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362)
362화. 재회
나와 연시레를 관객으로 하는 간이 콘서트.
주연이가 천천히 무대 위로 올라가는 사이에 나는 아이들과 관객석에 자리를 잡았다.
무대가 가장 잘 보이는 정중앙의 좌석이었다.
자리에 앉으며 장난스레 말했다.
“주연아.”
“네.”
“나중에 관객 엄청 많은 무대에서도 우리 여기에 앉을 수 있는 거지?”
“흐응.. 글쎄요?”
주연이는 쿡쿡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연시레는 당연히 명당 예약이지만..”
“예약이지만?”
“오빠는 조금은 고민을 해 봐야 할 거 같아서요.”
“와..”
“흐흣, 장난이에요, 장난.”
주연이가 능청스레 말을 덧붙였다.
“오빠도 당연히 명당자리 예약이죠. 제1호 팬인데.”
“나 방금 진짜 삐질 뻔했어.”
“에이..”
사실 애초에 알고 있었다.
말하는 표정에서부터 장난기가 가득 묻어났으니까.
그래서 장난으로 받았을 뿐이다.
슥.
이 정도면 예열은 충분히 된 듯하다.
주연이의 무대를 볼 차례였다.
무대에 올라가 두리번거리던 주연이는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 기타?’
그건 다름아닌 기타였다.
무대 위에 있는 악기는 자유롭게 사용이 가능하니 딱히 문제는 되지 않았다.
그보다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주연이 너 기타도 칠 줄 알았어?”
“조금요.”
“오..”
유투브로는 마이크에 대고 노래하는 모습만 보여주는 터라 그리 익숙하지 않은 장면이다.
그래서인지 연두도 신기한 표정으로 주연이언니를 바라본다.
스윽.
다리를 꼬고 앉아 기타를 손에 쥔 주연이.
의외로 무척 잘 어울린다.
왜 그런 인식이 있지 않은가. 싱어송라이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악기는 뭐니 뭐니 해도 기타지.
“잠깐만요.”
띵. 띠딩. 띵.
줄을 하나씩 튕기는 주연이.
기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지만 뭘 하는 건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튜닝.
말로만 듣던 튜닝이 분명했다.
기타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는 굉장히 있어보이는 느낌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연이의 손이 멈췄다.
“됐다!”
“주연아.”
“네?”
“그거 알아?”
“뭘요?”
“너 지금 진짜 있어보여.”
주연이는 웃음을 터트리더니 말했다.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아직 잘 못 치거든요. 괜히 유투브에서 안 치는 게 아니니까..”
“알겠어. 편하게 해.”
“네.”
다시 자세를 고쳐잡고선 주연이가 말했다.
“이건 우리 귀요미들이 보여준 무대에 대한 답가잖아요?”
“응.”
“그러니까 같은 곡을 한 번 불러볼게요.”
“같은 곡? 메리 미 말하는 거야?”
“네.”
“칠 수 있어?”
고개를 끄덕이며 주연이가 대답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좋아하는 노래거든요.”
아이들의 표정에도 기대감이 부푼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혹시 무대하는 거 찍어도 돼?”
“제 무대요?”
“응. 첫 무대인 만큼 남겨두면 좋을 거 같은데.”
“조금 쑥스럽긴 한데.. 괜찮아요!”
허락을 구한 나는 카메라를 꺼내들어 주연이의 모습을 담기 시작했다.
주연이가 다시 입을 뗀다.
“단비음악대는 멋진 합주로 조금 신나는 분위기의 무대를 보여줬으니까.. 저는 어쿠스틱한 느낌으로 가겠습니다.”
몇 번이나 말했듯 응원에는 자신이 있다.
목청을 높여 함성소리와 함께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뒤따라 응원하는 아이들.
“주여니언니, 파이팅!”
“와아!!”
“사랑해여 하주연! 우유비깔 하주연..!!”
“크크.”
무대에 선 경험이 있어서인지 알려주지도 않은 응원구호를 뱉는다.
하기야 잊을 수가 없긴 하지.
백명의 연두부가 목이 터져라 외쳤던 구호인데.
둥.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주연이.
응원에 힘입어 바로 연주가 시작됐다.
***
띵. 띠딩.
어쿠스틱한 느낌이 가득한 간주.
잘 못 친다더니 흠잡을 데가 없는 연주였다.
자연스레 리듬을 탈 즈음 주연이의 목소리가 섞여들었다.
“비 내리는 날엔 우산이 돼 주고~ 어둠 속에선 빛이 돼 줄게~ ♪”
나긋하게 읊조리는 듯 하지만 그 속에는 감정이 실려있었다.
마치 정말 사랑하는 대상에게 얘기하는 것처럼.
순식간에 조용해진 아이들.
“…”
특히 시은이는 작게 입까지 벌린 채로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
첫 소절만으로 충격을 받은 표정이다.
그럴 만도 했다.
‘나도 그랬으니까.’
주연이의 음색은 바로 집중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귀를 뗄 수 없게 만든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 처음 듣는 입장에서는 놀랄 만도 했다.
‘게다가.’
시은이는 단비음악대의 보컬이니 말이다.
포지션이 같은 만큼 주연이의 무대에 더 몰입할 수 있겠지.
실은 조금 걱정이 있었다.
피아노와 기타.
연두와 레나는 포지션이 확실했다.
물론 보컬이 그렇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시은이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내 제안에 의해 갑작스레 맡게 된 느낌이니까.
실제로 처음에는 굉장히 어색해하던 시은이였다.
자신감도 없어보였고.
‘다행히.’
지금은 그런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늘 응원해주고 템포를 맞춰주는 팀원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반대도 마찬가지일 테고.’
다만 한 가지 차이는 존재했다.
레나는 애당초 바이올린 스페셜리스트고, 연두도 최고의 스승님이 생긴 상태였다.
그런데 시은이는 가르쳐줄 사람이 없었다.
‘중요한데.’
어떤 분야에서든 스승의 역할은 무척 중요한데 말이다.
어쩌면 그 문제가 해결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연이의 무대를 보고 있으니.
“잠에 들 때마다 머릴 만져줄게~ 두려울 때마다 네 옆에 있어줄게~ ♪”
어느새 나도 완전히 무대에 빠져들었다.
어쿠스틱한 기타음과, 귀를 간질이는 음색과, 달콤한 노랫말에.
신기하게도 그런 가사가 많았다.
‘내가 연두를 보며 했던 생각들과 얘기들.’
비록 청혼하는 가사이긴 하지만.
소중한 사람에게 건네는 말이라는 점에서 겹치는 부분이 많은 거 같았다.
연두도 비슷한 생각을 한 걸까.
스윽.
중간중간에 계속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곤 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번졌다.
이어지는 하이라이트.
“Marry me~ 나랑 결혼해 줄래요~ ♪”
직접적인 청혼의 가사였다.
마음을 전달하고선 끝내 청혼하는 게 로맨틱하게 느껴졌다.
이윽고 마무리되는 노래.
“헤.. 되게 쑥스럽다..”
주연이가 어색하게 웃음짓는다.
우리 넷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함성과 박수를 쏟아냈다.
이렇게 끝나나 했는데,
“…콜.”
연두가 자그맣게 입을 열었다.
뭐라고 한 거지?
물어보려는 순간, 연두가 이번에는 손까지 불쑥 올리며 소리쳤다.
“앵콜..!”
“푸흣.”
콘서트에서 이 단어도 배웠구나.
연두의 말을 시작으로 시은이와 레나의 입에서도 앵콜 요청이 쏟아졌다.
또다시, 뺄 수 없는 분위기였다.
***
앵콜 요청에 다시 기타를 잡은 주연이.
“그럼 이번엔..”
“이번엔?”
“제가 만든 자작곡 한 번 불러도 될까요?”
놀란 표정으로 나는 되물었다.
“주연이 너 작곡도 해?”
“최근에 배워서 기타로 몇 개 만들었거든요..”
“아.”
노래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음악적으로 할 줄 아는 게 많은 주연이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야 당연히 좋지.”
“그래요?”
“응.”
아이들을 보며 말했다.
“너희들도 듣고 싶지 않아? 주연이언니가 만든 노래.”
“듣고 시퍼요!”
“저도요.”
바로 노래가 시작됐다.
시작 전에 말해준 노래의 제목은 ‘울컥’이었다.
제목에 걸맞은 가사가 귀에 들어왔다.
“왜 소리 내 한 번 웃지 않나요~ 그렇게 어색한 사이인가요~ ♪”
짝사랑을 하는 마음을 가사로 담은 거 같았다.
울컥하는 심정이라 해야 하나.
솔직히 거의 기대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완성도가 너무 높았다.
‘인디 느낌이 나긴 하지만.’
실제 있는 노래라고 해도 믿을 거 같았다.
“울컥 차오르는 나의 눈물이~ 하염없이 그댈 붙들고~ ♪”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앵콜곡.
슬픈 노래이다 보니 이번에는 커다란 환호성은 나오지 않았다.
내가 먼저 입을 뗐다.
“주연아.”
“.. 네.”
“진짜 좋은데?”
우선 곡에 대한 감상이었다.
그 이후에 나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근데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뭔데요?”
“혹시 이 가사, 실화 배경이야?”
“아, 아니에요!”
당황한 표정으로 주연이가 말을 이었다.
“그냥 상상해보면서 쓴 거예요. 짝사랑하는 기분이 어떨지.”
“하하, 그렇구나.”
“잠깐만요. 안 믿고 있죠, 오빠!”
“믿고 있는데?”
“우으..”
주연이는 볼멘소리를 내며 무대를 걸어내려왔다.
그때였다.
앞으로 한 아이가 걸어나가더니 주연이 앞을 가로막았다.
“언니.”
다름아닌 시은이였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보였다.
“저..”
“응?”
“저 노래 가르쳐 주세요..”
“노래?”
“네.”
뜻밖의 제안이었는지 주연이의 눈이 동그래진다.
그와 별개로 답은 바로 나왔다.
“알겠어!”
“정말요?”
“응. 언니가 가르쳐 줄게!”
또 하나의 사제관계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더할 나위 없는 흐뭇한 마무리다.
이제 만족스럽게 공연장을 떠나 장소를 옮길 수 있겠네.
그렇게 생각했는데,
“.. 오빠.”
의미심장한 주연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왠지 모르게 불안한 느낌.
“응?”
“이제 오빠 차례예요.”
“무슨 얘기야?”
“답가요. 저도 했으니까 오빠도 답가 한 곡 해 주셔야죠. 그치, 얘들아?”
불안한 예감은 완벽히 적중했다.
이번에도 연시레의 단합력은 빛을 발했다.
“우아!”
“아저시!!”
아무래도 피할 수 없을 거 같았다.
또 하나의 흑역사가 만들어지기 직전이었다.
***
얼마 후에 우리는 다음 목적지로 이동했다.
이동하기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굳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다.
생각만으로도 아픈 기억이니까.
끼익.
“자, 여기야.”
도착한 곳은 다름아닌 동네 공원이었다.
전에 다니던 학교와 가까워서 지리를 잘 알고 있는 곳이었다.
이 곳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괜찮은 장소도 많고.’
여름인 게 한껏 드러나는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거 같아서였다.
혹시 몰라 나는 물었다.
“너무 덥지는 않지, 얘들아?”
여름이긴 하지만 푹푹 찌는 더운 날씨는 아니었다.
오늘을 촬영날로 정한 이유도 그래서였다.
비교적 덥지 않은 날씨라는 예보에.
“네에.”
“조금 더워요.”
대답하는 아이들.
나는 빙긋 웃으며 얘기했다.
“혹시 많이 더워서 힘들면 얘기해. 알겠지?”
“네.”
곧바로 나는 촬영을 시작했다.
이제 연두와 시은이는 크게 지적할 만한 부분이 존재하지 않았다.
프로 모델 그 자체라고 할까.
심지어 처음인 레나를 양옆에 붙어서 계속 도와주기까지 한다.
“레나야. 이러케 하면 대.”
“이렇게?”
“으응. 이게 포즈라는 건데……”
“푸흣.”
바라보던 나와 주연이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포즈라는 단어까지 설명하며 이론교육을 하는 연두의 모습에.
막상 연두는 세상 진지한 표정이다.
“포즈?”
레나도 마찬가지다.
강의에 집중하는 열정적인 수강생의 모습.
시은이의 역할은 동시통역사였다.
“그러니까……”
가끔 이해하기 힘든 연두어를 알기 쉽게 풀어서 말해주는 역할.
나로서는 이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두 아이가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덕에 촬영에만 집중할 수 있었으니까.
찰칵. 찰칵.
장소와 의상을 옮겨가며 계속해서 촬영을 진행했다.
“부탁할게, 주연아.”
“네.”
“힘들어도 조금만 참아, 얘들아. 이제 마지막 옷이니까.”
어느새 마지막 옷이었다.
종류는 원피스.
다른 옷들과 달리 지금의 원피스는 작년과 디자인이 같았다.
‘전부 신상인 건 아니니까.’
디자인이 그대로 유지되는 옷도 많았다.
특히나 그 의상에 많은 고객들에게 사랑을 받은 스테디셀러라면.
원피스는 그런 옷 중 하나였다.
‘기대되네.’
원피스를 맞춰입은 연시레의 모습이 어떨지 무척 기대가 됐다.
그래서인지 길게 느껴지는 기다림의 시간.
나는 카메라를 손에 들었다.
‘좋아.’
사진을 찍을 장소는 눈앞에 있는 전봇대였다.
밝은 원피스와 낡은 회색 거리의 배경.
안 어울린다고 느껴질지 모르지만 바로 그게 의도하는 바였다.
‘부조화가 만들어내는 조화라고 해야 하나.’
사진가 이주원의 철학 중 하나였다.
카메라를 들고 자세를 잡은 나는 앵글 속에 배경을 담아봤다.
스윽.
전봇대와 회색 벽. 역시 레트로한 느낌이 매력적이다.
미리 구도나 느낌을 파악할 겸 나는 카메라를 든 채로 이리저리 움직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완벽한 구도를 잡았다 판단이 돼서 눈을 떼려는데,
촤락.
보고 있던 배경이 사라졌다.
무언가가 불쑥 들어와 앵글을 가린 거다.
“…?”
순간적으로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카메라를 눈에서 떼는 것도 잊고 고개만 들어 앵글을 올렸다.
그러자 들어오는 형체.
“으악!”
사람의 얼굴이었다.
깜짝 놀란 나는 그제야 카메라에서 눈을 떼고 뒷걸음질쳤다.
“죄송합니다.”
지나가던 행인이었던 모양이다.
왜 가만히 멈춰 서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황만 놓고 보면 나는 한참동안 생판 모르는 사람을 카메라 안에 담은 셈이었다.
촬영 버튼을 누르지도 영상을 찍지도 않긴 했지만.
횡설수설하는 사이 들려오는 목소리.
“.. 저기.”
우선 상황을 설명하는 게 먼저일 거 같았다.
나는 입을 열었다.
“전봇대를 찍고 있었는데 갑자기 앵글이 가려서요. 오해하실까 봐 말씀드리면 방금 촬영은 하나도……”
“저기요.”
화 많이 나신 건가.
재차 들려오는 말에 그제야 나는 제대로 얼굴을 마주봤다.
동시에 말문이 막혔다.
“너..”
아는 사람이었다.
분명히 낯이 익은 여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연스레 한 마디가 나갔다.
“.. 최서아?”
생각지도 못한 동창과의 재회였다.
*****************************************************
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