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44)
44화. 같이 갈래요?
하주연 : 평생 가보로 삼을게요, 아저씨… 연두야 고마워!!! ♥♥♥
핸드폰은 손 위에서도 미친 듯이 진동했다.
나는 무음 모드로 바꾸고 단톡방에 들어갔다.
네 명뿐인 녀석들이 엄청난 채팅을 쏟아내고 있었다.
“연두야.”
“네에!”
“연두랑 아빠가 그린 그림. 언니 오빠들한테 보여줬거든?”
“주여니 언니, 범재 오빠, 동거니 오빠한테요..?”
“크크, 그래. 그리고 연두 엄청 보고 싶어 하는 예림이라는 언니도 있어.”
“예리미 언니…”
입모양으로 ‘예리미’를 계속 되뇌는 걸 보니, 이것도 외우려는 모양이다.
이러다 우리 연두, 암기 신동으로 TV 나오는 거 아닐지 모르겠네.
그런 쓰잘데기없는 생각을 하며, 나는 채팅을 확인했다.
(사진 첨부)
첨부된 채널아트 그림 아래, 채팅들이 쭉 나열되어 있었다.
오범재 : 실화야? 퀄리티가 무슨…
오예림 : 와… 진짜 아저씨 피카소세요? 이런 그림은 상상도 못했는데..
조동건 : 가능했구나…
오예림 : 으응..? 갑자기 뭐가 가능해??
조동건 : 하주연을 상큼하고 청순하게 그리는 게.
오범재 : ㅋㅋㅋ 아까는 그게 가능하면 인간이 아니라 신이라며.
조동건 : 행님은 신 맞는 거 같아. 금손이 아니라 금신.
오예림 : 아 아재개그.. 근데 그건 인정. 주여니는 아저씨 방향으로 맨날 절해야겠다 ㅎㅎ
의외로 주인공은 그 뒤에야 등장했다.
하주연 : 헐…
이후에도 계속해서 채팅이 이어져 있었다.
아까 확인한 가보로 삼겠다는 주연이의 이야기부터.
채널아트가 아니라 예술을 했다는 낯간지러운 비행기 태우기까지.
고딩 녀석들이라 그런지, 표현이 상당히 다채로웠다.
오범재 : 솔직히 나는 주원이형이 이렇게 예쁘게 그려줄 줄 몰랐는데 ㅋㅋㅋ 그냥 그려주는 거니까.
조동건 : ㅉㅉ 하수네. 나는 예상했다. 행님의 프로의식을 아니까.
오범재 : ?
조동건 : 행님은 뭘 그려도 대충 그릴 수 없는 거지. 미술에 대한 프로의식이 있으니까. 똥재 네가 프로의식을 알어?
오범재 : ㄷㅊ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예전부터 뭘 그려도 대충 그린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를 프로라 할 수는 없었다.
미술을 통해 돈 한 푼 창출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앞으로 기회가 찾아올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한편, 주연이는 나머지 녀석들이 떠들든 말든 자기 할 말만 하고 있었다.
하주연 : 아저씨. 집 방향이 어디세요..? 오늘부터 절 올릴게요.”
여기 원룸촌 주소라도 알려줘야 하나.
장난이고, 나는 피식 웃으며 채팅을 쳤다.
이주원 : 됐어. 그건 그렇고 할 말 있는데.
하주연 : 하실 말씀이요? 뭐든지 말씀하세용! ㅎㅎ
이주원 : 연두랑 같이 주연이 네 채널아트 그리는 걸 영상으로 찍었거든? 그거 연두튜브에 올릴까 하는데 괜찮아?
대답은 즉시 돌아왔다.
하주연 : 헐.. 저야 당연히 괜찮죠! 영상은 언제 올라가는데요??
이주원 : 일주일 안에 올릴 거 같은데.
하주연 : 올라오자마자 챙겨봐야겠다. 너무 궁금해여.. 제 채널아트가 어떻게 탄생했을지.
이주원 : 보면 놀랄걸? 연두가 엄청 많이 도와줬거든.
하주연 : 흑… 연두야 ㅠㅠ 보고시퍼….♥
동건이가 끼어들었다.
조동건 : 영상 올라가면 ‘노래하는쭈연’ 떡상 각이냐? 드디어?
하주연 : .. 드디어는 좀 빼 줄래?
허락도 맡았으니 단톡방에 볼일은 끝났다.
나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연두야. 언니 오빠들이 엄청 좋아하는데?”
“히히, 아빠아..”
“응.”
“언니오빠드리랑 언제 다시 만나여..?”
“글쎄. 곧 다같이 한 번 모여서 맛있는 거 먹을 생각인데.”
나는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
“그때 연두가 그 그림 주연이 언니한테 선물로 줄래?”
“그래도 대여…?”
“당연하지. 연두가 그린 건데.”
그 말에 연두는 배시시 웃음을 지으며 종이를 품에 안았다.
구겨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달칵.
이후에 나는 그림을 채널아트 크기에 맞춰 편집한 후, 주연이의 메일로 보내줬다.
이제 ‘노래하는쭈연’ 채널을 클릭하면 이 채널아트가 뜨게 되겠지.
적어도 지금의 칙칙한 채널아트보다는 훨씬 나을 거라 장담할 수 있었다.
메일을 발신한 후, 나는 연두튜브에 들어갔다.
들어갈 때마다 늘어있는 구독자 수를 보면 기분이 좋아졌다.
-영상 업로드
나는 곧바로 영상 업로드를 클릭했다.
오늘은 연두가 지혜 씨와 글자 공부하는 영상을 올릴 생각이었다.
편집도 끝냈으니, 영상을 업로드하는 걸로 충분했다.
지혜 씨가 얼굴이 나와도 상관없다고 하긴 했지만, 찝찝해서 가려줄 생각으로 편집에 임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니 그렇게 편집할 부분도 없었다.
영상 자체가 서지혜는 거의 뒷모습만 나오는 구도로 촬영되어 있었으니까.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운 좋게 촬영이 잘 된 경우였다.
-언니와 함께하는 연두의 글자 공부!(feat. 수제 학습지)
연두튜브의 여섯 번째 영상이었다.
‘신기하단 말이지.’
어느새 여섯 번째 영상을 올리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첫 번째 영상을 올리며 마음 졸이던 게 엊그제 같은데.
아, 이렇게 말하면 너무 오래 지난 거 같은가? 실은 얼마 흐르지도 않았는데.
’25일.’
유투브 수익이 통장으로 들어오는 날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그 날이 기다려졌다.
***
다음 날 오후 단비어린이집.
아이들이 모여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교사는 의자에 앉아서 그 모습을 바라봤다.
혹여나 아이들이 놀다가 다칠지도 모르니, 지켜보는 것이었다.
‘일부러 선별해서 고른 장난감이긴 하지만.’
안전을 위해 둥글둥글한 모양의 장난감과 인형 위주로 두기는 했다.
그래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잠시라도 자리를 비울 수는 없었다.
혹여나 장난감 조각을 입에 넣기라도 했다가는 큰일이 날 수 있었으니까.
‘인형이 가장 안전하긴 한데.’
남자아이들은 인형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었다.
지켜보면서 신경 쓰는 수밖에.
지켜보는 와중, 웃고 있는 연두의 모습이 교사의 눈에 들어왔다.
연두는 손에 예쁜 토끼 인형을 들고 있었다.
옆에서 공주님 인형을 든 시은이가 말했다.
“연두야.”
“으응.. 시으나!”
“너는 토끼 좋아해?”
연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조아해. 귀도 길고 예뿌니까… 시으니는 무슨 동물 조아해?”
“나는.. 앵무새!”
“.. 그게 모야?”
“앵무새는 사람 말을 따라 할 수 있어. 내가 연두야! 이러면 앵무새도 연두야!라고 따라 해.”
“진짜..? 새가 말을 할 수 이써..?”
“응. 그리고 되게 예쁘게 생겼다?”
“우아.. 보고 싶다..”
교사가 흐뭇하게 웃으며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사실 연두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시은이는 그녀가 가장 걱정하던 아이였다.
예쁜 아이였지만, 성격이 새침해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연두가 오고 난 후, 완전히 달라졌다.
‘낮잠 시간에 둘이 몰래 이야기하더니.’
이후에는 둘도 없는 단짝이 되어 온종일 붙어다녔다.
그러면서 시은이는 자연스레 다른 아이들과도 친해지고, 성격도 전보다 밝아졌다.
연두의 영향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어흥!”
그때 교사의 귀에 낯익은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고개를 돌린 교사는 이마를 잡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대로 민우의 목소리였다.
“어흥! 나는 호랑이다! 약한 토끼야! 어흐응!”
민우는 손에 호랑이 인형을 들고 연두에게 다가갔다.
연두는 깜짝 놀라 토끼를 등 뒤로 숨겼다.
민우는 집요하게 쫓아가며 말했다.
“토끼 줘, 연두야! 내 호랑이가 배고프대.”
호랑이를 이길 수 없다는 게 탄로 난 민우가 요즘 보이는 행동이었다.
전과 달리 과격한 방식으로 연두의 관심을 끌어내고 있었다.
연두는 울상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 안 대! 미누야.. 토끼는 호랑이 무서어해..”
“당연하지! 호랑이가 더 세니까! 어흥!”
“꺄아!”
결국 교사가 제지하려는 순간이었다.
시은이가 매섭게 민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만해! 연두가 싫어하잖아.”
바로 물러설 민우가 아니었다.
“아니거든?”
“.. 김민우 바보 멍청이.”
“나 바보 아니야! 너도 호랑이한테 혼날래?”
“연두는 거짓말하는 거 싫어하거든? 너는 호랑이 이길 수 있다고 거짓말했잖아.”
역시 다섯 살 아이답지 않은 논리력이었다.
민우는 타격을 입었는지 입을 꾹 다물다가 항변했다.
“… 거짓말 아니야!”
물론 힘없는 항변이었다.
그러다 민우는 화살을 애꿎은 연두에게 돌렸다.
“연두가 나 시러해도 되거든? 그리고 연두는 토끼도 본 적 없잖아! 동물원도 안 가봤으면서!”
교사는 제지할 타이밍을 놓친 걸 후회했다.
최근 들어 민우는 동물원에 가 본 걸로 틈만 나면 연두에게 유세를 부렸다.
평소에는 자랑하는 걸로 그쳤는데, 오늘은 한술 더 뜨는 민우였다.
‘엄청 부러워했는데.’
민우가 동물원 얘기를 할 때마다, 세상 부러운 표정을 짓던 연두.
방금 얘기로 상처를 받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됐다.
시은이도 연두가 걱정되는지 앉아서 꼭 안아줬다.
한편, 민우는 주위 아이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막상 이야기한 민우도 엄청 미안한 표정이었다.
그야, 당연했다. 서툰 마음에 한 말이지, 악의가 담긴 말이 아니었으니까.
‘어?’
걱정스런 마음으로 연두의 표정을 확인한 교사는 깜짝 놀랐다.
울먹이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예상과 달랐으니까.
연두는 토끼를 꼭 안은 채 웃으며 말했다.
“헤헤, 연두 아빠랑 가치 동무런 가기로 했눈데.”
시은이가 깜짝 놀라서 말했다.
“진짜?”
“응. 아빠랑 동무런 가기로 해써..!”
“연두야.. 나랑 같이 가면 안 돼..?”
“아, 아빠랑 가치 가기로 했는데…”
“우리 엄마랑 나랑 연두랑, 너희 아빠랑 같이 가면 되지!”
“아!”
대단한 걸 깨달은 표정을 짓는 연두를 보며, 교사가 또 웃음을 지었다.
그러는 사이, 연두는 자리에서 일어나 민우에게 다가갔다.
“미누야..”
“.. 어?”
“연두는 미누 하나도 안 시러해. 우리 칭구니까…”
민우의 눈의 초점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내가 거짓말 했는데도..?”
“응..!”
교사가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
연두 덕분에 나설 일이 없어져 버렸다.
***
어린이집 교사에게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들었다.
연두가 얘기했던 친구인 민우와 있었던 일부터, 동물원 얘기까지.
특히 동물원 얘기가 내게는 꽤 충격으로 다가왔다.
“으음? 표정이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어요..?”
“.. 하하, 아니에요.”
오늘도 시은이 엄마 신세연과는 시간이 겹쳐 함께 돌아가고 있었다.
대답은 아니라고 했지만, 마음속은 씁쓸한 기분이었다.
연두가 그렇게까지 동물원에 가고 싶어 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으니까.
생각해 보면 엄청나게 가고 싶어 했을 게 당연했다.
나만 해도 어렸을 때의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동물원에 갔을 때였고.
요즘 신세연과 자주 이야기를 나누며 육아에 관해 많은 걸 들었다.
육아 관련 책에는 나오지 않는 많은 부분을 그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같은 나이의 아이를 키운다고는 해도, 그녀와 나는 실질적인 내공 자체가 달랐으니까.
‘그래서 너무 이것저것 신경 쓰려다 보니.’
가장 기본적인 걸 놓쳐 버렸다.
연두가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크게 티를 내는 성격도 아니고 말이다.
‘언제 동물원 한 번 가자.’라고 말할 게 아니었다. 하루라도 빨리 데려갔어야지.
조만간 데려갈 생각이긴 했지만, 너무 느긋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저씨.”
그때 시은이가 나를 불렀다.
“응, 시은아.”
“연두랑 동물원 가기로 했어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서 신세연이 말했다.
“아, 정말요? 연두 데리고 동물원 가시려고요?”
“네. 그럴 생각이에요.”
“언제요?”
“최대한 빨리 가려고요. 이번 주나 다음 주 주말 생각하고 있는데.”
“주말에는 사람 엄청 많을 텐데…”
“그런가요?”
“그쵸. 주말에 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녀가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차라리 평일에 시간 내는 거 어때요?”
“평일이요?”
“네.”
내라면 낼 수야 있는데.
왜 이렇게 적극적으로 묻는 거지? 마치 같이 가기라도 하려는 사람처럼.
그 의문은 이어지는 신세연의 말에 바로 풀렸다.
“마침 저도 더워지기 전에 갈 생각이었거든요. 날짜 맞춰서 같이 놀러 가는 거 어때요..?”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어렸을 때 이후로 간 적 없지만, 그녀는 동물원에 간 적이 있을 테니까.
경험자가 있다면 헤매는 일도 없을 테고.
“저야 괜찮죠.”
“잘 됐다! 연두는 어때?”
“시으니랑 가치요..?”
“응, 시은이랑 같이.”
“조아요!”
그렇게 일사천리로 동물원 약속이 잡혔다.
왜 연두보다 시은이가 더 기뻐 보이는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