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386)
386화. 본좌
몸으로 만든 만리장성급 경계선.
그 상태로 고개만 살짝 돌려 선동이를 향해 물었다.
“선동아. 엄마랑 떨어져서 자는 건데 안 무서워?”
“안 무서워요.”
“진짜?”
“네. 저는 그런 거로 겁 안 먹습니다. 일곱살이니까요.”
“하하, 일곱살은 겁 안 먹어?”
“당연하죠.”
우스운 나이부심이 있는 녀석이었다.
여섯살에는 여섯살 부심을 부리더니 일곱살이 되니 일곱살 부심을 부린다.
그 말을 들은 연두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반쯤 감긴 눈으로 중얼거린다.
“연두도 빨리 일곱살 대고 싶따..”
“응? 왜?”
전에 말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서가 이유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연두는 대답했다.
“연두도 겁 안 먹고 시퍼서요. 선동이 오빠처럼…”
“왜 안 먹고 싶은데?”
“연두는 겁쟁이에요. 맨날맨날……”
이어지는 말이 무척 귀여웠다.
대충 툭 하면 겁을 먹는 스스로가 바보같다는 이야기였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뭘까.
표현이 우습긴 하지만 강해지고 싶다는 게 일곱살이 되고 싶은 이유였다.
나는 웃으며 말해줬다.
“연두야.”
“네에.”
“일곱살이 된다고 해서 겁을 안 먹는 건 아니야.”
“그럼요? 며쌀 돼야 겁 안 머거요..?”
“정해진 건 없어. 아빠 나이가 몇 살인지 알지, 연두야?”
고개를 끄덕이며 연두는 바로 답했다.
“이십 육살..”
“하하, 맞아. 스물여섯살. 그런데 아빠는 스물여섯살이 됐는데도 겁을 먹어.”
“아, 아빠도 겁 머거요?”
“물론이지.”
나는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그래. 겁을 먹는 건 전혀 이상한 것도 나쁜 것도 아니야. 중요한 건 따로 있지.”
“어떤 거요..?”
“겁을 먹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어려울 수 있으니 예를 들어 설명해줬다.
“연두 콘서트 할 때 기억나? 수찬쌤 결혼식 축가 부를 때나.”
“기억나요!”
“그래. 그때도 연두 무대 올라가기 전에 많이 떨었잖아.”
“마자요..”
“근데 그런 상태에서도 무대에 올라가서 멋지게 연주하니까 사람들이 엄청 좋아했지?”
대충 그런 말을 하고 싶었다.
움츠러든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으면 되려 결실이 되어 다가올 수 있다는 걸.
경험에서 나온 말이었다.
도망쳐서 되는 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열아홉의 나.
온갖 부정적인 감정 속에서 현실로부터 도피했고 쓰린 대가를 받았다.
무려 6년을 허비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말하는 나를 향해 연두는 얘기했다.
“연두는 혼자서는 못 해요.. 콘서트 하려면 시으니랑 레나 가치 이써야 하고..”
“그리고?”
“.. 아빠.”
“응?”
“아빠 연두 옆에 이써야 안 무서어요. 그래서 연두는 겁쟁이에요..”
결국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나지막이 답했다.
“괜찮아.”
“.. 네?”
“겁쟁이여도 돼. 꼭 혼자 잘할 필요는 없어. 연두 옆에는 친구들도 아빠도 쭉 옆에 있을 거니까.”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기댈 곳이 있고, 늘 옆에 함께할 연두가 있으니.
열아홉 때 한 선택을 반복할 일은 없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 겁을 먹어도 이겨내고 극복할 자신이 있었다.
연두는 나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쭉이요..?”
“응. 그리고……”
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씩씩하고 용감한 선동이오빠도 있잖아.”
“..!”
가만히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던 선동이가 움찔한다.
“연두가 위험에 빠지면 지켜줄 거야.”
“선동이오빠가요..?”
“응. 그치, 선동아?”
뻣뻣하게 누운 채로 선동이는 답했다.
“.. 위험하면요.”
그럼 그렇지.
들고 있는 감자나 개구리라도 던져서 구해주지 않을까.
연두는 쿡쿡 웃더니 말했다.
“연두도!”
“응?”
“연두도 지켜줄께요! 선동이오빠 위험하면..!”
연두의 화답에 벌게진 선동이의 볼.
그나저나 나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니 진짜 오작교라도 된 기분이다.
비록 7월 7일은커녕 1초도 이어지지 않는 다리이긴 하지만.
그때 들려오는 목소리.
“아빠..”
“응?”
“아빠도 연두가 지켜줄께요. 쭉 옆에서…”
입가에 번지는 미소.
그 누구의 어떤 말보다도 의지가 되는 한 마디였다.
얼마간 대화를 주고받다가,
“야.”
선동이가 연두를 불렀다.
“.. 네?”
“그.. 뭐냐.”
녀석은 코를 긁적이더니 어색하게 말을 뱉었다.
“이제 나한테 반말해도 돼.”
“으응..?”
“반말해도 된다고.”
깜짝 놀란 표정의 연두.
솔직히 나도 놀랐다.
나이부심 끝판왕인 선동이가 갑자기 이럴 줄은 몰랐으니까.
“반말.. 이요?”
“응.”
“반말해도 선동이오빠 화 안 나요..?”
“안 나.”
바로는 못 놓고 한 번 더 확인하는 게 귀여웠다.
이제 연두의 반응은 어떨까.
과연 계속해서 해 온 존댓말을 단박에 버릴 수 있을 것인지 없을 것인지.
기대감 속에 연두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서…”
힘을 내, 연두야.
마침내 연두는 마음을 먹은 듯 눈을 꼭 감고 냅다 외쳤다.
“선동아!”
“…?”
이게 무슨 일이지?
나는 물론이고 선동이의 눈도 커다랗게 확장됐다.
한 방 먹었네.
반말을 하라는 말에 아예 친구를 먹어버린 연두였다.
***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
‘아침인가.’
어제 아이들과 신나게 수다를 떨다 잠이 들었는데 어느새 아침이 됐나 보다.
그나저나 뭐지?
꾹.
마치 안전벨트라도 두른 듯 나를 구속하는 감촉이 느껴진다.
연두는 아니었다.
오른쪽에서 세상 모르고 곤히 자고 있으니까.
스윽.
반대편인 왼쪽을 바라보니 눈에 들어오는 장면.
이 녀석이 범인이었다.
바짝 밀착한 선동이가 내 배 위에 왼팔과, 세트인 왼쪽 다리까지 올리고 있다.
신상 이중 안전벨트인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짧아서 안전성이 떨어질 거 같긴 하다.
‘짜식.’
그렇게 씩씩한 척 하더니.
문득 통화중에 선동이 어머니한테 들은 얘기가 떠올랐다.
“잠을 못 자서 주원씨 속을 썩이지는 않을지 걱정이네요. 맨날 제 품에 안겨서 자거든요.”
그 말에 걱정 마시라고.
정 선동이가 잠을 못 이루는 거 같으면 제 품이라도 내어주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는데.
이렇게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필요했나 보네.’
씩씩한 척 하긴 했지만 엄마 품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엄마 품이 아니라 내 품인데.
녀석이 눈을 뜨고 기겁하기 전에 팔과 다리를 차례로 잡고 안전벨트를 풀었다.
“후우.. 성공.”
오늘은 학교에 가 보기로 한 날이었다.
이른 시간에 가는 건 민폐가 될 수 있으니,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갈 생각이다.
우선 아이들이 깰 때까지 여유롭게 기다리도록 할까.
마침 볼 게 있었다.
툭.
다름아닌 연두튜브였다.
저번에 올린 이든 촬영과 주연이의 간이 콘서트 영상 이후.
또 하나의 영상을 업로드한 상태였다.
[연두의 댓글 읽기!(feat. 흑염룡?)]바로 댓글 읽기 콘텐츠를 진행한 영상이었다.
잘 몰랐는데 흑염룡이 중이병의 상징이라는 걸 최근에 알게 됐다.
그래서 ‘feat’로 선정했고.
‘어디 볼까.’
수많은 연두부가 원한 콘텐츠인 만큼 기대가 됐다.
어떤 반응일지.
반응이 좋다면 앞으로도 연두부의 의견을 수용해 영상을 찍어도 좋겠지.
곧이어 화면에 댓글창이 떠올랐다.
-드디어! 진짜 이 영상 목 빠지게 기다렸는데… 연두부라 빠질 목이 없긴 하지만.
┖역시 밀당의 귀재 초록좌…
┖초록좌 특 : 절대 빨리 주지는 않지만 가장 필요한 타이밍에 연두부에게 최상의 양식을 제공해준다.
┖ㅋㅋㅋㅋㅋ ㅇㅈ
┖연두부 특 : 초록좌의 양식장에 갇혀있는 걸 알면서도 결코 빠져나갈 수 없음.
┖앜ㅋㅋㅋㅋㅋㅋㅋ 그저 헤~ 엄, 헤~ 엄
┖왜 빠져나감 ㅋㅋㅋ 어장에서 헤엄치는 게 제일 행복한데
조금 당황스럽네.
한 번도 연두부를 어장 속 물고기라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연두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재미있는 건 어장 속이라는 걸 자각하면서도 어느 하나도 빠져나갈 생각이 없다는 거지만.
‘그나저나.. 초록좌라.’
최근 들어 나는 이렇게 불리고 있었다.
한 걸그룹의 영향이었다.
갑자기 역주행 신화를 기록하면서 사람들이 멤버별로 특징과 그 뒤에 ‘좌’를 붙여서 부르기 시작했다.
‘본좌라는 의미라던데.’
그건 연두튜브에도 영향을 끼쳤다.
당장 눈에 들어오는 댓글만 봐도 ‘좌’ 놀이를 하고 있었다.
-초록님 초록좌 말고 또 뭐 있나 ㅋㅋ
┖넘쳐나지. 일단 금손좌.
┖오, 인정.
┖나 떠오름! 연두튜브 편집자니까 편집좌~ ㅋㅎㅋㅎㅋㅎㅋㅎㅋ
┖아으… 뇌절 오지네
┖왜 ㅋㅋㅋㅋ 난 재밌는데 편집좌
┖나도 생각남. 초록님 노래할 때는 다들 귀막좌~
┖ㅁㅊ ㅋㅋㅋㅋ
┖삐빅! 다량의 아재 연두부성분이 검출된 댓글입니다.
볼 때마다 놀라웠다.
어떻게 이런 신박한 드립을 떠올릴 수 있는 건지.
이쯤 되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재의 향이 나는 드립을 좋아한다는 걸.
-연두는 연두좌 말고 뭐 있지.
┖넘쳐나지. 엔젤좌, 큐트좌, 단비좌, 귀엽좌, 예쁘좌
┖앞에 건 그렇다 쳐도 뒤에 건 너무 억지 아니냐? ㅋㅋㅋ
┖두 글자만 됨?
┖ㅇㅇ 글자수 제한 풀면 평생을 읊어도 다 못 읊음. 리얼 꿀마시좌부터 시작해서 담요킥좌, 초절정……
┖알겠으니까 그만해 ㅋㅋㅋ
┖내친김에 다 말해! 시은이는 시크좌, 레나는 백조좌, 우영이는 츤츤좌, 선동이는 감자좌, 민우는 호랑이사냥꾼……
“푸흣.”
결국 웃음이 터졌다.
이건 뭐 거의 폭주기관차다. 연두튜브 등장인물을 전부 다 읊고 있었다.
옆에 곤히 자고 있는 선동이도 있다.
그 와중에 논란(?)의 여지가 있는 댓글도 보였다.
-나는 강동원 닮았다고 주변에서 동원좌라고 부르던데
┖어휴.. 그냥 입닫좌
┖얘들아, 이 ㅅㄲ 죽이좌
┖사망좌 만들어줄까?
보기만 해도 오싹한 연두부들의 댓글이었다.
역시 대상이 연두가 아니라면 한없이 냉정해지는 연두부였다.
오한이 든 나는 재빨리 댓글을 넘겼다.
재미있는 댓글이 많다 보니 이제야 보게 된 본 영상에 대한 반응이었다.
-하이라이트를 꼽을 수가 없다…
┖칭찬 댓글 읽으면서 얼굴 빨개지는 거 봐.. 하아, 현기증 나…
┖하트 이모티콘 하트라 발음하는 게 뭐라고 이렇게 귀여운 건데.. 연두야 이것도 다 읽어줘!♡♡♡
┖나는 ㅋㅋ 큐큐라고 읽는 거.. 진짜 미치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 많이 붙이는 게 의도가 있어 보이는데요, 당신?
┖주접 댓글 하나도 이해 못하는 게 너무 귀여워. 벽 부순다니까 벽 부수면 안 된대 ㅋㅋㅋㅋㅋㅋ
-중이병 댓글 반응도 킬포..
┖중이병 걸리면 아빠 멀리하게 된다니까 세상 충격받는 거 봐… 하윽…
┖중이병 걸린 연두는 바보에요 ㅋㅋ
┖연두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심한 표현 : 바보
┖미래의 연두에게 잔뜩 화가 난 연두 ㅋㅋㅋㅋㅋㅋ
┖그런데 나는 쓰레기인가 보다. 그럼에도 보고 싶다.. 중이병 걸린 연두
┖나도 ㅋㅋㅋ
반응은 생각 이상으로 핫했다.
워낙 재미있는 장면이 많았다 보니 특정 장면이 아닌 모든 장면이 댓글에 언급되고 있었다.
2탄을 요구하는 댓글도 무척 많았고.
‘다행이네.’
연두부의 요청 콘텐츠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다행이었다.
빙긋 웃으며 댓글창을 닫았다.
그와 동시에 왼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 아저씨.”
타이밍 좋게 기상한 선동이였다.
***
평일이긴 하지만 오늘은 연두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았다.
학교에 가기로 했으니까.
식사를 하고 시간을 보내다가 시간에 맞춰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연두는 이렇게 입을까?”
“.. 네!”
“그래. 그리고 선동이는……”
따로 챙겨줘야 하지 않을까 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던 모양이다.
“다 입었어요!”
어느새 옷을 다 갈아입고선 앞에 서 있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잘했어. 그럼 이제 나가줄래?”
“네?”
“방에서 나가줘.”
“왜요?”
“그럼 연두 옷 갈아입을 건데 계속 서 있으려고?”
“..!”
화들짝 놀란 선동이가 눈이 동그래져서는 냅다 문 밖으로 튀어나간다.
동시에 들려오는 문 닫히는 소리.
나는 낄낄 웃으며 옷을 들고선 말했다.
“연두도 선동이오빠처럼 스스로 한 번 입어볼까?”
“네에.”
얼마 뒤 환복을 마친 연두.
팔 끼는 정도만 도와주니 금세 옷을 갈아입은 연두였다.
여름옷이라 입는 게 간단하기도 했고.
끼익.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웬 뒤통수가 반긴다.
감자 모양이었다.
“오선동. 왜 그러고 있어?”
“다 입었어요?”
“옷?”
“네.”
“다 입었지.”
그제야 조심스레 고개를 돌린다.
문 밖으로 나간 것도 모자라 고개까지 돌리고 있을 줄이야.
철두철미한 모습에 또 웃음이 나왔다.
“아저씨.”
스윽.
선동이는 다짜고짜 다가오더니 무언가를 내밀었다.
흰 봉투였다.
“이게 뭐야?”
“엄마가 도착하자마자 아저씨 주라고 했는데 까먹었어요.”
“그래?”
받아서 봉투를 여니 등장한 건 다름아닌 지폐였다.
총 20만원이 들어있었다.
선동이는 나를 보며 얘기했다.
“엄마가 이렇게 말하라 했어요.”
“응?”
“선동이 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적은 돈이지만 받아주세요.”
“하하.. 그러셨구나.”
꼬깃꼬깃한 지폐를 다시 봉투에 집어넣었다.
그리고선 선동이에게 건넸다.
“자.”
“왜 다시 주세요?”
“용돈이야.”
“…?”
“잘 가지고 있다가 연두 맛있는 거나 사 주던가.”
“진짜요?”
“그래.”
받은 돈이니 쓰는 것도 내 마음이다.
또 궁금하기도 했다.
용돈으로 주면 선동이가 과연 이 돈을 어떻게 활용할지.
“.. 고맙습니다.”
“그래. 그럼 이제 가 볼까?”
“네!”
설레는 표정으로 대답하는 선동이.
연두도 마찬가지였다.
“학교…”
중얼거리며 미소짓는 연두.
처음 가 보는 장소인 만큼 부풀어오르는 건 당연하겠지.
나는 연두의 손을 잡고 현관문을 나섰다.
툭.
학교 탐방을 시작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