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427)
427화. 소환숲 굿즈
“아저씨는.. 아빠같아.”
“…”
좋아한다고 쿨하게 인정한 앞선 대답에도 당황했지만 이번에는 더더욱 그랬다.
아빠같다는 말.
여러모로 심장이 요동치게 만드는 한마디였다.
그리고 처음이었다.
시은이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아빠라는 단어를 입 밖에 뱉는 건.
“시은이 너..”
입은 뗐지만 뭐라 말이 나가지 않았다.
떠오르지 않는다.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어떤 말로 시작하는 게 좋을지.
한편 당황한 건 신세연뿐만이 아니었다.
“아..”
막상 그 말을 한 시은이도 무척이나 당황한 상태였다.
왜냐고?
엄마를 당황하게 하려는 의도로 뱉은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아빠같다는 말이.
사실 그동안 시은이가 아빠 얘기를 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우선 할 얘기가 없었다.
아무리 기억하려 해 봐도 얼굴조차 떠오르지 않는데, 기억에 없는 걸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더군다나 아빠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물을 필요도 없었다.
가끔 시은이는 엄마를 따라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뵈러 가곤 했다.
그러다 보면 한 번씩 들려왔다.
아빠에 대한 얘기가.
언제나 그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꺼내는 건 할머니였다.
‘.. 그만해.’
이야기가 길어지려 하면 항상 엄마가 그렇게 대화를 끝맺었고.
허나 그걸로 충분했다.
시은이가 기억에도 없는 아빠라는 사람을 정의하는 데에는.
아빠는 엄마한테 상처를 준 사람이었다.
자연히 알게 됐다.
엄마한테 아빠에 관한 얘기는 그리 달가운 주제가 아니라는 것도.
그래서 얘기하지 않았다.
기억에도 없는 아빠 얘기를 굳이 꺼내서 엄마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아빠가 보고 싶지도 않았다.
단순한 논리였다.
엄마에게 상처를 주는 건 싫고, 아빠는 엄마한테 상처를 준 사람이다.
따라서 시은이는 아빠가 싫었다.
“.. 미안.”
자연스레 사과의 말이 나갔다.
엄마가 상처를 받지는 않았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천천히 벌어지는 신세연의 입.
“시은아.”
차분한 목소리였다.
“응, 엄마.”
“물어봐도 될까? 시은이가 말하는 아빠같다는 뜻이 뭔지.”
신세연 역시 알고 있었다.
시은이에게 제대로 된 아빠에 대한 기억이 없을 거라는 건.
그렇다면 뭘까.
시은이는 주원씨의 어떤 모습을 보고 아빠같다는 느낌을 받은 걸까.
그게 궁금했다.
“아빠같다?”
“응.”
엄마의 물음에 시은이는 생각에 잠겼다.
처음에 연두를 만났을 때.
낮잠시간에 몰래 수다를 떨며 한 얘기가 있었다.
시은이는 신나서 엄마를 자랑했고, 연두는 신나서 아빠를 자랑했다.
‘아빠는……’
연두에게 들은 아빠의 모습은 무척 새로웠다.
그 후에 알게 된 아저씨.
아저씨를 만날 때마다 시은이는 연두가 자랑하던 모습들을 하나씩 확인할 수 있었다.
따뜻한 웃음, 말투, 손길, 애틋한 눈빛까지.
그건 시은이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아빠’의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으니까.
한 번이 아니었다.
집에 와서 가장 좋아하는 앵무새를 그려줬을 때도, 함께 동물원에 갔을 때도, 눈이 잔뜩 내려서 눈싸움을 할 때도.
항상 아저씨는 연두가 말한 모습 그대로였다.
아빠.
시은이 안에서 그 단어는 점점 바뀌기 시작했다.
함께하던 귀갓길.
처음에는 연두가 없어져서 느끼는 허전함이라 생각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귀갓길에는 분명히 존재했다.
연두 옆에서 미소를 띠며 함께 걸어가는 아저씨의 모습이.
낮잠 시간.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또 떠올랐다.
학부모 참관 수업 때 엄마가 늦었던 날, 뒤에서 환하게 웃으며 응원해주던 아저씨의 표정이.
그 표정을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아빠같았어.”
신기한 일이었다.
아빠가 어떤 존재인지도 잘 몰랐는데 말이다.
얘기를 끝까지 들은 신세연은 말없이 시은이를 꼭 안아줬다.
“그랬구나.”
많은 감정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
[연두의 소녀와 환상의 숲 읽기!(feat. 뒷북)]뒷북의 의미는 간단했다.
사실 이번 영상은 업로드 여부가 불투명했던 촬영분이었다.
영상으로 남겨두긴 했으나, 유투브 업로드를 목적으로 촬영한 건 아니었으니까.
만약 내가 작화가라는 사실이 끝까지 밝혀지지 않았다면 이 영상도 업로드되지 않았을 거다.
허나 전부 공개된 지금 시점.
올리지 않을 이유도 없을뿐더러 그럴 수도 없었다.
동화책을 읽는 연두의 모습을 보여달라는 연두부의 요청이 엄청나게 많았으니까.
‘찍어두길 잘했어.’
벌써 적어도 수십번은 소환숲을 정독한 연두였다.
읽을 때마다 재밌게 보긴 하지만 아무래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전혀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보는 것과는.
‘생동감이 다르지.’
괜히 리액션 영상을 생방송을 틀어놓고 남기는 게 아니었다.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바로 프로 유투버의 감이라는 거지.
나중에 쓸 일이 있든 없든간에 찍어둬서 나쁠 건 없다는 게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내린 결론이었다.
‘어디 보자.’
많은 연두부가 원했던 영상인 만큼 분명히 좋은 반응이겠지.
스트리밍으로 치면 ‘극락’이 도배될 때의 채팅창과 비슷한 분위기가 아닐까.
그런 기대감 속에 떠오른 댓글창.
“…”
예상이 틀린 건 아니었다.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을 뿐이지.
-초록!! 믿고 있었다고!!!
┖후훗. 저는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귀중한 장면을 안 찍어두셨을 초록님이 아니죠.
┖사스가 초록님.. 괜히 전직 스나이퍼가 아니다..
┖앗.. 아앗.. 근데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임?
┖급소를 노리는 스나이퍼처럼 연두부가 필요한 부분을 기가 막히게 꿰뚫잖아요 ㅋㅋㅋ
┖ㅋㅋㅋㅋㅋ 너무 억지 아니냐고.
┖초록이형.. 형이 만든 고무줄총이라면 기쁘게 맞을 수 있어…
┖ㅁㅊ ㅋㅋㅋㅋ 총은 왜 맞는데.
도망칠 수 없었다.
밝혀진 어두운(?) 과거는 계속해서 내 뒤를 따라다녔다.
전에도 흑역사는 존재했다.
노래방에서 포로로 주제곡을 열창했을 때, 크리에이터 파티에 참석해 나 자신을 내려놓고 막춤을 선보였을 때.
‘반응은 있었지.’
허나 한 순간이었다.
지금도 연두부 사이에서 한 번씩 회자되긴 하지만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아니고.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파급력이 컸던 만큼 계속해서 댓글창에 모습을 드러냈다.
스나이퍼가 나왔으니 그것도 있겠지.
역시나.
-이게 올라온다고? 미켈란젤로급 큰그림 오졌다.
┖ㅋㅋㅋㅋㅋㅋㅋ
┖그만해! 내가 다 아프다고!
┖빼액! 우리 초록님 그만 괴롭히세욧!
┖귀여운 걸 어떡해 ㅠㅠ 생각할 때마다 진짜 웃음나와 ㅋㅋㅋ
┖초록님, 저희의 댓글이 진심으로 고통스럽다면 다음 영상에서 당근을 흔들어주세요.
잠깐이지만 고민했다.
다음은 당근이 들어가는 요리를 하는 영상을 촬영해볼까 하고.
그러나 그만뒀다.
‘아니니까.’
과거 언급에 진심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볼 때마다 담요킥이 하고 싶어질 뿐이지.
조금 쑥스럽긴 해도 내 과거 아닌가. 내가 품고 가야 할 문제였다.
그래. 당당해지자.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잖아.
그렇게 다짐하며 다시 댓글창을 바라봤지만,
퍽! 퍽!
역시 발이 움직이는 건 내 의지로 어쩔 수 없었다.
이름하여 공기킥이었다.
시은이가 떠오르게 만드는 헛발질이었으니까.
간신히 위기를 넘긴 뒤에야 영상에 대한 반응이 눈에 들어왔다.
-진짜 이건 귀하다..
┖호랑이와 곶감, 브레멘 음악대 다 레전드였는데 초록님이 그린 동화책이라니.. 하윽…
┖안 그래도 예쁜데 이야기까지 예뻐버리면 우리 연두부 심장은 어쩌라고 ㅠㅠ
┖집중한 표정 너무 귀여워…
┖소녀 대사 연두가 읽으니까 진짜 찰떡이네 ㅋㅋ 그냥 연두가 동화 속에 들어간 거 같다.
그나마 마음이 안정이 된다.
한편 연두튜브의 구독자 수는 또 수십만이 늘어난 상태였다.
동화책의 흥행에 더해 내 과거사가 밝혀진 영향으로 볼 수 있었다.
‘준비해야겠네.’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슬슬 준비할 필요가 있을 듯했다.
대망의 천만 구독자 이벤트를.
***
소환숲이 흥행하며 주목을 받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함께 작화한 우영이.
그리고 작가인 조은서도 함께 주목을 받았다.
[초록.. 그의 충격적인 어린 시절]나를 충격받게 한 제목.
이렇듯 유투브에는 조회수를 늘리려 어그로성 제목의 영상이 많이 올라왔다.
조은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요즘 가장 핫한 크리에이터 초록! 그가 선택한 동화작가 조은서에 대해 알아보자]실소가 흘러나왔다.
굳이 나를 언급할 필요가 있었나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선택했다는 표현 자체가 그리 공감이 가지 않았다.
‘꼭 그 단어를 쓴다고 한다면.’
일방적이 아닌 서로 선택했다는 게 맞겠지.
나는 그녀의 원고가 마음에 들었고, 그녀는 내 그림이 마음에 들어 이루어진 계약이니 말이다.
따라서 조금은 불만이 있긴 하지만 괜찮았다.
댓글 반응은 하나같이 좋았으니까.
-이분은 진짜 찐임.
┖동화인 거랑 별개로 스토리텔링이 미쳤음. 그리고 자기만의 감성이 확실히 있는 느낌.
┖근데 그 감성이 대중적으로 완전히 먹히는 감성.
┖전작들 찾아본 입장에서 진짜 아쉽다 ㅠㅠ 스토리는 좋았는데 개뼉다구같은 작화가들만 만나서.
┖ㅋㅋㅋㅋㅋ 개뼉다구 어감 웃기네.
┖그래서 초록님이 더 대단함. 전작들 다 찾아봤을 텐데 그래도 계약했다는 건 안목이 미쳤다는 거지.
┖ㅇㅈ
작가로서 그녀가 인정받고 있는 게 기뻤다.
며칠 전에는 연락도 왔지.
언론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는 소식이 담긴 연락이었다.
‘엄청 좋아했는데.’
인터뷰를 하는 건 처음이라며 애처럼 즐거워하던 목소리가 아직 생생히 남아있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쯤이면 올라왔을 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포털사이트에 그녀의 이름을 검색했다.
[조은서]역시나.
그녀가 한 언론사와 인터뷰한 내용이 떠올라 있었다.
꽤나 길었지만 나는 끝까지 읽어내려갔다.
-소녀와 환상의 숲이 전체 장르에서 1위를 차지했는데 기분이 어떠세요?
조은서답게 생기 넘치는 답변이 이어졌다.
영상이 아니라 조금 아쉽네.
[너무.. 표현이 안 될 정도로 너무 좋아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거든요. 제 작품이 동화도 아니고 전체에서 1위를 하는 날이 올 거라고는요. 솔직히 지금도 꿈만 같아서……]아니, 정정한다.
글로서도 행복한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서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그와 별개로 인터뷰 내용은 대체로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소환숲에 관한 얘기가 주를 이루는데, 그에 관해서는 조은서와 누구보다 많이 대화를 나눴으니까.
‘재밌네.’
꼭 내가 인터뷰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재미있었다.
사실 엄청나게 많았다.
지금 내게 들어오고 있는 인터뷰 제안도.
‘참고해야겠어.’
혹시 나중에라도 인터뷰에 응하게 된다면 이 내용을 조금은 참고해도 좋을 거 같았다.
그런 생각으로 내리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질문이었다.
질문을 본 내 입이 벌어졌다.
-초록님과 함께한 작품이라 더더욱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함께 작업도 하셔서 잘 아실 거 같은데, 초록님을 한 단어로 표현해 주실 수 있나요?
한 단어라.
당사자인 나한테도 어려운 질문이다.
과연 조은서는 뭐라고 답했을까.
해사한 미소를 짓는 그녀의 사진과 함께 대답이 이어져 있었다.
[깜깜하던 제 인생을 밝혀준 은인이에요, 초록님은.]세상 낯간지러운 대답이었다.
***
괜히 멋쩍어진 채로 인터뷰 창을 닫자마자 걸려온 전화.
공교롭게도 조은서였다.
인사를 나눈 뒤, 자연히 인터뷰 얘기가 나왔다.
“하하, 마침 보고 있었어요.”
“아, 정말요?”
“정확히는 지금 막 다 본 거긴 한데…”
괜히 어색하게 말끝을 늘인 걸까.
살짝 침묵이 맴돈다.
정적 속에서 먼저 입을 뗀 건 조은서 쪽이었다.
“.. 제 인터뷰가 좀 오글거렸죠?”
“아뇨?”
“강하게 부정하시는 걸 보니까 맞네요…”
또다시 말문이 막혔다.
그런 내 귀에 살짝 떨리는 목소리의 한 마디가 이어졌다.
“그래도 진심이긴 했어요.”
“네?”
“인터뷰요. 그리고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도…”
“아.”
“사, 사실 그게 글로만 나와 있어서 그래요! 영상으로 봤으면 막 그렇게 오글거리는 느낌은 아닌데, 아무래도 은인이라는 단어가……”
“풋.”
뒤늦게 해명하려는 모습에 그만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요?”
“너무 대답을 잘 하길래 나중에 인터뷰할 일이 생기면 참고하려고 했어요.”
없는 말이 아니었다.
진짜 인터뷰를 쭉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인터뷰라고.
꼭 나를 좋게 말해줘서 그런 게 아니라, 긍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진다는 점에서 그랬다.
“그래서 무슨 일이에요? 또 좋은 소식이 있나요?”
“아!”
조은서는 쿡쿡 웃으며 되물었다.
“좋은 소식인지는 어떻게 아세요?”
“나쁜 소식이 있을 거 같지는 않으니까요.”
동화책도 성공적으로 흥행한 마당에 좋은 소식만 주고받아도 넘치는 상황이었다.
나쁜 소식이 끼어들 틈이 없다고 해야 하나.
“헉. 그러네요.”
바로 수긍하며 그녀는 말했다.
“사실 오늘 연락드린 이유는 초록님이랑 의논할 만한 일이 생겨서인데요.”
“의논이요?”
“네. 오늘 회사로 제안이 하나 들어왔거든요.”
“제안이라면…”
내 말에 그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소환숲 굿즈를 제작하고 싶다는 제안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