌다.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윤영이 누나를 만나면 짧게든 길게든 이런 이야기를 나누게 될 거라는 걸.
마침 구석인 데다가 손님도 없어 휑한 가게 내부였다.
그녀는 나지막하게 말을 덧붙였다.
“물론 연두튜브에 보이는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밝고 즐거운 모습이지만, 영상에는 비치지 않는 너만 알고 있는 연두의 다른 모습이 있지는 않을까 해서.”
미술심리치료사 최윤영.
사실상 내가 믿고 연두에 관해 모든 걸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어떤 사람인지 뿐 아니라, 그녀의 투철한 직업정신에 관해서도 잘 알고 있으니까.
한 차례 호흡을 가다듬은 후에 말했다.
“연두튜브에서 보는 그대로야.”
“그 말은……”
“요즘은 하루하루가 정말 즐겁거든. 만약 아니었으면 내가 그렇게 웃으면서 촬영을 할 수 없었겠지. 근데……”
“근데?”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건 아니야.”
정확히 말하면 병원에서 윤영이 누나를 만나 치료를 받고 온 이후.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였다.
떠오르면 속이 울렁거리는 몇 가지 장면이 있었다.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보이던 트라우마를 들 수 있겠지.
손을 들었을 뿐인데 겁을 먹는다거나, 술병과 담배를 봤을 때의 거부반응이라거나.
다행히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말이다.
‘그런 것보다 더 걱정되는 건.’
역시 연두의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을 아픔과 상처였다.
최근에 티를 내지 않는다고 해서 아예 사라졌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를 나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때.. 연두가 엄청 울었어.”
그 날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건 처음이다.
아마 어지간해서는 누구에게도 꺼낼 수 없었겠지.
전문가인 동시에 내 사정을 모두 알고 있는 최윤영에게만 꺼낼 수 있는 이야기였다.
“더 자세히 얘기해 줄 수 있어?”
“크리스마스 선물을 줬는데 엄청 울었어. 그러면서 얘기하더라고.”
“뭐라고?”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눈물을 쏟아내며 연두가 했던 이야기들이.
“힘들었고, 많이 아팠고, 그리고.. 너무 외로웠대.”
“그랬구나.”
“다 그러긴 했지만 외로웠다는 말이 제일 크게 다가오더라. 뭔가 조금은 그 기분을 알 거 같아서.”
최윤영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선 물었다.
“너는 어땠어?”
“.. 나?”
“응. 연두의 그 얘기를 듣고 주원이 너는 어땠어?”
“하하, 나야 뭐……”
그러게. 어떤 감정이었더라.
말도 안 되게 아팠던 거 같은데 신기하게 눈물은 안 나왔지.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맞아.
“그냥. 연두가 더 아프지 않았으면 한다고. 이렇게라도 털어내서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면 하는 그런 생각이었던 거 같아.”
외삼촌에 대한 분노, 과거에 대한 안타까움, 나 자신에게 느끼는 무력감.
그런 걸 다 떠나서 나는 바랐다.
연두가 더는 아파하지 않았으면 하고.
‘한 번에는 무리라도.’
몇 번이고 수십 번이고 내게 털어내서 상처와 아픔을 나누고 끝내 극복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는 생각이었다.
최윤영은 미소를 띠며 나를 향해 말했다.
“확실히 알겠네.”
“응?”
“내가 보는 주원이 너는 애일지 모르지만, 연두한테만큼은 최고의 아빠라는 걸.”
계속해서 이어지는 말.
최윤영은 아팠던 그 날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연두가 상처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분명히 연두한테는 엄청난 위안이 됐을 거야. 주원이 네가.”
“.. 내가?”
“응. 연두 입장에서는 꼭꼭 숨기고 있던 상처를 처음으로 직접적으로 꺼내서 보여준 거니까. 전혀 그렇지 않지만 스스로는 굉장히 흉하다 여기는 상처를. 가장 소중한 사람한테.”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
큰 울림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아마 엄청 큰 용기가 필요했겠지.”
“그렇구나.”
“그리고 주원이 너는 의도한 건 아니지만 가장 이상적인 반응을 보였어.”
“.. 그게 뭔데?”
“진심 어린 공감.”
단지 나는 아파했을 뿐이다.
상처를 드러내는 연두의 모습이 아파서 그 고통을 함께 느꼈을 뿐인데.
그게 가장 이상적인 대처였다고 최윤영은 말하고 있었다.
큰 힘이 됐을 거라고.
‘다행이다.’
연두가 그렇게 느꼈을 거라 생각하니 나 역시 위안이 됐다.
그런 나를 향해 최윤영이 말했다.
“근데 주원아.”
“응.”
“크리스마스 선물을 줬을 뿐인데 갑자기 연두가 운 거야?”
진짜 궁금해서 하는 질문으로 보였다.
확실히 그럴 만도 했다.
연두가 울었다는 것 하나에 집중한 나머지 그 배경을 설명하지 않았으니까.
당연한 얘기지만 연두튜브에도 올리지 않았고.
“그렇긴 한데, 그 선물이 조금..”
“조금 뭐?”
막상 말하려니 조금 쑥스럽네.
에라, 모르겠다.
다 얘기한 마당에 이거 하나 숨겨서 뭐 하겠는가.
“편지였어.”
“편지?”
“응. 그냥 편지는 아니고, 산타할아버지가 쓴 것처럼 내가 연두한테 쓴 편지.”
“아, 이해했어!”
“의도한 건 아닌데.. 막상 읽어주기 시작하니까 느껴지더라고. 내용적으로 연두의 상처를 건드릴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게.”
“그래서 연두가 운 거구나.”
“응.”
조금 소심해진 나는 물었다.
“.. 나 잘못한 거야?”
그런 내 물음이 재미있는지 최윤영은 쿡쿡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야. 그냥……”
“그냥?”
“상처를 스스로 잘 드러내는 편이 아닌 연두를 울게 만든 매개체가 있지 않았을까 해서 물어본 거야.”
예상해서 한 질문이었구나.
이런 걸 보면 확실히 그녀가 석사 학위까지 취득한 전문가라는 게 느껴진다.
최윤영은 조금 생각하더니 나를 불렀다.
“주원아.”
“응.”
“이번 경우에는 주원이 네 편지가 매개체가 된 거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수 있어.”
“무슨 말이야?”
“굳이 하고 싶지는 않은 얘기지만 트라우마는 정말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생할 수 있거든.”
“아.”
요약하자면 간단했다.
비슷한 상황이 전혀 생각지 못한 타이밍에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어.”
나 역시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준비를 갖추자고.
다시 한번 새길 수 있는 계기가 된 느낌이다.
최윤영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응.”
슬슬 끝나가는 식사.
다시 분위기가 밝아지며 화제가 전환됐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됐다.
나는 포크를 내려놓으며 얘기했다.
“이제 일어날까?”
“아, 그럴까?”
입을 닦으며 그녀가 말했다.
“다음에 연두랑 셋이 또 보자.”
“그래.”
“그리고 그렇게도 보자.”
“어떻게?”
“주원이 너랑 나, 그리고 윤우. 그렇게 셋이서.”
“좋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학창시절 진위여부도 삼자대면해서 가려야 하니까.”
“흐흐, 그래.”
이렇게 다음을 기약하며 우리는 일어섰다.
상당히 많은 걸 얻어가는 윤영이 누나와의 비공식 상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