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363)
363화. 리허설
“.. 최서아?”
고개를 들어 제대로 마주 본 얼굴.
너무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라 당황하긴 했지만 확실히 그 애가 맞았다.
역시나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넌 이주원.. 맞지?”
“응.”
“…”
잠깐. 왜 이렇게 어색한 건데.
나름 7년 만에 만난 동창인데 반가워서 인사를 나누기는커녕 의미 없이 서로의 이름이나 확인하고 있다니.
그건 별개로 생각해도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꽤나 오래 정적이 흐르고 있고.
‘물론.’
미술실에서의 사건(?)이 있긴 했지만.
그로 인해 3년 내내 말 한 번 안 섞고, 복도에서 마주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을 피하긴 했지만.
전부 7년이 넘게 지난 이야기였다.
애초에 그리 심각한 문제도 아니었고 말이다.
‘어린 마음에 그런 거지.’
나중에 생각해 보니 내 잘못이 컸다.
워낙 소심한 성격 탓에 관계 회복을 하는 건 실패했지만.
어차피 돌이킬 수는 없는 노릇이고, 지금은 전부 지나간 옛이야기에 불과하다.
괜히 그때를 생각하며 어색하게 대하는 것도 유치한 일이었다.
나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진짜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갑자기 스탠스가 바뀐 탓일까.
최서아는 조금 놀라는 듯 하더니 대답했다.
“응.. 너는?”
“나야 뭐.”
잘 지냈다고 덧붙이려는데 먼저 최서아가 말했다.
“잘 지내지?”
입가에 떠오른 가벼운 미소를 보니 질문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알고 있구나.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치.”
옛 동창과 만나면 해야 하는 국룰같은 멘트가 몇 개 있었다.
나는 나지막이 말을 건넸다.
“넌 진짜 그대로다.”
없는 말은 아니었다.
교복이 아닌 복장과 손에 든 가방으로 인해 분위기가 달라지긴 했지만.
그 외에는 예전 그대로였다.
내가 괜히 얼굴을 보자마자 알아볼 수 있었던 게 아니다.
“아, 그래..?”
“응.”
“너도야. 너도 7년 전? 그때 그대로여서 놀랐어.”
“하하, 그래?”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친구들은 늙었다고 하던데.”
“친구들?”
“아. 걔네 말하는 거야. 성현이, 준수, 윤우.”
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누군지 기억하는 모양이다.
최서아는 처음으로 소리내어 웃으며 말했다.
“걔네는 원래 그랬잖아.”
진짜 잘 기억하고 있네.
나름 공통분모가 있어서인지 얘기가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 최서아가 말했다.
“아까는 진짜 놀랐어.”
“아까?”
“응. 지나가다가 보는데 카메라를 얼굴에 대고 앉아있는 사람이 있더라고.”
여기까지만 해도 나를 말하는 게 분명했다.
“그래서 뭐지 하고 계속 걸어가는데 잠깐 얼굴이 보였거든.”
“.. 그게 나였구나.”
“응. 그래서 깜짝 놀라서 멈춰 선 거야.”
그런 거였구나.
최서아는 다짜고짜 사과하며 말했다.
“카메라를 가리고 서 있을 생각은 없었는데. 미안해.”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냐. 지나가는 길인데 못 본 내 잘못이지.”
“흐흣..”
난데없이 웃음짓는 최서아.
영문을 알 수 없는 웃음에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래?”
“아니, 그냥.. 새삼스레 이렇게 쉬운 거였는데 싶어서.”
“뭐가?”
“사과하는 거.”
어떤 일을 얘기하는 건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역시 기억하고 있구나.
말의 뉘앙스를 볼 때 나를 향한 게 아닌 스스로에 대한 자책으로 보였다.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최서아는 화제를 전환했다.
“그러고 보니.. 기억하고 있었네?”
“뭘.”
“내 이름.”
“그야 동창이니까.”
“그렇긴 하지만 잊을 만도 하잖아. 7년이 지났으니까.”
하기야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이름이 가물가물하거나 아예 생각 안 나는 고등학교 친구도 많은 걸 보면.
조금 생각한 나는 말했다.
“이름까지 잊어버릴 사이는 아니었나 보네.”
“그, 그런가..?”
뭔가 당황한 게 느껴져 나까지 당황해서 답했다.
“아니, 막 대단한 사이였다는 건 아니고.”
“그치, 그치.”
“너 이름이 막 흔한 이름은 아니니까. 내 이름은 몰라도.”
“그런가? 최서아가 특이한 이름인가?”
잘은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지금 이 순간, 둘 다 뇌정지가 온 화법을 구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 최서아?”
앞에서 들린 소리가 아니었다.
뒤를 돌아보니 주연이와 함께 서 있는 연두와 시은이, 그리고 레나가 보였다.
역시 원피스를 입은 연시레는 빛이 나는구나.
‘아니, 잠깐.’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분명히 들렸다. 뒤에서 최서아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그리고 그건 시은이의 목소리였다.
“언니 이름이 최서아예요?”
어딘가 싸늘하게 느껴지는 물음이었다.
***
넋이 나간 표정의 최서아.
갑자기 눈앞에 연시레가 한 번에 나타나니 그럴 만도 했다.
아마 내가 혼자라 생각한 모양이다.
뒤늦게 최서아는 시은이의 질문에 답했다.
“응, 맞아. 근데.. 언니가 누군지 아니?”
순간적으로 나도 헷갈렸다.
왜 시은이가 갑자기 이름을 물어보는 건지.
‘그때구나.’
돌이켜보니 풋살장에 갔을 때 최서아의 이야기가 나오긴 했다.
아주 잠깐이긴 하지만.
그걸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끼어들어 말하려는 찰나에 시은이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이름이 예뻐서요.”
“으.. 응?”
갑작스러운 칭찬에 당황한 듯 보이는 최서아.
뭔가 흐름이 이상하긴 한데.
이러면 굳이 끼어들어 얘기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고마워..”
어느새 연두는 내 옆에 꼭 붙어서 최서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어지는 자그마한 목소리.
“아빠 친구에요..?”
“응, 맞아. 인사할까?”
“안녕하세요..”
최서아는 미소를 띠며 연두의 인사를 받았다.
“응, 연두야. 만나서 반가워. 실제로 보니까 진짜 너무 귀엽다.. 시은이도 레나도.”
대충 할 얘기는 모두 끝낸 거 같았다.
더 잡아두는 것도 민폐였다.
대충 작별인사를 하려는데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아, 그 소식은 들었어?”
“어떤 소식?”
“홍수찬선생님 기억하지?”
“응.”
내가 기억하기로 둘은 꽤 친한 사이였다.
“이번에 결혼하기로 하셨거든.”
“.. 정말?”
“응. 준수가 따로 연락 닿는 동창들 있으면 전하라 그랬는데. 넌 꽤 친했던 걸로 기억하니까 알려줘야 할 거 같아서.”
“그렇구나. 고마워. 애들한테 연락해 봐야겠다.”
전할 것도 전했겠다.
마지막으로 나는 말을 건넸다.
“그리고 이제 와서 말하는 게 웃기긴 하지만, 미술실에서는 미안했어.”
“.. 응?”
“내가 너무 과하게 반응한 거 같아서.”
“아, 아냐!”
최서아는 휙휙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 일은 전적으로 내 잘못인데, 뭐. 내가 미안하지..”
“하하, 정말 늦은 화해네.”
“그러게.”
말이 7년이지.
그 일이 고1 때인 걸 고려하면 무려 9년 만의 화해다.
마주 보고 웃다가 최서아는 말했다.
“그럼 난 가 볼게. 계속 방해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
“수찬쌤 결혼식 날 볼 수 있으면 보자.”
이렇게 깔끔하게 재회가 끝났다.
그리 특별할 것도 흠잡을 것도 없는 재회였다.
최서아가 떠나자 주연이가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와.. 예쁘다..”
“응.”
“완전 예뻐서요. 오빠 옆에는 진짜 예쁜 사람밖에 없는 거 같아요. 같이 다니다 보면 기죽는다니까요?”
장난스레 말을 받았다.
“그러게. 그래서 주연이 너도 있나 보다.”
“…?”
눈이 동그래진 주연이는 말했다.
“뭐, 뭐예요!”
“왜?”
“그런 카사노바같은 멘트. 오빠랑 진짜 안 어울려요.”
“하하, 카사노바라니. 그냥 사실을 말한 건데.”
주연이는 입술을 삐죽 내밀더니 말했다.
“근데 왜 사과해요?”
“응?”
“저 언니랑 미술실에서 싸웠어요? 신기하다..”
“뭐가 신기해.”
“안 그려져서요. 오빠가 누구랑 싸운다는 게. 뭔가 오늘 오빠 이미지가 바뀐 거 같아요. 막 카사노바같은 멘트 치고, 누구랑 싸웠다 그러고.”
이거 큰일인데.
주연이가 그렇게 봤을 정도면 연두 눈에도 그렇게 보인 거 아닌가.
시은이도 레나도 마찬가지고.
“에이, 무슨 소리야. 나 네가 알던 사람 맞아. 이주원 맞다고.”
“.. 다른 사람 들어간 거 아니죠?”
“당연하지.”
오히려 막 변명하려고 하니 이상해지는데.
밑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 마자요!”
“응?”
“아빠 마자요! 다른 사람 안 들어가써요!”
눈에 꾹 힘을 준 연두가 단호함 가득한 목소리로 말한다.
솔직히 감동이었다.
이런 얘기가 오가면 어린 마음에 의심하거나 무서워할 법도 한데.
‘충분히 가능한 발상이니까.’
연두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발상이었다.
다리에 쥐가 났다는 말에 진짜 쥐가 튀어나왔다고 생각할 정도로 뛰어난 상상력의 소유자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말한다는 건.
내가 진짜 아빠라는 걸 100% 확신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
나와 연두의 유대가 겨우 이런 걸로 흔들릴 리가 없지.
전에 말했듯 OX 퀴즈의 마지막 문제 말고는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운명공동체이니 말이다.
괜히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입을 열었다.
“.. 정말?”
“으응?”
“아빠가 진짜 연두 아빠인 거 같아?”
과연 이 물음에도 연두가 똑같이 대답할까.
옆에서 웃음을 참는 주연이.
연두는 내 옷자락을 꼭 잡은 채로 자그마한 목소리로 답했다.
“마, 마자요, 아빠.. 맞죠…?
“푸흣.”
결국 웃음이 터졌다.
마지막에 확인하듯 묻는 게 귀여워서 도무지 연기를 지속할 수 없었다.
나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 보여줄게, 연두야.”
“.. 네?”
“가짜 아빠는 절대 흉내낼 수 없는 진짜 아빠의 사진실력을.”
내가 나인 걸 증명할 시간이었다.
***
촬영은 성공적으로 마쳤다.
증명을 위해 열의를 불태운 덕에 마지막 모델컷은 정말이지 최고였다.
사진 하나하나가 예뻐서 빠르게 넘길 수가 없었다.
‘손색이 없어.’
여름 화보집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오히려 이 중에서 또 엄선해야 한다는 게 골치일 거 같았다.
뭐, 그건 사장님이 판단할 일이겠지만.
‘아무튼.’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로써 이든의 사이트는 한층 더 빛나게 될 거라는 거.
뿌듯한 마음과 함께 사진을 전송했다.
이후 연두랑 나란히 침대에 누운 채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연두야.”
“네, 아빠.”
“오늘 고생 많았어. 더워서 힘들었지?”
도리. 도리.
연두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안 힘들어써요. 시으니랑 레나랑 가치 사진찍어서 진짜 재밌어써요..”
“다행이다.”
“.. 아빠는요?”
“아빠도 하나도 안 힘들었어. 연두랑 시은이랑 레나가 모델이라.”
“헤헤.”
왜인지 연두를 나를 꼭 부둥켜안더니 가슴팍에 얼굴을 비비며 말했다.
“연두 아빠다..”
“응?”
“연두 아빠 맞다.. 진짜 아빠…”
“흐흡.”
내심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나도 그런 적이 있다.
어렸을 적에 무언가를 계기로 우리 아빠가 진짜 아빠가 맞나 의심을 했던 기억이 있으니까.
‘악몽이었나?’
잘은 기억 안 나지만 무서운 꿈을 꾸고 난 후였던 거 같다.
연두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아빠가 연두를 두고 어디 갈 리가 없잖아.”
나와 연두는 마주보고선 쿡쿡 웃음을 지었다.
한동안 꽁냥거림이 이어졌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말했다.
“힘들 테니까 얼른 쉬어, 연두야.”
“네에.”
그런데 그때.
연두는 불쑥 고개를 들더니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아빠.”
“응?”
“연두 아빠랑 가치 보고 시퍼요!”
“뭘?”
“연두부 댓글..!”
요즘은 이런 경우가 자주 있었다.
연두가 갑자기 연두튜브의 댓글을 보고 싶어하는 경우.
“그럼 같이 볼까?”
“네, 아빠!”
마침 최근 올린 영상이 있었다.
풋살을 하는 연시레의 모습을 편집해서 업로드한 영상.
지금쯤 반응이 올라와 있을 터였다.
‘사실.’
최근에 준비하고 있는 게 있었다.
어린이날 방송에서 연두부로부터 요청받은 다양한 콘텐츠.
그중에 하나였다.
댓글 읽기.
바로 연두의 댓글 읽기 리액션이었다.
준비 방법은 간단했다.
그동안 올린 영상을 쭉 돌려보며 댓글을 엄선하는 걸로 충분했다.
벌써 최근 영상까지 다다른 상태였다.
‘즉.’
이제 곧 그 콘텐츠를 할 계획이란 뜻이다.
엄선한 후에는 연두와 함께 읽기만 하면 되니 거창하게 준비할 만한 건 없었다.
오히려 그런 자연스러운 모습을 연두부는 더 좋아할 테고.
‘리허설인가.’
지금은 그 리허설 정도로 생각하기로 하자.
나는 빙긋 웃으며 연두튜브에 들어갔다.
[연시레의 축구!(feat. 메시급 드리블!?)]침대에 기대고 나란히 앉은 나와 연두.
그 앞에 떠올랐다.
연두부가 남긴 수많은 댓글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