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353)
353화. 결혼
“이써요, 썸..!”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당연히 고개를 도리도리 젓거나 없다는 대답이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있다고 하다니.
‘누구지?’
딱히 연두에게 관련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기에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김장 케미를 선보인 감자소년 선동이는 너무 멀리 있고.
그나마 떠오르는 사람이라면.. 설마 그 녀석인가?
민우.
여러 친구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호랑이 슬레이어 민우가 떠올랐다.
확실히 요주의인물이긴 했다.
한 번 귀가하는 도중에 연두가 얘기를 꺼낸 적이 있었으니까.
“아빠. 연두 결혼해써요…”
그 상대가 다름 아닌 민우였다.
비록 딸이 시은이고 아들이 동훈이인 가족놀이의 일환이긴 했지만.
잠깐. 갑자기 궁금해지네.
‘앙숙인 걸로 알고 있는데.’
시은이가 민우의 딸 역할을 했다니.
문득 어떤 느낌이었을지 궁금해지는…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아무튼 그때 민우는 가족놀이를 빙자해 연두에게 스위트한(?) 멘트까지 쳤다.
그 멘트가 똑똑히 기억에 남아 있었다.
‘사랑해, 여보!’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고 했지. 다행히 뽀뽀나 포옹은 안 했다고 하긴 했지만.
당시에는 그냥 웃어넘겼다.
부모님 금슬이 좋으신가 보다, 아이라서 바로바로 습득하는구나 하고.
여섯 살 아이가 뭘 알겠는가.
‘그렇게 생각했지.’
허나 지금은 이야기가 달라졌다.
썸. 다른 것도 아니고 썸이다.
설마 썸 놀이 같은 게 있을 리도 없고, 설사 있다고 해도 이상하다.
‘가족놀이는 말 그대로 놀이 같은데.’
썸은 놀이가 될 수 없지 않은가.
왜냐고? 썸을 표현한 노래 가사만 봐도 알 수 있다.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너. 네 거인 듯 네 거 아닌 네 거 같은 나.
이게 무슨 사이인 건지 사실……
‘헷갈리지 마!’
그냥 썸을 안 타면 되는데 왜 헷갈리냔 말이다.
왜 이렇게 과몰입하냐고?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장난이니까.
‘.. 장난 맞나?’
반쯤은 진심인 거 같기도.
한편 주위를 둘러보니 나만 이런 건 아닌 거 같다.
다른 녀석들도 하나같이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동작을 멈춘 상태였다.
뒤이어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썸이.. 있다고, 연두야?”
“하하, 그게 누굴까. 무척이나 궁금하네.”
“삼촌한테 좀 알려줄래? 그 친구한테 교육.. 아니, 철저한 검증을 거쳐야 할 거 같아서.”
“삼촌이 생각하는 그 ‘썸’이 맞나 모르겠네? 하하하!”
전부 웃고 있지만 평소의 웃음이 아니었다.
어딘가 살벌하다.
보고 있는 내가 공포를 느낄 정도로.
‘이게 연두부의 무서움인가.’
간접체험을 하는 기분이었다.
막상 연두는 조금도 못 느끼고 있는 거 같긴 하지만.
화살은 내게도 쏟아졌다.
“넌 알고 있었냐, 주원아?”
“몰랐던 표정인데.”
“맞아. 우리랑 표정이 똑같잖아.”
마지막 말에 소름이 돋았다. 내 표정이 너희랑 똑같다고?
영화로 따지면 갑자기 일상물이 공포물 또는 스릴러물이 되는 기분이다.
나는 애써 미소를 띠며 말했다.
“에이, 뭔 소리야. 저기.. 연두야.”
“네에.”
“그래서 그 썸 타는 친구가 누구야? 아빠도 궁금한데.”
“.. 아빠. 썸은 타는 거에요?”
“응.”
타는 거든 뭐든 그건 중요치 않았다.
그 대상이 중요할 뿐.
잠시 연두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너무 만은데……”
“…?”
다시 한번 벌어지는 모두의 입.
경악 그 자체였다.
가까스로 놀란 마음을 감추며 되물었다.
“너무 많다고?”
“네..”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가 하나 있었다.
허나 바로 고개를 휙휙 내저었다.
그 단어를 떠올리기엔 지금 연두의 표정은 너무 순진무구했으니까.
‘뭔가 이상해.’
이런 경우는 꽤 많았다.
항상 무언가 살짝 어긋난 게 있을 때 이런 상황이 펼쳐지곤 했다.
그리고 그 어긋남의 원인은 대게 나한테 있었지.
“연두는 썸 진짜 마니 타요.. 시으니랑도 타고, 레나랑도 타고, 혀누랑도 타고……”
이어지는 말을 듣고 확신했다.
시은이랑 레나 이름이 나오는 시점부터 내가 아는 썸이 아니었다.
현우가 나오긴 했지만 그건 중요치 않았다.
‘우정이니까.’
연두가 말하는 관계는 우정이었다.
그 말에 식사 자리는 다시금 떠들썩해졌다.
“뭐야. 우리가 생각하는 썸이 아니었네, 킥킥.”
“우리 연두 썸을 잘 모르고 있구나?”
“야, 이주원. 대체 썸을 어떻게 설명해 준 거야. 깜짝 놀랐잖아! 하여튼 그림 말고는 잘하는 게……”
디스를 하려다가 멈추고선 연두를 힐끗 보는 성현이 녀석.
하기야 저기서 더 말했으면 화난 연두를 볼 뻔했다.
그사이 나는 떠올렸다.
썸.
내가 뭐라고 설명했더라.
맞아. 사귀지는 않지만 서로 호감이 있어서 좋아하는 관계.
그렇게 짤막하게 설명해줬다.
명품 설명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모르잖아.’
이제 여섯 살인 연두다.
사귄다는 게 뭔지도 제대로 확립되어 있지 않을 나이였다.
심지어 시은이조차 모르는 눈치인데.
왜냐고? 지금 웃으면서 연두와 얘기하고 있거든.
“연두야.. 우리 썸이야..?”
“으응! 시으니랑 연두는 서로 조아하니까..!”
기분이 좋은지 쿡쿡 웃는 시은이.
아무래도 썸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
큰일이네.
좋아하는 모습이 귀엽긴 한데 뜻하지 않게 오개념을 심어줘 버렸다.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는 거다.
“나는…?”
“응?”
“나도 썸 타고 시퍼..”
레나도 수줍게 입을 연다.
생긋 웃으며 연두가 대답한다.
“그래! 우리 세시 가치 썸 타자..!”
“정말?”
“응! 정말!”
썸으로 대동단결한 연시레.
이게 다 내 설명 하나에서 비롯된 나비효과라니.
이쯤 되니 친구 녀석들은 아무 생각이 없다.
“흐어, 귀여워..”
“얘들아. 너희들의 썸을 응원할게.”
“그 썸.. 삼촌도 끼워주면 안 될까?”
“뭐래, 이 미.. 아니, 정신 나갔냐? 낄끼빠빠 해라.”
“왜! 그 썸이랑 이 썸은 다르잖아!”
“그래도 넌 안 돼.”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이 없었다.
오늘부로 썸의 사전적 정의를 바꿔야 할 거 같았다.
***
썸 사태(?)가 끝나고 자연스레 이어진 얘기.
“근데 우리는 그런 거 안 하냐?”
“뭐?”
“동창회.”
동창회.
우리 네 명 사이에서도 몇 번 나온 이야기였다.
찬율이가 말을 받았다.
“뭐, 이게 동창회 아닌가? 우리 다 동창이잖아.”
“흐흐, 그렇긴 하네.”
“요즘 시대에 동창이 한자리에 전부 모이는 건 그냥 불가능하다 봐야지. 예전이면 모를까.”
확실히 그랬다.
각자의 삶이 있고 모두 옛 동창을 그리워하는 건 아니니까.
그리워하더라도 시간을 내기 힘들 수도 있고.
그때 민준이가 익살스레 웃으며 말했다.
“필살기 쓰면 되지.”
“뭔 필살기.”
“주원이 온다고 하면 다 오지 않을까. 평화고 최대 아웃풋인데.”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가 했더니.
나는 멋쩍은 표정으로 손을 휙휙 저으며 말했다.
“뭔 소리야. 평화고 나름 명문고인데.”
“.. 주원아.”
“어.”
“우리 나이에 판검사가 나왔다고 해도 연두 아빠 타이틀에는 못 비벼.”
“…”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성현이는 킥킥 웃더니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
“아, 맞아. 박준수.”
“어.”
“너 저번에 그랬잖아. 동창 여자애한테 한번 보자고 연락 왔다고.”
“아.. 그치.”
다들 관심이 쏠렸다.
막상 당사자인 준수는 별생각 없이 식사에 집중하고 있지만.
“어떻게 했냐?”
“뭘?”
“뭐라 대답했냐고.”
“그냥. 몇 번 연락 오길래 나중에 시간 될 때 보자고 했는데?”
“와..”
쿨한 대답에 여기저기서 탄식 어린 감탄사가 나온다.
“이게 존.. 아니, 미남의 삶인가.”
“난 졸업한 이후로 여자애한테 단 한 번도 연락 안 오던데.”
“선택권은 나한테 있다 이거구나. 하…”
준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뭘 오버하고 그래. 그냥 내가 짊어지기 싫었던 거지. 약속 잡으려면 남자애들한테 내가 싹 다 연락 돌려야 되잖아.”
“그게 인싸의 특권인 거야, 이 자식아.”
“…”
너털웃음을 짓더니 준수는 말했다.
“아, 몰라, 몰라. 연두야!”
“.. 네!”
“꼬기 더 먹자, 꼬기! 감자삼촌이 주는 맛있는 꼬기가 왔어욤~”
“…”
확실히 괴짜 녀석임이 틀림없다.
한편 다음 화살표는 나를 향했다.
“주원아. 너는 안 왔냐?”
“뭐가?”
“동창들 연락. 남자든 여자든 디엠같은 걸로 많이 왔을 거 같은데. 너무 유명해져서.”
“아, 그게……”
대답하기 조금 애매한 질문이었다.
“잘 모르겠어.”
“엥? 온 거면 온 거고 아니면 아닌 거지 모르겠는 건 뭐야.”
“아니.. 디엠이 너무 많이 와서 전부 확인을 못 해가지고. 근데 아마 안 왔을 거야. 내가 그렇게 친화력이 좋았던 것도 아니고……”
말하다가 녀석들의 표정을 보고 멈췄다.
동시에 후회했다.
그냥 안 왔다고 할걸.
“.. 이게 세상이냐?”
녀석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한 마디였다.
***
한 번 시간이 되면 날을 잡아 동창회를 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참석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주목받게 될 테니.’
그건 다소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 풋살을 한 건 후회하지 않았다.
이렇게 격하게 한 운동은 오랜만이라 리프레쉬가 된 느낌이기도 하고.
오랜만에 동창을 만나 얘기를 나눈 것도 즐거웠다.
가끔은 이런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은 거 같았다.
“연두는 오늘 어땠어?”
배시시 웃으며 연두는 답했다.
“재밌어써요!”
“그래?”
“네. 그런데..”
“그런데?”
“연두 너무 마니 먹어써요……”
배를 통통 건드리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연두.
그 모습이 귀여워 또 웃음이 나왔다.
“괜찮아. 연두는 성장기니까.”
“성장기..?”
“응. 많이 먹고 무럭무럭 자라야 하는 성장기. 지금 많이 먹어둬야 해. 나중에 크면 먹고 싶어도 못 먹는다?”
그 말에 연두는 깜짝 놀라 되묻는다.
“연두 크면 먹고 시퍼도 못 머거요..?”
“아니..”
그런 말은 아닌데.
가만 보면 내가 오해할 만한 얘기를 많이 하긴 하는구나.
고개를 저으며 정정했다.
“아니야. 먹어도 돼.”
“마싰는 거 다요..?”
“응. 연두가 커도 아빠가 옆에서 뭐든지 사 줄게. 소시지도, 피자도, 오늘 먹은 삼겹살도.”
“아빠도 가치여?”
“물론이지.”
“헤헤..”
얼마나 보기 좋은지 모른다.
처음 봤을 때에 비해 살이 붙은 연두의 얼굴과 말랑말랑한 볼이.
‘그래도.’
연두는 살이 찌는 체질은 아닌 듯하다.
워낙 말랐던 터라 처음에는 빠른 속도로 체중이 붙더니 언젠가부터는 정상 체중을 유지하고 있었다.
먹는 걸 무척 좋아하는데도.
‘다 좋지만.’
유독 무언가를 먹으며 행복해하는 연두를 보는 게 좋았다.
매일 봐도 좋았다.
그리고 아직 연두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음식은 많았다.
‘매운 걸 극복한다면.’
경우의 수는 말도 안 되게 늘어나겠지.
기대가 됐다.
그 녀석들을 먹었을 때 연두가 보일 반응이.
***
위이이잉.
작화를 하는 도중에 전화가 걸려왔다.
-수찬쌤
낯간지럽긴 하지만 이제는 핸드폰 속 호칭이 상당히 친근하게 바뀌었다.
선생님뿐만이 아니다.
최근 들어 대부분의 이름을 바꾼 상태였다.
‘너무 삭막하다는 생각에.’
몇몇 사람에게 서운하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고 말이다.
내게는 상당히 큰 변화였다.
원래는 이름으로만 저장해서 할머니도 ‘민홍임’이라고 저장해 놨을 정도이니.
‘뜨거운 효자네..’
내가 생각해도 좀 너무하긴 했다.
뭐, 이제라도 바뀌었으니 다행이지. 좋게 생각하자.
그건 그렇고 선생님은 왜 전화하신 거지?
툭.
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쾅.
깜짝이야.
뭘 떨어뜨린 건지 육중한 음성이 귀에 파고들었다.
이후에 들려왔다.
“어, 어, 주원아. 목소리 들리냐?”
“네, 선생님.”
“크흠.. 잘 지냈냐?”
뭐지? 뭔가 이상한데.
평소에 통화할 때의 선생님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누가 봐도 어색하게 안부를 묻는 것도 그렇고.
“네, 저야 뭐 잘 지냈죠. 연두튜브 보시잖아요. 댓글도 매번 다시고.”
“그, 그치. 허허.”
이거 봐라.
일부러 약간 긁는 화법을 구사했는데 화를 안 낸다.
반드시 버럭 고함이 나올 타이밍인데.
“그.. 연두는 잘 지내고?”
심지어 어색한 물음까지 이어진다.
분명히 뭔가 있었다.
애써 모르는 척하며 일부러 한 번 더 긁었다.
“당연히 잘 지내죠. 연두튜브 보면 아시잖아요.”
“그, 그래. 알……”
이번에는 달랐다.
대답을 끝맺으려다 멈추고 한 타이밍 늦은 고함이 들려온다.
“아니, 이 녀석이 자꾸! 그냥 묻는 말에 대답만 하면 되지 자꾸 연두튜브 연두튜브. 선생을 놀리는 거야, 뭐야! 어?”
“흐흣.”
“뭐야. 웃어?”
“아, 죄송해요.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뭐!”
“너무 티 나서요. 하실 말씀 있는 게.”
“…?”
들켰다는 듯이 한동안 말이 없다.
얼마간의 침묵 이후에 다시 굉장히 어색한 헛기침이 이어진다.
“큼. 크흠.. 그니까……”
“괜찮아요.”
“뭐?”
“말씀하세요. 하실 말씀이 뭔지.”
이쯤 되니 나도 궁금했다.
선생님이 이토록 망설이면서 꺼내려는 말이 뭔지.
원래 겉으로 티가 많이 나는 분이시긴 하지만 이 정도인 적은 없었으니까.
“아, 할 말? 할 말 말이지? 맞아. 하려던 말이 있었지? 하하.”
“네.”
“그게 말이야. 별 거는 아니고……”
나도 시원시원한 편은 아닌데.
그런 내가 답답함을 느낄 정도면 진짜 굉장히 답답하다는 거다.
결국 못 참고 더 재촉하려는 순간.
“후우…”
길게 숨을 내뱉더니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에라 모르겠다는 듯이.
“주원아.”
“네.”
“나 결혼한다.”
“…?”
도무지 믿기 힘든 한 마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