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387)
387화. 초등학교 탐방
집을 나선 나는 아이들과 함께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선화초등학교.
가까운 거리이긴 하지만 어린이집과 반대 방향이라 연두와 함께 가 본 적은 없었다.
연두가 학교에 가게 된다면 가장 유력한 후보가 아닐까.
‘조금 알아봤지.’
오해할까 봐 얘기하자면 연두의 진학 때문은 아니다.
아직 여섯살인 연두의 초등학교 진학을 신경쓰는 건 너무 이르지 않은가.
그럼 뭐 때문이냐고?
바로 오늘을 위해서였다.
선동이에게나 연두에게나 초등학교에 가는 건 나름의 사전 체험으로 볼 수 있었다.
단순히 학교에 가 보는 것.
물론 좋겠지만 체험이라기에는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들어가 봐야지.’
들어가 보고 어떤 장소인지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게 비로소 체험이라 할 만한 일이었다.
선동이도 그걸 원한 걸 테고.
어쩌면 환상이 깨질 수도 있겠지만 그건 선동이의 몫이다.
나는 학교에 가 보고 싶다는 선동이의 바람을 이뤄주는 것뿐이니까.
‘그래서 전화했지.’
학교 교무실로 전화해 양해를 구했다.
하교 시간이 끝나고 난 뒤에 학교 내부에 들어가서 둘러봐도 되겠냐고.
들어가지 않을 거라면 허락을 구할 필요는 없지만, 외부인 입장인 만큼 학교에 들어가는 건 학교 측의 양해가 필요한 일이었다.
신원은 굳이 자세히 밝히지 않았다.
‘이상하잖아.’
다짜고짜 연두랑 연두 아빠라고 밝히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굳이 그럴 이유도 없고.
촬영이 필요한 경우라면 밝힐 필요가 있겠지만, 지금은 촬영을 하러 가는 게 아니었다.
말 그대로 학교가 어떤 곳인지 체험하고 싶은 거지.
따라서 신원을 묻는 말에는 이 정도로 답했다.
“여섯살 딸을 둔 예비 학부모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거절당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선뜻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도착하신 뒤에 먼저 교무실에 들러 주시면 둘러볼 수 있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선동이에 관한 얘기에도 괜찮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렇게 순조롭게 끝난 탐방 준비였다.
통화를 마칠 때 알게 된 사실인데, 공교롭게도 오늘은 학교가 일찍 끝나는 날이었다.
‘까마득한 과거긴 하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도 확실히 있긴 있었다.
모든 학년이 4교시만 하고 끝나는 요일이.
의도한 건 아니지만 요일 뽑기를 잘 한 셈이다.
“언제 도착해요, 아저씨?”
“조금만 더 가면 돼.”
그나저나 조금 더 늦게 나올 걸 그랬나.
내 딴에는 여유롭게 나온다고 나온 건데 걸으면 걸을수록 많이 보인다.
책가방을 멘 아이들의 수가.
하기야 하굣길인 데다가 전 학년이 동시에 끝나는 요일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엄청 활기차네.’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서 걸어가는 아이들도 있고, 부모님 손을 잡고 하교하는 아이들도 있다.
공통점은 대부분 변성기가 오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인지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귀에 딱딱 꽂힌다.
“선동아.”
“.. 네.”
“갑자기 왜 그렇게 움츠러들었어. 형누나들 너무 많아서 당황했어?”
그럴 만도 했다.
키 큰 형누나들이 잔뜩 있으면 괜히 겁먹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니까.
내 입장에서야 전부 귀여운 꼬꼬마들이지만 말이다.
“아니에요! 겁 안 먹었어요!”
“겁먹었다고는 말 안 했는데.”
“…”
가만 보면 이 녀석, 스스로 정곡이 찔리는 경향이 있단 말이지.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연두는 어때? 언니오빠들 보니까.”
“신기해요..”
“응? 신기하다고?”
연두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러케 언니오빠들 마니 처음 바요..”
“하하, 그래?”
“네.”
“나중에 학교에 가면 매일 보게 될 거야. 언니오빠들도, 그리고 친구들도.”
“학교에 가면요..?”
“응.”
그렇게 얘기를 나누며 걸어가는데 들려오는 목소리.
“어!”
자연스레 발걸음이 멈췄다.
눈앞에는 조그마한 키의 책가방을 멘 무리가 서 있었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섞여 있는데, 고학년으로는 안 보이고 대충 3학년에서 4학년 정도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연두다! 우와…”
목소리를 낸 건 남자아이였다.
갑작스럽긴 했지만 크게 동요하지는 않았다.
학교를 향해 가면 아이들과 필연적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고, 알아볼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반응을 보니 옆에 선 친구들도 알아보는 듯했다.
“대박! 대박!”
“연두튜브에 나온 연두다! 완전 귀여워…”
“초록님이다!”
나까지 알고 있네.
그 사이 한 친구는 신이 잔뜩 나서 방방 뛰며 입 밖에 뱉었다.
말로만 듣던 그 유명한 급식체를.
“연두를 만나다니! 오지구요! 지리구요!”
“야, 박찬우! 선생님이 그런 말 쓰지 말라고 한 거 기억 안 나?”
“안물~ 다물~ 킥킥.”
“야! 너 선생님한테 이를 거야!!”
“뭐? 그건 에바 쎄바지!”
옆에서 친구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웃으며 덧붙인다.
“크크, 실화냐? 우디르급 태세 전환 보소.”
우디르는 뭔데.
말로만 들었지 급식체의 현장을 실제로 목격하는 건 처음인데 정신이 아찔해지는 기분이다.
문득 웃음이 나왔다.
나이만 어렸지 완전히 동건이랑 주연이 무리랑 겹쳐 보인다는 생각에.
아마 그 녀석들의 초등학교 때 모습이 아닐까.
“…”
한편 반응이 느려 보이는 한 친구는 멀뚱히 서서는 손가락으로 한 명씩 지목하며 중얼거린다.
먼저 차례로 연두와 나를 가리키며 말한다.
“연두.. 초록님.. 그리고……”
끝으로 선동이를 향하는 손가락.
선동이는 그저 벙찐 표정이다.
끙끙거리며 무언가 생각하는가 싶더니 남자아이는 입을 뗐다.
“감자.”
“…?”
“감자소년.”
선동이의 눈이 둥그렇게 부풀었다.
“나?”
“그래, 너. 감자소년.”
“나 감자 아니야! 나 오선동이야!”
발끈해서 버럭 소리치는 선동이.
그나저나 놀랐다.
설마 이 친구들이 선동이의 별명까지 알고 있을 줄이야.
‘뭐, 그럴 만도 한가.’
초등학생 장래희망 1순위가 유투버인 유투브 시대이기도 하고.
내 입으로 말하긴 민망하지만 이제 연두튜브는 국내에서 손에 꼽는 대형 채널 중 하나이니.
알아봐도 납득을 못 할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초등학생 친구들이 선동이를 알아본 건 조금 놀랍긴 하지만.
이윽고 한 아이가 선동이의 말에 반응했다.
“.. 오선동?”
“그래!”
“너 몇학년이냐?”
“몇학년?”
“나이 몇 살이냐고.”
“이, 일곱살..”
“우리는 열살이거든? 초등학교 삼학년이라고! 반말하지 마!”
“…”
선동이의 명대사.
연두에게 한 그 대사를 그대로 돌려받는 선동이였다.
표정을 보니 겁을 먹은 듯했다.
‘곤란한데.’
학교에 가기 전부터 이런 해프닝으로 인해 겁을 먹어선 곤란했다.
그렇게 판단하고 나서려는데,
휙.
생각지 못한 상황이 펼쳐졌다.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연두가 양팔을 좌우로 힘껏 벌린 채로 선동이 앞에 섰으니까.
그런 채로 눈앞의 오빠에게 외친다.
“선동이오빠 괴로피지 마세요..!”
“어, 어..?”
세상 당황한 표정의 3학년 남자아이.
자연히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어제 선동이와 연두가 주고받았던 얘기, 그중에서도 연두가 한 말이.
“연두도 지켜줄께요! 선동이오빠 위험하면..”
연두는 지금이 그런 상황이라 판단한 모양이다.
동물원에서도 그랬고.
겁이 나는 상황 속에서도 나서야 한다면 망설이지 않는 내 딸 연두였다.
***
살짝의 해프닝이 있긴 했지만 무사히 학교에 도착했다.
수습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잘생겼다고 칭찬 몇 번 해 주고 머리 쓰다듬어주고 하니까 금방 풀렸지.
‘이렇게 말하니까 뭔가 좀 그렇네.’
해명하자면 딱히 상황을 넘기려는 의도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내 입장에서는 전부 다 귀여웠다.
나이부심을 부리는 것도, 그러다 연두의 말에 어쩔 줄 몰라하던 표정도.
‘겸사겸사 대처한 거지.’
아무튼 그렇게 상황을 넘기고 나니 여자아이들이 질문해 왔다.
대강 이런 질문이었다.
“초록님!”
“응?”
“연두 그러면 여덟살 되면 우리 학교 와요?”
“그건 왜?”
내 물음에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답했다.
“우리 학교 오면 좋겠어서요!”
“하하, 그래? 그럼 너희들이 연두 잘 챙겨줄 거야?”
“당연하죠!”
“오. 그럼 보내야겠는데?”
“진짜요? 우와…”
의도치 않게 벌써부터 연두를 챙겨줄 믿음직한 선배들을 확보해버렸다.
그렇게 아이들과 헤어지고 도착한 학교.
선동이는 복잡 미묘한 표정이다.
‘아까는 감동한 표정이었는데.’
지켜줘야 할 동생인 연두한테 역으로 보호받았다는 생각 때문일까.
마냥 표정이 좋지만은 않다.
그런 선동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괜찮아, 요 녀석아.”
“네?”
“이제 고개 들어서 봐 봐. 도착했으니까.”
그제야 고개를 들어 정면을 보는 선동이.
살며시 입이 벌어진다.
“와.”
-선화초등학교
엄청 세련된 느낌의 학교는 아니지만 나름의 정취가 느껴지는 초등학교였다.
운동장은 잔디로 이루어져 있었다.
큰일인데. 또 입에서 라떼 화법이 나오려 한다.
“나 때는 모래구장이었는데.”
결국 입 밖에 뱉었다.
역시 한 번씩 이렇게 참을 수가 없는 때가 온다.
잔디구장 속에서 쉴 새 없이 뛰어다니며 축구하는 아이들을 보는 선동이의 표정.
뭐라 표현해야 할까.
동경.
다시 서울의 초등학교를 향한 동경이 살아난 거 같았다.
연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아…”
“어때, 연두야? 여덟살이 되면 다니게 될 학교를 보니까.”
“진짜 커요.. 어리니집보다 훨씬!”
“그치.”
당연한 얘기지만 어린이집이랑은 비교가 안 되는 크기이다.
구석에는 작은 놀이터도 있었다.
가 보는 것도 좋겠지만 굳이 지금 가 봐야 할 장소는 아니었다.
‘들어가야지.’
학교 내부 탐방이 우선이었다.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으니 운동장을 가로질러 갈 수는 없고.
나는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렇게 돌아서 가자.”
“네.”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허나 내가 간과한 게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별생각 없이 앞을 보고 걷던 도중 다급한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어! 조심…!!”
놀라서 소리가 난 쪽을 바라봤을 때는 이미 늦었다.
쌔앵.
빠른 속도로 축구공이 날아오고 있었다.
높이가 높지는 않아 공이 향하는 곳은 연두와 선동이 쪽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안쪽에서 걷고 있는 연두를 향해.
‘젠장!’
운동장과 길 사이에 철창이 없는 만큼 내가 안쪽에 서거나 따로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뒤늦게 손을 뻗긴 했으나 나는 직감했다.
늦었다는 걸.
퍽!
“.. 어?”
그런데 생각과는 다른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공에 맞은 건 연두가 아니었다.
방향을 생각할 때 무조건 연두가 공에 맞는 게 그려지는 상황이었는데.
대신해서 공을 맞은 게 있었다.
“.. 선동아!”
다름 아닌 선동이였다.
주목할 건 선동이가 뻗은 건 손도 발도 몸도 아니라는 거다.
그럼 뭐냐고?
머리.
밤톨 모양의 머리를 내밀어 완벽히 공을 다른 방향으로 흘려보냈다.
깜짝 놀란 표정으로 굴러가는 공을 바라보는 연두.
선동이는 짤막하게 말했다.
“.. 괜찮냐?”
약속을 지키는 건 연두뿐만이 아니었다.
***
“괜찮아, 선동아?”
다행히 아주 강한 슈팅은 아니었다.
내가 긴장을 놓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초등학생이 하는 축구라 생각해서인지 위험할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거든.
“하아..”
늘 조심하겠다고 하지만 꼭 놓치는 타이밍이 있었다.
강하지 않은 슈팅이라 해도 맞는 부위에 따라 연두가 다쳤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선동이도 막은 부위가 머리가 아니었다면 마찬가지고.
“괜찮아요. 하나도 안 아파요.”
선동이는 손으로 머리를 툴툴 털어냈다.
뒤늦게 달려온 남학생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한다.
“죄송합니다!”
“아냐, 괜찮아. 걱정하지 마.”
연신 고개를 숙이고 돌아가는 예의바른 친구.
내 부주의로 인해 일어난 일이니 공을 찬 아이를 탓할 게 아니었다.
뒤늦게 나는 선동이를 향해 말했다.
“정말 고마워, 선동아. 막아줘서.”
“뭘요.”
이어서 연두를 바라보는데,
또르르.
“.. 연두야?”
연두는 울음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바로 납득이 갔다.
연두 입장에서는 자신 때문에 선동이오빠가 공에 맞은 거라고 생각할 테니.
그 모습을 보고 더 놀란 건 선동이였다.
“야, 야. 너 왜 그래!”
“여, 연두 때문에 선동이오빠.. 흑, 공 마자서……”
“나 하나도 안 아프다니까? 울지 마.”
어쩔 줄 몰라하는 선동이.
나도 나서서 연두를 타일렀다.
“그래, 연두야. 선동이오빠 괜찮대.”
“.. 진짜 갠차나요?”
“응. 선동이오빠 머리는 감자보다 단단해. 밤톨보다도 단단하고. 축구공으로는 아무런 충격도 못 입혀.”
안심시키기 위해 조금(?) 과장을 덧붙였다.
선동이 하면 떠오르는 두 녀석을 가져와서.
귀에 들어오는 한 마디.
“.. 아저씨?”
벙찐 표정의 선동이가 눈에 들어온다.
미안하다. 이번 한 번만 넘어가 주라.
내 의도를 파악한 건지 선동이는 더 따지지 않았다.
다행히 진정이 된 연두.
“고마어요, 선동이오빠.. 아니, 고마어..”
“그, 그래.”
이렇게 차례로 한 번씩 도움을 주고받은 연두와 선동이였다.
***
바로 우리는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본격적으로 둘러보기 전에 전화에서 안내받은 대로 교무실에 들를 필요가 있었다.
교무실 위치는 미리 전해들은 상태였다.
‘2층 복도 끝.’
학교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방금 축구공 사건도 있었던 만큼,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 계단을 걸어올라갔다.
2층에 도달한 뒤 복도를 따라 쭉 걸어갔다.
이윽고 눈에 들어오는 초록색 간판.
[교무실]잘 찾아온 모양이다.
아무리 길치라도 이걸 못 찾으면 바보지.
도착한 이상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선동아. 네가 두드려 볼래?”
“문이요?”
“응.”
긴장되는 듯 침을 꼴깍 삼키더니 녀석은 작은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어지는 노크 소리.
똑. 똑. 똑.
이 녀석, 노크 좀 할 줄 아는 놈인데?
내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들어오라는 말에 나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왼쪽으로 밀면 열리는 문이었다.
스르륵.
미끄럼틀같은 소리와 함께 활짝 열리는 문.
교무실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책상과 데스크톱이 가득하고 적지 않은 선생님들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자연히 우리를 향하는 그들의 시선.
“…?”
하나같이 벙찐 표정이다.
이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이런 상황이 펼쳐지는 게 익숙해졌다는 게 신기했다.
그와 별개로 이 상황에 할 말은 하나뿐이었다.
“.. 안녕하세요?”
미래에 연두의 스승님이 될지도 모르는 교사분들을 향해.
예비 학부모가 드리는 첫 인사였다.
*****************************************************
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