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397)
397화. 한여름 밤의 꿈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 게임.
“와아악!!”
“꺄!”
“도망가! 빨리!”
룰을 파악해서인지 처음보다 한껏 텐션이 올라간 상태였다.
뉴페이스 지우도 마찬가지였다.
소극적이던 첫인상과 달리, 연두와 짝을 지어 게임을 하며 점점 적극적으로 게임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자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새 친구인 지우를 연두는 무척 챙겨주고 있었다.
처음에 다가가서 손을 내민 것부터 시작해서, 게임을 하는 내내 옆에 꼭 붙어서 함께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와중에도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눈웃음짓는 게 귀여웠다.
그렇게 게임이 쭉 진행되다가,
“잡아따!”
다소 웃픈 장면이 펼쳐졌다.
잡혀버린 탓에 계속 붙어 다니던 연두와 지우가 떨어지게 된 거다.
두 아이는 쉽사리 맞잡은 손을 떼지 못했다.
“지우야..”
“여, 연두야…”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다가 벌어진 상황 치고는 너무 애절한 느낌인데.
결국 가까스로 손을 떼는 두 아이.
그리고선 연두가 지우를 보며 자그맣게 입을 연다.
“지우야..”
“으, 응.”
“연두가 꼭 땡 해줄께…”
마치 생이별을 하는 듯한 모습이다.
헤어질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언젠가 꼭 만나러 가겠다는 말을 남기는 느낌이라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 순간적으로 웃음이 나왔다.
‘아빠가 돼서 그런가.’
언젠가부터 감수성이 엄청 풍부해진 느낌이다.
원래의 나는 상당히 감정이 메말라 있는 유형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이제는 사소한 장면에도 지금처럼 감수성이 폭발할 때가 많았다.
드라마 작가 해도 되겠어, 아주.
“아빠..”
그렇게 지우가 나무로 향하고 난 뒤에 연두는 나를 향해 걸어왔다.
조금 서글픈 표정을 머금고.
나는 미소를 띠며 연두에게 손을 내밀었다.
꼭.
손을 마주 잡는 연두를 향해 말했다.
“괜찮아, 연두야.”
“.. 네?”
“빨리 아빠랑 같이 지우 땡 해주러 가자.”
그제야 연두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에서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어쩌면 아까 지우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하던 중얼거림 때문일지도 몰랐다.
‘나, 나는 친구 하나도 없어..’
그 말 때문이 아닐까.
새 친구인 지우를 연두가 이렇게나 마음을 쓰고 챙겨주는 이유.
다시 시작된 게임.
나무 앞에 도착한 지우는 고개를 파묻고 작은 목소리로 구호를 입 밖으로 뱉었다.
“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푸흣.”
난데없이 웃음이 터졌다.
설마 구호를 뱉을 때도 첫말을 더듬을 줄은 몰랐는데.
처음보다 적극적이 됐다고는 해도 지우의 이 화법은 기본 옵션인 모양이다.
‘연두랑 떨어져서일 수도 있고.’
스윽.
구호를 뱉고선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는 지우.
몇 초간 바라보다가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걸 확인하고선 다시 고개를 돌린다.
‘.. 어?’
그런데 심상치 않은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뒤를 돌아본 지우의 어깨가 꽤나 크게 들썩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왜 그러지?
‘혹시 무서워하고 있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방금 더듬은 걸 보고 웃은 게 너무 미안해지는데.
돌이켜보면 그런 경우가 있었다.
초등학생 때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다가도 발표를 시키거나 하면 떨다가 울기까지 하는 수줍음이 많은 친구들.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바뀌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그런 걸지도.’
애초에 지우가 쑥스러움 많은 아이인 건 확실했다.
더군다나 계속 연두랑 붙어 다니다가 술래가 돼서 그 상황 자체에 부담을 느낀 건지도 몰랐다.
여기까지는 단순 착각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두 번째로 뒤를 돌아본 지우의 표정에서 그 부담감이 느껴졌으니까.
구호도 처음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속도라 아무도 걸릴 일이 없는 패턴이었다.
“…”
연두도 지우의 상태를 어느 정도 눈치챘는지 얼굴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취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였다.
이대로 둘 수는 없으니 나서는 수밖에.
“연두야.”
그런데 나보다 빨리 반응한 사람이 있었다.
놀랍게도 시은이였다.
부르는 목소리에 돌아보는 연두를 향해 시은이는 쿨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꼭 땡 해줘.”
“으응..?”
연두에게 그 한 마디를 남기고 시은이는 작전을 개시했다.
명백한 의도가 느껴지는 행동을.
“앗!”
외마디 비명과 함께 제자리에서 발을 헛디딘 거다.
정확히는 헛디딘 척이지만.
동시에 굉장히 티 나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나 움직여 버렸다…”
그런 시은이를 빤히 쳐다보는 술래 지우.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시은이는 또 한 번 얘기했다.
“지우야. 나 움직였는데.”
“.. 아!”
그제야 지우는 말했다.
“시, 시은이!”
기다렸다는 듯 시은이는 앞으로 걸어가서 지우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선 웃으며 말했다.
“나도 같이 봐줄게, 지우야. 움직이는 사람 있는지.”
“..!”
토끼눈을 뜬 채로 시은이를 바라보다가 지우는 대답했다.
“고, 고마워..”
자연스레 멎은 떨림. 나로서도 놀라울 따름이었다.
설마 이런 방식으로 도와줄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 했는데.
그런 내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
“헤헤..”
연두가 앞을 바라보며 배시시 미소 짓고 있었다.
저절로 실소가 흘러나왔다.
아, 진짜 미치겠네.
스윽.
그렇게 배시시 웃다가 연두는 나를 보더니 얘기한다.
눈에 힘을 꾹 주고선.
“아빠! 빨리 가서 땡 해조야 해여..!”
“하하, 그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연두와 시은이의 호흡이었다.
***
따뜻한 심성이 느껴져 절로 흐뭇한 미소가 번지는 연두와 시은이의 호흡.
미리 약속한 대로 끝내 지우를 터치한 건 연두였다.
스피드가 빨랐던 건 아니지만, 그렇게 된 건 순전히 시은이의 덕이었다.
‘아주 첨단 레이더 그 자체였지.’
연두를 제외한 모든 움직임을 조금 과장을 덧붙이면 나노미터까지 계산해서 잡아냈다.
엄마인 세연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눈치가 없는 터라 상당히 억울해하긴 했지만.
“엄마.”
“뭐야! 엄마 안 움직였는데?”
“눈 깜빡였어.”
“… 그런 게 어딨어! 너무해!”
자비가 없는 시은이였다.
그렇게 모두 제거되고(?) 끝내 살아남은 연두만이 지우에게 도달한 거다.
그게 끝은 아니었다.
결국 누군가를 잡는 게 술래의 몫이었으니까.
‘다 도망가서 잡지 못하면.’
다시 술래를 해야 하는 게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룰이었다.
그래서 상황을 보고 내가 잡히려 했다.
또 지우가 술래를 하게 둘 수는 없었으니까.
그런데 또 나설 필요가 없어졌다.
“으, 응..?”
보란 듯이 지우가 잡을 수 있도록 멈춰 선 아이가 있었으니 말이다.
이번에는 다름 아닌 레나였다.
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지우를 향해 레나는 말했다.
“나 자바, 지우야!”
“그, 그래도 돼..?”
“응! 나 술래하고 싶어!”
술래가 하고 싶다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한 번도 지금껏 술래를 하려고 잡힌 적 없는 레나였다.
따라서 어쩔 수 없었다.
다른 이유가 있었을 거라 생각이 드는 건.
“하하..”
시은이는 일부러 걸리고, 연두는 약속대로 땡 해주고, 레나는 일부러(?) 잡히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역시 괜히 연시레 연시레 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꼬옥.
다시 만나서 손을 꼭 붙잡은 연두와 지우.
이후에 진행되는 게임 속에 둘이 떨어지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
즐거웠던 게임이 끝난 뒤.
조금 떨어진 채로 무리를 바라보는 아이가 있었다.
다름 아닌 지우였다.
“그럼 저희는 가 볼게요. 얘들아, 안녕!”
“조심히 들어가세요.”
“안녕히 가세여..!”
더 놀겠다고 고집을 부리지만 통하지 않는다.
그렇게 오늘 친구가 된 민우는 엄마의 손에 끌려가다시피 놀이터를 떠났다.
그 뒷모습을 지우는 한동안 멍하니 바라봤다.
다시 고개를 돌리니 즐겁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소리가 들린다.
“즐거웠어요, 오늘.”
“종종 이렇게 모여서 놀아요, 또.”
“이 나이 먹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그 옆에는 오늘 친구가 된 세 아이가 서 있었다.
연두와 시은이, 그리고 레나.
서로 장난을 치며 웃는 셋을 보니 지우는 뭔가 마음이 울렁거리는 기분을 느꼈다.
누가 봐도 친구처럼 느껴지는 즐거워 보이는 눈앞의 장면.
그로부터 지우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섣불리 가까이 다가갈 용기도 나지 않았다.
분명히 방금까지만 해도 같이 즐겁게 놀았는데.
진짜진짜 재밌었는데.
왜일까. 놀이가 끝나고 나니 왜 이렇게 먼 것처럼 느껴지는 걸까.
지우는 시선을 내려 손을 바라봤다.
아직 남아있었다. 게임을 하는 내내 잡고 있던 연두의 손의 감촉과 온기가.
“…”
더 보고 있다가는 울어버릴 것만 같았다.
지우는 고개를 돌려 옆으로 걸어갔다.
놀이터 옆 화단.
슥.
웅크려 앉아 흙바닥에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를 집어 들었다.
부스럭. 부스럭.
말없이 나뭇가지로 흙바닥을 긁는다.
가끔 놀이터에 올 때마다, 심심하면 이렇게 흙장난을 하곤 했다.
엄마가 싫어하긴 하지만.
지금은 흙장난이라도 해야 울컥한 기분이 떨쳐질 거 같았다.
“이상해..”
그런데 이상했다.
자꾸만 까만 흙바닥 위에 떠올랐다.
연두의 얼굴이. 시은이의 얼굴이. 레나의 얼굴이.
스륵.
나뭇가지로 긁어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떠오른다.
안 되는데.
친구들의 얼굴을 보니 울음이 나올 거 같았다.
금방 흙 위로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톡.
“으, 응..?”
눈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아니었다.
나뭇가지를 든 팔에 감촉이 느껴졌다.
다시 한번.
톡.
마치 아까 게임을 할 때 연두가 건드리던 것과 느낌이 같은 감촉이었다.
설마 하며 지우는 고개를 돌렸다.
“..!”
“헤헤, 지우야..”
“여, 연두야…”
이번에는 흙바닥에 비치던 상상이 아니었다.
진짜 연두였다.
그 옆에는 시은이와 레나도 나란히 쪼그려 앉아 있었다.
“.. 레나야, 시은아.”
“안녕.”
“여기서 머 해, 지우야?”
“…”
친구들의 얼굴을 보니 반가운 마음과 동시에 드는 울컥한 마음.
지우는 다시 땅바닥을 바라봤다.
그리고선 나뭇가지로 흙을 파헤치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뗐다.
“…… 잖아.”
“응?”
“오, 오늘 헤어지면.. 또 못 보잖아.. 진짜진짜 재밌었는데……”
이런 말을 하면 정말 미움받게 되어버릴지도 모르는데 주체가 되지 않았다.
감정이 넘쳐흐르는 기분.
지우는 마음속으로 한 생각들을 전부 쏟아냈다.
“처, 처음으로 친구 생겨서 엄청 좋았는데……”
“지우야..”
연두가 덩달아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살며시 고개를 드는 지우.
울컥하는 마음에 눈가에는 물기가 맺힌 상태였다.
“이, 이제 못 보는 거야..? 연두랑 시은이랑 레나…”
한여름 밤의 꿈.
지우한테는 방금 있었던 시간이 한여름 밤의 꿈처럼 느껴졌다.
오늘이 지나면 사라질 꿈 같은 시간 말이다.
지우의 말에 얼마간 흐르는 정적.
“.. 아니야.”
그 속에서 입을 연 건 다름 아닌 연두였다.
지우가 반응했다.
“으, 응?”
연두는 고개를 휙휙 저으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야. 못 보지 아나! 연두는 지우 또 볼 꺼야..!”
“지, 진짜?”
“진짜! 약소기야..!”
그렇게 말하며 연두는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얼마 동안 그 손을 빤히 바라보다가 지우는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그에 따라 겹치는 두 새끼손가락.
“엄지손까락!”
“..!”
“그리고 도장도..!”
꾹.
야무지게 손바닥에 도장까지 찍는다.
아빠가 알려준 약속 방법을 그대로 활용하는 연두였다.
옆에서 시은이도 나섰다.
“맞아. 우리 또 만나서 놀자.”
“어, 언제..?”
“오늘.”
의아한 표정을 머금은 지우를 향해 시은이는 말했다.
“오늘이랑 똑같은 목요일. 목요일에 또 여기서 놀자.”
“모, 목요일?”
“응, 목요일에 엄마한테 조를게!”
다른 것도 아니고 엄마한테 조를 거라는 걸 예고하는 시은이.
역시 남달랐다.
질세라 레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참했다.
“나도! 나도!”
“…”
다시 한번 똘똘 뭉친 연시레.
그에 대한 지우의 반응은 섣불리 뭐라 정의하기 어려웠다.
복합적인 감정이 묻어나는 울 듯 말 듯 한 표정.
“고, 고마워.. 나랑 친구 해줘서 정말 고마워, 얘들아…”
“아니야!”
“연두도 고마어! 연두랑 친구 해조서…”
“레나도!”
어느새 연두에게 3인칭 화법을 배운 레나.
그와 별개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장면이었다.
지우의 입가에 번지는 미소.
이번에는 정말로 친구가 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다른 의미로 울컥한 표정이었다.
그때였다.
스윽.
아이들 위에 드리우는 그림자.
올려다볼 틈도 없이 다소 차가운 어조의 한 마디가 귀에 들어왔다.
단번에 분위기를 180도 전환시키는 한 마디가.
“윤지우. 엄마가 흙 가지고 놀지 말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