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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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화. 연두의 고민
넘어간 첫 페이지.
그림을 보는 이희영의 눈이 가늘게 길어졌다.
표지에서도 느꼈지만 첫 페이지부터 무척 퀄리티 높은 그림이었다.
‘대사는 거의 없는데.’
초반부라 그런지 대사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거의 모든 장면을 지문과 대사로 쉽게 표현하는 여타 동화책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전혀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청각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겪게 되는 여러 상황들이 과하지 않고 담백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아이들뿐 아니라 누구나 몰입할 수 있도록.
‘.. 이유가 있구나.’
문득 알아챈 사실.
대사가 거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초반부의 장면은 대부분 소녀의 시점에서 표현되어 있었다.
‘들리지 않아.’
다투는 부모의 목소리도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느낄 수 있을 뿐.
그런 소녀의 시점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연출한 거 같았다.
대사를 거의 배제한 초반부는.
촤락.
무의식적으로 페이지를 넘기려는데 들려오는 목소리.
“어, 엄마..”
“응?”
“나 아직 못 읽었는데……”
“.. 아.”
당황한 이희영은 넘긴 페이지를 다시 앞으로 넘겼다.
잠시 본분을 잊었다.
혼자 읽고 있는 게 아니라 딸을 읽어주려고 펼친 동화책인데.
“미안. 천천히 읽자.”
“으, 응.”
다시 속도에 맞춰 읽기 시작한 동화책.
초반부를 넘기고 나서의 이희영의 감상은 하나였다.
생각보다 괜찮은 동화책이구나.
‘기대 안 했는데.’
솔직히 큰 기대를 갖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녀의 눈에 이주원은 작화가보다는 유투버에 가까웠다.
그림 그리는 영상을 봤다고는 해도 단 하나의 영상이었다.
그마저도 그리는 모습이 나온 게 아닌 완성본을 연두에게 건네는 영상이고.
아무래도 그것보다는 거대 구독자를 보유한 유투버로서의 임팩트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림은 그저 취미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동화책도 정식 출판이 아닌 취미로 만든 걸 선물한 게 아닐까 했고.
몇 페이지를 넘긴 현시점, 그 생각만큼은 확실히 정정할 필요가 있어보였다.
소녀가 환상의 숲 속에 들어가고 나서부터 시작되는 본격적인 스토리.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친구는 나비였다.
“지우야.”
혼자 읽어주는 건 그리 바람직한 방식이 아니다.
동화책 하나를 읽더라도 아이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았다.
이희영은 역할을 지정해줬다.
“지우가 소녀의 대사를 읽어줄래? 엄마는 나비의 말을 읽어줄 테니까.”
“으, 응!”
“그래.”
그렇게 둘은 동화 속으로 들어가 대사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각자 소녀와 나비가 되어서.
잔뜩 몰입한 만큼 감정이 실린 대사였다.
“미워! 함부로 생각을 읽는 것도 싫어! 너도 내 목소리가 밉다고 생각하잖아!”
“전혀 그렇지 않아. 율이의 목소리는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워.”
“거짓말.”
“거짓말이 아니야. 나는 목소리의 색을 들을 수 있거든.”
“목소리의 색?”
“응.”
“색깔은 들을 수 없어. 보는 거니까.”
“아냐. 이 숲 안에서는 들을 수 있어. 색깔을.”
“.. 정말?”
“응. 못 믿겠으면 한 번 목소리를 내 볼래? 율이의 목소리를.”
어떤 상황에서도 흥분하지 않는 나비는 담백한 이희영의 어조와 잘 어울렸다.
나비의 말에 지금껏 말을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 소녀.
조심스레 목소리를 낸다.
“.. 나비야.”
이 순간만큼은 말을 더듬지 않았다.
지우는 덧붙였다.
“나비야. 나비야. 나비야.”
처음으로 환상의 숲의 특수성을 체험하는 장면.
이희영은 깨달았다.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내는 딸을 보며 웃음짓고 있었다는 걸.
휙. 휙.
그녀는 고개를 휙휙 저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동화적이면서도 감각적인 대사와 그림에 놀라긴 했지만 그건 별개의 문제였다.
‘왜 웃음이 나온 거지.’
단순히 딸인 지우가 귀여워서 그랬다기에는 다소 뜬금없는 타이밍이었다.
그때 들려오는 말.
“.. 엄마?”
“응?”
“다음 대사..”
“아, 그래.”
결국 의문을 풀지 못하고 넘어가는 이희영이었다.
***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야기.
숲을 나가기 위해 나비와 함께 여정을 떠난 소녀는 많은 동물 친구들을 마주치기 시작한다.
피아노를 치는 고양이 미로, 절름발이 원숭이 주드 등.
촤락. 촤락.
페이지가 넘어갔다.
완전히 이야기에 빠져든 지우와 달리 이희영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불편함을 느꼈다.
동화책 내용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우정, 의리, 사랑, 보은.’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믿지 않는 것들이었으니까.
그와 별개로 동화책에는 필수불가결하게 들어가는 것들이기도 했다.
그런 요소들이 담긴 많은 책들을 읽었다.
허나 한 번도 없었다.
동화책을 읽으면서 이런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는 건.
확실한 건 하나였다.
이 동화책에서 유발되는 감정이라는 거.
정확히는 소녀의 대사를 뱉는 딸의 목소리가 그 감정을 촉발하고 있었다.
“버리고 싶지 않았어! 주드의 가족들은, 친구들은.. 주드랑 계속 가치 살고 싶었어!”
“나 때문에 엄청 힘드러도.. 우리 엄마 아빠는 나를 버리고 싶어하지 않아.”
“.. 사랑하니까.”
“주드도 그럴 거야. 분명히.”
힘이 들었다.
그에 상응하는 주드의 대사를 입 밖에 내는 게.
자연히 이희영은 알 수 있었다.
흘러나오는 실소와 함께 머릿속에 몇 개의 목소리들이 맴돌았다.
‘.. 누가 잘해 주랬니? 우리는 한 번도 너한테 그래 달라고 한 적 없어. 니가 멋대로……’
‘하아.. 정말 지긋지긋하네.’
‘미안해. 이제 더는 당신을……’
전부 반대였다.
소녀가 하는 말들과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목소리들은.
그게 불편함의 이유였다.
역시 동화책이네.
그 한 마디와 함께 웃어넘기던 여타 동화책과 달리 쉽게 넘어가지지 않았다.
괴로웠다. 반감이라고 해야 할까.
동화책 주제에, 현실이 어떤지도 모르면서 이렇게 거짓말을 하다니.
동시에 싫었다.
불쾌함을 느끼면서도 페이지를 넘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게.
이미 전부 버린지 오래인데 말이다.
역설적이게도 멈추고 싶었다.
다음 페이지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게 싫어서 여기서 멈추고 싶었다.
적어도 지금만큼은.
그때 들려오는 목소리.
“어, 엄마..?”
고개를 돌리니 지우가 바라보고 있었다.
걱정 어린 시선으로.
왜 그러냐고 묻기도 전에 목소리가 이어졌다.
“.. 괜찮아, 엄마?”
딸이 보기에도 확실히 이상함을 느낀 모양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평소에 감정을 그리 드러내지 않는 그녀였으니까.
이희영은 말했다.
“지우야.”
“으, 응..”
“미안한데 엄마가 컨디션이 안 좋아서. 나머지는 나중에 보자.”
말을 끝맺고 이희영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몰랐다.
동화 속 이야기가 그녀의 마음속에 일으킨 물결의 파동이 생각보다 강하다는 걸.
다만, 아직은 이야기의 끝을 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그녀였다.
***
[가을맞이 촬영!(feat. 연시레)]연두튜브의 최근 영상.
가을맞이라기에는 조금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가장 따끈따끈한 영상이었다.
이든의 가을 신상 출시에 따라 진행한 연시레의 촬영.
‘4계절의 옷 전부 매력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옷이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는 건 봄과 가을이었다.
산뜻한 봄 의상, 그리고 담백한 가을 의상.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으면서 포인트를 주기에는 최적이라 생각하니까.
‘이번에도 그랬지.’
명불허전 이든표 트렌치코트와 더불어 청자켓 등의 여러 옷으로 촬영을 진행했다.
배경은 계절에 걸맞은 낙엽 속이었다.
어땠는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촬영하며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진 적이 몇 번인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수많은 레전드 코디가 탄생했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지.’
모델이 연시레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떤 옷이든 찰떡같이 소화해내서 촬영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레나도 완전히 적응하기도 했고.
‘어디 볼까.’
그 촬영 장면을 올린 영상이었다.
사실상 ‘feat’에 연시레가 들어간 것부터 보장된 콘텐츠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이든 촬영이다? 말 다 했지.
-제목만으로 가슴이 웅장해진다..
┖뭉치면 지구 뿌시다 못해 박살내는 조합
┖천년이 지나면 나올까. 연시레 넘어서는 케미가 ㅋㅋ
┖그걸 말이라고 하냐. 지구 멸망해도 안 나오지.
┖ㄴㄴ 굳이 미래까지 안 가도 비빌 수 있는 케미 있음.
┖뭔데. 되도 않는 거면 연두부 실격이다
┖초연케미
┖인정합니다
┖앜ㅋㅋㅋㅋㅋㅋㅋ 바로 인정 뭔데.
┖초연은 킹정이지. 초연 연시레 쌍두마차
-연두 트렌치 패션은 진짜.. 정신나갈 거 같아!!!
┖가을은 가을이 아니다.. 연두가 가을이다…
┖겨울 되면 겨울이라 할 거자너 ㅋㅋㅋㅋㅋ
┖시은이 진짜 가을옷 소화력 뭔데.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해진다.
┖레나 분위기 미쳤다…
┖청자켓 단체샷에서 눈 질끈 감음.
┖??? 레전드인데 눈을 왜 감음?
┖더 보고 있으면 녹아서 흘러내릴 거 같아서.
역시 이번에도 연두부의 주접력은 명불허전이었다.
예상대로 반응도 좋았고.
다만, 지나칠 수 없는 댓글도 눈에 들어왔다.
-알겠어요, 초록님. 900만은 포기할게요 ㅎㅎ
┖근데 만약 천만 이벤트가 없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이, 참.. 아직도 초록님을 그렇게 모르세요? 초록님이 우리 연두부를 얼마나 끔찍이 생각하시는지 다 알면서!
┖영~차! 영~차!
┖뭐 하세요?
┖와서 같이 당겨요! 이 기세면 천만도 금방이라구요! 분명히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이벤트를 가져오시겠지? ㅎㅎ
┖이 연두부들… 악질이다
부담 안 가지려 했는데.
없던 부담감도 스멀스멀 올라오게 만드는 댓글이었다.
연두부들이 생각지도 못할 이벤트라니.
‘천만..’
기다려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운 숫자였다.
***
레나의 집 방음실.
피아노 의자에 앉은 이은경이 레나를 향해 말했다.
“레나.”
“응, 엄마.”
“잠깐 나가 있을래? 아빠랑 같이.”
별다른 저항 없이 레나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방음실을 나섰다.
손을 흔들며.
그 대상은 엄마가 아니었다.
“으응, 레나야..!”
연두도 손을 흔들며 인사를 받았다.
끼익.
방음실 문이 닫히고 이은경은 말했다.
“잘 지냈어, 연두야?”
“네에.”
지금은 다름아닌 피아노 교습 시간이었다.
레나를 내보낸 이유는 간단했다.
피아노를 대할 때만큼은 이은경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는 걸 좋아했다.
가르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자신과 가르칠 아이인 연두, 그리고 피아노 외에 다른 건 필요하지 않았다.
설사 그게 딸이라 할지라도.
그런 엄마의 성향을 아는 레나였기에 서운해하지 않고 방음실을 나간 거다.
연두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주는 엄마는 상냥하다는 사실을 안 뒤로는 오히려 그 시간을 좋아하게 된 레나였으니까.
‘끝나고 놀면 되지!’
그런 단순한 생각이었다.
사실 레나에게 있어서는 일석이조인 셈이었다.
연두의 피아노 실력이 늘면 늘수록 오래전부터 꿈꾸던 환상의 파트너에 한 발 더 가까워지고.
집에 놀러오면 함께 놀 수도 있으니까.
“아빠!”
물론 그러려면 바이올린 연습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됐다.
레나는 바이올린을 들고서 아빠에게 향했다.
그렇게 레나가 나간 뒤에 둘만 남은 방음실.
“그럼 바로 시작해 볼까, 연두야?”
“.. 네에.”
이은경은 조금 이상함을 느꼈다.
평소에 시작할 때의 세상 활발한 모습과 달리 느껴지는 소극적인 모습에.
굳이 먼저 이유를 물어보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알게 될 테니.’
보면 자연히 알게 될 일이었다.
이은경이 옆으로 자리를 옮기고 그 자리에 연두가 앉았다.
건반 위에 올라가는 두 손가락.
“연두야.”
“네, 선생님..”
“저번 수업 때 선생님이 알려준 손가락 연습 방법 기억하니?”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연두는 대답했다.
“기억해여..”
“그래. 그럼 한 번 해 볼래?”
“.. 네.”
따단. 딴. 딴.
방음실 내부에 피아노 소리가 울려퍼졌다.
“…”
말없이 연두의 손을 응시하며 이은경은 끝까지 소리를 들었다.
이윽고 소리가 멎은 피아노.
바로 그녀는 연두를 향해 말했다.
“이번에는 그걸 쳐 보자.”
“.. 어떤 거요?”
“선생님이랑 마지막으로 연습했던 곡. 기억하고 있니?”
이번에도 연두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바로 쳐 보자.”
스윽.
악보를 보며 연두는 연주를 시작했다.
딴. 따란. 따라라란.
허나 오래가지 못했다.
초반부를 채 끝맺기도 전에 이은경이 짤막하게 한 마디를 뱉었다.
“.. 그만.”
흠칫 놀라서 연주를 멈추는 연두.
그럴 만도 했다.
지금껏 한 번도 선생님이 도중에 연주를 끊은 적은 없었으니까.
토독.
건반 위에 올려놓은 연두의 손이 작게 진동했다.
얼마간 흐르는 침묵.
그 침묵을 깬 건 연두를 향한 이은경의 말이었다.
“연두야.”
“.. 네.”
“무슨 일이 있었니?”
앞서 물어보지 않은 이유는 하나였다.
알 수 있어서였다.
피아노를 쥐는 손을 보면, 소리를 들으면, 표정을 보면.
‘그런 악기니까.’
같은 피아노라고 해서 같은 소리를 내는 게 아니다.
피아노는 감정을 드러내는 악기였다.
어떤 기분에서 연주하는지에 따라 소리도 변하곤 했다.
괜히 무대에 서기 전에 감정을 컨트롤하는 게 중요한 과제로 꼽히는 게 아니다.
‘느껴졌어.’
연두의 연주에서 느껴졌다.
지금까지의 연주에서는 한 번도 느껴지지 않던 무언가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가르쳐준 연습을 그대로 수행했고, 음도 틀리지 않고 연주를 했다.
하지만 온전히 몰입하지 못했다.
달리 말하면 즐기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
피아노에 있어서 손가락의 길이만큼이나 크나큰 재능 중 하나였다.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느냐 하는 건.
이은경은 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
허나 어느 순간 찾아왔다.
피아노를 치는데 그리 즐겁지 않다는 기분을 느꼈던 순간이.
연두는 어릴 적의 자신과 비슷한 점이 많은 아이였다.
처음부터 느낀 사실이었다. 피아노 연주를 순수하게 즐긴다는 걸.
어쩌면 그래서 더 정이 가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궁금했다.
연두의 마음속에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무엇일지.
“선생님..”
마침내 연두가 자그맣게 입을 열었다.
이어지는 말.
“연두는 피아노가 조아요. 하늘만큼 땅만큼..”
알고 있었다.
다른 건 속일 수 있어도 연주하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진심은 속일 수 없으니.
고개를 끄덕이는 이은경.
이윽고 그녀의 귀에 연두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피아노로 친구랑 싸우고 싶지는 아나요…”
“…?”
세상 진지한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