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369)
369화. 언어의 마술사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간 결혼식장.
웨딩홀은 3층이었다.
스르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결혼식 시작 시간보다 일찍 온지라, 아직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왜 이른 시간에 도착한 거냐 묻는다면 간단했다.
‘리허설이 필요하니까.’
아무리 준비가 완벽하다고 해도 장소가 다른 만큼 리허설은 필요했다.
무대에 대해 파악할 필요성도 있고.
입장을 비롯한 동선 체크도 해 둬야 했다.
“이쪽이야, 얘들아.”
“네.”
예식장에 들어서자마자 화환이 일렬로 쭉 이어져 있었다.
어딘가에 우리가 보낸 것도 있을 텐데.
굳이 찾지는 않았다.
터벅. 터벅.
곧이어 모습을 드러내는 웨딩홀.
전체적으로 어두운 톤으로 꾸며진 웨딩홀을 수많은 하얀 꽃과 캔들이 빛내고 있었다.
제대로 준비하셨구나, 우리 수찬쌤.
하기야 인생을 통틀어 한 번 있는 날인데 그럴 만도 하지.
“예쁘다..”
“꽃 엄청 많다..”
“저기 불꽃도 있서…”
연시레는 저마다의 이유로 감탄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레나, 대단한데?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꽃이 많다는 걸 불꽃도 있다는 말로 라임을 맞췄다.
갑자기 힙합이 하고 싶어지는군.
‘장난이고.’
오기 전에 수찬쌤과 이야기를 나눴다.
결혼식 당일이라 그런지 반쯤 혼이 나간 게 느껴져서 웃음이 나왔지.
그와 별개로 나눈 얘기는 간단했다.
“선생님.”
“그래.”
“보통 신랑신부도 결혼식 전에 리허설같은 거 하지 않아요? 입장하는 거나 같이 걷는 거.”
리허설이 필요한 건 연시레뿐만이 아니다.
신랑과 신부도 결혼이 처음인 만큼 하나하나 동선을 맞춰볼 필요가 있었다.
안 그랬다가는 결혼식 때 혼선을 빚을 수 있으니까.
“이미 했다..”
진작에 끝냈다는 모양이었다.
“아, 정말요? 그럼 지금은 뭐 하고 계세요?”
“그냥 준비할 게 좀 있어서.”
“저는 지금 가고 있어요. 아이들이랑 같이.”
오래 통화를 지속할 수는 없었다.
평소와 달리 선생님은 어딘가 고장이 나 보였으니까.
그래서 핵심적인 대화만 주고받았다.
“그럼 지금 가면 잠깐 맞춰보는 건 가능한 거죠?”
“물론이지. 근데 내가 바로 못 갈 수도 있어. 지금 조금 일이 있어서.”
“괜찮아요.”
대충 그렇게 통화가 끝났다.
따라서 지금은 마음대로 동선을 맞춰볼 수 있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계단으로 올라갔다.
“여기로 와 볼래?”
사회자 앞에 신랑신부가 나란히 서게 될 연단 위.
단비음악대가 축가를 부르게 될 곳은 그 옆의 공간이었다.
그곳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여기서 하게 될 텐데……”
허나 나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웃음을 지었다.
뭐라고 지시하기도 전에 알아서 자리를 잡는 아이들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렇게 하면 돼.”
축가를 위한 요소는 이미 모두 갖춰져 있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그리고 마이크.
딱히 리허설을 미룰 이유는 없었다.
“그럼 바로 한 번 해 볼까?”
“네!”
리허설 시작이었다.
***
푸르르르.
프로펠러 소리와 함께 시작된 리허설.
생각한 것 이상으로 순조롭게 진행됐다.
사실상 준비는 완벽한 상태에서 동선만 맞추면 되는 거라 막히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
“됐다. 잘했어, 얘들아.”
흠잡을 데 없는 무대를 보여준 아이들을 향해 엄지를 척 내밀었다.
이 정도 퀄리티의 무대라면 안 그래도 빛나는 결혼식을 더욱 빛나게 만들 수 있을 터였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만족이었다.
끼익.
그때였다.
문 쪽에서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보이는 얼굴.
다름아닌 수찬쌤이었다.
“후우..”
급하게 온 건지 거칠게 숨을 몰아쉬더니 수찬쌤은 말했다.
“일찍 왔네?”
“하하, 온 지 한참 됐는데요?”
“아, 정말?”
“네. 저랑 통화한 게 얼마나 지났는데요.”
“.. 오래됐나?”
떨려서인지 시간 감각도 고장나신 모양이다.
그런 와중에도 아이들을 보고선 세상 환하게 웃음을 짓는다.
“안녕, 연두야. 시은이랑 레나도. 오늘 와 줘서 너무 고마워.”
아이들이 공손하게 인사를 받는다.
가까이에서 수찬쌤을 본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쌤. 오늘 좀 멋지신데요?”
“.. 그, 그러냐?”
“네. 맨날 카라티나 바람막이 입은 모습만 보다가 수트차림 보니까 색다른 느낌이에요. 진작에 이렇게 입고 다니시지.”
“놀리는 거 아니고?”
내가 자주 장난을 치긴 한 모양이다.
결혼식 당일에 하는 말을 그렇게 받아들이실 정도면.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진심이에요. 그치, 연두야?”
내 말을 보증해줄 가장 믿음직스러운 지원군이 바로 옆에 있었다.
거짓말 못 하는 우리 연두.
역시나 생긋 웃으며 대답한다.
“네. 엄청 머시써요, 수찬쌤..!”
“허허..”
멋쩍은 웃음을 띠는 홍수찬선생님.
선생님은 헛기침을 몇 차례 내뱉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말이야..”
“네.”
“진지하게 물어보는 건데.. 지금 나 몇 살로 보이냐?”
생각지 못한 물음이었다.
허나 충분히 궁금해할 법도 했다.
살면서 워낙 노안이란 소리를 많이 들어오신 데다가, 신부와의 나이 차이도 어느 정도 있으니까.
‘걱정인 거겠지.’
하객들이 보기에 너무 차이가 많이 나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평소라면 장난으로 답했겠지만, 이번만큼은 진지하게 대답할 필요가 있을 듯했다.
마침 떠오르는 최선의 답이 존재했다.
“제 눈은 부정확하죠.”
“왜?”
“저는 선생님을 학창시절 때부터 알았잖아요. 그러니까 객관적으로 볼 수가 없죠.”
바로 납득한 표정.
그와 별개로 근심은 더 늘어난 표정이다.
괜찮았다. 아직 내 말은 끝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 같아요.”
“.. 응?”
“제 집들이 때랑 전시회에서 본 주연이 기억하세요?”
“아, 그 우영이 또래 여자애?”
“네.”
“기억하지. 근데 그 애가 왜?”
“저번에 만나서 제가 물어봤거든요. 선생님 겉보기에 나이가 어떻게 돼 보이냐고. 주연이는 선생님을 몰랐으니까 객관적일 테니까요.”
내 말에 동공이 확장되는 수찬쌤.
이어서 긴장감이 느껴지는 물음이 귀에 들어왔다.
“그래서.. 주연이가 뭐라 그랬는데?”
나는 빙긋 웃으며 손가락 세 개를 펴고선 대답했다.
“삼십대처럼 보인대요.”
“.. 뭐?”
정확히는 서른여덟과 서른아홉 정도로 보인다고 얘기하긴 했지만.
38과 39도 3으로 시작하는 숫자 아닌가.
거짓말을 한 건 아니라는 뜻이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선생님한테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싶었다.
서른아홉처럼 보인다는 말보다는 삼십대처럼 보인다는 말이 더 큰 힘이 될 거 같았다.
이거 뭔가 언어의 마술사가 된 기분인데.
이어서 나는 덧붙였다.
“그리고 그 말도 하더라고요.”
“.. 어떤 말?”
“쌤이랑 최정윤선생님 되게 잘 어울린다고요.”
“…”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용기 불어넣기 작전은 대성공인 듯했다.
***
속속들이 하객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어머, 축하해요. 신랑 너무 멋지네. 듬직하고.”
“감사합니다.”
“정윤이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해요?”
“아, 저쪽 신부대기실로 가시면 됩니다.”
수찬쌤은 경직된 듯 떨리는 목소리로 서서 하객들을 맞이했다.
신부 측 하객은 신부와 함께 사진을 찍으러 신부 대기실로 이동했다.
물론 신랑 측 하객도 많았다.
“수찬아!”
“어, 동필아. 오랜만이다.”
“그러게. 난 여기 왔는데도 믿기지가 않는다.”
“뭐가.”
“수찬이 네가 장가를 가다니..”
지켜보다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제자나 친구나 생각하는 건 똑같구나 하고.
수찬쌤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야, 그거 칭찬이냐, 욕이냐.”
“당연히 칭찬이지. 격하게 축하한다, 인마.”
“.. 일단 고맙다.”
그런 와중 들려오는 목소리.
“어머! 저기 연두 아니야?”
“맞네! 초록님도 있잖아! 옆에 연두 친구들도 있고.”
“시은이랑 레나잖아!”
연시레와 함께 있는 이상 관심을 피할 수는 없었다.
다가온 아주머니가 말했다.
“연두튜브 내가 챙겨보는 채널인데..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저기 계신 신랑분 제자거든요.”
“아!”
손뼉을 치며 그녀는 말했다.
“그랬구나. 깜짝 놀랐네요. 정윤이 결혼 축하하러 왔는데 연두를 다 보고.”
“하하..”
얼마간 대화를 주고받다가 그녀도 신부대기실로 향했다.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연두가 말했다.
“보고 싶다..”
“응?”
“연두도 보고 시퍼요.. 신부…”
옆에서 시은이와 레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도.”
“나도 보고 시퍼.”
이걸 어쩐다.
그와 별개로 여기 계속 서 있으면 여러모로 시선을 많이 끌게 될 거 같긴 하다.
딱히 문제가 되는 건 아니지만 그러려고 온 자리는 아니다.
‘괜찮지 않을까.’
신부 대기실에 잠깐 다녀오는 것도 괜찮을 듯했다.
나는 몰라도 최정윤선생님은 연두튜브를 초창기 때부터 본 연두부이기도 하니까.
나름 지인이라고 볼 수 있었다.
먼저 수찬쌤에게 다가가 허락을 구했다.
“물론 괜찮지. 되게 반가워할 거 같은데?”
“그럼 잠깐 다녀올게요.”
“그래.”
신랑 측 허가도 얻었겠다.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곧장 신부 대기실로 향했다.
***
“우아…”
연두의 입에서 새어나오는 감탄사.
툭.
대기실에 도착한 나와 아이들의 발걸음이 동시에 멎었다.
온통 하얗게 물든 대기실 안.
양쪽에 놓아둔 커다란 장미 다발 사이에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앉아있었다.
손에는 연분홍색 꽃다발을 든 채로.
‘생각은 했는데.’
평소에도 워낙 단아한 이미지이셨던 만큼 흰 드레스가 잘 어울릴 거라고는 생각했다.
그런데 상상을 아득히 초월했다.
오늘의 신부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놀랐어, 연두야?”
“네..”
연두는 신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말했다.
“공주님 가타요..”
시은이와 레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아이들이 넋을 놓고 바라보는데, 막상 신부는 아직 우리를 보지 못한 상태였다.
지인들과 기념 촬영을 하느라 정신이 없어보인다.
“자, 찍습니다!”
찰칵.
촬영을 마치고 나서야 신부의 시선이 우리를 향했다.
화들짝 놀란 그녀가 꽃다발로 입을 가린다.
“어머..!”
나는 미소를 띠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옆에 있는 몇몇 지인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다.
마치 ‘연두가 왜 거기서 나와?’라고 눈빛으로 말하고 있는 거 같다.
쏟아지는 질문에 최정윤은 말했다.
“주원씨.. 아니, 초록님이 수찬씨 고등학교 때 제자거든.”
“와.. 진짜?”
“그래서 초록님이 연두랑 같이 오신 거구나.”
상당히 낯간지럽네.
선생님 결혼식에 와서까지 초록이라는 호칭으로 불릴 줄이야.
지인들이 자리를 비켜주고 난 뒤, 나는 아이들과 신부를 향해 걸어갔다.
“오늘 너무 아름다우신데요?”
“아니에요. 와 주셔서 감사해요.”
“뭘요. 연두가 보면서 입을 못 다물더라구요. 너무 예쁘시다고.”
옆에서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연두.
그런 연두가 귀여운지 최정윤이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와 줘서 너무 고마워, 얘들아..”
눈빛에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
예상대로 아이들을 무척 반기는 오늘의 신부였다.
그녀는 옆으로 손짓하며 말했다.
“같이 사진 찍을까?”
“네에.”
옆에 선 나는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얘들아. 드레스가 기니까 밟지 않게 조심해야 돼.”
“네.”
“연두 신발 버서요..?”
연두의 물음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그렇게까지는 할 필요 없고.”
“네..”
연두는 조심스레 바닥에 내려앉은 드레스를 피해 신부의 옆에 앉았다.
시은이와 레나도 능숙하게 자리를 잡았다.
괜히 이든 모델이 아니지. 뿌듯하구만.
“주원씨.”
“네?”
“주원씨는 같이 안 찍으세요?”
“아, 일단 아이들이랑 한 번 찍으시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딱히 찍기 싫은 게 아니다.
지금 그림이 너무 예뻐서 굳이 들어가 해치고 싶지 않았다.
사진은 몇 컷이든 더 찍을 수 있는 거니까.
“자, 찍습니다!”
찰칵. 찰칵. 찰칵.
몇 번의 셔터음이 울리고 사진사가 말했다.
“햐, 기가 막히네요, 기가 막혀.”
“잘 찍혔나요?”
직접적인 대답 대신 사진사는 말했다.
“나중에 따님 낳으셔야겠어요. 그림이 너무 예쁜대요?”
“아..”
얼굴을 붉히는 신부.
쇼맨쉽이 있는 사진사였다.
***
대기실에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우리 말고도 신부와 사진을 찍기 위해 오는 하객이 많았으니까.
조금 이야기를 나눈 뒤 인사를 건넸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네.”
아이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신부.
그렇게 나와 아이들은 대기실을 나섰다.
연두는 아직 신부를 본 감상에 젖어있는 표정이다.
이윽고 자그맣게 입을 연다.
“아빠..”
“응, 연두야.”
“결혼하는 신부는요.. 엄청 예쁜 거네요…”
“하하, 그 정도로 예뻤어?”
“네..”
큰일이네.
이러다 연두도 결혼하고 싶다고 하는 거 아닐지 모르겠다.
다시 수찬쌤을 향해 복도를 따라 걸어갔다.
터벅. 터벅.
“사람이 많으니까 길을 잃을 수 있거든? 그러니까 아저씨한테서 떨어지면 안 돼. 알겠지, 얘들아?”
“네.”
“네, 아저시.”
왜 대답하는 것도 귀엽지.
꼭 아빠를 따라오는 아기 병아리들을 보는 느낌이다.
그 모습을 웃으며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리니 눈에 들어오는 장면.
‘응?’
수찬쌤 주위로 서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의 얼굴이 보였다.
윤우였다.
‘뻔하지.’
윤우가 있다면 옆에 있는 녀석들은 안 봐도 뻔했다.
왜 이렇게 늦게 와, 이 자식들.
씩 웃으며 손을 치켜들고 인사하려는데,
스윽.
한 발자국 옆으로 이동하는 윤우.
그 사이로 생각지 못한 인물과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최서아였다.
‘왔구나.’
안 올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결국 온 모양이다.
뒤이어 나를 향하는 친구녀석들의 시선.
“어, 주원이다!”
“이야~”
불한당 무리와 최서아가 같이 있다는 것.
그게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뭐가 됐든 간에 조용히 넘어가기는 그른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