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417)
417화. 불청객
얼핏 보기에는 의미를 알기 힘든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건 어제 그린 건데..”
따끈따끈한 어제 그린 그림이라는 모양.
나는 유심히 바라봤다.
공과 사람이 그려져 있는 걸 보니 축구를 하고 있는 거 같았다.
‘의아한 건.’
모두 성인으로 보인다는 점이었다.
보통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자기 모습을 그리기 마련인데.
궁금해진 나는 입을 뗐다.
“뭘 그린 거야, 선동아?”
“축구하는 거요.”
예상대로였다.
이어서 나는 사람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럼 이 사람은 누군데?”
“저예요.”
“이게 너라고?”
“네.”
“선동이 너는 이렇게 크지 않은데?”
디스가 아니었다.
그저 의문점을 얘기할 뿐이었다.
“어른이거든요.”
바로 납득이 갔다.
어른이 된 모습을 그린 거구나.
자연히 생기는 또 하나의 궁금증. 옆에서 함께 축구하고 싶은 건 누굴까.
혼자 생각할 이유는 없었다.
“이 사람은 누군데?”
“아빠예요.”
“.. 아버님?”
“네.”
못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림 속 남자는 지팡이같은 건 짚고 있지 않았으니까.
잠깐의 침묵 끝에 나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이 그림은 왜 그린 거야, 선동아?”
“…… 싶어서요.”
“응?”
“다시 아빠랑 축구하고 싶어서요.”
딱히 슬픈 목소리가 아니었다.
아무렇지 않게 담담히 선동이는 바람을 이야기했다.
나도 모르게 팔이 움직였다.
“아, 아저씨..?”
위로의 포옹같은 게 아니었다.
그냥 대견했다.
빼곡히 채워진 학습지와 연습장을 포함해서 방금 본 그림까지.
“아유, 예쁘다. 우리 선동이.”
이 순간만큼은 내 자식처럼 느껴지는 선동이였다.
그런데 그때.
선동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짜식.
아무리 그래도 헷갈릴 게 따로 있지.
피식 웃으며 입을 열려는데 다시 한번 목소리가 이어졌다.
“엄마!”
화들짝 놀란 나는 손을 뗐다.
뒤를 바라보니 어머니가 과일이 든 쟁반을 들고 서 계셨다.
조금 놀란 표정으로.
제 발 저린 나는 어머님을 향해 말했다.
“선동이가 너무 대견해서요. 공부도 엄청 열심히 하고 그림도 많이 그려놨길래……”
아니, 근데 뭘 해명하듯이 말하고 있는 건데.
딱히 이상할 것도 없잖아.
그런 내가 웃겼는지 선동이 어머니 김진아는 웃으며 말했다.
“보기 좋은데요, 뭐.”
“하하, 그런가요.”
“네. 선동이도 싫지 않은가 보네요. 아빠가 껴안으면 질색 팔색을 하는데.”
그렇단 말이지.
나는 장난스레 입을 열었다.
“그랬구나, 우리 선동이?”
“아니거든요. 피하려 했는데 엄마가 온 거거든요!”
“풉.”
“진짜라고요! 읍.”
김진아는 그런 선동이의 입에 과일을 쏙 넣어주고선 내게 말했다.
“너무 뭘 많이 사 주셔서 얘가 하루종일 그것만 붙들고 있어요.”
“그런 거 같더라고요.”
“고마워서 어떡해요.”
“아닙니다. 선동이가 이렇게 열심히 하니 제가 다 뿌듯하네요. 한 번 더 안아줄까, 선동아?”
입에 과일이 가득 든 채로 선동이는 대답했다.
“이로 어거든요!”
필요 없거든요? 흥이다, 이 녀석.
고개를 돌아보니 연두가 조금 토라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들려오는 자그마한 목소리.
“아빠.. 말 안 해요.”
순간 깜짝 놀랐다.
이제 나랑 말 안 한다는 건가 하고.
어디선가 본 사춘기 증상이 떠오르며 불안해지려는 순간.
“연두한테는 말 안 해요.. 안아준다고……”
“아.”
절로 나오는 안도의 한숨.
그래. 그럴 리가 없지.
아무리 사춘기가 온다고 해도 연두가 나와의 대화를 단절하려는 모습은 그려지지 않았다.
‘또 모르지만.’
그만큼 무서운 게 사춘기라 듣긴 했지.
설사 그렇다고 치더라도 일러도 너무 일렀다.
나는 양팔을 벌리며 말했다.
“일로 와, 연두야.”
안기는 연두를 토닥이며 말했다.
“서운했어? 아빠가 연두한테는 얘기 안 해서?”
“네에..”
“미안해. 우리 연두부터 이렇게 꼭 안아줬어야 되는데.”
다행히 연두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런 우리를 보며 웃음짓다가 김진아는 자연스레 테이블 위에 펼쳐진 페이지를 바라봤다.
그림 연습장이었다.
“어머. 이게 뭘까?”
“선동이가 그린 그림이에요. 축구하는 모습을 그렸다고 하더라고요.”
“축구…”
말끝을 늘이며 미소를 띠는 김진아.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함께 공을 차고 뛰어놀던 선동이와 남편의 모습을.
‘사건이 있었던 건가.’
선동이는 이제 일곱살이었다.
함께 축구를 할 수 있을 정도였다면 그리 오래된 기억은 아닐 터였다.
자연히 추측할 수 있었다.
선동이 아버지의 다리에 문제가 생긴 건 비교적 최근일 거라고.
‘상처였겠지.’
원래 그런 법이다.
애초에 없던 것과 있던 게 사라질 때 오는 충격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나 역시 그랬다.
엄마가 없다는 사실 자체가 싫었던 적은 많아도 그로 인해 큰 충격을 받거나 하지는 않았다.
허나 아빠를 잃었을 때는 달랐다.
‘모든 게 흔들렸으니까.’
그 정도로 커다란 충격이었다.
선동이도 그랬을 터였다.
아빠가 걷지 못하게 된 건 무척 큰 충격으로 다가왔겠지.
“.. 잘 그렸네.”
미소를 띠며 얘기하는 김진아.
나는 말없이 손을 뻗어 페이지를 넘겼다.
연두도 이 책으로 그림을 연습했기에 구조는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촤락.
몇십장을 넘기고 나니 나왔다.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또 하나의 칸이.
물론 현재 공백인 상태였다. 앞으로 선동이가 채우게 될 페이지니까.
나는 그대로 펼친 채로 말했다.
“선동아.”
“네.”
“나중에 이 페이지에 도착하면 그걸 그려봐.”
“뭘요?”
“선동이 네 꿈. 멋진 의사가 된 모습을. 의사 오선동을 그려보는 거지.”
“.. 의사 오선동?”
“응.”
흥미롭다고 생각했는지 입가에 번지는 웃음.
대답이 들려왔다.
“알겠어요.”
“그리면 보여줘야 한다?”
“네.”
나는 씩 웃으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응원할게. 선동이 네 꿈을.”
전에도 한 말이었지만 한층 더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내 품에 안긴 연두도 말했다.
“응원할께! 선동이오빠..”
“고, 고마워.”
아직 어린 나이인 만큼 언제 바뀌어도 이상할 게 없는 꿈이지만.
그래도 응원해주고 싶었다.
그 자체로 반짝반짝 빛나는 선동이의 꿈을.
***
함께 옹기종기 앉아 동화책 엔딩부를 읽고 집으로 돌아왔다.
맛있는 과일도 먹었고.
집에 돌아와서 삼촌과 얘기를 나누다가 나온 화제는 공교롭게도 또 꿈이었다.
“연두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했지?”
내가 아닌 김윤호의 물음이었다.
연두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어떤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은데?”
“어떤 피아니스트..?”
“응. 연두가 생각하는 가장 멋진 피아니스트의 모습이 뭘지 궁금해서.”
역시 엘리트라 그런가.
꿈을 묻는 게 끝이 아닌 한 발자국 더 나아간 질문이었다.
나도 궁금했다.
연두가 동경하는 피아니스트는 어떤 모습일지.
“연두는……”
고민하던 연두는 입을 뗐다.
“연두는 되고 시퍼요. 브레멘 음악대처럼 행보카게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브레멘 음악대?”
“네. 시으니랑 레나랑 가치..”
“시은이랑 레나라면, 단비음악대 말이구나.”
연두튜브 보는구나, 삼촌.
괜히 그 사실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한편 연두는 아직 끝난 게 아닌지 고개를 끄덕이며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선생님처럼 머찐 피아니스트가 되고 시퍼요…”
“선생님?”
“네.”
“그 분 말이구나. 이은경 피아니스트.”
또 바로 알아듣는 삼촌의 모습에 또 웃음이 터질 뻔했다.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연두.
이해가 갔다.
‘보여줬으니까.’
연두한테 보여준 적이 있었다.
콩쿠르에서 대상을 거머쥔 이은경의 연주 동영상을.
연주의 시작부터 끝까지 연두는 입을 헤 벌린 채로 연주를 감상했다.
‘나도 그랬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소름이 돋는 연주였으니까.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동경하게 만드는 연주.
연주가 끝난 뒤 여운이 남은 표정으로 연두는 말했다.
‘아빠..’
‘응, 연두야.’
‘피아니스트는 저기에서 피아노 치는 거에요..?’
‘저기라면 무대 위를 말하는 거야?’
‘네. 무대..’
‘그렇지. 근데 이 무대는 피아니스트 중에서도 뛰어난 피아니스트만 올라갈 수 있는 무대야. 선생님은 그중에서 1등을 하신 거고.’
‘연두도…’
떨리는 목소리로 연두는 물었다.
‘연두도.. 무대에 올라갈 수 있을까요..?’
‘글쎄.’
씩 웃으며 나는 말을 이었다.
‘아빠는 그럴 거라 생각해.’
‘헤헤..’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
연두가 막연하게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게 아닌, 진짜 피아니스트를 꿈꾸기 시작한 건.
김윤호가 나지막이 말했다.
“연두야.”
“네, 유노아저씨.”
“만약 그러면 어떻게 할 거야?”
그는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꺼냈다.
“선생님처럼 멋진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서 친구와 경쟁을 해야 한다고 하면.”
“.. 경재?”
“말이 어려웠구나. 그러니까.. 싸워야 한다면?”
경쟁이 더 살벌한 표현으로 바뀌었다.
그에 따라 연두의 표정도 심각함으로 물들었다.
“친구랑.. 싸워야 한다면요..?”
“응.”
“여, 연두 싸움 못 하는데……”
그런 상황이 아닌데 웃음이 터질 뻔했다.
가까스로 표정을 유지하는 사이 연두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연두는 싸우기 시러요.. 친구드리랑…”
김윤호는 오해가 있다는 걸 깨달았는지 말을 정정했다.
“서로 때리고 싸우는 걸 얘기하는 게 아니야, 연두야.”
“그럼요?”
“피아노로 싸우는 걸 말하는 거야.”
“.. 피아노로요?”
“응. 피아노를 들고 싸우는 게 아니라 연주로.”
가끔 삼촌의 말은 장난인지 아닌지 헷갈릴 때가 있다.
김윤호는 차분하게 설명했다.
“선생님처럼 멋진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하는 친구들은 정말 많아. 연두가 피아니스트가 되려고 하면 앞으로 많이 만나게 되겠지. 그런데 그 아이들이 전부 선생님같은 피아니스트가 될 수는 없어.”
“왜 될 수 업써요..?”
“그렇게 멋진 피아니스트가 되려면 피아노로 하는 수많은 싸움에서 이겨야 하거든. 그런데 모두가 이길 수는 없으니까.”
잔인할지 모르지만 현실이었다.
알면서도 섣불리 꺼낼 생각 못했던 이야기이기도 했다.
아직 연두는 너무 어리다는 생각에.
‘생각해 보면.’
한 번도 연두는 경쟁심리를 드러낸 적 없었다.
무언가를 잘하고 싶다고 말한 적은 있어도 어떤 친구보다 잘하고 싶다고 말하는 건 듣지 못했다.
누군가를 이기고 싶다는 건 더더욱.
‘언젠가는 알게 돼.’
연두의 꿈이 바뀌더라도 경쟁이 없는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학교부터 그랬다.
점수를 매기고 순위를 매기는 방식.
거부할 수 없을뿐더러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런 경쟁에서 승리해야 했다.
알려주지 않아도 언젠가는 알게 되는 현실이었다.
‘그래.’
어쩌면 지금일지도 몰랐다.
나중에 연두가 상처받을 게 겁난다고 현실을 얘기해주지 않는 건 오히려 독이 될지도 모르니.
삼촌도 그런 생각으로 꺼낸 얘기가 아닐까.
고개를 돌린 연두는 살짝 물기가 찬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 아빠.”
“응.”
“피아니스트가 되려면.. 꼭 이겨야 해요..?”
마음이 아팠다.
허나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 맞아.”
***
“미안하다. 내가 괜한 말을 꺼냈나 봐.”
내 대답을 들은 연두는 꽤나 힘들어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친구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충격으로 다가온 모양이었다.
한참 나한테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밤이 돼서야 연두는 잠에 들었다.
‘말해줬지.’
대답을 정정하지는 않았다.
대신 말해줬다.
경쟁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쁜 게 아니라고. 그걸 통해 서로의 발전을 도모할 수도 있다고.
흔한 이야기였지만 그런 만큼 정론이기도 했다.
‘이해는 한 거 같지만.’
이해했다고 경쟁에 대한 거부감을 한 번에 떨쳐낼 수는 없었다.
연두는 그런 아이였으니까.
삼촌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니에요. 언젠가는 해 줘야 할 얘기였는데 삼촌 덕에 했는데요.”
“그래.”
삼촌이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그럼 우리도 슬슬 자야겠다.”
“그래야겠네요.”
“주원이 넌 내일 돌아갈 거지?”
“네. 삼촌은요?”
“나는 좀 더 있을 생각이야. 알다시피 내가 휴가가 좀 길잖아.”
“하하, 알죠.”
“그럼 잘 자라.”
“삼촌도요.”
잠자리에 누웠다.
조금은 싱숭생숭한 마음.
잠든 연두를 꼭 껴안고 눈을 감았다.
***
다음 날.
집에 돌아가는 날이었다.
그렇다고 눈을 뜨자마자 돌아가는 건 아니었다.
‘늦은 오후.’
길이 막히는 시간을 피해 출발할 생각이었다.
다행히 어제 잠들기 전과 달리, 연두는 밝은 분위기였다.
점심을 먹은 뒤 나를 보며 말한다.
“아빠!”
“응, 연두야.”
“밖에서 놀아도 대요..?”
“당연하지. 가고 싶은 곳 있어?”
연두는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집 앞에 꽃 보고 시퍼서.. 사진도 찍고 시퍼요..!”
“하하, 집 앞에?”
“네.”
연두의 목에는 내가 선물한 연두색 사진기가 걸려있었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연두 먼저 나가있을래?”
“연두 먼저요..?”
“응. 아빠도 설거지만 후딱 하고 바로 나갈게. 대신 집 앞에만 있어야 된다?”
“.. 네!”
그렇게 밖으로 뛰어나가는 연두.
나는 미소를 띠며 고무장갑을 착용했다.
옆에서 삼촌이 말했다.
“내가 해도 되는데.”
“아뇨. 이런 건 어린 제가 해야죠.”
“.. 늙어서 미안.”
“아니, 그게 아니라……”
뒤이어 마주 본 나와 삼촌은 동시에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는 이런 장난도 허물없이 치는 삼촌이었다.
바로 설거지를 시작했다.
쏴아아.
씻겨내려가는 세제.
거꾸로 뒤집어놓은 접시에는 윤기가 흘렀다.
내가 봐도 완벽한 설거지였다.
툭.
‘좋아.’
마지막으로 남은 컵을 뒤집어서 올려놨다.
고기를 먹은 것도 아니고 양도 많지 않아 눈 깜빡할 사이 끝난 설거지였다.
고무장갑을 벗고 고개를 돌렸다.
‘가 볼까.’
연두에게 갈 차례였다.
예쁜 사진은 많이 찍었으려나.
신발장으로 걸어간 나는 대충 슬리퍼에 발을 넣고 문을 열었다.
스르륵.
눈에 들어오는 마당.
“.. 어?
연두가 없어서 뱉은 말이 아니었다.
딋보습이 보였다. 마당에 주저앉아 있는 연두의 뒷모습이.
멀리서 보는데도 떨림이 느껴졌다.
왠지 모르게 드는 기분 나쁜 감각과 함께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스윽.
낯익은 얼굴.
보는 순간 나는 앞으로 뛰쳐나갔다.
한쪽 슬리퍼가 벗겨지는 것도 모르고.
친척 중 한 명이 연두의 앞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