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409)
409화. 유성초 스나이퍼
동화책 출시 후 수일이 흘렀다.
달칵.
당연한 얘기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추이를 살피고 있다.
그래서 어떻냐고?
그래프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한 마디로, 하루가 지날 때마다 점점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것도 상당히 큰 폭으로.
작화가가 나인 게 밝혀졌다거나 해서 판매량이 증가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 연두튜브 댓글창은 난리가 났을 테니.
‘평온해.’
연두튜브는 물론이고 원스타그램 댓글창 역시 세상 평온했다.
평온하다고 해서 댓글이 없다는 게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 댓글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전부 연두성분으로 인해 행복해하는 연두부의 댓글일 뿐, 내 동화책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는 점에서 평온하다고 표현한 거지.
솔직히 조금 걱정했다.
주위 사람에게는 소식을 알린 만큼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지는 않을까 하고.
다행히 그런 기류는 전혀 없었다.
우습지만 연두에게 한 그 말이 효력을 발휘했을지도 모른다.
‘이건 비미린데..’
동화책에 관해 이야기할 때 꼭 하라고 했던 말.
그 말을 하길 잘했다.
주위 지인들이 꽤나 충실하게 비밀을 지켜주고 있는 거 같으니.
결과적으로 지인들로 인한 파급력은 현재로서는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럼에도 판매량이 점점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이유.
그건 다름아닌 인터넷, 정확히는 각종 포털사이트의 카페를 통해서였다.
‘몰랐는데.’
아이를 키우는 부모만 가입이 허용되는 수많은 카페가 존재했다.
목적은 대체로 정보 공유였다.
육아를 위한 각종 정보나 도움을 주고받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카페.
문제는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소녀와 환상의 숲’을 검색하면 생각보다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카페에 올라오는 게시글이.
그 게시글 중 대부분은 카페 가입자만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가입했지.’
나도 엄연히 한 아이의 부모이기에 가입이 가능했다.
가입 과정은 대체로 순조로웠지만 막힌 부분이 없지는 않았다.
봐라. 이 카페도 이렇게 뜨네.
[육아홀릭]-닉네임을 입력하세요
바로 닉네임 짓기 란이었다.
대충 아무거나 치면 상관없었겠지만 닉네임을 짓는 데는 원칙이 존재했다.
아이의 이름에 엄마 또는 아빠를 붙여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내 경우는 ‘연두 아빠’가 되겠지.
‘처음에는 조금 고민했어.’
처음 카페에 가입할 때는 조금 고민했다.
혹시 모르니 이름을 살짝 바꿔서 가입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허나 그만뒀다.
죄를 짓는 것도 아니고, 육아 카페에 가입을 하며 아이의 이름을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세상에 연두가 하나인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카페 활동을 열심히 할 생각도 없었다.
가입하는 의도는 철저히 동화책 반응에 대한 눈팅용이었으니까.
어쨌거나 그렇게 닉네임 짓기를 넘기고 나니 막히는 부분은 존재하지 않았다.
달칵.
“좋아.”
가입은 완료했지만 아직 남은 관문이 있다.
처음에 나를 당황하게 만든 멤버 등급.
[새싹 단계]슬프게도 막 가입한 새싹 단계는 게시글을 읽을 권리가 없었다.
승급 조건은 가입인사와 댓글 다섯개.
부리나케 다른 게시글에 연달아 다섯개의 댓글을 달고 나니 잎새 단계로 승급할 수 있었다.
“흐흐.”
이제 나는 자유다.
검색창에 ‘소녀와 환상의 숲’을 검색하고 나니 쭉 떠오르는 게시글.
오늘은 너희로 정했다.
실실 웃으며 첫 번째 게시글을 클릭하려는데,
띠링!
우측에 웬 카페 알림이 떠올랐다.
순간적으로 드는 불안감.
혹시 승급하려고 댓글을 연달아 달았다고 괘씸죄로 제재를 가한다거나 하는 알림은 아니겠지?
에이, 설마. 다른 카페는 그런 거 없었는데.
괜히 혼자 찔린 나는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를 쥐고 알림을 클릭했다.
“휴우..”
터져나오는 안도의 한숨.
다행히 그런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내가 올린 가입인사 글에 어떤 멤버가 실시간으로 답글을 달아서 온 알람이었다.
(가입인사)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밑에 보이는 답 댓글.
┖환영해요! 애기 이름이 너무 예쁘네요 ㅎㅎ 요즘 완전 대세 이름!
얼굴이 화끈거리는 기분이다.
빨리 승급하려는 의도가 느껴지는 내가 봐도 성의없는 가입인사에 이런 답 댓글이 달리니.
심지어 나 거짓말도 쳤는데.
‘안 할 거잖아.’
솔직하게 쓰려면 ‘활동’을 ‘눈팅’으로 고쳤어야 했다.
지금 와서 수정할 수도 없고.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또다시 떠오르는 알람.
띠링! 띠링!
심지어 두 개다.
뭐야. 여기 왜 이렇게 댓글이 많이 달리는 건데.
새로고침을 누르니 역시나 답 댓글이 두 개가 더 추가되어 있다.
┖푸핫!(이모티콘) 세연엄마 진짜 웃겨요. 대세 이름이라니 ㅎㅎㅎ
┖맞긴 하네용~ 대세 이름 ㅎㅎ
┖저 요즘 엄청 보잖아요. 심지어 우리 아들이랑 같이 본다구요. 우리 글쓴이님 이쁜이는 남자아이인가요, 여자아이인가요?(남자아이면 반전…)
요즘 엄청 본다는 대상과 글쓴이님 아가가 동일한 대상을 가리키는 거 같다는 건 내 착각일까.
이분들은 꿈에도 모르긴 하겠지만.
질문을 받았는데 보고도 지나칠 수는 없으니 나는 대답했다.
┖반전 없이 예쁜 딸입니다 ㅎㅎ
그렇게 대답하고 게시글을 나왔다.
동시에 다짐했다.
앞으로는 아무리 가입인사라고 해도 좀 더 성의를 갖고 써야겠다고.
***
알림을 꺼 두고 나서야 나는 원래 보려던 게시글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화책에 대한 반응.
망설임 없이 첫 번째 게시글을 클릭했다.
[동화책 소녀와 환상의 숲 후기]-안녕하세요~ 은재맘이에요~~ ^^
활기찬 인사로 시작하는 게시글.
-오늘은 우리 은재랑 같이 읽은 동화책 ‘소녀와 환상의 숲’ 후기를 들고 왔어요! 요즘 울 카페에서 난리잖아요? 그래서 내용이 넘나 궁금해서 딸램 손 잡고 바로 서점으로 출동했거든요~ ㅎㅎ
읽기 전 자초지종부터 설명하는 게 재미있었다.
-사실은 울 딸냄은 안 봐도 된다고 했는데.. ㅠㅠ 제가 고집부려서 사 온 거랍니다.
고집을 부린 게 아이 쪽이 아닌 어머님 쪽이라는 점이 포인트였다.
이어지는 내용.
스트롤을 내릴수록 입꼬리가 올라갔다.
‘간략한 줄거리.’
스포가 되지 않을 정도의 줄거리와 감상이 쭉 나열되어 있었다.
그림이 너무 예쁘다, 힐링된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엔딩이 찡한 여운을 남긴다 등의 내용.
-지금은 울 딸냄, 틈만 나면 들고 와서 읽어달라고 얼마나 보채는 줄 몰라요~ ㅎㅎ 정말 강추! 하지만.. 그 부분은 감수해야 한다는 점 말씀드리면서 후기는 마무리하도록 할게요~~~ ^^
처음에는 읽기 싫어했다던 은재라는 아이의 달라진 반응이 나를 웃음짓게 만들었다.
작화가의 입장에서 그만큼 뿌듯한 일은 없으니.
아마 작가님도 이런 반응을 볼 때 가장 행복해하지 않을까.
‘뭐, 굳이 비교하자면.’
연두티콘을 비롯한 이전 작업물의 반응을 생각하면 많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처음부터 하늘을 뚫고 시작했다고 해도 거짓말이 아니니.
어찌 보면 그때에 비하면 다소 초라해 보일지도 모르는 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했다.
당시와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을 정도로.
아니, 그 이상으로 기분이 좋았다.
밑바닥인 0에서 시작해서 점점 빠른 속도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현 상황이.
‘비로소.’
이제야 비로소 내 힘으로 이뤄내고 있는 기분이었다.
한층 더 성장한 기분이었다.
전에 비하면 한참 미약할지 몰라도, 그 작은 성장이 나는 전율이 일 정도로 짜릿했다.
┖저도 이거 진짜 강추해요.. 보면 절대 후회할 수 없는 동화책 ㅎㅎ
┖벌써 몇 번을 읽어줬는지 몰라요.
┖책 읽기 싫어하는 울 애기도 저도 완전히 빠져들었어요~ 소녀와 환상의 숲에~~~ ㅎㅎㅎ
┖우리 준이 최애 동화책도 이걸로 바꼈어용 ㅋㅋㅋ
┖저는 혼자만 읽기 아쉬워서 애기 있는 식구들한테 선물까지 했답니다~
스르륵.
한참동안 나는 마우스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후우..”
크게 숨을 내쉬며 나는 마우스에서 손을 뗐다.
이 정도면 넘칠 정도로 본 거 같았다.
전부 좋은 반응이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만족스러운 눈팅이었다고 평할 수 있었다.
‘그럼 슬슬 준비할까.’
연두를 데리러 갈 시간이다.
그런데 창을 닫으려는 와중,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 어?’
[내 카페]요즘 여러 카페를 가입해서 많아진 ‘내 카페’ 항목.
놀란 이유는 간단했다.
‘.. 아직도 있어?’
과거에 활동하던 카페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초등학교 때 들어간 ‘고무줄총 제작소’ 카페와 고등학교 때 들어간 ‘그림공간’.
까마득히 잊고 있던 두 카페였다.
카페 활동에는 관심이 없다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 이 두 개는 열심히 하긴 했구나.
초등학교 때는 고무줄총 만들기에 완전히 미쳐 있었고, 고등학교 때는 그림에 미쳐 있었으니까.
‘나름 네임드였는데.’
두 카페에서 나름 네임드였던 거로 기억하고 있다.
갑자기 궁금해지네.
아직 그 두 카페는 멀쩡히 살아 숨쉬고 있을지.
달칵.
호기심에 먼저 들어간 고무줄총 제작소.
“오..”
아직 살아있다.
최신글이 간간이 올라오고 있었다.
설명하기 힘든 반가움을 느끼며 나는 우측을 바라봤다.
“…”
말문이 막혔다.
향수가 떠오르는 내 닉네임을 보고.
[유성초 스나이퍼]초등학생 때의 나.
무슨 생각으로 이 닉네임을 지은 걸까.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며 클릭한 ‘내 활동’ 항목.
대충 아무거나 누르니 게시물이 하나 떠오른다.
-고수님 ㅠㅠㅠ 자꾸 중간의 막켜요. 어떡해 해야 고수님처럼 잘 만들쑤 잇슬까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맞춤법만 봐도 나이가 짐작이 간다.
잠깐. 그런데 고수님?
왜 이렇게 호칭이 익숙한 거 같지?
스윽.
시선을 내린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작성자가 태그한 사람이 있는데, 그 닉네임이 ‘유성초 스나이퍼’였다.
즉, 고수님이 나라는 소리다.
퍼즐이 맞춰지듯 조금씩 되살아나는 기억.
스르륵.
홀린 듯 스크롤을 내렸다.
유성초 스나이퍼가 작성한 답 댓글이 달려있었다.
유성초 스나이퍼 : 님아, 걱정 ㄴㄴ요. 나도 처음에는 잘 못 만들엇음요.
작성자 : 진짜요?
유성초 스나이퍼 : 네. 차부난 마음으로 진정하면 언제가는 님도 삐까번적한 고무줄총을 만들 수 잇을거임.
작성자 : 흑흑.. 조은 말씀 감사합니다, 고수님.. ㅠㅠ
유성초 스나이퍼 : ㄴㄴ 아님. 모르게쓰면 사진 찌거서 올리셈. 안 바쁘면 대답패 줌.
“…”
믿기지 않았다.
이 유성초 스나이퍼가 나라는 게.
맞춤법은 개판에 말투는 또 왜 이렇게 거만한 건데.
‘심지어.’
중간에 갑툭튀한 진정이란 단어는 한참을 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정진을 착오해서 쓴 거라는 걸.
어디서 단어를 주워듣고는 멋있어 보여서 쓰려다가 그걸 또 잘못 썼나 보다.
‘대답을 패긴 왜 패는데.’
몰랐다.
과거의 내가 이렇게 맞춤법 폐급이었을 줄은.
아무리 초등학생이라고 해도 너무 심하잖아, 이건.
틱.
더 볼 자신이 없었다.
과거의 나를 더는 들추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 이건 평생 비밀에 부쳐야 한다.
무덤까지 가져갈 비밀.
말투로 보건대 저 정도는 애교일 터였다.
더 엄청난 것들이 내 활동 목록에 도사리고 있겠지.
만약 그게 주위에 알려진다면 얼굴을 들고 다닐 자신이 없었다.
‘.. 삭제하자.’
지금은 아니었다.
심신이 안정됐을 때 마음먹고 한 번에 삭제하기로 하자.
그렇게 결심하며 나는 고무줄총 제작소를 나갔다.
***
고무줄총 제작소를 나가고 나는 곧바로 외출 준비를 마쳤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냐아!”
“왜 그래, 누렁아? 무슨 일 있었나?”
“냐아…”
좋아. 자연스러웠어.
함께 있었던 누렁이마저 모른다면 들킬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한다.
누렁이를 한 번 쓰다듬어준 뒤 집을 나섰다.
끼익.
과거의 나를 만나고 나니 유독 연두가 더 보고 싶었다.
한달음에 도착한 어린이집.
벨을 누르자 곧바로 선생님이 문을 열고 나왔다.
“연두야! 아빠 오셨네?”
와다다.
쏙 모습을 드러낸 연두.
나를 보더니 그대로 달려와 품에 안겼다.
“헤헤, 아빠..”
“연두야.”
잠깐의 꽁냥거림 이후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
여름이 지나 선선한 날씨.
이대로 들어가기는 조금 아쉬운 감이 있었다.
“연두야.”
“네에.”
“괜찮으면 아빠랑 조금 걷다가 들어갈래?”
“거따가요..?”
“응, 산책.”
그 말에 연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했다.
“조아요, 산책..!”
“하하, 그래. 그럼 이쪽으로 좀 걷자.”
평소와는 다른 방향이었다.
집 근처는 연두와 자주 걸었으니 오늘은 조금 다른 동선을 밟아 볼 생각이다.
특별히 정해진 루트는 없었다.
“오늘은 뭐 하고 놀았어, 연두야?”
“역할노리요!”
역할놀이?
전에 연두에게 들었던 가족놀이와 비슷한 어감이었다.
그때 분명 연두가 신부 역할을 하고 민우가 신랑 역할을 했다고 했지.
‘이상하네.’
그 이후로 연두가 가족놀이는 안 할 거라고 했는데.
역할놀이랑 가족놀이는 다른 건가?
이어지는 말을 들으니 바로 의문이 풀렸다.
“소녀와 환상으 숲 역할노리 해써요..”
괜히 혼자 헛다리 짚었네. 그런 거라면 전혀 신경쓸 부분이 없었다.
사실 가족놀이를 했다고 해도 딱히 문제가 되는 건 없지만.
그야, 나는 쿨한 아빠니까.
‘좋긴 하네.’
등장인물이 워낙 많은지라 척 보기에도 역할놀이를 하기 좋을 거 같았다.
궁금해진 나는 물었다.
“그랬구나. 연두는 어떤 역할이었는데?”
“연두는.. 유리요!”
“율이?”
“네.”
“연두가 율이 하겠다고 했어?”
연두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그럼?”
“친구드리.. 연두랑 유리가 달마때요…”
“친구들이?”
“네.”
눈썰미가 있는 친구들이었다.
넌지시 나는 연두를 향해 물었다.
“그럼 연두는?”
“.. 네?”
“연두가 생각하기에는 어때? 연두랑 유리 닮은 거 같아?”
조금 생각하더니 연두는 대답했다.
옅은 미소를 지으며.
“네.. 달믄 거 가타요…”
왜냐고 물으려던 나는 그 미소를 보고 그만뒀다.
답을 알 것만 같아서.
그 대신 나는 연두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빠도 그래.”
“으응..?”
“아빠가 생각하기에도 연두랑 율이는 닮은 거 같거든.”
“.. 진짜요?”
“응. 우리 연두가 조금, 아니 많이 더 예쁘긴 하지만.”
능청스레 덧붙인 한 마디에 연두가 배시시 웃음지었다.
계속해서 우리는 걸었다.
시들지 않는 이야기꽃을 피우며.
“.. 어?”
정신없이 얘기하며 걷다가 문득 멈춰서니 보이는 주위 풍경.
뭐야. 언제 여기까지 왔지?
이 곳은 다름아닌 전에 누렁이가 살던 집이 있는 길이었다.
“여기 기억나, 연두야?”
그제야 연두도 주위를 돌아보더니 대답했다.
“네, 기억나요! 여기……”
위치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네.
연두가 가리킨 곳은 누렁이 집으로 이어주는 통로였다.
들어가 볼까 했으나 옷이 더러워질 게 분명하니 그만두기로 했다.
예전 일이 떠오르는 걸까.
가만히 선 채로 연두는 우거진 풀숲을 보며 웃음지었다.
그때였다.
“아!”
무언가 떠오른 듯 외마디 소리를 내는 연두.
“왜 그래, 연두야?”
“아빠!”
“응?”
“연두랑 가치 가요..!”
어딜 가냐고 물어볼 틈도 없이 연두는 내 손을 잡아끌었다.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그렇게 얼마나 따라갔을까.
톡.
연두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에 따라 덩달아 멈춘 내 발걸음.
자연스레 입에서는 자그맣게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여긴..”
“헤헤, 연두 보고 시퍼써요..”
“누구를?”
“펴니점 사장님!”
그렇다.
연두가 멈춰선 곳은 다름아닌 편의점 앞이었다.
내가 일하던 곳.
뜻밖의 장소에 놀라긴 했지만, 정신이 든 나는 빙긋 웃으며 얘기했다.
“하하, 연두야. 사장님이 보고 싶었어?”
“네!”
“근데 아빠가 일할 때도 그랬지만 사장님이 항상 가게에 계신 게 아니라서. 그래서 이렇게 찾아와도 뵙기가 힘들어. 그러니까 다음에 연락을 드리고……”
알기 쉬운 설명이었다.
그런데 왜인지 연두는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어딘가를 가리키며 목소리를 냈다.
“저기…”
“응?”
“저기 있는데… 사장님.”
끼익!
뒤쪽에서 난데없이 들려오는 소리.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린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한 사람을 보고.
“여, 연두야!!”
진격의 사장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