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351)
351화. 축구는 무서워!
“헉.. 헉…”
거칠게 내쉬는 숨.
복병의 매운맛을 보여주겠다는 말과 달리, 나는 풋살의 매운맛을 제대로 보고 있었다.
경기장에 들어온 지 채 5분도 되지 않아서.
‘예상 못 했어.’
하체 때문이 아니었다.
호흡이 흐트러지며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거 같았다.
이 정도로 내 체력이 저질일 줄이야.
못해도 30분은 지치지 않고 거뜬히 뛸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게 황당하게 느껴졌다.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뛰고 있지만.’
한 타임에 20분인 걸 고려하면 아직 15분이 남은 상태.
의문이었다.
옆에 있는 녀석들은 어떻게 두 타임을 연속으로 뛰고 있는 건지.
‘하긴.’
나와는 달리 꾸준히 풋살을 해 온 녀석들이었다.
근력은 몰라도 체력 면에서 나보다 우위에 있는 건 당연했다.
더군다나 또 하나의 큰 문제.
‘이 자식들.’
내 쪽을 집중공략하고 있다.
공을 잡으면 꼭 나를 향해 치고 들어오고 현란한 발놀림을 구사하며 제치려 한다.
초심자를 향한 자비란 1도 없다.
아까 말한 전략을 100%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그 결과 현재 경기 스코어는 5 대 4였다.
2점 차였으니 한 골 먹혔다는 뜻이다.
전적으로 내 실책이었다.
‘제기랄.’
부끄럽지만 내심 기대한 내 모습이 있었다.
연두와 아이들이 바라보는 앞에서 그라운드 위를 누비며 멋지게 골을 넣는 장면.
그게 망상에 불과했다는 걸 깨닫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지친 걸 감출 수도 없는 상태니까.
“주원! 괜찮아? 뛸 수 있겠어?”
그걸 느꼈는지 찬율이가 묻는다.
경기장에 들어선 지 5분 만에 들은 말이라는 게 웃픈 현실이었다.
거친 호흡 속에 떠올랐다.
아까 상대편 녀석들이 한 얘기들이.
‘이제 역전하면 돼.’
‘주원이 쪽으로 뚫으면 금방이다. 알지?’
‘일단 연두튜브 봐서 아는데 주원이는 하체가 약해. 그걸 이용하면……’
지금 무너지면 그 모든 말을 인정하는 게 된다.
나를 멸시하는 말은 물론이고 하체가 약하다는 근거 없는 유언비어까지도.
알량한 자존심이 용납 못 한다.
빠르게 머릿속에서 전략을 수정했다.
약자.
지금부터 나는 철저한 약자다.
그라운드 위에서 약자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미친 듯이 뛰는 것.
여긴 치열한 전쟁터.
유성현, 최윤우, 최시영.
반대편에 서 있는 녀석들은 내 약점을 물어뜯으려는 하이에나들이다.
고작 풋살인데 왜 그러냐고?
아니다. 방금 말했듯 이곳은 전쟁터고 이건 전쟁이었다.
‘연두가 지켜보고 있어.’
에이스의 모습은 아니더라도 아빠로서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야 했다.
전략은 간단했다.
약자인 걸 인정하고 되지도 않는 골 욕심은 버린다.
‘대신.’
적의 돌파는 허용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 영역만큼은 철통같이 보안한다는 뜻이었다.
골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
‘어차피 15분이야.’
길게 느껴지지만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충분히 뛸 수 있었다.
마침 벽 너머로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
“아빠! 화이팅..!”
그 소리에 맞춰 나는 무릎에서 손을 떼고 몸을 일으켰다.
이제 정말 보여줄 시간이었다.
약하지만 절대 쓰러지지 않는 복병의 악착같은 매운맛을.
***
“하아.. 하아..”
쓰러지듯 잔디밭 위에 누웠다.
휴식 시간이었다.
준수가 옆에 앉으며 병째로 무언가를 내밀었다.
“마셔.”
마침 갈증이 엄청나던 참이었다.
눈이 돌아간 나는 건네받자마자 바로 들이켰다.
벌컥. 벌컥.
마신 뒤 자연스레 한 마디가 나갔다.
“.. 야. 준수야.”
“왜.”
“원래 슈퍼에이드가 이렇게 맛있었냐?”
“크크.”
분명히 내가 아는 그 맛이긴 한데 같은 음료가 아닌 거 같았다.
이게 운동하고 먹는 이온음료의 맛인가.
과장이 아니라 짜릿할 정도다.
끼익.
뒤이어 열리는 풋살장 문.
옆 공간에 있던 교체멤버 두 명과 아이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 아빠!”
나를 보자마자 달려와 안기려는 연두.
평소라면 양팔을 벌려 받았겠지만 나는 손사래를 치며 만류했다.
“안 돼, 연두야!”
“…”
놀란 표정이었다.
오해하기 전에 나는 빠르게 이유를 설명했다.
“땀을 많이 흘렸거든. 아빠 되게 축축할 거야.”
“.. 대는데.”
“응?”
“축축해도 대는데……”
나보다도 주위에서 탄식 어린 말들이 들려왔다.
묻어나는 감정은 모두 부러움이었다.
“착한 거 봐..”
“아빠 땀은 하나도 안 더럽다는 거지.”
“지금 이 순간, 나는 미치도록 주원이가 되고 싶다…”
우습네. 내가 이렇게 부러움의 대상이 될 줄이야.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미안, 연두야.”
“으응..?”
“그래도 아빠는 연두까지 축축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아서. 일단 여기 앉을래?”
뒤이어 아이들을 향해서도 손짓했다.
“시은이랑 레나도 여기 앉아.”
“네.”
그에 따라 아이들이 내 옆으로 옹기종기 모여앉았다.
마침 옆에 놓인 종이컵.
세 개를 꺼내 이온음료를 따라줬다.
“운동 열심히 했으니까 우리 어린이들도 마셔야지.”
“고맙습니다.”
꼴깍. 꼴깍. 꼴깍.
동시에 종이컵을 들고 마시는 모습이 꼭 아기새 같다.
그럼 내가 모이를 주는 어미새 역할인 건가.
“우아.. 진짜 마시따…”
“응응.”
“Es ist lecker!”
가끔 레나의 입에서 나오는 독일어.
뜻은 모르겠지만 아마 비슷한 의미가 담긴 말이 아닐까.
뿌듯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연두야.”
옆에서 민준이가 입을 열었다.
방금 쉰 터라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꽤 친해졌을지도 모르겠네.
녀석이 웃으며 말했다.
“아빠 축구하는 모습 보니까 어때?”
조금 흠칫하게 하는 물음이었다.
아무리 잘 쳐 줘도 결코 멋진 모습을 보여준 느낌은 아니었으니까.
자연히 연두를 향해 쏠린 시선.
연두는 배시시 웃으며 자그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머시써써요..”
다시 여기저기서 탄식이 쏟아져나왔다.
나도 이건 좀 부끄럽네.
전혀 개의치 않고 연두는 다시 입을 뗐다.
“처음 바서..”
“응?”
“아빠가 이러케 막.. 빨리 뛰는 거 처음 바써요..”
옆에서 시은이도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나, 아이들 눈에 되게 굼뜬 이미지였던 걸지도 모르겠다.
앉아서 주구장창 그림만 그리는 샌님이라 해야 하나.
‘잠깐.’
곱씹어 보니 틀린 말은 아니네.
그런 탓에 개처럼 뛰는 모습이 나름 반전으로 다가온 걸까.
그래. 말 그대로 개처럼 뛰었다.
“와. 근데 진짜 열심히 뛰더라, 주원아.”
“박지성인 줄.”
“근데 수식어 하나 붙여야 됨. 축구는 잘 못 하는 박지성, 킥킥.”
역시 친구인지라 디스는 빼놓지 않는다.
그래도 적팀의 입에서 나온 말임을 고려할 때 충분히 만족스러운 평가였다.
이쯤 되면 궁금할 터였다.
스코어.
경기의 현재 스코어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6 대 5였다.
다짐과 달리 내 쪽에서 또 하나의 실점이 나왔거든.
또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미친 듯이 뛰어도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거.
‘허나.’
연시레와 마찬가지로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팀의 에이스인 찬율이가 골을 넣어 다시 격차를 벌렸지.
그런 치열한 공방 끝에 선두를 유지하는 건 성공할 수 있었다.
그나마 한 골도 안 줄 생각으로 임했기에 거둔 성과였다.
팀원인 찬율이도 한 마디 덧붙인다.
“솔직히 내 머릿속 주원이는 뭔가 그런 이미지였는데. 앉아서 그림만 그리는 미술천재 느낌? 근데 반전이더라. 너무 열심히 뛰던데?”
이것도 오랜만에 본 녀석이라 가능한 코멘트였다.
만약 이 말을 한 게 성현이나 윤우였다면 ‘미술천재’가 ‘그림밖에 모르는 따분한 샌님’ 정도로 바뀌었겠지.
역시 윤우가 장난스레 끼어든다.
“찬율. 거기서 천재만 빼면 완전 맞는 말인데?”
“흐흐, 왜. 주원이 그림으로 유명했잖아. 지금은 더 장난 아니고. 전에 미술실 지나다닐 때마다 창문으로 보면 주원이 그림 그리고 있었는데.”
“그건 그랬지.”
자연스레 시작된 과거 얘기.
나름 재미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의 입에서 내 과거 모습을 듣는 것도.
무엇보다도 이 순간, 가장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우아..”
“아!”
“헤헤, 머시따..”
감탄사와 코멘트까지 넣어 가며 삼촌들의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한 모습이다.
그렇게나 내 과거 이야기가 재밌는 걸까.
문제는 그런 와중 시영이의 입에서 튀어나온 얘기였다.
“아, 맞아. 그것도 미술실에서 벌어진 일이잖아.”
“뭐?”
“주원이랑 최서아 그 사건.”
“앗. 아앗…”
당황해서 얼타고 있다가 뒤늦게 끼어들었다.
“야, 그 얘기는 왜 해.”
“.. 이거 말하면 안 되는 거였냐?”
“아니, 그런 것보다……”
정확히 말하면 굳이 회자해서 좋을 게 없는 이야기라 해야겠지.
윤영이 누나를 만났을 때도 그렇고 생각보다 얘기를 꺼내는 경우가 많았다.
정작 나는 까마득한 과거에 불과한데.
“연두 있잖아, 연두.”
“.. 아.”
뒤늦게 저들끼리 속닥거리더니 스스로 입을 틀어막는 시영이.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다시 불씨가 타올랐다.
“채서아가 누구에요?”
성을 잘못 들은 모양이다. 채씨가 아니라 최씨인데.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시은이 너는 그게 왜 궁금한 거니.
조금 생각한 끝에 대답했다.
“아저씨 학교 다닐 때 친구야.”
이 정도가 최선의 대답이었다.
딱히 아이들에게 숨길 것도 없지만 자세히 말할 필요도 없으니까.
다행히 시은이는 더 묻지 않았다.
“슬슬 다시 시작할까?”
몸을 일으키며 민준이가 말했다.
따라 일어난 찬율이가 내 어깨를 툭 치더니 얘기했다.
“주원아. 또 뛸 거지?”
“어, 어..?”
“연두가 너 뛰는 모습 그렇게 멋지다고 했는데 설마 쉴 생각은 아닐 거 아니야. 에이, 설마……”
이 자식.
팀이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적이었다.
아무래도 몸을 더 혹사하게 될 거 같았다.
***
어느새 끝나가는 경기.
공교롭게도 스코어는 9 대 9로 동점이었다.
그에 따라 두 팀은 합의했다.
골든골.
마지막 골을 넣는 팀이 승리하는 거로 하자고.
즉, 한 골 싸움인 셈이었다.
먼저 넣느냐 먹히느냐로 승부가 갈리게 된다.
“…… 그런 거란다.”
교체해서 나온 감자삼촌 박준수의 긴장감 넘치는 설명.
연두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꼭 모은 채로 경기를 지켜봤다.
시선은 물론 아빠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화이팅..”
한 골로 승부가 정해진다는 삼촌의 설명도 긴장됐지만 연두를 더 긴장하게 만드는 건 따로 있었다.
오늘 처음 접한 축구라는 스포츠.
“무서어..”
연두는 축구가 무서웠다.
아빠랑 친구들이랑 할 때는 세상 즐거웠는데 삼촌들이 하는 축구는 그렇지 않았다.
공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막 날아다녔다.
그것도 엄청 세게.
슈웅!
아빠 쪽으로 날아갈 때면 눈이 질끈 감겼다.
걱정이 됐다.
공에 맞아서 아빠가 다치지는 않을까 하고.
경기를 바라보는 연두에게는 승패보다도 그게 훨씬 더 중요했다.
“연두야.”
감자삼촌이 말했다.
“아빠 팀이 이기려면 연두가 힘을 불어넣어줘야 해.”
“연두가요..?”
“응. 지칠 때 소중한 사람의 응원은 큰 힘이 되거든. 참고로.. 삼촌도 아빠 팀이란다. 팀은 되게 소중한 거고. 그러니까 삼촌도……”
상당히 속 보이게 아군인 걸 어필하는 박준수.
연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삼촌! 시으나, 레나야..”
“응.”
“가치 응언하자!”
고개를 끄덕이는 시은이와 레나.
뭘 해도 연시레는 함께였다.
단비음악대로 똘똘 뭉친 완벽한 케미를 자랑하는 세 아이였으니까.
곧이어 응원구호가 울려 퍼졌다.
“아빠! 화이팅..!”
“아저씨!”
“아저시 파이팅!”
시은이와 레나도 응원에 동참했다.
그 목소리가 닿은 걸까.
“나이스!”
훌륭히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고 공격권이 넘어갔다.
주원의 발밑에 놓인 공.
조금 가지고 있는가 싶더니 공을 톡 건드려 찬율에게 보낸다.
다다다.
그리고선 냅다 질주하기 시작한다.
“뭐, 뭐야, 이주원. 뇌절 뭔데!”
보고 있던 박준수가 당황해서 소리친다. 허나 이미 주원은 질주를 시작한 지 오래였다.
상대도 팀원도 예상 못 한 움직임이었다.
계속 자리를 지키다가 갑자기 앞으로 튀어나간 거니까.
다시 공격권을 뺏긴다면 무척 위험한 상황이 연출될 텐데도.
찬율의 판단은 빨랐다.
뻥!
“주원아!”
곡선을 그리는 크로스.
공은 상대 둘의 사이를 지나 뻗어나갔다.
다름 아닌 주원의 발밑으로.
슈웅.
아슬아슬한 거리였다. 그래도 흘러가도 이상할 게 없는 거리.
주원은 넘어지듯 공을 향해 발을 쭉 뻗었다.
톡.
닿았다.
그 감각을 느끼며 주원은 넘어져 바닥을 뒹굴었다.
뒤이어 들려오는 소리.
촤랑.
공이 골망을 흔드는 소리였다.
벽을 통해 바라보던 박준수의 눈이 띠용 부풀었다.
“고올! 골이다! 연두야! 얘들아! 주원이가 골 넣었어!”
수비만 전전하던 주원이 넣은 골든골.
그 쾌거에 경기장 바깥은 말 그대로 흥분의 도가니였다.
마치 2002 월드컵 4강에 진출이라도 한 듯이.
“우.. 우아!! 아빠가 골 너어따..!!”
뒤늦게 연두와 아이들도 기뻐서 방방 뛰기 시작했다.
기쁨을 만끽하는 감자삼촌과 아이들.
그런데 그것도 잠시였다.
경기장 안에서 흘러나오는 신음.
방방 뛰던 연두가 뜀박질을 멈추고 시선을 돌렸다.
눈에 들어오는 경기장 내부.
“으으..”
누가 낸 신음인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아빠가 아직 넘어진 채로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이상했다.
“아, 아빠…”
아빠가 이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