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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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합작
카메라를 세팅한 후, 나는 서랍을 열었다.
서랍 속에는 피버카스텔 색연필과 종이가 들어 있었다.
스윽.
나는 철로 된 색연필 통과 종이를 책상 위에 올려뒀다.
그리고 연두에게 살며시 눈짓했다.
“아..!”
연두는 눈짓의 의미를 알아들은 건지, 가까이 다가가 작은 손으로 색연필 통을 열었다.
철컹!
저번에 열어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번에는 둔탁한 소리에도 놀라지 않았다.
철통을 열자 120색의 영롱한 색연필이 자태를 드러냈다.
보기만 해도 좋은지, 연두가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미술에 관련된 생각을 해도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과거는 지나갔고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이제는 인정했으니까.
아무리 자책하더라도 내가 포기한 것들과 기회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니 과거의 나 자신을 부정하기보다는, 과거를 긍정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연두야.”
“네에..”
“아빠 옆에 앉아볼래?”
연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옆으로 와 앉았다.
이 순간에도 카메라는 돌아가고 있었다.
그야, 나는 주연이의 채널아트를 그려주는 걸 영상으로 찍을 생각이었으니까.
저번에는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게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댓글을 통해서 사람들이 그걸 보고 싶어 했다는 걸 알았지.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연두를 그리는 게 아니었다.
주연이의 채널아트에 연두 그림을 그려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래서 처음에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걸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만.’
조금 발상을 전환하니 충분히 활용할 여지가 있었다.
꼭 연두를 그려야 연두와 관련된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건 아니니까.
연두를 그리는 게 아니더라도, 연두와 함께 무언가를 그리면 된다.
그 무언가가 바로 주연이의 채널아트인 거고.
나는 연두에게 ‘잘 그리게 해 줄게.’라고 말했다.
즉,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림의 퀄리티와 내가 연두에게 한 약속.
그리고 내 머릿속에는 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방법이 있었다.
“연두야.”
“네, 아빠..!”
“시작하자. 그림 그리기.”
연두와 나의 합작을 만들 시간이었다.
***
하주연 : 아조씨!! 제가 원하는 채널아트는요~ 상큼발랄한 느낌도 있으면서 청순한 반전매력도 있고, 눈에 확 들어오는······
여기까지만 봐도 어떤 걸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우선 상큼발랄, 청순 어쩌고 하는 걸 보면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모습이 나왔으면 하는 거 같았다.
그리고 눈에 잘 들어오는 예쁜 채널아트 그림을 원하는 모양이고.
마지막에는 뮤직 유투버 채널인 게 부각됐으면 좋겠다는 부탁도 있었다.
이것저것 원하는 게 많지만 종합해서 말하면 ‘완벽한 채널아트’를 원하는 것이었다.
하주연 : 아! 이건 제 희망사항일 뿐이고, 부담은 안 가지셔도 돼요! 어차피 워낙 금손이시니까 ㅎㅎㅎㅎㅎ
부담을 한 국자 추가하는 것도 잊지 않는 주연이였다.
그나저나 왜 희망사항을 단톡방에 이야기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언젠가부터 나는 고딩 녀석들의 단톡방에 초대되어 있었다.
오예림 : 주연아. 누가 봐도 부담 주는 느낌인데…?
오범재 : 또 시작이네.. 어휴.
조동건 : ㅋㅋㅋㅋ 야, 행님이 아무리 그림을 잘 그리신다 해도 너를 어떻게 상큼하고 청순하게 그리냐? 그게 가능하면 인간이 아닌 신이지.
오범재 : ㅇㅈ. 차라리 주원이 형이 더 예쁠 듯.
직접적으로 갈구는 동건이보다 깐족거리는 범재가 더 얄미웠다.
나라면 이런 부탁을 할 때 친구들이 있는 단톡방에 절대 안 올린다.
어떤 반응이 쏟아질지 100% 예측이 가능하니까.
그 무뢰배들에 비하면 이 정도는 양반으로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주연이는 충격을 받은 건지 대답했다.
하주연 : 와.. 너희가 친구야? 예리미 너까지…. 실망이다, 진짜.
오예림 : ㅎㅎ 장난이야, 장난! 우리 주여니가 세상에서 제일 예뿌디..♥
조동건 : 엥? 친구니까 바른말 해주는 건데?
더 채팅을 볼 필요는 없을 듯했다.
언제나처럼 동건이와 주연이가 싸울 게 불 보듯 뻔했으니까.
나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연필을 손에 쥐었다.
핑그르르.
그리고 습관처럼 연필을 돌려 긴장감을 떨쳐냈다.
딱히 긴장할 게 없는 일이긴 해도, 어떤 그림을 그리든 대충 그리고 싶지는 않았다.
친구들에게 이렇게 놀림을 받고 있긴 하지만, 사실 주연이는 예쁜 편이었다.
특히 방금 영상을 봤을 때는 평소보다 더 예뻐 보였고.
‘그 느낌을 살리면 되겠지.’
뮤직 유투버인 만큼, 노래할 때의 모습을 구현하는 게 중요할 듯했다.
나는 피식 웃음을 지으며 연두를 향해 말했다.
“아빠 도와줄 준비됐지, 연두야?”
연두는 나름 진지하면 표정으로 대답했다.
“.. 돼써요!”
“그래. 그럼 우선 연두가 그려볼래?”
“네..! 으응..? 네에…?”
당황한 표정의 연두가 말을 이었다.
“연두가 그려요..?”
“응. 연두가 주연이 언니를 그려봐. 주연이 언니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어, 엄청 못 그리눈데…”
“괜찮아. 아빠가 도와줄 테니까.”
그제야 연두는 연필을 조심스레 손에 쥐었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스케치를 시작했다.
슥. 슥.
얼굴을 그리고, 몸을 그리고, 머리카락을 그리고, 헤드폰에 마이크까지 그려 넣었다.
아까 영상의 구도를 생각해서 그리는 거 같았다.
‘역시 기억력이 좋다니까.’
잘 그리지는 않았지만, 디테일이 잘 드러나는 그림이었다.
무엇보다도 정말 최선을 다하는 게 느껴져서 웃음이 나왔다.
입을 앙다문 채로 눈도 잘 안 깜빡이고 스케치에 몰두하는 표정이 눈에 들어왔으니까.
‘게다가.’
내가 연두에게서 원하는 부분들이 나왔다.
모르는 게 많은 연두는 그림의 여러 부분을 상상으로 채워냈다.
나로서는 생각지도 못할 형태와 느낌으로.
“연두야.”
“네.”
“아까 주연이 언니 노래 부르는 거 보면서 뭐 같다고 했었지?”
잠깐 생각하던 연두가 대답했다.
“천사..!”
“그래. 천사는 뭐가 있다고?”
“날개요..!”
“그럼 날개도 한 번 그려줄까? 주연이 언니한테.”
“네!”
연두는 신이 나서 주연이의 양옆에 날개를 그려 넣었다.
날개도 마찬가지로 연두만의 느낌이 묻어났다.
‘아까 노래를 들어보니.’
주연이는 고음을 내지르는 파워보컬 느낌이 아니었다.
오히려 음색으로 감성을 전달하는 느낌의 노래가 잘 어울리는 보컬이었지.
따라서 연두가 이야기한 ‘천사’로 그런 느낌을 표현할 생각이었다.
즉, 날개를 그림의 포인트로 활용한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연두의 밑그림 스케치가 완성됐다.
막상 스케치를 끝내고 나니, 연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연두는 그림을 빤히 바라보더니 짧게 한마디를 했다.
“주여니 언니 화나요…”
“푸흡.”
예상치도 못하게 웃음이 터졌다.
“언니가 왜 화가 나?”
“연두 그림 보고여..”
“그래? 그렇게 못 그린 거 같아?”
“네에…”
연두는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연두가 한 스케치는 전혀 쓸모없지 않았다.
그건 내가 지금부터 그릴 그림의 재료가 될 테니까.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연두에게 물었다.
“마법이 뭔지 알아, 연두야?”
연두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뭐, 몰라도 상관없다. 이제부터 보여주면 되니까.
“아빠가 연두가 그림을 잘 그리게 되는 마법을 보여줄게.”
아직까지는 알쏭달쏭한 표정의 연두였다.
나는 연두가 스케치한 종이 옆에 새로운 종이 한 장을 놓았다.
그리고 연두에게 연필을 다시 쥐여줬다.
스윽.
이후 연두의 자그마한 손 위로 내 손을 겹쳐 잡았다.
“으응..?”
“잘 봐, 연두야.”
아까 말했듯 채널아트의 재료는 연두의 밑그림이었다.
나는 방금 연두가 그린 밑그림을 옆에 두고 스케치를 시작했다.
필요에 따라 추가하기도 하고, 제거하기도 했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연두의 밑그림을 재해석할 생각이었다. 연두가 자신의 색깔로 그려낸 느낌을 살려서.
어떤 그림을 스케치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는 형태가 드러나지 않아 이상하게 보인다.
스슥. 슥.
하지만 이 기분 좋은 소리가 지속될수록, 밑그림은 형태를 갖춰 간다.
머릿속에 그리고자 했던 이상적인 형태로 말이다.
내 손의 움직임에 따라, 연두의 손도 함께 움직였다.
혼자 그리는 거에 비해 쉽진 않았지만, 천천히 섬세하게 그리면 충분히 가능했다.
세밀한 스케치가 필요한 부분은 내가 따로 보완하면 될 일이고.
‘얼굴, 몸, 머리카락, 마이크, 헤드폰, 날개······’
일부러 아까 연두가 그림을 그리던 순서도 외워 두고, 그대로 따라 그렸다.
밑그림이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춰 갈수록, 연두의 입이 점점 벌어졌다.
“아빠아..”
“응, 연두야.”
“연두 그리미랑 달라요.. 주여니 언니 진짜 천사 가타요.. 예뿌다…”
“아닌데? 이건 연두 그림인데.”
“네..?”
“손을 봐. 연두가 그리고 있잖아.”
실제로 연필을 쥐고 있는 건 내가 아닌 연두였다.
이어서 나는 내가 생각한 추가적인 요소를 연두의 손을 잡은 채 그려 넣었다.
주연이는 뮤직 유투버라는 게 잘 드러나는 채널아트를 원했다.
그게 뭘까 생각하니 바로 무언가가 떠올랐다.
‘음표.’
음표는 음악을 나타낼 수 있으면서도, 그림에서 포인트로 활용할 수도 있었다.
모양도 다양하고 예쁘게 생겼으니까.
“이게 모예요..?”
“음표라는 건데, 음의 높낮이를 나타낼 때 쓰는 거야.”
“높나지..?”
“그러니까 높낮이란 건······”
물론 연두의 질문 공세는 각오를 해야 했다.
***
스케치를 마친 후에 나는 색칠을 시작했다.
색칠은 연두의 손을 잡고 할 수 없었다.
‘한 번 삐끗하면 지울 수 없으니까.’
그 대신, 연두의 의견을 적극 반영했다.
“그건.. 노랑색이요!”
“이 음표는 그럼 어떤 색으로 칠할까?”
“부농색…!”
이런 식이었다.
스케치할 때 가장 고민한 게 날개의 색이었는데, 의외로 결정은 쉽게 났다.
보통 천사의 날개를 생각하면 열에 아홉은 흰색이 생각날 것이다.
그러나 흰색으로 날개를 색칠할 수는 없었다.
‘종이 자체가 흰색이니까.’
허나, 흰색 색연필을 사용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나는 우선 파란색 색연필을 꺼내 들고, 바로 날개 부분을 칠했다.
주위 색에 비해 짙은 색깔이 연출됐다. 의도한 대로였다.
지금 필요한 게 바로 하얀색 색연필이었다.
사각. 사각.
짙은 색 위에 흰색을 덧칠해 날개의 경계를 부드럽게 만들고, 동시에 색깔을 연하게 했다.
이렇게 하면 신비로워 보이는 색감을 낼 수 있었다.
주위의 색과도 잘 어우러지며 그림에서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렇게 한참 채색을 진행한 결과,
“후우…”
마침내 채널아트가 완성됐다.
마이크에 대고 노래를 부르는 주연이의 옆모습, 입에서 나와 강물처럼 흐르는 듯 보이는 각양각색의 음표.
그에 더해 연두 스타일로 그린 독특한 모양의 날개까지.
공짜로 그려주는 거 치고 너무 열심히 그린 거 같긴 한데.
“우아…”
그림을 들고 세상 행복하게 웃는 연두를 보니 손해 본 기분은 안 들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 연두야.”
“네..?”
“연두가 도와줘서 이렇게 예쁜 그림이 나왔네.”
실제로 연두는 많은 걸 도와줬다.
스케치부터 색 결정까지. 그리고 연두는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도와주는 거다.
잘 그려서 놀라게 해 줘야겠다는 생각에 의지가 불타니까.
“연두가 더 고마어요, 아빠…”
“크크, 주연이 언니가 그림 보면 좋아할 거 같아?”
“네! 엄청 조아할 거 가타요..!”
딱히 보여주는 걸 미룰 이유는 없었다.
나는 다시 녀석들이 있는 단톡방에 들어갔다.
예상대로 말다툼을 한 건지, 채팅이 가득 쌓여 있었다.
‘가볍게 스킵하고.’
찰칵.
내 할 말만 하면 임무 완료였다.
나는 그림을 사진으로 찍은 후, 단톡방에 올렸다.
(사진 첨부)
이주원 : 다 그렸어. 연두가 많이 도와줬다 ㅋㅋ 채널아트 크기로 편집해서 메일로 보내줄게.
유투브에 그리는 과정을 콘텐츠로 쓸 거라는 것도 말해야 하는데.
뭐, 그건 답장이 오면 대충 말하면 되겠지.
툭.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책상 위에 핸드폰을 올려뒀다.
하지만 이야기할 타이밍은 내 생각보다 빨리 왔다.
지잉! 지이잉! 지이이잉!
엄청난 진동소리에 연두가 깜짝 놀라 뒷걸음질쳤다.
올려놓자마자 핸드폰이 미친 듯이 몸을 떨기 시작했다.
‘뭐야?’
나는 놀라서 핸드폰을 다시 들었다.
화면에는 가장 최근에 온 주연이의 채팅만 보였다.
채팅 내용을 본 나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하주연 : 평생 가보로 삼을게요, 아저씨… 연두야 고마워!!! ♥♥♥
그림을 그리는 게 전처럼 즐거워졌기 때문일까.
내 그림이 다시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시작했다.
“아빠..!”
연두가, 나를 변화시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