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401)
401화. 셀럽 선동이
예정되어 있던 계획을 앞당길 시간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 나와 아이들은 외출준비를 마치고 한데 모였다.
나란히 선 연두와 선동이를 향해 나는 말했다.
“자, 그럼 바로 출발.. 하기 전에 해야 할 게 있다.”
꼴깍.
유지중인 조교 말투 때문일까.
긴장한 듯 연두는 침을 꼴깍 삼키고선 물었다.
“어떤 거요..?”
“그건 바로! 에너지 섭취다!”
동시에 나는 테이블 위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방금 내가 잘라서 가져온 과일이 쟁반 위에 놓여있었다.
김 샌 표정을 짓는 선동이.
‘어쩔 수 없어.’
다소 컨셉이 깨지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공 들여 자른 과일을 그대로 두고 나갈 수는 없지 않은가.
냉장고에 두고 나간다고 해도 껍질을 자른 이상 변색을 막을 수는 없다.
‘맛을 떠나서 먹기 싫어지겠지.’
그런 미래를 그려봤을 때 이건 전부 먹고 나가는 게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왜인지 쿡쿡 웃으며 자리에 앉는 연두.
안 되는데. 웃는 모습이 사랑스럽긴 하지만 조교로서의 위엄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모자만 썼으면.’
어디선가 본 군대 예능 프로그램의 조교웃음을 그대로 재현했을지도 모른다.
잇몸이 훤히 드러나는 웃음.
어쨌거나 간신히 입꼬리를 제어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옹기종기 둘러앉은 나와 아이들.
쟁반 위에 있는 과일은 총 두 종류였다.
참외와 복숭아.
윤기가 흐르는 하얀 참외와 선홍색 빛깔이 맴도는 복숭아가 군침을 돌게 만든다.
‘재미있단 말이지.’
문득 재밌게 느껴졌다. 내가 손수 자른 과일이 눈앞에 놓여있는 이 상황 자체가.
혼자 살 때는 내게 과일이란 녀석은 아예 고려대상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표현이 우습긴 해도 ‘기연’이 아니면 입에 댈 일이 없었으니까.
‘뭐, 사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긴 하지.’
연두를 만난 뒤 초점이 자연히 연두에게 옮겨가고, 눈에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과일, 채소, 우유, 비타민 등의 음식은 물론이고.
정서의 발달을 돕는 동화책과 각종 장난감, 그리고 거주 환경까지.
‘신기하게도.’
그건 내 삶에도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연두를 위한 거라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내게도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줬으니 말이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일례로.’
연두를 위해 영양소를 고려해 만드는 균형잡힌 식사.
그건 연두만이 아니라 나 또한 건강하게 만들었다.
‘몸무게는 늘어났지만.’
역설적으로 전보다 몸이 가벼워졌다는 생각을 하는 게 한 두 번이 아니니까.
동화책을 생각해도 그랬다.
연두를 위해 빌리고 샀던 동화책, 우습게도 이제는 내가 동화를 그리고 있는 걸 보라.
이 밖에도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사실이 기뻤다.
건강한 몸과 정신이 깃든 나는 연두에게 더 많은 것들을 해 줄 수 있을 테니.
눈앞에 앉아있는 이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콕.
포크로 참외를 콕 집었다.
제철이라 윤기가 좔좔 흐르는 참외였다.
그걸 보며 군침을 다시는 연두의 입가에 조심스레 내밀었다.
“아아.”
무의식중에 참외를 마중나가다가 왜인지 아차 하고선 입을 앙다무는 연두.
그리고선 자그맣게 묻는다.
“아빠는요..?”
“하하, 아빠는 괜찮아. 아까 자르면서 조금 먹었거든.”
거짓말이 아니었다.
주부가 되고 나서 자연스레 터득한 특징이 있었다.
과일을 자르는 도중에는 못 참는다는 거.
‘먹어줘야 해.’
꽁다리든 작은 조각이든 하나쯤은 먹어줘야 했다.
기미 상궁같은 느낌이라 해야 하나.
사실 독이 들어있을 리는 없으니 그냥 내가 먹고 싶은 거다.
‘어쨌든.’
먼저 맛을 봐서 알고 있었다.
한 입 베어무는 순간 달콤함이 입 안에 퍼져나가는 그 기분을.
이번에 산 참외는 제대로였다.
그러니 자신있게 연두에게 내밀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참외를 무척 좋아하는 연두였으니까.
“아암.”
먼저 먹었다는 말을 듣고서야 입을 벌려 참외를 한 입 베어무는 연두.
“..!”
그럼 그렇지.
참외가 달콤해서인지 표정도 달콤함 그 자체이다.
조금 크게 베어문 탓에 입술 사이로 즙이 살짝 새어나온다.
후릅!
“푸흣.”
결국 웃음이 터져버렸다.
새어나오는 즙조차 허용할 수 없다는 듯한 연두의 혓바닥을 보고.
괜찮다. 조교 컨셉은 내던진 지 오래였다.
스윽.
옆에서 연두를 지켜보던 선동이도 못 참겠다는 듯 포크를 집어들었다.
먹여주려 했는데 한 발 늦었네.
녀석이 공략한 건 선홍색 빛깔이 흐르는 복숭아였다.
‘알고 있지.’
당연히 나는 맛을 알고 있었다.
기미상궁의 역할에는 복숭아도 예외는 없었으니까.
뒤이어 작은 덩어리를 한 입에 통째로 넣은 욕심쟁이 선동이.
눈이 동그랗게 부푼다.
“우와..”
생각해 보니 왠지 웃겼다.
방금까지만 해도 돌아가야 한다는 말에 푹 처져 있더니 과일 한 입에 반전된 모습을 보고.
역시 맛있는 게 최고라니까.
와구. 와구.
쟁반이 동나는 데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
“다들 준비됐지?”
“네!”
에너지 섭취를 마친 뒤라 그런지 한층 힘이 실린 대답이다.
‘그나저나.’
나란히 선 두 아이를 보니 떠오르는 게 있었다.
주머니에 들어있는 핸드폰.
잠깐 꺼내서 나는 바탕화면에 떠올라 있는 한 아이콘을 클릭했다.
툭.
[원스타그램]유투브와 함께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플랫폼이었다.
주 용도는 사진 업로드.
가장 최근에 올린 사진은 다름아닌 연두와 선동이의 투샷 몇장이었다.
‘올리는 건 거의 일상 사진이니까.’
선동이가 일상에 들어왔으니 자연스레 그에 맞춰 반영된 사진이라 볼 수 있었다.
비록 시점은 막 선동이가 온 때이긴 하지만.
찍는 날짜와 업로드 시점이 일치할 때도 많으나 이렇게 차이가 날 때도 있었다.
유투브도 인스타그램도.
‘한 번 볼까.’
원스타그램의 장점 중 하나.
업로드가 간편한 만큼 가볍게 연두부의 반응을 보기에도 편리하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터치 한 번이면 되니까.
톡.
동시에 댓글창이 떠올랐다.
“헉.”
생각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반응에 입이 살짝 벌어졌다.
이건 뭐라 표현해야 할까.
-선하!(선동이 하이라는 뜻)
┖그리고 바로 선바!(선동이 바이라는 뜻)
┖ㅋㅋㅋㅋㅋㅋ 왜 인사하자마자 바로 보내는데
┖초록님. 이건 해명이 필요하겠는데요? 왜 신성한 초록연두구역에 외간 남자, 아니 남자아이가 발을 들인 걸까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어허! 거기 아니야, 오선동! 떼끼!
┖기어코 그 선을 넘어버렸다 이거지. 금단의 구역에 발을 들였다 이거지..^^
┖feat. 굿바이 감자소년
평소와는 사뭇 다른 다소 격한 느낌의 채팅이 떠올라 있었다.
전부 장난기가 묻어있긴 하지만.
다소 오싹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다.
‘안 되겠네.’
앞에 선 채로 나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는 선동이.
굳이 보여주지 않는 편이 좋을 거 같았다.
애써 모른 척 하며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오늘도 연두는.. 반짝반짝 빛난다.
┖한 노래 가사가 떠오르네. 빛이 나는 솔로… ★
┖ㅋㅋㅋ 갑자기 그 가사가 떠오르는 이유가?
┖다들 왜 그래요. 저는 선동이 귀여운데. 단, 그 선만 넘지 않는다면.. ㅎㅎ
┖어헣어엉 ㅠㅠ 부러워.. 나도 가 보고 싶다고! 초록연두구역!!(정신이 나가버린 연두부의 댓글입니다)
┖선동이는 전생에 뭘 구했을까.
┖감자별?
┖감자별 ㅋㅋㅋㅋㅋㅋㅋ
초록연두구역에 온 탓일까.
선동이의 비밀장소에 우리가 갔을 때보다 선동이를 향한 연두부의 견제가 더 심해진 느낌이다.
이거, 참.
내일 돌아간다고 코멘트라도 남겨야 되나.
‘큰일이네.’
업로드할 사진이 더 많은데.
아무래도 조금은 자제할 필요가 있을 듯했다.
피식 웃으며 댓글창을 닫았다.
***
집을 나선 뒤.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막상 도착하고 나니 선동이는 의아한 표정으로 입을 뗀다.
“.. 아저씨.”
그럴 만도 했다.
나갈 준비를 하라는 말만 했지 뭘 할 지는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여기가 어디에요?”
“여기?”
“네.”
씩 웃으며 나는 짤막하게 말했다.
“시내.”
“.. 시내요?”
“그래.”
말 그대로였다.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온 곳은 시내.
정확히는 번화가였다.
주말이라 거리에는 사람들이 들썩이고, 수많은 가게가 늘어서 왁자지껄한 분위기다.
‘좋아하는 장소는 아니지만.’
평소 시끄러운 장소를 좋아하지 않는 터라 번화가를 자주 찾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여기를 마지막 장소로 채택한 이유.
간단했다.
‘최고니까.’
서울에 대한 이미지를 남기기에는 최적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추억을 남기기에도.
본래의 목적인 ‘서울 구경’을 제대로 할 만한 장소로는 이만한 곳이 없었다.
“선동아. 처음에 서울에 왔을 때 기억하지?”
“처음에요?”
“응. 너 울 뻔 했……”
“억!”
변함이 없구만.
제자리에서 껑충 뛰며 필사적으로 내 입을 틀어막는다.
“.. 그, 그런 거 아니라고요!”
“하하, 그래.”
연두는 아리송한 표정이다.
뭐, 마지막인 만큼 선동이의 이미지는 지켜주기로 하자.
아무튼간에 이제부터 제대로 해 볼 생각이었다.
“서울 구경.”
생각해 둔 게 몇 가지 있긴 하지만, 굳이 목적지를 정할 필요는 없었다.
걷다 보면 다 나오게 되어있으니.
두 명의 제군을 보며 나는 선언했다.
“출발!”
그렇게 좌충우돌 서울구경, 다른 말로는 번화가 체험이 시작됐다.
수많은 가게가 양쪽에 펼쳐졌다.
입이 헤 벌어진 두 아이에게 나는 말했다.
“관심이 가는 게 있으면 바로 멈춰도 돼. 알겠지?”
“네!”
“네에!”
그렇게 말하고 얼마 걷지도 못하고 우리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전혀 다른 이유로.
“우, 우와! 연두다!”
“대박!”
역시 무리였나.
자외선 차단 겸 위장용으로 고래가 준 선글라스를 착용시켰음에도, 연두의 존재감을 숨기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두 명의 여학생이 입을 가리고선 소리쳤다.
“초록님! 진짜 팬이에요!”
“하.. 연두 선글라스 낀 거 봐. 너무 귀여워…”
“언니 보이지, 연두야?”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로 연두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잘 보여여..”
“…”
짤막한 대답에 심장에 손상을 입은 두 명의 연두부.
주접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한편 그 사이 또다시 소외된 한 명이 있었다.
“크흠..”
뚱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선동이.
이 상황이 별로 마음에 안 드는 눈치다.
그럴 만도 했다.
‘전혀 관심을 안 주니까.’
자기한테는 1도 관심 안 주고.
빨리 가고는 싶은데 발까지 묶였으니 심통이 날 만도 하지.
그런데 그때.
“.. 응?”
고개를 돌린 여학생 한 명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너.. 감자소년 맞지!”
“…?”
얼굴에 물음표가 떠오른 선동이.
서울에 오고 몇 번 듣기는 했지만 거리에서 알아보는 거랑은 느낌이 달라보였다.
그 사이 옆 친구도 맞장구치며 말했다.
“맞네! 그.. 선동이! 우와..”
“실제로 보니까 되게 귀엽게 생겼다. 머리 봐, 흐흐.”
“누나가 머리 한 번만 만져봐도 돼?”
얼떨결에 선동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기다렸다는 듯 두 손이 날아든다.
파스. 파스.
스포츠머리를 한 탓에 까슬거리는 감촉이 소리를 통해 전해진다.
그 촉감이 재미있는 건지.
두 학생은 꺄르르 웃으며 한참이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에 따라 얼굴이 붉어진 선동이.
“이, 이제 그만요!”
“아! 으응!”
“미안해. 너무 오래 만졌지? 맞다, 잠깐만? 사과의 의미로……”
스윽.
한 학생이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막대사탕 두 개였다.
계속 뒤지다가 난처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듯 말한다.
“두 개밖에 없네. 어쩌지..”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나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저는 괜찮아요. 주려는 거면 연두랑 선동이만 주면 돼요.”
“아, 정말요?”
입을 삐죽 내밀고 말을 이었다.
“아까 먹지 말 걸. 초록님도 드리고 싶었는데..”
재차 괜찮다고 말하자 차례로 여학생은 선동이와 연두에게 사탕을 쥐어줬다.
그리고선 생긋 웃으며 말했다.
“오늘 산 거니까 맛있게 먹어. 연두야, 선동아.”
“고마씁니다..”
선동이는 감사인사 대신 멋쩍은 듯 살짝 고개를 숙인다.
그렇게 학생들과 헤어진 뒤.
사탕을 입에 물고 다시 걷기 시작한 와중 내 눈에 포착됐다.
심상치 않은 선동이의 움직임이.
‘.. 뭐 하는 거지?’
유심히 그 움직임을 관찰했다.
한쪽 손으로 사탕을 쥐고선 다른쪽 손으로 난데없이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한 선동이.
의아한 건 그게 스스로의 머리라는 거다.
파스. 파스.
마치 아까 학생들이 쓰다듬던 것과 유사한 느낌이었다.
아까랑 같은 소리가 난다.
그와 동시에 선동이의 입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흐히히.”
“프흣.”
결국 웃음이 터져버렸다.
뭔가 했더니 즐기고 있었구나, 이 녀석.
자신을 알아봤다는 게 내심 기분이 좋았나 보다.
‘그렇게 질색하더니.’
감자소년이라 불리는 건 그리 질색하더니 말이다.
꼭 짱구같다. 누님들의 손길을 떠올리며 실없이 웃는 옆모습을 보니.
마침 연두도 선동이의 표정을 본 모양.
“어.. 선동이오빠 웃는다. 헤헤..”
왜 웃는지는 모르고 따라웃는다.
혼자 찔린 선동이는 화들짝 놀라 반응했지만.
“안 웃었어!”
“우섰는데…”
“우, 웃었는데 그거 때문에 웃은 건 아니야!”
“으응? 그거..?”
“…”
진짜 미치겠네.
이러면 본래 의미가 퇴색된 느낌이잖아.
번화가에 와서 서울구경이 아닌 셀럽 체험을 하고 있는 선동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