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441)
**************************************************
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
441화. 약속
연두의 손을 잡고 들어간 장례식장.
빈소가 많은 장례식장이다 보니 1층 내부에 꽤 많은 사람이 보였다.
시선을 피할 수는 없었다.
“어머.”
“연두 아니야?”
“맞네! 초록님도 있고..”
알아보고 관심을 드러내는 사람부터,
“여긴 왜 왔지?”
“왜 오긴. 여기 장례식장이잖아. 이유는 하나밖에 없지.”
“옷도 상복이잖아. 연두도 어두운 옷 입었고.”
“그러네.”
“아는 척하는 건 오바겠지?”
“.. 미쳤냐?”
다 들리게 수군거리는 무리도 있었다.
이해는 갔다.
이 장소에 왔다고 해서 모두 슬픔에 빠져있는 사람은 아닌 데다가, 아는 얼굴을 봤는데 그냥 지나치는 게 더 부자연스러운 일이니까.
‘어쩔 수 없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유쾌한 일은 아닐지라도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었으니까.
허나 그 이상은 아니었다.
이곳은 장례식장이고 나와 연두는 조문객이었다.
연두튜브 속 초록과 연두가 아닌 조문객으로서 이곳에 자리하고 싶었다.
꾹.
조금 더 힘주어 연두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런 내 의도를 안 걸까.
멀리서라도 누군가 알아보면 늘 밝게 인사하던 연두도 조용히 내 보폭에 맞춰 따라왔다.
스르륵.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천재경의 빈소가 마련되어 있다는 2층으로 올라갔다.
우영이는 빈소 안에 있을까.
어쩌면 상주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
‘내가 알기로.’
상주의 조건은 총 두 가지였다.
우선 전통적으로는 장애나 질병이 없는 장자가 상주가 된다.
그리고 두 번째.
생전에 고인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 반대로 말하면 고인이 죽었을 때 가장 슬퍼할 사람이 상주가 되기도 하고.
어떻게 그걸 알고 있냐고?
‘모를 수가 없지.’
상주 노릇을 해본 입장에서 모를 수가 없었다.
7년이나 지났지만 일련의 장례 절차는 모두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툭.
이윽고 도착한 천재경의 빈소.
입구에 멈춰서자 처음으로 연두가 자그맣게 입을 연다.
“아빠..”
“응.”
“왜 꽃이 이써요..?”
궁금할 만도 했다.
입구에는 흰색 꽃으로 이루어진 화환이 일렬로 쭉 늘어서 있었으니까.
오늘 돌아가셨다고 들었는데.
벌써 이렇게 화환이 많은 걸 보니, 앞으로 도착할 화환까지 합하면 입구를 가득 메울지도 모르겠다.
국내를 대표하는 화백이다 보니 같은 업계의 지인이 보낸 화환도 많이 보였다.
“이건 화환이라는 거야.”
“화한..?”
“응. 돌아가신 할머니를 추모.. 그러니까 그리고 생각한다는 의미로 사람들이 보내는 꽃인 거지.”
아주 살짝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
“할머니는 정말 좋은 분이셨나 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를 위해서 화환을 보낸 걸 보면.”
그런 내 말에 연두는 또 묻는다.
“화한이 만으면.. 조은 사람이었던 거예요?”
확실히 천재경은 그랬다.
잠깐의 대화와 사려 깊은 말투에서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으니까.
허나 연두의 말에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완전히 예외의 경우를 나는 알고 있거든.
“아니. 꼭 그런 건 아니야.”
“.. 그럼요?”
“아빠의 아빠, 그러니까 연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화환이 그렇게 많이 오지 않았거든.”
이유는 간단했다.
내 성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아빠도 인간관계가 넓은 편이 아니었다.
친구가 많지도 않았고 노는 걸 좋아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좁은 인간관계 속에서는 아빠는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바보같이 느껴질 정도로.
그래서 당당히 얘기할 수 있었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 세상에서 제일.”
“…”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연두.
괜히 또 슬퍼질 거 같아 입가에 미소를 띠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후 고개를 돌렸다.
빈소에 들어가기 전 해야 할 게 있었다.
결혼식에서 축의금을 내듯이 장례식에는 부의금을 내는 절차가 존재했으니까.
‘이건 그대로네.’
놓여있는 다섯 종류의 봉투.
저마다 다른 의미의 한자가 적혀 있는 봉투였다.
부의, 근조, 추모, 추도, 애도.
그중에서 나는 고민 없이 한 가지 봉투를 손에 들었다.
追悼(추도)
죽은 사람을 생각하여 슬퍼한다는 의미가 담긴 한자였다.
뒤편 하단에 이름을 적었다.
이후 준비해 온 부조금을 봉투 속에 집어넣었다.
입구에서의 더 이상의 절차는 없었다.
“이제 들어가자, 연두야.”
“네에..”
그렇게 나는 연두의 손을 잡고 빈소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빈소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를 보고 반응한 건 우영이 어머님이었다.
그녀가 달려와서 말했다.
“안녕하세요. 빨리 오셨네요.”
“네, 안녕하세요.”
“죄송해요. 선생님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연락드렸어야 하는데..”
“아닙니다.”
우영이를 통해서 얘기하지 않은 건 나름의 사정이 있었던 거겠지.
수찬쌤도 어머님께 연락받았다고 했고.
그녀는 연두를 향해서도 미소를 띠며 말했다.
“연두도 와줬구나?”
“네에..”
“고마워라. 그럼 이쪽으로……”
그녀는 바로 분향소 앞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향이 타고 있는 걸 보니 따로 분향을 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고개를 드니 눈에 들어왔다.
환하게 미소 짓고 있는 천재경의 사진과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각양각색의 꽃들이.
잡고 있는 연두의 손에서 떨림이 느껴진다.
“연두야.”
“네, 아빠..”
“절은 아빠만 해도 되니까 연두는 잠깐 옆에 있을래?”
사실 드물었다.
어린아이가 장례식에 와서 절을 하는 경우는.
부모를 따라서 절을 하는 경우가 아예 없지는 않지만, 보통은 옆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 정도면 다행이지.’
통제가 안 돼서 웃고 떠들고 장난을 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어떻게 아냐고?
상주 역할을 하며 실제로 겪은 사례니까.
‘그런 걱정은 안 하지만.’
굳이 절을 함께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허나 연두는 대답했다.
“…… 하고 시퍼요.”
“응?”
“연두도.. 할머니한테 인사하고 시퍼요..”
연두한테는 절이 인사인 건가.
사실 이럴 걸 대비해서 장례식장에서 절을 하는 방법을 알려주긴 했다.
애초에 연두도 절을 하는 법은 잘 알고 있고.
그걸 떠나서 마지막 인사까지 막고 싶지는 않다.
“그래. 헷갈리면 아빠를 따라 하면 돼. 천천히.”
“.. 네에.”
그렇게 나와 연두는 고인을 향해 무릎을 꿇고 두 번의 절을 했다.
이어지는 상주와의 맞절.
맞절을 하며 비로소 나는 알 수 있었다.
‘우영이는 없구나.’
상주 중에 우영이는 보이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선 뒤에 뒤로 물러나자 들려오는 말.
나이가 드신 분들의 얘기였다.
“어쩜.. 애기가 저렇게 얌전할까?”
“절도 잘하고.”
“얘, 이름이 뭐니?”
아마 천재경의 친구분들이 아닐까 싶었다.
자그맣게 연두는 대답했다.
“연두에요..”
“그렇구나. 연두는 재경이랑 아는 사이였니?”
“네.”
“어떻게 이렇게 예쁜 아기 공주님이랑 재경이가 알게 됐을까? 여기 훤칠한 아빠 때문인가?”
뜻밖의 대답이 연두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할머니랑 연두는.. 친구여써요.”
“.. 친구?”
“네. 할머니가 연두한테 친구라고 해쓰니까.. 연두도 할머니 친구에요..”
“호호, 그렇구나.”
미소짓는 그녀를 향해 연두는 물었다.
“할머니는요..?”
“응?”
“할머니도 할머니랑 친구여써요…?”
조금 호칭이 겹치긴 하지만 의미를 전달하는 데는 충분했다.
그녀는 가벼운 미소를 머금은 채로 답했다.
“친구.. 글쎄.”
“…?”
“친구였는데.. 정말 친한 친구였는데……”
신기하다.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인데도 그 속에서 깊은 슬픔이 묻어난다.
그녀는 연두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알려주지 않았단다.”
“.. 으응?”
“그렇게 아픈 걸, 재경이는 떠나기 직전까지 알려주지 않았어.”
그럴 거라 생각했다.
눈앞에서도 고통을 내색하지 않는 분이셨으니까.
친구들에게도 괜한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
“.. 아프겠다.”
그런 할머니를 향해 연두는 한 마디를 뱉었다.
반응하는 그녀.
“응?”
“할머니.. 마니 아파요, 마음..”
“.. 나 말이니?”
“네.”
실소를 뱉으며 할머니는 말했다.
“재경이랑 왜 친구가 됐는지 알겠구나.”
그렇게 할머니와의 대화가 끝나고 우영이 어머니가 다가왔다.
그녀는 테이블을 가리키며 물었다.
“식사 좀 하시겠어요?”
“아, 저는 괜찮습니다. 연두는 어때?”
고개를 좌우로 젓는 연두.
사실 식사는 언제든 해도 되지만 그 이전에 걸리는 게 존재했다.
아마 연두도 같은 마음이겠지.
“.. 우영이는 어디 있나요?”
빈소 안에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 거다.
만약 그렇다면 어머님이 이렇게 태연할 수 없을 테니까.
“아, 그게.. 방금까지는 상주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요.”
“네.”
“워낙 오래 앉아 있어서 잠깐 바깥 공기 좀 쐬라고 보냈거든요. 아마 건물 외곽 공터 벤치에 앉아 있을 거예요. 조금만 기다리면 올 텐데……”
역시 상주 역할을 하고 있었구나.
재차 식사를 권유하는 어머니의 말을 정중히 거절한 뒤에 빈소를 나섰다.
기다려서는 안 될 거 같았다. 왜인지 그래야만 할 거 같았다.
***
우영이를 찾아 나온 공터.
담배꽁초가 여기저기 버려져 있다.
다행히 연두는 크게 의식하지 않는 눈치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터벅. 터벅.
그런 와중 눈에 들어왔다.
벤치에 앉아 있는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의 실루엣이.
좀 더 걸어가니 알 수 있었다. 우영이라는 걸.
바로 앞까지 다가가 목소리를 냈다.
“우영아.”
흠칫 놀라 옆을 돌아본다.
수축하는 동공.
내가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눈치다.
이내 표정이 돌아오고 우영이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어떻게 왔어요, 형?”
있는 그대로 답했다.
“어머니가 수찬쌤한테 전화하셨어. 나는 수찬쌤한테 전해 들었고.”
“아.”
“연락 안 하려 그랬냐?”
녀석은 태연하게 답했다.
“당연히 하려 했죠. 내일쯤이나.”
“왜 내일인데?”
“그냥 뭐, 큰 이유는 없고. 서두를 필요 없잖아요.”
이어서 우영이는 피식 웃으며 연두를 향해 말했다.
“너도 따라왔냐, 땅콩?”
“우영이오빠..”
“왜 표정이 그렇게 우울해? 눈은 퉁퉁 부어가지고. 설마 울었냐?”
그래. 확실히 생각한 모습과는 달랐다.
침울할 거라 예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표정과 말투니까.
오히려 평소보다도 더 밝은 거 같다.
“전에도 내가 말했잖아. 땅콩 너는 울면 못생겨진다고.”
서슴없이 장난까지 친다.
그런 우영이를 향해 나는 넌지시 물었다.
“괜찮은 거야?”
“뭐가요?”
“지금. 괜찮은 거냐고.”
우영이는 실소를 뱉으며 답했다.
“안 괜찮을 건 뭐예요.”
이어지는 녀석의 말.
“할머니 죽기 전에 못 한 얘기도 없고 마지막 모습도 봤어요. 그리고 알고 있었잖아요.”
“.. 뭘?”
“곧 돌아가실 거요.”
그렇다.
마지막으로 병문안을 간 시점에 우영이는 말했다.
할머니는 죽을 거라고.
과거의 내가 아빠를 보며 겪었던 포기와 체념의 과정.
흔히들 하는 착각이 있다.
예상한 죽음은 큰 충격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
확실히 그럴지 모른다.
갑작스러운 죽음에 비해 느끼는 충격은 덜하겠지.
‘그게 전부야.’
딱 그 정도의 얘기였다.
충격이 덜하다고 해서 멀쩡하다는 의미가 되지는 않는다.
갑작스러운 죽음이든 그렇지 않든, 소중한 사람과 함께한 추억은 같으니까.
“저도 놀랐어요.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아서.”
거짓말이다.
아무렇지 않았을 리 없잖아.
할머니와 함께한 모든 추억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머릿속에 떠올랐을 텐데.
“그러니까 괜히 저 때문에 우울해질 필요 없어요.”
역시 거짓말이다.
신경 쓰게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아무도 지금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을 거란 생각에 하는 말이겠지.
누구도 위안이 될 수 없을 거란 생각에.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나 생각보다 진짜 괜찮은 손주였구나. 이렇게 아쉬운 게 없는 걸 보면.”
역시나 거짓말이다.
아무리 추억이 흘러넘쳐도 같이 보내지 못한 시간이 아쉬워서 죽도록 미안한데.
더 잘해주지 못해 심장이 찢어질 거 같은데.
그게 남은 사람의 마음인데. 누구보다 내가 잘 아는데.
계속해서 우영이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아, 슬슬 올라가야겠다.”
그렇게 중얼거린 뒤 우영이는 말했다.
“맞다, 형.”
“응.”
“또 손 필요하면 얘기해요.”
“.. 손?”
녀석은 씩 웃으며 말했다.
“이제 마음 놓고 그릴 수 있을 거 같거든요. 그동안 그림 못 그려서 손이 간질간질했는데……”
그때였다.
우영이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나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자그마한 두 팔이 우영이를 감싸 안았으니까.
포옥.
신기하게도 전혀 부족함 없이 감싸 안은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얼마간 이어지는 침묵.
침묵을 깬 건 연두의 품속에 들어간 우영이의 한 마디였다.
“.. 땅콩. 너 지금 뭐 해?”
목소리에서 엄청나게 당황한 게 느껴진다.
그럴 만도 했다. 어떠한 예고도 없이 발생한 상황이니까.
여전히 우영이를 안은 채로 연두는 말했다.
“약속해써요..”
“.. 약속?”
“우영이오빠가 정말 슬퍼하는 걸 보면.. 연두가 꼬옥 안아주기로.. 할머니가 연두 안아준 것처럼……”
끝이 아니었다.
“새끼손가락 걸고……”
무려 새끼손가락을 걸고 한 약속이구나.
동시에 드는 생각.
겉보기에 우영이는 슬퍼 보이지 않았다.
계속해서 웃었고, 장난을 쳤고, 아무렇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반대로.’
약속의 이행 조건은 슬퍼 보일 때였다.
만약 연두의 눈에 우영이가 슬퍼 보이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는 약속이란 뜻이다.
그런데… 보였나 보다.
웃음과 괜찮다는 말 뒤에 가려진 우영이의 슬픔이.
끅. 끄윽.
이윽고 나는 처음으로 볼 수 있었다.
우영이가 오열하는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