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378)
378화. 아빠바보
“라고 할 뻔..”
웃을 상황이 아닌데 실소가 흘러나왔다.
세상 당황한 와중에도 유행어로 실언을 취소하려는 성현이의 모습을 보니.
목소리가 작지 않았기에 모두가 들었을 게 분명했다.
방금 성현이가 한 말은.
“오늘 수찬쌤 결혼식 보니까 그런 생각 안 들었냐?”
“어떤 생각?”
“막 결혼하고 싶어지고 그런 생..각.”
이 말은 두 가지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
첫째는 아이들이 들었다는 것, 그리고 둘째는 윤우와 준수를 제외한 친구들이 들었다는 것.
후자의 경우가 왜 문제냐고?
간단했다.
‘모르잖아.’
다른 친구들은 모르고 있었다.
연두의 사정은 물론이고 내 친딸이 아니라는 것도.
당연했다.
그 얘기를 한 건 이 녀석들을 포함해 얼마 되지 않는 지인들 뿐이니까.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우영이 정도겠지.
그런데 성현이는 잠시 그 사실을 망각하고 실수로 나를 향해 물은 거다.
‘결혼하고 싶어지지 않았냐고.’
듣는 친구들 입장에서는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사정을 모르는 입장에서는 딸이 있는 친구에게 결혼하고 싶은 생각 안 들었냐고 물은 건데.
말이 맞지 않는 상황이었다.
성현이도 단순히 아이들 때문만이 아니라 그 사실을 깨닫고 더 심각해진 거겠지.
‘그렇다고 해명하기에는.’
연두를 포함한 아이들이 자리에 있었다.
여기서 조금 특별한 우리의 부녀관계에 대해 상세하게 말하는 건 연두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아무리 단짝인 시은이와 레나라지만, 자세한 사정을 얘기하는 게 좋은 일일까?
그것도 연두가 직접 말하는 것도 아닌 내 입으로.
‘아냐.’
냉정하게 생각할 때 아니었다.
어릴 적의 나만 해도 그랬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엄마에 관한 이야기는 섣불리 꺼내기 어려운 주제였으니까.
‘나중에 누군가에게 얘기하더라도.’
그런 문제는 준비가 됐을 때 직접 얘기하는 편이 좋았다.
무엇보다도 연두는 아직 너무 어렸다.
무언가에 대해 판단하기에도 이를 뿐더러, 내 케어를 필요로 하는 여섯살 여자아이.
시은이와 레나도 마찬가지였다.
착한 아이들이라는 것과 별개로, 아직 그런 얘기를 듣고 받아들이기에는 어린 나이임은 분명했다.
‘시은이는 어느 정도는 알겠지만.’
같지는 않지만 연두와 시은이는 공통점이 존재했다.
부모님이 한 분이 없다는 것.
똑똑한 아이인 만큼, 연두도 그렇다는 사실을 시은이는 분명히 눈치챘을 터였다.
아마 자신과 비슷한 경우라 생각하지 않을까.
허나 그 이상은 세연씨가 얘기해주지 않은 이상 모르고 있겠지.
연두가 시은이의 사정을 모르는 것처럼.
그리고 내가 판단하기에는 얘기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
적어도 지금 시점에는.
‘그럼 어쩐다.’
따라서 어떻게든 이 상황을 넘길 필요가 있는데.
중간에 말을 끊은 것도 아닌지라 뭐라 얼버무리기도 어렵고, 자연스레 넘어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침묵이 길어지면 분위기만 더 이상해지는데.
그때였다.
“야, 야. 다 왜 그래. 라고 할 뻔이라고, 라고 할 뻔! 그냥 장난 한 번 친 거야.”
본인이 실수한 건 스스로 수습하겠다는 걸까.
다시 입을 연 건 성현이였다.
애써 웃으며 장난으로 넘기려는 걸 보니 마음이 다 짠하네.
‘짠한 건 짠한 거고.’
나름 자연스럽긴 했지만 상황을 넘기기에는 부족한 거 같았다.
아직도 친구들의 표정에서는 의아함이 가시질 않았으니까.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다. 당사자인 내가 나서서 어떻게든 넘기는 수밖에.
그렇게 판단하고 입을 열려는데,
“아으.. 유성현 뇌절 오지네.”
지원군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건 방금까지만 해도 덩달아 세상 당황한 표정을 짓던 감자삼촌 박준수였다.
녀석은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장난도 사람 보고 쳐야지. 번지수를 잘못 찾았잖아.”
“으, 응? 그렇지? 하하.”
“여기 윤우가 떡하니 있는데 왜 그걸 주원이한테 묻고 있어, 멍청아.”
자연스레 윤우를 끌어오는 준수.
윤우도 끼어들었다.
“아니, 왜 하필이면 예시가 나냐? 유민준, 김동하, 조나예, 최서아 얘네 다 미혼인데.”
친구들을 닥치는 대로 가리키며 발끈한 표정으로 대응하는 윤우.
우습게도 애꿎은 조나예가 떡밥을 물었다.
“야! 갑자기 왜 나를 디스하는데! 우리 아직 파릇파릇한 스물여섯이거든? 전혀 미혼이 이상한 나이가 아니라구!”
“푸흡. 뭐야, 이 격한 반응은. 내가 누르지 말아야 할 버튼을 누른 건가?”
“죽는다..”
준수와 윤우 둘의 티키타카에 자연스레 전환된 장난스런 분위기.
그걸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지역방송이 쏟아졌다.
다른 애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느낌이 왔다. 의도적으로 도와준 거라는 걸.
‘하긴.’
평소에는 서로 까는 재미에 살긴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가만히 있을 리 없는 녀석들이었다.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세 녀석.
평소의 완벽한 호흡이 위기상황에 좋은 쪽으로 빛을 발하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지.
혹시 잊었을까 봐 얘기하자면, 나도 엄연히 이 무리에 속해 있으니까.
“내 생각은 좀 다른데.”
그런 내 말에 친구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준수가 말을 받았다.
“뭐가.”
“아니, 별 건 아니고.. 윤우보다는 성현이가 더 못 하지 않을까?”
“뭐를?”
“에이, 뭘 또 묻고 그래. 주어가 결혼이라고는 얘기 안 하려 했는데.”
“푸흣.”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웃음.
잠시 쉬긴 했지만 아직 녹슬지 않은 내 약올리기 스킬이었다.
갑작스런 내 디스에 벙찐 성현이를 향해 추가타를 꽂았다.
“그러니까 꿈 깨, 성현아. 결혼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게 아니란다. 상상과 현실은 많이 다르다고.”
“이, 이주원. 너……”
속마음이 보여서 웃음이 나왔다.
반박하고 싶어도 반박할 수 없는 저 표정.
네가 꺼낸 말이니까 이 정도는 감당해라, 친구야.
‘이대로 끝내면 재미없지.’
그렇다고 이렇게 디스로 끝내는 건 식상했다.
나는 씩 웃으며 성현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선 말했다.
“~라고 할 뻔.”
“.. 엥?”
“라고 할 뻔이라고. 설마 이게 진심이겠냐? 우리 성현이 완전 일등 신랑감이지.”
또다시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완전 만능 유행어네.
이 한 마디로 어지간한 말은 전부 주워담을 수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와.. 응용력 보소?”
한 방 먹었다는 표정으로 웃음짓는 성현이.
이렇게 환상의 호흡으로 스무스하게 상황을 넘긴 우리였다.
***
최선으로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예상 못한 복병이 있었다.
그건 바로 연두였다.
“안 대요!”
“응?”
“연두 아빠 결혼해써요!”
띠용.
늦어도 한참 늦은 타이밍. 청천벽력같은 연두의 한 마디에 동공이 확장됐다.
나뿐 아니라 열심히 수습한 세 명 역시 마찬가지였다.
왜인지 시은이도 화들짝 놀란 표정이고.
“.. 누구랑?”
물음을 건넨 건 옆에 있는 시은이였다.
긴장되는 상황.
연두는 잔뜩 수줍은 표정으로 한 마디를 내뱉었다.
“여, 연두랑…”
“응?”
“아빠랑 연두랑 결혼해써요.. 그래서 이제 결혼 모태요. 결혼은 한 번만 하는 거니까…”
절로 나오는 안도의 한숨.
나도 모르는 내 신부가 누군가 했는데 그게 연두였다니.
유새림이 쿡쿡 웃으며 말했다.
“뭐야. 이주원만 완전 딸바보 아빠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그니까.”
“연두도 완전 아빠바보네?”
“크크, 아빠바보는 뭔데. 신조어야?”
“연두사전에 등록해야겠네.”
막상 연두는 아리송한 표정이다.
왜 갑자기 바보라고 부르는 건지 의아해하는 거 같기도 하고.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쁜 뜻으로 바보라고 하는 게 아니야, 연두야.”
“그럼요..?”
“그만큼 연두가 아빠를 좋아한다는 뜻이 담긴 말이야. 그래서 사람들도 아빠를 딸바보라고 부르는 거고. 딸인 연두를 너무 좋아한다는 뜻으로.”
“아!”
이해한 듯 연두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연두도 할래여! 아빠바보..”
“하하, 그래.”
수식어가 하나 더 생긴 연두였다.
***
계속해서 이야기가 오갔다.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이런 게 동창회 분위기가 아닐까.
함께 학교를 다녔다 보니 대화주제가 넘쳐났다.
“아, 맞아. 그때 진짜 웃겼는데.”
“종철쌤 생각나네.”
“아직도 생각나는 게, 성현이 큰 그림 본다면서 학교 와서 학교공부는 안 하고 공무원시험 공부하는데 걸려서 오지게 혼난 거, 킥킥. 생각만 해도 웃음벨이네.”
“공부한다고 혼난 놈은 얘가 세계 최초 아니냐.”
“아, 흐흑. 너무 웃겨.”
이번에도 기승전 성현이였다.
나 역시 웃음이 나왔다.
수능은 깔끔히 접고 공무원이 되겠다며 홀로 외로운 사투를 하던 성현이의 모습이 떠올라서.
약이 바짝 오른 성현이는 이를 악물고 항변했다.
“아오, 좀! 그래서 공무원 됐잖아! 됐으면 된 거 아니야? 어?”
“그건 맞는데 또 너무 웃긴 게 하필이면 직업상담 공무원이야. 크크.”
“학교 공부 재끼고 공무원준비하던 녀석이 하는 일이 직업상담. 진짜 레전드다.”
“…”
결국 성현이는 반박을 포기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이쯤 되면 안쓰러울 지경이다.
개인적으로 성현이와 상담을 하며 많은 걸 깨달은 입장이라 천직이라고 생각하는데.
역시 동창들 사이에서는 어쩔 수 없네.
한편으로는 신기했다.
학창시절이 이제는 이렇게 웃고 떠들 과거 이야기가 되었다는 게.
그런 와중 조나예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요즘도 학교 재밌어요?”
웬 존댓말이지.
의아함에 시선을 보니 우영이를 향하고 있었다.
한참 후배이긴 해도 초면인지라 섣불리 말을 놓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뭐야. 갑자기 어색하게 웬 존댓말이야. 후배인데.”
“뜬금포 웃기네.”
“말 잘 놓으면서 왜 그러냐, 조나예.”
조나예는 어색한 미소를 띠며 답했다.
“아니, 뭔가 어렵단 말이야. 혹시.. 말 놔도 되나..요?”
하기야 우영이가 워낙 차가운 이미지긴 하지.
우영이는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마음대로 하세요.”
“그, 그래.. 요즘 평화고는 어때? 재밌어?”
“별로 재미없어요.”
“그렇구나. 나 너 연두튜브에서 많이 봤어. 완전 츤데레던데.”
이번에는 우영이가 어깨를 살짝 들썩였다.
특정 단어에 반응한 느낌이다.
하기야 당사자인데 모를 수가 없지. 연두튜브 공식 츤데레 캐릭터인데.
조나예는 그 작은 들썩임을 놓치지 않았다.
“어, 쑥스러워한다! 수줍어한다!”
“.. 아니에요.”
“에이, 아닌 게 아닌 거 같은데~”
“…”
“미안..”
사과는 빠른 조나예였다.
여기저기서 터지는 웃음, 그 속에서 유새림이 말했다.
“뭔가 고등학교 때 이주원 보는 거 같아.”
“.. 어? 나?”
이번에는 내가 반응했다. 전혀 납득이 돼지 않아서였다.
고등학교 때 내가 이랬다고?
유새림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말 없고, 뭔가 다가가기 힘든 차가운 느낌에, 둘다 그림도 그리잖아.”
“.. 내가 그랬어?”
“어, 완전.”
앞에서 최서아도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눈이 마주치자 민망한 표정으로 끄덕임을 멈추긴 했지만.
뒤이어 조나예도 말을 덧붙였다.
“진짜 비슷하긴 하다. 우영이가 좀 더 나쁜 남자 버전같기는 한데.”
그런데 그때.
옆에 앉아있던 연두가 불쑥 목소리를 냈다.
“나쁜남자 아닌데..”
“응?”
“우영이오빠.. 나쁜남자 아닌데…”
조금 놀란 표정의 우영이.
조나예는 재밌다는 표정으로 연두를 향해 물었다.
“오, 그래? 그럼 어떤 오빠인데?”
“차칸 오빠요.. 진짜진짜 차칸 오빠…”
옆에서 레나가 묻는다.
“짱 차칸 오빠?”
“으응! 짱 차칸 오빠!”
아이들의 말에 나는 우영이를 주시했다.
“흐흐.”
피식 웃음이 나왔다.
표정은 그대로인데 숨기지 못하는 게 하나 있다.
‘귀.’
귀가 색칠이라도 한 듯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불가항력인 모양이다.
자연스레 한 가지 꿀팁을 얻었다.
‘귀를 보면 되겠네.’
앞으로 우영이 감정이 궁금할 때는 귀를 보면 될 거 같았다.
짜식, 귀엽네.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녀석의 귀를 보며 소리없이 웃음지었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얘기가 오갔다.
“그럼.. 일어날까?”
즐겁긴 했지만 언제까지고 시간을 보낼 수는 없는 노릇.
슬슬 일어날 필요가 있었다.
유새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근데 뭔가 아쉽다. 여기 노래방 기계도 있고, 무대도 있고, 요리해 먹을 주방도 있는데.”
“하긴. 우리 얘기하느라 계속 앉아만 있었네.”
“워낙 오랜만에 봤으니까, 뭐.”
그 모든 이야기는 하나로 귀결됐다.
“나중에 또 보자. 그때는 이것저것 하자구. 오늘 못 온 애들도 불러서.”
“좋지.”
“빠꾸하기 없다? 특히 이주원.”
아니, 갑자기 왜 내 이름이 나오는데.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조만간 또 모이자.”
이렇게 끝이 났다.
즉석으로 이루어진 수찬쌤 결혼식 뒤풀이 겸 미니(?) 동창회가.
***
“그럼 우린 가 볼게.”
건물에서 나온 나는 친구들을 향해 작별인사를 건넸다.
연두의 손을 잡은 채로.
“그래.”
“또 보자. 아까 찍은 영상편지는 내가 수찬쌤한테 보낼게.”
“빠이~ 연두도 안녕!”
“시은이랑 레나도 조심히 들어가! 우영이도!”
그렇게 헤어지고 차에 탄 우리.
운전대를 잡은 나는 씩 웃으며 뒷자리의 우영이를 향해 말했다.
“의도치 않게 우영이 너한테 보호자 역할을 많이 맡기는 느낌이네.”
“딱히 보호할 것도 없는데요, 뭐.”
“오. 아까 들어서 그런지 지금 대사도 되게 츤데레같았어, 너.”
“.. 형.”
“하하, 미안. 알겠어.”
가볍게 장난을 주고받은 뒤, 시은이와 레나를 향해서도 말했다.
“오늘 정말 고마웠어, 얘들아. 아저씨 선생님도 고맙다고 전해 달라고 하더라.”
뿌듯한 미소를 머금는 두 아이.
차례로 나는 우영이와 레나, 그리고 시은이를 데려다줬다.
이윽고 차에 남은 건 나와 연두 둘 뿐이었다.
“연두야.”
“네에.”
“오늘 결혼식 어땠어?”
“즐거어써요.. 시으니 말이 마자요.”
“어떤 말?”
“결혼식은 엄청 예쁜 날이라는 말…”
그때 연두도 들었구나.
나를 찡하게 만들었던 시은이의 말.
“그랬구나. 그럼 연두야. 아까는 왜 그렇게 말했어?”
“어떤 말이요..?”
“연두랑 아빠가 결혼했다는 말.”
순전한 궁금증에서 비롯된 물음이었다.
그 타이밍에 연두가 아빠랑 결혼했다는 말을 한 이유가 뭘지.
다시 떠오르는 수줍은 표정.
조금 망설이는 듯 하더니 연두는 입을 열었다.
“.. 시러서요.”
“응?”
“아빠가 결혼하는 거 시러서요. 연두랑 결혼해쓰면 결혼 못 하니까…”
“하하, 그래서 그렇게 말한 거야?”
“네에.”
조금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말했다.
“그럼 아빠는 앞으로 절대 결혼 못 하는 거야?”
“…”
왜인지 이 물음에는 쉽게 답하지 못한다.
흐르는 잠깐의 침묵.
정적 끝에 연두는 조심스레 입을 뗐다.
“……면요.”
“응?”
“연두가 아빠 조아하는 것보다.. 아빠를 더 조아하는 사라미 생기면요…”
“.. 연두보다?”
“네.”
생각지 못한 조건이었다.
차라리 반대라면 모를까.
이어지는 얘기를 듣고 나서야 나는 말뜻을 알 수 있었다.
“그럼.. 아빠 결혼 못 하니까…”
“푸흣.”
이 말은 연두는 확신한다는 뜻이었다.
자신보다 아빠를 좋아하게 될 사람은 없을 거라고.
‘한 방 먹었네.’
이런 식으로 나를 향한 연두의 애정을 확인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씩 웃으며 얘기했다.
“연두는 진짜 아빠바보구나?”
“마자요! 연두는 아빠바보에요..!”
“그럼 아빠도 그대로 돌려줄게. 아빠보다 연두를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아빠도 허락해줄게, 결혼.”
연두와 마찬가지로 허락 안 하겠다는 뜻이다.
그런 사람이 나타날 리 없으니 말이다.
동시에 덧붙였다.
“아빠는 세상 최고의 딸바보니까.”
“헤헤..”
배시시 웃음짓는 연두.
달달해서 녹아버릴 것만 같은 딸바보 아빠와 아빠바보 딸의 귀갓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