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428)
428화. 비밀 작전
“소환숲 굿즈를 제작하고 싶다는 제안이요.”
굿즈 제작.
잘 아는 분야는 아니지만 여기저기서 들은 정보가 있었다.
보통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등의 작품이 흥행할 때 원작의 캐릭터를 활용한 굿즈가 제작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초통령인 포로로만 생각해도 그렇고.’
특히나 외국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랬다.
굿즈 판매로 인한 수익이 원작의 수익을 뛰어넘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도 빈번히 발생한다고 들었으니까.
그 정도까지야 아니겠지만 한국에서도 충분히 수익성 있는 사업이었다.
소환숲은 흥행을 기록했다.
전체 장르에서 1위를 차지한 것만 봐도 그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따라서 충분히 가능한 제안이었다.
현재 높은 주가를 달리고 있을뿐더러, 소환숲에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많으니까.
얼핏 생각해도 굿즈로 제작하기에 적합한 요소들이 많았다.
생각이 정리된 나는 대답했다.
“괜찮은데요? 어떤 회사인지 확실히 알아볼 필요는 있겠지만요.”
어떤 계약을 하든 가장 중요한 건 회사에 대한 검증이었다.
들려오는 조은서의 대답.
“그쵸. 근데 사실……”
“네.”
“이건 저랑 저희 출판사 측이 아니라 초록님한테 온 제안이거든요.”
“.. 저한테요?”
다소 영문을 알기 힘든 얘기였다.
굿즈 제작이라면 나와 의논할 문제인 건 맞지만 그 대상을 굳이 나로 한정짓는다는 게.
“확인을 안 하시는 거 같아서 저희 쪽에 보냈다고 하더라구요.”
“뭐를요?”
“유투브 쪽지요.”
“아.”
그럴 만도 했다.
나중에 몰아서 읽긴 하지만 쪽지를 바로바로 확인하지는 않으니까.
일과 관련된 것뿐 아니라 수많은 쪽지가 오는 터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지금처럼 막 어떤 일을 마쳤을 때는 더더욱 그렇고.
‘하나 만들어야겠어.’
지금까지는 유투브 쪽지를 그 창구로 활용했지만 이제는 필요성을 느꼈다.
비즈니스용 메일을 따로 만들 필요성.
지금만 봐도 그랬다. 나를 대상으로 한 메일이 출판사로 갔으니까.
“그랬군요.”
미안함을 표하며 나는 물었다.
“근데 어떤 내용이길래 저한테 온 제안이라는 거예요?”
“일반적인 굿즈 제작에 관한 내용이긴 한데……”
괜히 그런 말이 있는 게 아니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라.
언제나 그렇듯 중요한 건 뒷부분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걸 초록님이 제작해 줬으면 한다고 하더라구요.”
“…?”
뭔가 있을 거라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건 정말이지 예상 못한 제안이었다.
나보고 굿즈를 제작하라고?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말했다.
“.. 저는 그런 걸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아닌데요?”
나는 만능 엔터테이너가 아니다.
펜을 쥐고 하는 것 이외에는 그리 자신 있는 분야가 존재하지 않았다.
손재주가 있긴 하지만 겨우 그 정도로 굿즈를 만들 수는 없다.
스티커, 폰케이스, 키링, 머그컵 등등.
굿즈를 생각하면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것들이다.
이런 걸 내가 어떻게 만들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들려오는 조은서의 목소리.
“아, 말이 조금 이상했네요. 초록님한테 굿즈를 만들라는 제안이 아니에요!”
“그럼요?”
“굿즈 디자인을 도맡아달라는 제안이에요.”
굿즈 디자인?
그제야 머릿속의 의문이 깨끗이 풀렸다.
동시에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모든 굿즈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핵심 요소, 그게 바로 내 분야인 그림이라는 걸.
“회사는 굿즈 제작에 필요한 재료를 제공해주고 발주랑 판매 사이트에 유통해주는 역할을 한데요. 하는 일이 딱 그 정도에 한정돼서 최소한의 몫만 가져가구요.”
“그렇군요.”
“저도 아예 모르는 분야긴 하지만.. 초록님이 되게 잘하실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중얼거리듯 자그마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 보고 싶기도 하고.”
놓치지 않고 나는 물었다.
“뭐가요?”
“소환숲 캐릭터가 들어간 굿즈요. 그리고……”
“그리고요?”
“아, 아니에요!”
다시 그 말이 떠오른다.
사람이 화나게 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말을 하다 마는 것이고……
화를 내지는 않고 말했다.
“하하, 뭔데요. 얘기해 봐요.”
“그게……”
결국 그녀는 조심스레 말했다.
“다른 사람은 되게 불안할 거 같은데 초록님이 디자인한다고 하면 믿음이 가서요. 혹시 이런 말하면 부담되실까 안 하려 했는데……”
“.. 확실히 부담이 가네요.”
“봐, 봐요! 그러니까 제가 말 안 한다고……”
생각보다 더 당황하는 걸 보고 소리내어 웃으며 말했다.
“장난이에요, 장난.”
자연히 머릿속이 그려봤다.
소환숲의 캐릭터나 배경을 활용해 굿즈를 만들면 어떤 모습일지.
놀라울 정도로 많은 것들이 생동감 있게 떠올랐다.
이렇게 생생히 이미지가 그려진다는 건, 그만큼 내 머릿속 이미지가 확고하다는 걸 뜻했다.
무엇보다도 재미있을 거 같았다.
그 이미지가 그대로 구현돼서 완성된 굿즈를 보면 굉장히 짜릿하지 않을까.
더군다나 그게 내 손으로 만든 거라면.
“작가님.”
“네, 초록님.”
“일단 그 메일 좀 저한테 보내주실래요?”
상세 내용을 읽어본 뒤 회사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싶었다.
“네, 지금 바로 보내드릴게요!”
뭐든지 과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마무리였다.
소녀와 환상의 숲.
작화를 끝내는 걸로 그 여정을 끝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아닐지도 모르겠다.
“고마워요.”
아직 거둬야 할 게 남아있는 거 같으니 말이다.
***
통화를 마친 뒤 조은서는 바로 메일을 보내줬다.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그나마 알게 된 건 내 생각보다 자유도가 더 높고 작업이 간단하다는 것 정도였다.
사실 간단하다기보다는 대부분의 과정이 내게 생소하지 않다는 게 컸다.
우선 디자인.
이건 말할 것도 없이 내 분야였다.
제작에 필요한 포토샵 능력 역시 비슷한 툴을 써 본 적이 많은 내게는 익숙할 테고.
‘채색, 명암 보정, 색 보정……’
전부 해 본 적 있는 것들이다.
기본적으로 연두티콘을 제작할 때와 거의 다르지 않았다.
아차, 이럼 안 되지.
“컴 다운. 릴랙스.”
되지도 않는 영어까지 써서 마음을 가라앉혔다.
자신감을 가지는 건 좋지만 시작부터 얕보고 들어가는 건 곤란하다.
자칫하면 자만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아무튼 제작 툴과 방식이 내게 익숙하다는 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한 성과였다.
‘그리고.. 자유도.’
틀을 전부 내가 정할 수 있었다.
만약 티셔츠라 한다면 그 색깔과 모양, 심지어 원단까지 지정이 가능하다.
신경써야 할 건 오직 디자인.
그 디자인이 반영된 물건을 발주하고 유통하는 건 전부 회사의 몫이었다.
‘.. 괜찮잖아.’
그냥도 아니고 무척 괜찮았다.
굿즈 제작이 이 정도로 편리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으니까.
게다가 한 번 디자인해 둔다면, 마치 Ctrl C, V를 하듯 얼마든지 뽑아낼 수 있다.
잘 팔리기만 한다면 말이다.
‘좋아.’
내용은 전부 확인했다.
이제 검증해야 할 건 회사였다.
바로 인터넷에 들어가서 검색창에 회사명을 입력했다.
[굿즈팩토리]회사와 관련 게시글이 줄줄이 나왔다.
차근차근 빠짐없이 읽어본 뒤, 나는 한 가지 판단을 내렸다.
믿을 만한 회사라고.
규모도 큰 데다가, 계약해서 굿즈 제작을 진행한 수많은 후기글이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좀 더 둘러보자.’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터였다.
그런 생각으로 마우스를 움직이는데,
드르륵.
책상 위에서 진동하는 핸드폰.
-제이디
제이디로부터 온 전화였다.
며칠 전 문자를 주고받긴 했지만 통화를 하는 건 오랜만인데.
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초록님.”
여전히 또랑또랑하면서도 쿨한 목소리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문자로는 했지만 흥행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정말 몰랐어요. 초록님이 아무도 모르게 동화책을 그리고 있으셨을 줄은. 저한테도 말씀 안 하시고……”
“아.”
절로 나오는 멋쩍은 표정.
제이디에게는 미안한 감정이 있었다.
동화책 작화를 시작하기 전 이모티콘 제안을 거절했던 것과 별개로 한창 작화중일 때도 연락이 온 적이 있었으니까.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초록님?’
비즈니스로 만난 관계인만큼 그냥 안부인사가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뭘 하고 있냐는 의미가 담긴 질문이었겠지.
“미안해요. 그때는 최대한 조심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이해한다는 듯 그녀는 답했다.
“흐흐, 아니에요. 근데 초록님.”
“네.”
“어떻게 동화 작화를 하실 생각을 하셨어요? 매력적인 제안이 되게 많았을 텐데.”
확실히 그렇긴 했지.
얼핏 보기에는 동화보다 훨씬 전망이 밝아보이는 제안이 많았으니까.
말하면 믿으려나.
수많은 쪽지를 띄워놓은 뒤 골라보라는 말에 연두가 꼽은 게 ‘소녀와 환상의 숲’이었다는 걸.
“하하, 그러게요.”
“그런데 그걸 또 흥행까지 시키고.. 초록님은 정말……”
괜히 낯간지러운 기분이다.
뒤이어 그녀는 말했다.
“그럼 이제 초록님 선택지 안에 들어온 건가요?”
“뭐가요?”
“제가 드렸던 제안이요.”
새로운 이모티콘 제작에 관한 제안을 얘기하는 거겠지.
연두티콘 제작.
과정도 즐거웠고 결과도 좋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확답을 줄 수는 없었다.
‘아이디어도 필요하고.’
적어도 지금은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발상은 떠오르지 않았다.
따라서 이 정도의 답이 최선이었다.
“선택지에는 항상 있죠.”
거절이 아니었다.
최적의 타이밍을 기다리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을 뿐.
이어지는 그녀의 물음.
“혹시 그게 매력적인 선택지인가요?”
“물론이죠.”
“그럼 충분해요.”
그녀는 장난스레 말을 덧붙였다.
“이건 개인적으로 궁금한 건데요.”
“네.”
“혹시.. 지금도 비밀작전을 수행중이신가요? 아니면 준비하고 있다거나.”
진심으로 놀랐다.
전에도 느꼈지만 감이 장난이 아니란 말이지.
나도 장난스레 답했다.
“말씀 못 드리겠네요. 비밀이라서.”
***
-아니 ㅋㅋ 파급력 뭔데
┖사장 직전이던 동화책 창작시장 멱살 잡고 끌어올리네
┖ㄹㅇ ㅋㅋ
┖포브스 선정 ‘초딩들이 교과서보다 많이 보는 도서 1위’
┖그 놈의 포브스 ㅋㅋㅋㅋㅋ
┖오늘 길 걷다가 소환숲 들고 걸어가는 꼬맹이 봄. 바로 ‘어! 그거 소환숲 아니야?’ 시전했자너 ㅋㅋㅋㅋㅋ
┖어, 너두? 야, 나두!
┖초딩이랑 공감대 형성 오지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도 어김없이 소환숲에 대한 반응을 확인했다.
입가에 번지는 웃음.
길 가다가 봤다는 건 일반적으로는 주접이라 생각하겠지만, 마냥 그렇게 여기기에는 내가 본 게 있었다.
‘주위에 단비어린이집이 있어서 그런지.’
진짜 그런 장면이 내 눈에 들어오곤 했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번.
심지어 어제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함께 옹기종기 앉아서 소환숲을 읽고 있는 아이들을 목격했지.
끼어들기는 뭐해서 조용히 지나가긴 했지만.
‘뿌듯해.’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뿌듯함이 일었다.
동시에 생각했다.
만약 굿즈를 성공적으로 만든다면, 정말 소환숲 열풍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만으로도 짜릿한 기분이었다.
***
“연두야.”
“네, 아빠.”
“이거 좀 볼래?”
집으로 향하는 도중 나는 노트를 내밀었다.
얼떨결에 받아든 연두가 묻는다.
“이게 머에요..?”
“글쎄. 한 번 펼쳐봐.”
고개를 끄덕이며 연두가 노트를 펼쳤다.
“우아…”
흘러나오는 감탄사.
자리에 멈춰선 연두는 한동안 노트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가리키며.
“주드.. 유리.. 데우스.. 나비…”
그렇다.
노트에 그려진 건 소환숲의 캐릭터들이었다.
정확히는 내가 굿즈를 구상하며 그린 캐릭터가 새겨진 각종 물건들.
“어때, 연두야?”
나는 미소를 띠며 재차 물었다.
“만약 그 그림처럼 캐릭터들이 새겨진 가방이나 컵이 있으면 어떨 거 같아?”
“…… 시퍼요.”
“응?”
“가지고 시퍼요..!”
반짝이는 눈.
다시 그림을 보며 연두는 중얼거렸다.
“진짜진짜 예쁘게따…”
“흐흐.”
연두도 상상해 보는 모양이었다.
그림 그대로 만들어진 실제 물건이 어떤 모습일지 말이다.
가만히 나는 그 모습을 바라봤다.
‘얼마나 좋아할까.’
내 손으로 직접 디자인해서 만든 소환숲 굿즈를 연두에게 선물한다면.
연두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잠깐 생각해 본 끝에 나는 결심했다.
‘안 되겠어.’
만들어야겠다.
그게 궁금해서라도 안 만들고는 못 배기겠다.
소환숲 캐릭터 스티커도, 주드가 들어간 가방도, 나비가 새겨진 컵도.
그 굿즈를 손에 든 연두가 보고 싶었다.
“조금만 기다려, 연두야.”
“으응..?”
오래 걸리지는 않을 터였다.
굿즈 하나하나의 생생한 이미지가 내 머릿속에 살아 숨쉬고 있으니 말이다.
마침 새로운 무언가를 할 필요성을 느끼던 시점이기도 했고.
‘좋아.’
찍어보기로 하자.
소녀와 환상의 숲의 완벽한 종지부를.
그렇게 결심하고 정확히 보름이 지난 시점, 나는 완성했다.
소녀와 환상의 숲 굿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