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446)
446화. 아름다운 졸업
“뭐든지 괜찮으니까 자유롭게 그려보세요. 졸업하게 된 기분을,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했던 추억을.”
그 말에 한 남자아이가 번쩍 손을 든다.
“선생님!”
“응?”
“졸업을 안 하면 어떠케요..?”
질문의 의미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알다시피 어린이집에는 연두와 같은 일곱 살만 있는 게 아니니까.
지금 질문한 아이만 해도 더 어려 보이고.
“간단해요.”
마침 얘기하려던 참이었다.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졸업하게 될 언니오빠들과 함께한 즐거운 추억을 그리면 돼요.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아! 네!”
“그래요. 그럼 바로 그려볼까요?”
또다시 아이들은 입을 모아 대답했다.
“네, 네, 선생님!”
그렇게 단비어린이집 아이들의 미술 수업이 시작됐다.
아, 참.
내가 여기 오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초대받았지.’
유미경으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시간이 괜찮다면 아이들의 일일 미술강사가 되어줄 수 있냐고.
일말의 고민도 없이 수락했다.
재미있을 거 같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연두의 반응이 보고 싶었으니까.
사각. 사각.
열심히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아이들.
선생인 만큼 빈 공간을 오가며 그림 그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림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당연한 거지.’
주어진 종이는 한 장뿐.
각자 기억에 남는 게 모두 다를 테니 그리는 것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 재미있는 거고.
돌아다니다가 한 아이의 그림을 보고 발을 멈췄다.
“우리 애기는 이름이 뭐야?”
“애기 아닌데…”
“하하, 미안.”
빠르게 사과하자 크레파스를 든 채로 웃으며 이름을 알려준다.
“세아에요! 김세아!”
“예쁜 이름이구나. 우리 세아, 뭘 그리는 건지 물어봐도 될까?”
“동화책 읽는 거요!”
“동화책?”
“네! 친구드리랑 언니오빠드리랑 다가치 앉아서 동화책 읽는 거…”
혹시나 해서 물었다.
“그 동화책 이름이 뭔데?”
바로 돌아오는 대답.
“소녀와 환상의 숲!”
괜히 뿌듯해지네.
그런 와중에 세아가 속삭이듯 내 귓가에 대고 얘기한다.
“이건 비미리긴 한데……”
잠깐만. 굉장히 귀에 익은 도입부다.
소환숲과 관련된 비밀이라면 내가 아는 한 하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어지는 말.
“소녀와 환상의 숲을 연두언니 아빠가 그린 거래요…!”
이게 아직까지 비밀이었구나.
아니, 그걸 떠나서 세아는 전혀 모르는 눈치다.
내가 그 사람이라는 걸.
‘아까 말하지 않았나?’
처음에 민우가 분명히 얘기했던 거 같은데.
못 들었나 보다.
괜히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모르는 척 말했다.
“와, 정말?”
“네! 정말로요! 짱 신기하죠!”
“그러게. 연두언니 아빠 그림 짱 잘 그리나 보다.”
“당연하죠! 선생님.. 소녀와 환상의 숲 안 봐써요?”
설마 아직도 안 봤냐는 듯한 물음.
슬슬 웃음을 참기 힘들다.
“응, 아쉽게도.”
그렇게 대답한 뒤에 말을 이었다.
“그럼 세아야.”
“네.”
“그 연두언니 아빠랑 선생님 중에 누가 더 그림 잘 그릴 거 같아?”
나랑 나 중에 누가 더 잘 그릴 거 같냐는 세상 황당한 질문이다.
굳이 따지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인가.
막상 질문을 들은 세아는 골똘히 고민하더니 답한다.
“몰라여!”
“왜?”
“저는 선생님 그림 본 적 없으니까! 그래도……”
“그래도?”
“연두언니 아빠가 더 잘 그릴 거 가타요…”
과거의 나한테 져 버렸네.
그만큼 소환숲의 임팩트가 큰 모양이다.
슬슬 말해줄 때인가.
바로 알려주기보다는 조금 더 재미있는 방식이 있을 거 같았다.
“그렇구나. 그럼 세아야.”
“네, 선생님.”
“비밀을 말해줬으니까 선생님이 보답의 의미로 아주 조금만 도와줘도 될까?”
세아는 선뜻 고개를 끄덕이며 크레파스를 내밀었다.
손에 쥔 연두색 크레파스.
공략하는 건 동화책 표지 부분이었다.
사삭. 삭.
크게 공을 들일 필요는 없었다.
기존의 소환숲 표지 느낌을 어느 정도 내는 걸로 충분했다.
그런데 그것도 조금 지나쳤던 걸까.
“…”
세아의 입이 점점 벌어진다.
크레파스를 내려놓고 나니 세아가 토끼 눈이 된 채로 나를 바라본다.
“서, 선생님..”
“응?”
“소녀와 환상의 숲 봤죠!”
입가에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봤지. 왜냐하면……”
“.. 응?”
“선생님이 그렸거든. 소녀와 환상의 숲.”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이다.
“.. 왜요?”
“그야, 선생님이 연두 아빠니까.”
끔뻑.
눈을 한차례 끔뻑이더니 세아는 소리쳤다.
“.. 우악!”
주위 아이들이 깜짝 놀라 돌아본다.
그중에는 민우도 포함되어 있었다.
“뭐야. 왜 그래, 김세아.”
“미, 미누오빠..”
“왜?”
“선생님이.. 선생님이 연두언니 아빠래!”
싱겁다는 듯 민우는 대답한다.
“뭐야. 그걸 이제 알았냐?”
“.. 오빠는 알아써?”
“당연하지. 아저씨랑 같이 놀이터에서 논 적도 있는데.”
“지, 진짜?”
“그래.”
어깨를 으쓱하며 녀석은 말한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도 같이 했다고!”
“우와..”
아니, 이 녀석은 왜 이걸 자랑이라고 하고 있는 건데.
세아는 왜 감탄하는 거고.
그런 와중 민우는 세아의 그림을 보더니 말했다.
“뭐, 뭐야!”
“응?”
“반칙이다! 아저씨.. 아니, 선생님이 김세아 그림 그려줬다!”
“.. 엥? 반칙?”
그게 왜 반칙이야.
항변할 틈도 없이 주위에서 쏟아졌다.
“저도 그려주세요!”
“선생님!”
“도아주세여..!”
아무래도 감독만 하긴 어려울 거 같았다.
***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도움 요청.
이리저리 이동하다가 마지막에 도달한 곳은 다름 아닌 연두의 앞이었다.
“연두야.”
깜짝 놀란 연두가 그리던 그림을 품에 감춘다.
그리고 나를 바라본다.
얼굴에 드리우는 반가운 표정.
“.. 아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자 연두가 자그맣게 정정한다.
“서, 선생님..”
딱히 그런 의도는 없었는데.
정말이다.
빙긋 웃으며 나는 물었다.
“잘 그리고 있어, 연두야?”
“네에.”
“선생님이 도와줄 건 없고?”
살며시 고개를 끄덕인다.
하기야 이제 웬만한 그림은 혼자서도 곧잘 그리는 연두니까.
나름 그림쟁이의 딸 아닌가.
“그래.”
옆을 돌아보며 물었다.
“시은이랑 레나는?”
둘도 잘 그리고 있는 거 같았다.
꼭 도와줄 필요는 없다.
그림을 그리는 주체는 내가 아니라 아이들이니 말이다.
“그럼 얘들아.”
“네.”
“열심히 그려서 이따가 보여주는 거다? 선생님한테.”
연시레가 동시에 대답했다.
“네, 선생님!”
***
시간이 지나 발표가 시작됐다.
“그래. 다음은 민우가 발표해 볼까?”
“예쓰!”
종이를 들고 튀어나온 민우는 발표를 시작했다.
“저는 그렸씁니다! 소환숲 연극!”
의아할지도 모른다.
소환숲 연극이 뭘 뜻하는 건지.
꽤 지난 일이긴 하지만, 연두튜브 천만 이벤트 때였다.
‘고민 끝에 떠올린 아이디어가 연극이었지.’
카메라는 내가 잡았고 단원들은 다름 아닌 단비음악대 아이들이었다.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다.
부모님들은 흔쾌히 허락해 주셨지만, 여러모로 준비가 복잡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아니었어.’
생각 이상으로 즐거웠다.
준비 과정부터 시작해서 최종적으로 연극을 찍을 때까지.
각자 캐릭터에 어울리는 분장을 한 아이들은 정말이지 장난 아니게 귀여웠고.
역할도 찰떡이었다.
주인공인 소녀 율이는 연두가, 소녀의 든든한 조력자인 나비 역할은 레나가 맡았지.
세계관 최강자인 너구리 데우스는 시은이가 맡았다.
‘검은색 페도라.’
데우스의 시그니처 소품인 검은색 페도라.
모자를 쓴 시은이의 모습이 너무 어울려서 감탄이 나왔던 기억이 있다.
조금 의아할지 모른다.
데우스는 남자인데 왜 시은이가 맡은 거냐고.
‘.. 아니야.’
책 속에서 데우스의 성별은 한 번도 나온 적 없었다.
설정상 데우스는 숲 자체였다.
성별을 논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그 캐릭터를 시은이는 정말이지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최고의 연극이었지.’
그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원숭이 무리가 총출동해서 호랑이를 물리치는 장면.
화력이 장난이 아니었으니까.
“저가 멋지게 율이를 구해내는 장면입니다!”
민우의 역할은 말할 것도 없이 주드였다.
매일같이 주드 흉내를 내곤 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구나.”
초점이 다소 연두와 자신한테 맞춰져 있긴 하지만.
단비어린이집 아이들과 함께한 추억이라는 점에서 주제를 어긋나지는 않았다.
즐거웠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하고.
‘장난 아니었으니까.’
꽤나 대형 프로젝트였던 만큼 연두부들의 반응도 엄청났던 게 기억에 남아있다.
기회가 된다면 또 시도해봐야겠네.
다음은 초등학생 버전이 되려나.
발표는 계속해서 진행됐다.
레나는 처음 어린이집에 왔을 때 그림을, 시은이는 친구들 앞에서 단비음악대 연습을 하는 장면을 그렸다.
“그래. 다음은……”
살며시 손을 드는 다섯 살 여자아이.
유선이라는 아이였다.
앞으로 나오는 발걸음부터 수줍음이 많아 보인다.
“저는.. 인형노리 하는 걸 그려써요……”
“그렇구나. 좀 더 자세하게 얘기해 줄 수 있니?”
“갖고 놀고 시펐는데.. 토끼 인형.. 하나도 업써서……”
아직 어려서 조금은 의사 전달이 미숙한 거 같다.
전이라면 못 알아들었을지도 몰라.
허나 지금은 아니다. 이 정도 해석이야 식은 죽 먹기니까.
“토끼 인형을 가지고 놀고 싶었는데 하나도 없었구나? 그래서 속상했고.”
말하지도 않은 속상한 감정까지 끌어내는 이 디테일.
스스로도 감탄이 나온다.
역시나 유선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 네.”
“그런데? 속상해서 유선이는 어떻게 했어?”
“속상해서.. 속상해서 가만히 이썼는데…”
“있었는데?”
반드시 답을 이끌어낼 수 있는 끝말 따라 하기 화법.
효과는 굉장했다.
“손에 와써요. 예쁜 토끼인형…”
“정말? 갑자기?”
“네. 연두언니가…”
생각지 못한 타이밍에 튀어나온 연두의 이름.
“연두언니가.. 토끼인형 줘써요…”
전혀 예상 못 했다.
그림 그리는 걸 도와주긴 했어도 아이들이 뭘 그리는지는 1도 몰랐으니까.
여기서 연두의 미담이 나올 줄이야.
화악.
당사자인 연두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상태다.
유선이는 계속해서 말했다.
“연두언니는 마음 엄청 착해요.. 유람이언니도 시으니언니도 가치 재밌게 놀아주고, 미누오빠도 놀리긴 해도.. 유선이 괴롭히면 혼내준다고 하는데……”
떨리는 목소리.
언니오빠들을 향한 미담이긴 한데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다.
언제였더라. 이런 분위기를 느낀 게.
‘.. 그래.’
오래전 기억이었다.
학교에서 수련회를 가서 야밤에 불을 피워두고 부모님 얘기를 할 때.
정확히 이런 분위기를 느낀 적 있었다.
나는 안 울긴 했지만.
‘큰일이야.’
이러려고 주제를 ‘졸업’으로 정한 건 아니었는데.
벌써 앉아있는 몇몇 아이들의 눈시울도 붉어져 있다.
결국 유선이는 마침표를 꽂았다.
“저는 시러요.. 졸업.”
“.. 유선아.”
“졸업하면.. 언니드리랑, 오빠드리랑 헤어져야 하니까……”
동시에 유선이의 눈에서 눈물이 똑 떨어진다.
그게 도화선이었다.
본디 아이들이란 누군가 우는 모습을 보면 따라서 울기 마련이니까.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민우까지 분위기를 탄 건지 이를 악물고 끅끅거리고 있다.
‘.. 일 났네.’
이대로면 다들 눈물바다가 되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아찔했다.
일일 강사로 초빙받아 한다는 게 아이들을 울리는 거라니.
믿고 맡겨준 선생님을 뵐 면목이 없잖아.
그때였다.
스윽.
위로 올라가는 손.
손을 든 아이는 다름 아닌 연두였다.
“선생님..”
“.. 응?”
“발표하고 시퍼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락.
그에 따라 연두는 종이를 들고 천천히 걸어나왔다.
유선이의 옆에 선 모습.
한 뼘 정도 큰 키를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크긴 컸구나.’
매일같이 봐서 내게는 늘 같은 모습이었는데.
두 살 어린 동생과 함께 선 걸 보니 확실히 조금은 성장했구나 싶다.
뒤이어 들려오는 목소리.
“연두는…… 아!”
휙휙 고개를 젓고는 다시 말한다.
“저는.. 그렸어요.”
“뭘?”
“초등학생이 된 연두랑 친구들.. 그리고 단비어린이집.”
실제로 연두가 그린 그림 속에서 몇몇 아이들은 책가방을 메고 있었다.
배경은 단비어린이집으로 보인다.
이어지는 연두의 말.
“.. 소중해요.”
“응?”
“친구들도, 동생들도, 그리고.. 선생님도. 연두는 너무 소중해요.”
아직 조절이 안 되나 보다.
3인칭 화법이.
이번에는 자각하지 못한 채로 계속해서 이야기한다.
“소중한 사람을 못 만나면 슬프니까..”
알 거 같았다.
연두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그린 그림의 의미가 뭘지.
내 생각이 맞다면 이어지는 연두의 말은 앞서 유선이가 한 말의 답이 될 거 같았다.
“졸업을 해서, 초등학생이 돼도… 올 거에요.”
“어디에, 언니..?”
“단비어린이집에.”
유선이를 향해 연두는 생긋 웃으며 덧붙였다.
“언니가 유선이 보러 올께. 그러니까 울지 마, 유선아. 헤헤.”
“언니…”
마음이 따뜻해지는 장면.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연두의 말이 도화선이 된 걸까.
“나도!”
“나도 올 거야!”
“주드는 동료 배신 안 한다, 원숭!”
민우는 아직도 이러네.
어쨌거나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
이은경의 표현을 빌리자면, 단비어린이집 아이들은 아름다운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
어느새 시월.
이제 연두가 어린이집에 다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길어도 올해까지겠지.
그 후에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준비를 하게 될 테고.
‘뭐가 좋을까.’
벌써부터 고민이었다.
입학 기념 선물로 뭘 주는 게 좋을지.
뭐, 시간은 아직 많으니 천천히 생각해 보기로 하자.
그때 걸려온 전화.
“오빠!”
주연이였다.
기분이 좋을 때 나오는 특유의 텐션 높은 목소리.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되게 신나 보이네.”
“헤헷, 티 많이 나요?”
“응. 저번에 얘기한 ‘기회’에 관한 건가?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히면 얘기해주겠다면서 궁금하게만 만들고 얘기 하나도 안 해 준 거.”
짓궂은 내 말에 주연이는 칭얼대듯 얘기했다.
“헐.. 그렇게 말하면 제가 되게 나쁜 사람 같잖아요. 저는 괜히 설레발 떨어서 주위 사람들 기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건데, 히잉..”
“하하, 알지. 장난친 거야.”
이어서 나는 말했다.
“그래서 지금 나한테 전화했다는 건.. 가닥이 잡혔다는 거로 받아들여도 되는 거지?”
“.. 백프로는 아니지만요? 사실……”
“잠깐만.”
주연이의 말을 끊은 다음 나는 얘기했다.
“자세한 걸 듣기 전에 나한테 몇 번째로 전화한 건지 물어봐도 되나?”
잊을 만하면 수찬쌤이 쓰는 멘트.
지금이 타이밍이란 생각에 슬쩍 사용해 봤다.
주연이는 쿡쿡 웃으며 대답했다.
“놀랍겠지만 첫 번째예요.”
“어? 정말?”
“네. 제가 말했잖아요. 가닥이 잡히면 제일 먼저 오빠한테 말한다고.”
솔직히 감동이었다.
이어서 들려온 상세한 얘기는 나를 놀라게 만들기 충분했다.
예상한 것보다 더 큰 기회였으니까.
“그러니까.. 방송사에서 서바이벌 형식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기획한다는 거지? 내년 상반기로 예정되어 있고.”
“네.”
“연습생 101명이 경쟁해서 최종적으로 뽑힌 11명이 걸그룹으로 데뷔해서 1년간 활동하게 되는 거고?”
“맞아요.”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다.
“그 101명에 주연이 네가 들어간 거고?”
“.. 네.”
“나이스!!”
“꺅!”
놀라게 한 건 미안하지만 진심에서 우러나온 쾌재였다.
정말 기뻤으니까.
주연이가 그런 좋은 기회를 얻었다는 게.
“오, 오빠가 이렇게 기뻐해줄 줄 몰랐는데..”
“당연히 기쁘지.”
한껏 기쁨을 나눈 뒤에 주연이는 말했다.
“사실 조금 걱정되긴 해요.”
“응? 뭐가?”
“저는 걸그룹을 꿈꾼 게 아니다 보니까.. 계속 연습은 하고 있지만 춤은 잘 못 추거든요.. 몸치이기도 하고.”
바로 납득이 가는 이유였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적어도 수년간 춤을 연습해온 연습생일 텐데.
확실히 춤 실력에 있어서는 주연이가 많이 밀리겠지.
“그리고.. 듣기로는 대형 기획사 연습생들도 엄청 많다고 하더라고요. 삼사에서도 오고.”
“삼사라면..”
“네. MS하고 YJ하고……”
그건 좀 무섭긴 하네.
하지만 나는 확신이 있었다.
춤 실력은 떨어질지 몰라도 주연이는 그걸 커버할 수 있는 노래 실력이 있으니까.
나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리고 기죽을 필요도 없어. 어차피 한 공간에서 경쟁해야 한다는 건 같으니까.”
“네, 고마워요, 오빠.”
“그렇다고 춤 연습도 빼먹으면 안 된다?”
“와.. 지금 오빠 완전 우리 회사 이사님 같았어요.”
“.. 그랬나?”
걱정하는 마음에 너무 오지랖을 부렸나 보다.
어련히 잘할 텐데.
“신기하게.. 오빠한테는 뭐든 다 얘기하게 되는 거 같아요. 막 얘기하고 싶기도 하고.”
“.. 그래?”
“네. 그래도 되는 사람 같아서.”
꽤 울림이 있는 말이었다.
막상 주연이는 너무 오글거렸다며 괜히 장난을 쳐서 넘기긴 했지만.
그렇게 전화가 끊겼다.
며칠이 흐르고 나서, 또 전화가 걸려왔다.
‘.. 예림이?’
뜻밖의 연락이었다.
주연이는 몰라도 예림이가 먼저 전화를 하는 경우는 드물었으니까.
대부분 메신저로 하기도 하고.
무슨 일이지?
“여보세요.”
전화를 받으니 들려오는 목소리.
“.. 오빠, 저 예림이인데요.”
첫마디로 알 수 있었다.
주연이처럼 좋은 이유로 건 전화는 아니라는 걸.
그걸 확신하게 만드는 짤막한 한 마디가 이어졌다.
“잠깐 시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