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440)
440화. 죽음
분명히 아까 집에 걸어올 때까지만 해도 드문드문 떨어지는 수준이었는데.
우산을 하나로 나눠써도 될 정도로.
지금은 아니었다.
쏴아아-
가을 날씨에 보기 힘든 폭우였다.
“지금 와 봐야 할 거 같다, 주원아..”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뿐이었다.
낮게 깔린 목소리로 선생님이 내게 이런 말을 할 이유는.
숨이 막히는 기분.
애써 핸드폰을 귀에 댄 채로 태연하게 목소리를 냈다.
“어디를요?”
듣기 전까지는 진실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이 불안한 예감도, 확실히 듣기 전까지는 사실이라 단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허나 내 귀에 들려왔다.
실낱같은 가능성을 지워버리는 한 마디가.
“.. 장례식장.”
역시 그랬구나.
가장 나오지 않기를 바랐으나 마음속으로 예상, 아니 확신하고 있었던 장소.
그 대상이 누구인지는 생각할 것도 없었다.
선생님의 말이 이어졌다.
“우영이 할머님이 오늘 돌아가셨다고 하는구나.”
사실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을 뿐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 긴 시간이 남지 않았을 거라는 건.
아빠의 죽음을 통해 기적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오늘일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내리는 비를 보고 즐거운 날이 될 거라 생각했던 날, 연두와 함께 처음으로 쇼팽 왈츠를 듣던 도중에 말이다.
아직도 그 선율이 귓가에 맴돌고 있다.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 그렇군요.”
이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우영이였다.
여류 화가 천재경.
그녀는 내가 존경하는 화백이기도 했으나, 어느 순간부터 다른 의미로 더욱 커다란 존재로 자리잡고 있었으니까.
소중한 동생이자 동료의 가장 큰 정신적 버팀목으로 말이다.
자연히 입 밖으로 물음이 나갔다.
“.. 우영이는요?”
내가 비보를 예상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하나였다.
우영이와 수찬쌤의 관계.
나와 마찬가지로 둘도 사제관계였다.
“우영이한테 연락받으신 거에요?”
“아니.”
홍수찬은 얘기했다.
“어머님한테 연락을 받았어.”
“어머님이요?”
“응. 너한테도 꼭 전해달라고 하길래 바로 전화한 거야. 네 번호는 가지고 계시지 않은 거 같더라고.”
납득할 수 있었다.
우영이 어머님과 따로 번호를 교환한 기억은 없는 거 같으니 말이다.
내게 꼭 전해달라고 하신 이유 역시 알 거 같았다.
‘부탁받았으니까.’
개인적으로 어머님이 내게 하신 부탁이 있었다.
언젠가 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무너질 우영이의 버팀목이 되어줬으면 한다고.
여전히 잘 모르겠다.
내가 그런 존재가 되어줄 수 있을지.
“지금 우영이는 어디 있대요?”
“장례식장에.”
“상태는요?”
“.. 글쎄. 나도 물어보긴 했는데……”
말끝을 흐리는 선생님.
이렇게 처진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는 건 그때 이후로 처음이다.
문득 깨달은 한 가지 사실.
‘두 번째구나.’
이게 선생님에게는 처음 겪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
시기가 조금 다를 뿐 이와 같은 일은 과거에도 있었다.
정확히 7년 전에.
어쩌면 선생님이 나보다도 더 쓰린 기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도 지금 막 연락받은 거라. 가 봐야 알 거 같구나.”
“네.”
“바로 올 수 있는 거냐?”
“그래야죠. 병원 위치만 알려주세요. 최대한 빨리 준비하고……”
말하는 도중 눈에 밟히는 한 사람.
지금 방 안 의자에 앉아 아무것도 모르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
다름아닌 내 딸 연두였다.
‘.. 어떻게 얘기해야 하지.’
사실 몇 번이고 생각했다.
이런 날이 온다면 연두에게 어떻게 말해줘야 할지.
허나 답이 나오지 않았다.
죽음이라는 건 상처를 주지 않고서는 얘기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었으니까.
‘더군다나.’
장례식장이라는 장소에 좋지 않은 기억이 있는 연두였다.
떠올리는 게 트라우마가 될 정도로.
부자연스럽게 말이 끊긴 걸 의식해서일까.
선생님이 조심스레 물었다.
“연두는.. 데려올 거냐?”
사실 고려한 것 중 하나였다.
연두가 조금 더 커서 죽음이라는 걸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그 누구의 장례식도 데려가지 않는 게 어떨까 하고.
허나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연두와 할머니가 공유한 시간들이 존재했으니까.
‘타인이라 하기에는.’
그 시간이 결코 짧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 데려가지 않아서 더 큰 후회와 상처를 남길지도 모른다.
그게 내가 내린 판단이었다.
옳은 결정인지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네. 그럴 생각이에요.”
“.. 그래.”
짤막하게 터져나오는 한숨.
장례식장과 얽힌 사정을 알고 있는 만큼, 선생님도 연두가 마음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별다른 말이 없는 걸 보면 내 선택을 존중한다는 의미일까.
침묵 끝에 선생님은 말했다.
“장례식장 위치는 문자로 찍어줄게.”
“네, 그럼……”
“그래. 이따 보자.”
그렇게 전화가 끊겼다.
핸드폰을 손에 든 채로 떨군 나는 한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
여전히 그칠 기새가 없이 쏟아지는 비.
그 속에서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드는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 아빠.”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문 밖으로 살짝 고개를 내민 연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걸까.
“연두야.”
“전화 끝나써요..?”
빼꼼 고개를 내민 모습.
늘 나를 웃음짓게 만드는 장면이지만 지금은 도저히 웃어줄 수 없었다.
나는 애써 시선을 맞추며 대답했다.
“응.”
뭔가 이상함을 느낀 걸까.
한층 작아진 목소리로 연두는 묻는다.
“그럼.. 다시 들어요?”
“.. 응?”
“쇼팽 왈츠…”
맞아. 그랬지.
쇼팽 왈츠를 듣고 있었지. 복잡한 마음에 그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동시에 드는 생각.
‘.. 안 돼.’
더 이렇게 대화를 주고받을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점점 더 말하기가 어려워질 거 같았다.
상상하게 됐으니까.
말했을 때 연두가 지을 표정이, 보일 반응이, 그리고 받게 될 상처가.
“.. 연두야.”
“네에.”
“힘들 거 같아. 지금 쇼팽 왈츠를 마저 듣는 건. 그러니까.. 다음에 듣자.”
자연히 들려오는 물음.
“.. 왜요?”
연두의 얼굴을 보며 머릿속으로 나는 되뇌었다.
너무 슬퍼 보여서는 안 돼.
그렇게 되뇌이며 나는 걸어갔다.
연두를 향해.
툭.
이윽고 나는 연두의 바로 앞에 멈춰섰다.
벽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연두가 머리부터 발 끝까지 눈에 들어온다.
그 앞에 나는 쪼그려앉아 시선을 맞췄다.
“.. 연두야.”
“네, 아빠.”
“우영이오빠 할머니 기억하지?”
고개를 끄덕인다.
방금 얘기했듯 더 지체해서는 안 됐다.
천천히 나는 입을 뗐다.
“우영이오빠 할머니가.. 돌아가셨어.”
지금껏 연두에게 한 말 중 가장 힘겨운 한 마디였다.
***
꽤나 긴 침묵이 흘렀다.
한동안 멍하니 서 있던 연두의 눈동자에 떨림이 느껴진다.
이윽고 그 눈동자는 내 눈을 향한다.
“돌아.. 가여?”
“연두야.”
“어디로 돌아가써요? 집으로?”
떨리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할머니.. 아픈 거 다 나아써요..?”
알 수 있었다.
이해하지 못해서 하는 물음이 아니라는 걸.
돌아가셨다는 표현은 엄마아빠 얘기를 할 때도, 동화책을 읽을 때도 나왔던 표현이니까.
‘죽음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할지는 몰라도.’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지는 않을 터였다.
그럼에도 이렇게 묻는다는 건, 그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닐까.
오히려 그래서 더 힘겨웠다.
연두가 원하는 답을 건넬 수 없는 지금 이 순간이.
“아니야, 연두야.”
“…”
“연두도 알겠지만 할머니는 많이 아프셨어. 사람은 많이 아프면……”
톡.
정말 잠깐이었다.
눈을 보고 말하기가 힘겨워 아주 잠깐 시선을 떨궜을 뿐인데.
토독. 톡. 톡.
고개를 들자 보이는 연두의 얼굴.
울고 있었다.
눈물이 한없이 쏟아진다. 창 밖에 내리는 비처럼.
소리없이 흐느끼며 눈물만 쏟다가 딸꾹질하듯 소리를 낸다.
“흐끅.”
많이 생각했다.
연두가 운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 눈물을 닦아줘야 할지, 감정을 숨기지 않고 함께 펑펑 울어야 할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폭.
말없이 나는 연두를 품에 안았다.
금세 어깨가 젖어들고 귓가에 연두의 목소리가 들어온다.
“약속.. 흑, 했는데…”
더욱 흐느끼며 연두는 말을 이었다.
“다 나으.. 면.. 흑.”
“…”
“다 나으면.. 할머니랑 가치.. 흐끅, 놀러 가기.. 로……”
단둘이 했던 약속인 걸까.
그 멤버에는 연두와 할머니뿐 아니라 나랑 우영이도 끼어있었던 모양이다.
아마 약속한 시점에 이미 그녀는 알고 있었겠지.
이루어질 수 없는 약속이라는 걸.
시간이 지나 흐느낌이 조금은 잦아든 후, 나는 나지막이 입을 뗐다.
“소중했을 거야.”
“.. 네?”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서 연두는 속상하겠지만, 연두만큼이나 할머니도 그 약속이 소중했을 거야. 그리고……”
연두의 머리를 감싸며 말했다.
“연두한테 고마웠을 거야.”
다시 한 번 꽤나 긴 흐느낌이 이어졌다.
***
시간이 지나 진정이 된 연두.
스윽.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더니 내 어깨를 바라보며 말한다.
미안한 표정으로.
“다 젖어써요.. 아빠 옷.”
“괜찮아. 젖으면 어때. 연두가 흘린 눈물인데.”
“.. 콧물도 마니 났는데.”
달라지는 건 없었다.
“걱정하지 마. 옷이야 갈아입으면 되고.”
“.. 네에.”
“연두는 좀 괜찮아?”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연두를 바라보며 나는 넌지시 말했다.
“저기, 연두야.”
“네, 아빠..”
“우영이오빠가 걱정된다고 했잖아.”
내가 얘기한 게 아니었다.
흐느끼던 도중 연두가 먼저 우영이의 이름을 꺼냈다.
한 번 더 울음보가 터지게 만든 이유이기도 하고.
‘그럴 만도 하지.’
연두도 알고 있었다.
할머니가 우영이에게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는지는.
걱정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네.”
“아빠는 지금 우영이오빠를 보러 갈 생각이야.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많이 힘들 테니까.”
“어디 이써요, 우영이오빠..?”
어차피 연두를 데리러 가려면 알려줘야 했다.
나는 조심스레 입 밖에 뱉었다.
“장례식장.”
역시나 어두워지는 얼굴.
아직 장례식장에서의 그 기억을 떨쳐내기엔 무리가 있겠지.
바로 나는 덧붙였다.
“연두를 나쁘게 대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단 한 명도.”
더불어 나는 설명해줬다.
장례식장이 나쁜 장소가 아니라는 것부터 장례를 치르는 목적 등을.
최대한 연두가 갖고 있는 거부감을 없애주고 싶었다.
한층 풀어지는 표정에 안도감을 느끼며 나는 말했다.
“연두야.”
“네에.”
“아빠의 아빠, 그러니까 연두의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있는데 한 번 들어볼래?”
“할아버지가요..?”
“응.”
문득 실소가 흘러나왔다.
생전에 이렇게 존칭을 사용할 정도로 공손한 아들은 아니었다는 게 떠올라서.
아무튼간에 나는 전했다.
아빠가 내게 했던 말을, 딸인 연두에게.
“결혼식은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으면 빠져도 되지만 장례식은 빠지면 안 된대. 가까운 사이가 아니더라도 무조건 가서 같이 울어줘야 된대. 그게 인간의 도리라고.”
이어서 나는 말했다.
“사실 아빠는 그 말이 잘 이해가 안 갔다?”
“왜여..?”
“결혼식은 기쁜 행사고 장례식은 어떻게 보면.. 엄청 슬픈 날이잖아.”
“네.”
“왜 내가 잘 모르는 사람 장례식까지 가서 울어야 할까. 그런 생각이었어. 그 날에도 그런 생각으로 간 거고.”
“그 날..?”
나는 나지막이 답했다.
“연두를 만난 날.”
놀란 표정의 연두.
옅은 미소를 띠며 나는 얘기했다.
“그래서 조금 웃길 수도 있긴 한데.. 아빠는 생각해.”
“어떤 생각이여..?”
“할아버지가 아빠한테 한 그 말이, 아빠랑 연두를 만나게 해 준 게 아닌가 하고.”
이건 딱히 거부감을 덜어주려 꺼낸 이야기가 아니었다.
한 번쯤은 말해주고 싶었다.
아빠가 한 말로 인해 내가 연두를 만나게 됐다는 걸.
“아빠..”
“응.”
“연두 갈래요. 장례식장..”
단지 내 말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자그맣게 속삭이듯 한 마디가 이어졌으니까.
“약속해쓰니까…”
묻지 않았다.
그 대신 연두의 손을 잡고 옷장으로 향했다.
먼저 검은 정장을 꺼낸 뒤에 어두운 계열의 연두의 옷을 골랐다.
“준비됐어, 연두야?”
“네, 아빠.”
갈아입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후 확인한 문자.
병원 위치가 찍혀있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장례식장이었다.
가볍게 씻고 준비를 마친 뒤에, 우산을 챙겨 현관문을 나섰다.
‘조금 그쳤네.’
빗줄기가 조금은 사그라든 상태였다.
차로 이동해 탑승한 뒤 바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퇴근길이 겹친 데다가 비까지 와서 차가 조금 막히긴 했지만 괜찮았다.
“연두야. 장례식에 가면……”
장례식에서 꼭 지켜야 할 몇가지 예절을 설명해줬다.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지킬 거 같긴 하지만 가능한 한 미연의 사고를 방지하고 싶었으니까.
이후 얼마간 더 달린 끝에,
끼익.
우리는 장례식장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