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394)
394화. 나이스 타이밍
“아저씨.. 천재였어…”
낯간지러운 단어가 포함된 한 마디.
나로서는 민망할 따름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말뿐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선동이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게 있었으니까.
선망.
우습게도 그건 선망의 시선이었다.
내가 진짜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올려다보고 있다.
멋쩍은 미소를 띠며 나는 말했다.
“왜 그래, 선동아.”
“몰랐어요.”
“뭘?”
“아저씨가 천재인 줄.”
“…”
또 나왔다, 그 단어.
내가 만든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얘기했는데도 이런다.
이래서는 적당히 말을 돌려서 넘어가는 건 포기해야 할 듯 싶다.
그건 그렇고 이 녀석.
아무리 그래도 원래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길래 이 정도로 놀라는 거지.
결국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오선동.”
“네.”
“그럼 나를 원래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저씨요?”
“응.”
잠깐 생각하더니 선동이는 답했다.
“그냥 연두 아빠요.”
“…”
실소가 나오는 대답.
여기서 포인트는 연두 아빠의 앞에 붙는 ‘그냥’이었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긴 하다.
‘연두 아빠 맞으니까.’
스스로도 굉장히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호칭이었다.
애초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 중 하나가 ‘너 이제 진짜 아빠같다.’라는 말이었으니까.
그런데 왜지.
그 호칭을 이 꼬맹이 입으로 들으니 상당히 얄밉다.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 그래.”
그래도 다행이었다.
선동이의 머릿속에서 나에 대한 인식이 단번에 바뀐 거 같으니 말이다.
굳이 말하면 천재 연두 아빠로.
다소 민망하긴 하지만, 그냥 연두 아빠보다는 더 연두에게 의지가 될 거 같은 수식어였다.
실소를 지으며 나는 입을 열었다.
“그래서.. 동화는 어땠어?”
지금까지의 반응만으로도 어느 정도 유추는 되지만 제대로 듣고 싶었다.
동화를 읽은 선동이의 감상을.
이야기를 상기하는가 싶더니 선동이는 대답했다.
“진짜.. 완전 재밌었어요.”
마음속으로 나는 쾌재를 불렀다.
가장 심플한 감상이지만 동화책에 있어서 이보다 좋은 감상평은 없었으니까.
재미 외에 다른 건 부차적인 요소였다.
‘그림도 마찬가지야.’
비록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해도 작화 역시 재미를 부각하기 위한 요소 중 하나일 뿐이었다.
중요도를 따지자면 높긴 하겠지만.
우선 재밌다는 얘기가 가장 먼저 나온 것부터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선동이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처음 봤어요.”
“뭘?”
“이렇게 예쁜 동화책.”
“예쁘다고?”
“네.”
주어가 없어서 정확히 뭘 말하는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물었다.
“뭐가 예쁜데? 그림?”
“그림도 엄청 예쁜데..”
“응.”
무언가 생각하는가 싶더니 선동이는 말했다.
“모르겠어요. 그냥 예뻐요.”
진짜 모르겠는 표정이라 더 묻는 게 의미가 없을 듯했다.
하기야 그럴 만도 했다.
굳이 범주를 나누자면 ‘소녀와 환상의 숲’은 힐링 동화니까 말이다.
‘스토리 자체가 예쁘고.’
그림체 역시 그 느낌을 담아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따라서 그냥 예쁘다는 선동이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총체적으로 예쁘다는 거겠지.
아까 말한 ‘그냥 연두 아빠’와는 어감상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근데요, 아저씨.”
“응.”
“율이 있잖아요.”
율이는 동화의 주인공인 소녀의 이름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율이가 왜?”
“왜 이렇게 닮았어요?”
“닮아? 누구랑?”
조금 놀랄 만한 대답이 돌아왔다.
“연두랑요.”
“.. 그렇게 느껴져?”
“네.”
작가가 한 말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그냥 떠올린 스토리인데 풀어나가는 과정 속에서 연두가 겹쳐 보였다고.
그리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 속에서 소녀와 연두가 겹쳐보이는 느낌을 수없이 받았다.
그게 나쁜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몰입할 수 있게 해 주는 역할을 했지.
‘달라.’
동화 속 소녀와 연두의 외모는 분명히 달랐다.
그런데도 선동이의 눈에 두 아이가 닮아보였다는 건 꽤나 신기하게 다가왔다.
어쩌면 스토리 속에서 겹쳐 본 건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아픔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는 소녀와, 현실세계의 연두의 모습을.
“.. 글쎄.”
그렇게 답하자 선동이는 또 나를 불렀다.
“아저씨.”
“응.”
“근데 왜 이야기가 거기서 끝나요?”
이 말을 왜 이제 하나 했다.
나는 웃으며 답했다.
“아직 미완성이거든.”
“미완성..?”
“응. 끝이 안 났다는 소리지. 더 재미있는 부분이 남아있으니까.”
내 말에 선동이는 눈이 커다래져서는 말했다.
“그럼 저는 어떻게 봐요? 궁금해 죽겠는데.”
확실히 뒷내용이 궁금한 부분이긴 했지.
본의 아니게 선동이에게 절단신공의 맛을 보여준 셈이었다.
나는 장난스레 답했다.
“글쎄. 집에 돌아가면 보기 힘들지 않을까?”
“안 돼! 그런 게 어딨어요!”
“어딨긴. 여기 있지.”
“…”
이를 악문 선동이.
더 약올렸다가는 선동이의 이빨이 위험할 거 같아 나는 얘기했다.
“뭐, 방법이 없지는 않지.”
“뭔데요?”
“동화책이 완성되면 내가 우편으로 보내주면 되니까.”
“진짜요?”
“응.”
그제야 선동이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나는 슬쩍 입을 열었다.
“그런데 조건이 하나 있어.”
“조건이요?”
“응. 조건이라기보다는 질문에 가깝긴 한데.”
귀를 기울이는 녀석을 향해 나는 던졌다.
유치뽕짝한 질문 하나를.
“꼬마공룡 빠코가 재밌어, 이게 재밌어?”
내가 봐도 한심한 질문이었다.
***
“이거요..”
거짓말은 아닌 거 같았다.
다만 나를 보는 눈빛이 다시 전으로 돌아간 거 같다는 게 문제지.
오히려 좋았다.
부담스러운 눈빛보다야 이렇게 친근한(?) 감자소년의 표정이 익숙했으니까.
“그래. 완성되면 꼭 보내줄게.”
“예쓰!”
그렇게 약속하고 시간을 보내다 보니 찾아온 늦은 오후.
연두를 데리러 갈 시간이었다.
곧장 선동이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아, 맞다.”
걷다 보니 미처 말하지 못했던 게 떠올랐다.
“선동아.”
“네.”
“오늘 동화책 보여준 거 연두한테는 비밀이다?”
의아한 표정으로 선동이가 되물었다.
“왜 비밀이에요?”
“연두한테는 아직 안 보여줬거든.”
“엥? 왜요?”
“이야기가 완성되면 보여주고 싶어서. 그런데 선동이 너한테 먼저 보여줬다고 하면 서운해 할 수도 있으니까.”
그 점이 염려돼서 일부러 시은이와 레나한테도 보여주지 않은 상태였다.
선동이야 덜하긴 하겠지만.
미리 보여줬다는 사실을 얘기해서 좋을 건 없으니 하는 말이었다.
납득한 듯 선동이는 대답했다.
“알겠어요.”
“땡큐.”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어린이집.
언제나처럼 벨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선동이도 또 같이 왔네?”
“안녕하세요..”
꾸벅 인사하는 선동이. 예의 바른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인사를 나눈 뒤 유미경은 연두를 데리러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때,
불쑥.
문 틈으로 무언가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외마디 기합을 내지르며.
“이얏!”
누군지 확인한 나는 실소를 내뱉었다.
벙찐 표정의 선동이.
그러거나 말거나 눈앞의 아이는 손가락으로 선동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기다리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포크레인소년의 등장이었다.
***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두 아이의 만남.
우습지만 몇몇 연두부가 댓글창에서 고대하던 만남이기도 했다.
대충 이런 식이었다.
-감자소년이랑 포크레인소년 만나면 웃길 거 같지 않냐 ㅋㅋㅋ
┖오우야..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웅장해진다.
┖숙명의 라이벌 ㅋㅋㅋㅋㅋ
┖진지하게 둘 만나면 싸울 거 같은 거 나만 그러냐.
눈으로만 보던 그 현장이 내 눈앞에 있었다.
심지어 도발중이다.
“감자 악당 오선동! 정이으 이름으로 널 용서치 안케따!”
“…”
감자는 어디서 들었는지 감자 악당이란다.
가만히 있을 선동이가 아니었다.
형이라면 몰라도 여러모로 민우는 딱 봐도 동생처럼 보였으니까.
“너 뭐냐?”
“어, 어..?”
당황한 민우가 몸을 움츠리는 사이 선동이는 한 번 더 말을 뱉었다.
“너 뭐냐고.”
일단 기세에서 앞서고 들어가는 감자소년.
그게 끝이 아니었다.
“너 몇살이야.”
“여, 여서쌀..”
“난 일곱살이거든? 반말하지 마!”
끝이었다.
한눈에 봐도 싸울 의지를 잃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니, 뭐라는 거야.’
이렇게 해설할 때가 아니지.
어른이 돼서 아이들이 다투는 걸 강 건너 불 구경 하듯이 지켜보고만 있다니.
뒤늦게 나서서 나는 말했다.
“그만. 처음 본 건데 사이좋게 인사해야지, 얘들아.”
억울한 표정으로 민우가 말한다.
“나는 인사했는데…”
방금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뻥을 치는 민우.
괜히 호랑이 슬레이어란 이명이 있는 게 아니다.
발끈해 소리치려는 선동이를 제지하고 내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래, 민우야. 근데 만나자마자 악당이라고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면 선동이 입장에서는 인사처럼 들리지 않지 않을까?”
“파워포스는 원래 이러케 인사해요!”
“그럴 수 있지. 근데 선동이는 악당이 아니잖아.”
“악당이에요!”
“왜?”
“연두랑 가치 살자나요!”
생각지도 못한 이유였다.
머리가 지끈거리려는 찰나에 구세주가 등장했다.
“어머. 민우 언제 나왔니?”
옆에는 연두가 선생님의 손을 잡고 있었다.
“아빠!”
반가움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부르더니,
“으응..?”
낌새가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챈 걸까.
민우와 선동이를 번갈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런 연두를 향해 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잘 있었어, 연두야?”
“네에.”
“시은이랑 레나는?”
이걸 묻는 이유는 간단했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며칠 전에 한 약속이 있었다.
선동이가 돌아가기 전에 꼭 한 번 다같이 모여서 놀기로.
‘그게 오늘이지.’
시은이와 레나뿐 아니라 부모 사이에서도 구두로 약속을 잡았다.
날짜는 오늘, 장소는 놀이터.
뭐니뭐니해도 아이들이 모여서 놀 만한 장소는 놀이터만한 곳이 없었다.
‘노리터가 머에요..?’
처음에는 그랬던 연두도 이제는 익숙해진 장소였다.
시간이 됐으니 세연씨랑 레나 어머니 이은경도 곧 도착하겠지.
한편 내 물음에 연두는 답했다.
“여기 이써요! 시으나, 레나야..”
“응.”
“응, 연두야!”
두 아이가 차례로 연두 옆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도 어김없이 빛이 나는 연시레였다.
‘이 녀석은 또 얼었네.’
방금 기선제압을 할 때와는 달리 또 석상처럼 얼어버린 선동이.
유미경이 웃으며 말했다.
“아이들한테 얘기 들었어요. 오늘 놀이터에서 다같이 놀기로 했다고.”
“하하, 네.”
“그럼 조금 기다리셔야겠네요?”
“그래야죠.”
내가 얘기를 주고받는 사이 한쪽에서도 이야기가 오갔다.
다름아닌 선동이와 연시레 사이에서였다.
“안녕하세요, 오빠.”
“으, 응.”
“Hallo.
갑작스레 등장한 독일어에 당황해 어쩔 줄 몰라하는 선동이.
그 모습을 보며 레나가 쿡쿡 웃음짓는다.
이쯤 되면 가끔은 일부러 독일어를 하는 거 같기도 하다.
‘장난꾸러기라니까.’
의외로 짓궂은 면이 있는 레나였다.
뒤이어 연두도 해맑게 웃으며 선동이를 향해 말했다.
“선동이오빠. 오늘 머 해써..?”
“오늘?”
“응!”
“오늘 동…… 흡!”
다행이었다.
입을 틀어막는 걸 보니 동화책 얘기를 하려 했던 게 분명했다.
말하는 와중에 깨달은 모양이다.
비밀이라는 걸.
“.. 동?”
“아니! 그냥 있었어! 누렁이랑 놀고…”
괜히 미안하네.
비밀이라 했을 뿐인데 이러니까 꼭 거짓말을 시킨 기분이다.
한편 둘의 대화에서 이상함을 감지한 듯 시은이가 옆에서 입을 열었다.
연두를 톡톡 건드리며 작은 목소리로.
“연두야..”
“응.”
“선동이오빠.. 반말하면 화 안 내?”
확실히 의아할 만도 했다.
저번까지만 해도 선동이에게 존댓말을 하던 연두였으니까.
연두가 웃으며 대답했다.
“응! 이제 반말해도 대!”
“왜?”
“선동이오빠가 해도 댄다고 해써..”
“아, 그럼……”
시은이가 고개를 돌려 선동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것만으로도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가 느껴졌다.
선동이는 눈치가 빨랐다.
“너, 너도 해도 돼! 반말!”
“응.”
“나는?”
옆에서 레나도 숟가락을 얹었다.
마찬가지로 선동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괜찮아. 반말해!”
이제는 되려 반말을 하라고 하는 모습이다.
이게 연시레의 힘인가.
그 분위기를 틈타서 민우도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럼 나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선동이는 싸늘하게 말했다.
“넌 안 돼.”
“…?”
띠용 커진 눈으로 민우는 항변했다.
“뭐야! 왜 나만 안 되는데!”
“안 되는데?”
“.. 요.”
이걸 어쩐다.
아까 기세에서 눌려서인지 이미 서열이 정해진 느낌이다.
이렇게 정리된 반말 존댓말 논쟁.
어쩌다 보니 길어진 수다, 그 속에서 시은이가 어딘가를 보며 외쳤다.
“엄마!”
뒤따라 레나도 소리쳤다.
“Mom!”
고개를 돌리니 복도 끝에 세연씨와 이은경이 나란히 걸어오고 있었다.
오다가 만난 건가.
어떻든간에 나이스 타이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