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452)
452화. 입학식
-신입생 반 편성 안내드립니다.
꼭 마주잡은 손.
나를 포함해서 아이들 모두 한 마음 한 뜻이었다.
연시레가 같은 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희박하긴 하지만.’
선화초등학교 1학년은 총 여섯개의 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반 편성 방식은 랜덤이고.
그렇기에 의도적으로 떨어트릴 수도 없지만, 확률상 세 명이 같은 반이 될 가능성은 무척 낮았다.
‘.. 알아.’
그 사실을 알면서도 걸어보고 싶었다.
실낱같은 희망에.
떨리는 상황 속에서 나는 마우스를 클릭했다.
달칵.
이윽고 화면에 떠오르는 반 편성 결과.
순서는 차례대로 1반부터였다.
한 명 한 명씩 천천히 이름을 읽어내려갔다.
“후우..”
1반에는 없었다.
사실 나오지 않는 편이 좋았다.
그렇게 반이 넘어갈수록 연시레가 같은 반일 확률이 늘어나는 거니까.
“민우는 2반에 배정된 거 같네.”
낯익은 이름이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단비어린이집 아이들도 대부분 선화초에 입학했을 테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긴장한 탓인지 연두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 2반이여?”
“응.”
“그럼 연두랑 다른 반 된 거에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지. 그리고 시은이랑 레나랑도.”
이유는 간단했다.
2반 명단에도 연시레의 이름은 없었거든.
점점 커지는 가능성에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게 느껴진다.
한편 연두는 조금 속상한 표정이다.
‘하긴.’
시은이와 레나가 아니라 해도 민우 역시 연두의 소중한 친구였다.
무려 3년의 시간을 어린이집에서 함께한.
속상한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녀석은 더 그렇겠지.’
지금 확인했다면 아마 바닥을 뒹굴며 땡깡을 부리고 있지 않을까.
연두랑 같은 반이 되게 해 달라고.
안타깝지만 그건 불가능해, 민우야.
초등학생이 된 이상 고집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현실의 쓴 맛을 알게 될 때가 됐다.
‘뭐, 기회는 있으니까.’
알다시피 초등학교는 6학년이었다.
1학년 때 같은 반이 안 됐다고 해도 다섯번의 기회가 더 있는 셈이다.
그중 한 번은 되지 않을까.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지금 중요한 건 연시레의 반 배정이었다.
스르륵.
마우스 커서는 계속해서 내려갔다.
어느새 떠오른 숫자 5.
즉, 4반까지 연시레의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 순간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이거 진짜.. 어쩌면… 될 수도 있겠는데?’
솔직히 그리 기대하지는 않았다.
수학을 못하긴 하지만 여섯개의 반 중에 연시레가 같은 반이 될 확률 정도는 생각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극악의 확률이었다.
헌데 지금으로서는 아니었다.
‘최소 두 명은 같은 반이야.’
남은 반이 두 개고 연시레는 세 명이니 경우의 수는 두 가지였다.
2대 1로 갈리거나 전부 같은 반이 되거나.
일평생 수학을 싫어했지만 지금은 이렇게 짜릿할 수가 없다.
‘.. 좋아.’
이제 5반이다.
여기부터는 정말 운명의 갈림길인 셈이다.
자칫 못 보고 넘어가는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나는 더더욱 신중하게 이름을 읽어내려갔다.
“고성민, 이두호, 서현우……”
또다시 나온 낯익은 이름.
단비어린이집 출신 현우는 5반에 배정된 거 같았다.
그런 와중 등장했다.
“.. 이레나.”
따로 취득한 레나의 한글 이름이었다.
독일 이름을 그대로 따 와서 성만 붙인 독특한 이름.
동명이인일 수가 없었다.
“레나는 5반인 거 같네.”
“5반…”
떨리는 목소리로 레나가 물었다.
“연두랑 시은이는요..?”
“잠깐만.”
그렇게 말한 게 민망할 정도로 바로 등장했다.
시은이의 이름이.
“연시은.”
“시, 시은이도 5반이에요..?”
“응.”
세 아이의 입이 벌어진다.
그럼에도 마냥 기뻐하지 않는 건 연두 때문이겠지.
나도 마찬가지였다.
‘기쁜 일이지만.’
시은이와 레나가 같은 반이 된 건 기쁜 일이었다.
허나 걱정이 됐다.
어떻게 보면 전부 뿔뿔이 흩어지는 것보다도 2대 1로 갈리는 게 혼자가 된 쪽의 소외감이 클 수 있으니까.
아마 내색은 안 하더라도 무척 속상해하지 않을까.
‘얼마 남지 않았어.’
꽤 많은 이름을 읽었으니 5반 명단은 얼마 남지 않았다.
떨리는 마음.
애써 조바심을 가라앉히고 커서를 내렸다.
‘.. 어?’
잘못 본 건가 싶어 눈을 꾹 감았다 떴다.
아니었다.
눈앞에는 세 글자가 선명하게 떠올라 있었다.
옆에서 들려오는 시은이의 목소리.
“연두…”
막상 당사자인 연두는 얼어붙어 있고 레나가 뒤를 이었다.
“연두다! 연두도 5반이다!”
“레나야..”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서 방방 뛰는 레나.
정말이지 바이올린을 켤 때와는 매치가 안 된다.
이렇게 보면 영락없는 애란 말이지.
“아빠..”
“응, 연두야.”
“진짜에요..? 진짜.. 연두도 시으니랑 레나랑 같이 5반이에요..?”
많은 감정이 담긴 목소리.
나는 씩 웃으며 답했다.
“진짜야.”
그 뒤에 나는 볼 수 있었다.
레나와 함께 방 내부를 덤블링장으로 만드는 연두의 모습을.
심지어 시은이까지 동참했다.
“푸흣.”
뒤늦게 나는 아이들을 말렸다.
낮 시간이긴 하지만 아랫집에 피해를 줄 수 있으니까.
그나저나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정말 같은 반이 되다니.’
이 정도면 교장선생님이 연시레의 팬이라 개입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그럴 리는 없으니, 생각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확률도 연시레를 떼어놓을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
단톡방은 난리가 났다.
단비어린이집 학부모 중 일부로 이루어진 단체 톡방이었다.
초기 멤버는 나와 세연씨, 그리고 이은경.
지금은 몇몇이 더 추가된 상태다.
신세연 : 와.. 진짜 소름 돋았어요.
이은경 : 그러게요 ㅎㅎ 심지어 연두는 5반 마지막에 있더라고요. 딱 연두까지 멈췄나 봐요.
신세연 : 울 시은이 낯 많이 가려서 걱정했는데 ㅠㅠ 다행이에요
말투가 뭔가 재밌다.
소환숲 때 육아카페 눈팅으로 학부모 특유의 말투를 알게 돼서 그런가.
세연씨 말투에서도 그게 느껴진다.
신세연 : 시은이 반응은 어때요?
이은경도 비슷한 물음을 건네왔다.
우리집에 시은이와 레나가 놀러온 상황에서 확인한 반 배정이니 그럴 만도 하지.
나는 씩 웃으며 대답해줬다.
이주원 : 제 방이 덤블링장이 된 줄 알았어요. 시은이가 이렇게 진심을 다해 뛰어오르는 건 처음 봤네요. 탱탱볼인 줄.
신세연 : 아 ㅠㅠ 그걸 놓치다니..
이주원 : 지금도 셋이 붙어서 누워가지고 좋아 죽네요 ㅋㅋ
실제로 그랬다.
연시레는 꼭 붙은 채로 누워서 꺄르르 웃고 있으니 말이다.
적어도 오늘 하루는 저 상태지 않을까.
신세연 : 하.. 상상만 해도 귀여워… :하트1:
가만 보면 나랑 닮은 거 같다.
매일 보는데도 볼 때마다 귀여워하는 게.
한동안 잡담을 나누고 있으니 또 한 명의 학부모가 등장했다.
서형철 : 우리 아들내미도 좋아 죽으려 하네요, 허허.
다름 아닌 현우 아버지였다.
그러고 보니 5반에는 연시레뿐 아니라 현우도 있었지.
짜식. 학교생활이 즐겁겠네.
한편 모두가 만족스러운 반 편성이 된 건 아니었다.
김해숙 : 우리 애는,, 울고불고 뒹굴고 난리네요,, 5반으로 바꿔 달라고…
서형철 : 저런.. 민우는 2반이었죠?
김해숙 : 네. 보니까 2반에는 민우 아는 애가 아무도 없더라구요..
생각해 보니 그랬다.
2반에는 민우 말고는 딱히 들어본 이름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나저나 울고 불고 뒹군다라.
민우는 정말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구나.
‘.. 그럴 만도 하지.’
속상할 만도 했다.
단순히 연시레랑 떨어진 것과 별개로 다른 친구들이랑도 떨어진 셈이니.
외딴섬에 떨어진 기분이겠지.
현우와는 완전히 희비가 엇갈린 민우였다.
‘힘내렴, 민우야.’
마음속으로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하며 단톡방을 나갔다.
***
어느새 찾아온 3월 2일, 선화초등학교 입학식 날.
아침부터 분주했다.
“연두야.”
“네에.”
“가방 챙겼어?”
입학식이라 수업이 없는 만큼 특별한 준비물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도 책가방을 빼놓을 수는 없지.
이제 우리 연두도 엄연한 초등학생이니까.
“네! 챙겼어요..!”
어느새 책가방을 등에 맨 연두가 생긋 웃으며 대답한다.
“아빠는요..?”
“아빠도 이미 다 챙겼지.”
필수품인 카메라.
그에 더해 나도 가방을 따로 챙겼다.
교과서를 포함해 들고 올 짐이 많을 거 같기도 하고, 안에 들어있는 것도 있으니까.
아직은 비밀이긴 하지만.
“뭐가 좋을까..”
옷장 앞에 선 채로 고민에 빠졌다.
입학식인 만큼 더더욱 신경써서 입혀주고 싶었다.
뭘 입어도 예쁘긴 하겠지만.
한참을 그렇게 서 있으니 옆에서 타박이 들려온다.
“날 새겠다, 이 놈의 조대새끼야.”
어제 올라오신 할머니.
물론 목적은 연두의 입학을 축하해주기 위해서였다.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할머니. 캄 다운, 캄 다운.”
“.. 캄, 뭐?”
“진정하시라는 뜻이에요. 아직 아침이고 입학식까지는 멀었으니까 서두를 필요는……”
짝!
“어억!”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날아온 등짝 스매시.
어안이 벙벙한 표정의 나를 향해 할머니가 말했다.
“이 놈의 새끼가 영어로 할미를 놀려?”
“아니, 놀린 게 아니라……”
“아니기는! 그리고 캄 뭐시기는 반말이지, 요 버릇없는 새끼야.”
이건 진짜 억울하다.
내가 영어를 잘하면 모를까 놀리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단 말이다.
뭐, 그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반말은 아니잖아.’
애초에 그건 성립조차 되지 않는다.
영어는 그 개념이 없으니까.
안 되겠어. 억울해서라도 이건 반박해야겠다.
그런데 그때,
“아빠 때리지 마세여..!”
내가 나서기 전에 연두가 먼저 나섰다.
예나 지금이나 같았다.
내가 피해를 입는다고 생각하면 물불 안 가리고 나서는 건.
“요 쬐그마한 게……”
“이제 연두 안 쬐그매요!”
“뭐시?”
“키 많이 컸어요! 120이에요..!”
황당한 표정의 할머니.
올라간 입꼬리와 달리 나는 앓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연두야..”
“네, 아빠.”
“아빠 등 아파. 쏘 허트.”
“쏘 하트..?”
“하트가 아니라 허트. 아프다는 뜻이야.”
또다시 하급 영어를 구사하며 나는 말했다.
“연두가 호 해주면 나을 거 같은데.”
“많이 아파여..?”
“.. 응.”
그러자 연두는 내 뒤로 돌아가서 등에 대고 바람을 분다.
“호오.. 호..”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데 웃음이 번지는 건 왜일까.
치유되는 기분이다.
그 모습을 보며 할머니는 말했다.
“지럴을 하네, 지럴을.”
“할머니.”
“뭐.”
“앞으로도 자주 때려주세요, 흐흐.”
그 말과 동시에 나는 볼 수 있었다.
미친놈 보듯이 손주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표정을.
***
마침내 나선 집.
고민 끝에 결정한 오늘 연두의 코디는 흰 셔츠에 연두색 원피스였다.
붉은 계열의 나비넥타이로 포인트를 줬고.
‘완벽해.’
내가 봐도 흠잡을 데가 없는 코디였다.
자랑하고 싶어질 정도로.
카메라로 그 모습을 담다가 결국 못 참고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보세요, 할머니.”
“뭘.”
“오늘 연두 진짜 예쁘지 않아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리본 모양 머리띠로 양갈래로 땋은 머리도 완전 찰떡이었다.
이제는 완전히 전문가가 된 나였다.
여자 머리를 세팅하는 것도.
‘뿌듯하네.’
아마 대부분의 어머니들보다도 내가 더 잘 손질하지 않을까.
내 말에 붉게 달아오른 연두의 볼.
할머니는 괜히 고개를 홱 돌리며 말했다.
“몰라, 이 놈아.”
굉장한 칭찬인 거다.
안 예쁘면 안 예쁘다고 했을 텐데 모른다고 답했다는 건.
지금 할머니 눈에도 연두가 엄청 예쁘다는 반증이니까.
“연두야.”
“네, 아빠.”
“잘 기억해 둬. 집에서 초등학교 가는 길.”
그 말에 연두는 불안한 표정으로 묻는다.
“여, 연두 혼자 학교 가야 해요..?”
기억해두라는 내 말에 혼자 등교해야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니.”
“그럼요..?”
“아빠가 데려다 줄 거야.”
등하교는 함께할 생각이었다.
이제 막 입학한 거기도 하고, 혹시나 모를 위험을 방지하고 싶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연두는 인지도가 높은 아이였다.
전혀 신경쓰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나중에는 아빠가 없이도 친구들이랑 학교에 가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거든.”
“.. 아빠가 없이도요?”
“응. 그러니까 가는 길은 기억해두는 게 좋아.”
“네에..”
어린이집에 가는 길과는 동선이 달랐다.
학교에 가까워짐에 따라 책가방을 메고 부모님의 손을 잡은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부 선화초등학교 신입생들이겠지.
“연두야.”
“네.”
“앞으로 연두 친구가 될 아이들이야.”
그 말에 연두가 조금 상기된 표정으로 말한다.
“…… 될 수 있을까요?”
“응?”
“친구…”
아무래도 낯선 아이들과 친구가 될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그럴 만도 했다.
장소도 달라진 데다가 오늘은 입학날이니까.
‘그런 애도 있다고 들었지.’
입학식 날 중압감에 우는 아이들도 생각보다 많다고 들었다.
부모로서 안심시켜 줄 필요가 있었다.
나는 연두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으응..?”
“어린이집 때를 생각해 봐. 처음 갔을 때 전부 모르는 아이들이었잖아. 시은이도 그렇고.”
그 말에 연두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맞아요..”
“그런데 나중에는 어떻게 됐지?”
“.. 친해졌어요.”
“초등학교에서도 그럴 수 있어. 게다가 연두한테는 시은이랑 레나도 있잖아. 겁내지 않아도 돼.”
그제야 연두의 입가에 번지는 옅은 미소.
조금은 용기를 얻은 모양이다.
수다를 떨며 걸어가다 보니 여기저기서 느껴지는 시선.
“어머.”
“수영 엄마. 저기 연두 아니야? 맞네! 초록님도 같이 걸어가네.”
“잠깐만. 설마……”
“연두도 선화초 입학하나 봐!”
어쩔 수 없었다.
무관심을 바라기에는 이미 연두는 너무 유명해진 상태였으니까.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감수하는 수밖에.
“안녕하세요.”
“영상 잘 보고 있어요, 초록님!”
“연두야, 안녕.”
말을 걸어오는 학부모들도 있었다.
인사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새 눈에 들어왔다.
선화초등학교 건물이.
‘운동장이라고 했지.’
입학식 장소는 내부 강당이지만 그전에 간단한 절차가 있어 운동장에서 모인다고 들었다.
그 말대로 벌써 꽤 많은 학부모와 아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운동장 내부에.
‘.. 떨리네.’
나 역시 처음이었다.
학부모로서 아이의 입학식에 참가하는 건.
그래서인지 묘한 감정이 교차했다.
“그럼 들어갈까, 연두야?”
“네에.”
“들어가시죠, 할머니.”
그렇게 우리 셋은 교문 안으로 발을 옮겼다.
“.. 어?”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들어가고 나니 밖에서는 보이지 않던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뭐지. 몰카인가?
한눈에 봐도 연두보다 한두뼘씩은 큰 아이들이 운동장을 채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