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459)
459화. 연두부콘
다음 날 아침.
어김없이 선화초등학교 교실 내부는 시끌벅적했다.
오늘은 아침 조회가 있는 날이었다.
창가 쪽에 앉은 두 아이는 비교적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하암.. 너무 졸려서 못 일어날 뻔 했어..”
“연두도.. 아빠가 깨워줬어.”
“나는 엄마가.”
평소보다 조금 등교 시간이 빠른 것뿐이었지만 일어나는 데 꽤 애를 먹은 연두와 하연이였다.
심지어 하연이는 지금도 비몽사몽한 표정이다.
그래도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친구가 생겼으니까.
“수학 숙제는 했어, 연두야?”
“으응!”
“안 어려웠어?”
“어려웠어.. 그래서 아빠가 도와줬어! 하연이는..?”
“나는 엄마가.”
왠지 모르게 도돌이표 같은 대화였지만 그래도 즐거운 기분이었다.
매일 조용히 앉아있기만 했는데.
얘기할 친구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변화였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연두! 하여니!”
다가오는 두 아이.
금발의 여자아이와 단발머리를 한 새침한 표정의 여자아이.
그러나 하연이는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어제 함께한 시간이 있었으니까.
“레나야, 시은아!”
새 친구가 생겨 즐거운 건 레나도 마찬가지였다.
활기차게 질문한다.
“무슨 얘기 했서?”
“아, 선생님이 말한 수학 숙제 했는지……”
“…!”
벌어지는 입.
누가 봐도 안 했다는 걸 알 수 있는 표정이었다.
역시나 들려왔다.
“까, 까먹었다…”
그런 레나를 향해 하연이가 말했다.
“그럼.. 숙제하는 거 도와줄까? 아직 선생님 올 때까지 조금 남았으니까…”
“진짜..?”
“응!”
“빨리 가져올께! 교과서!”
그렇게 레나는 교과서를 가지러 자리로 달려갔다.
하연이의 입가에 번지는 미소.
솔직히 아직 믿기지 않았다.
‘연두, 시은이, 레나……’
이렇게 반짝반짝 빛나는 친구들이 생겼다는 게.
하연이가 그렇게 레나를 기다리며 행복감에 젖어 있을 때였다.
스윽.
책상 위에 드리우는 그림자.
놀라서 고개를 들어 보니 한 무리의 친구들이 서 있었다.
당연히 얼굴은 알고 있었다.
벌써 입학한 지 꽤나 시간이 흐른 데다가, 어제도 본 적 있는 얼굴이었으니까.
‘.. 내 자리에서.’
어제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하연이의 자리 주변을 감싸고 서 있던 친구들이었다.
머릿속에 다시금 떠올랐다.
문밖에서 들었던 친구들의 이야기들이.
물론 지레짐작은 좋지 않았다.
그 자리에 서 있었다고 해서 나쁘게 말했다고 확신할 수 없으니까.
시은이와 레나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움츠러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왜 온 거지.’
친구들은 왜 여기에 온 걸까.
곧바로 감이 왔다. 연두를 보러 온 거구나.
그야, 연두는 자신과 달리 누구나 친해지고 싶어 할 만한 친구니까.
생각해 보면 어제도 그랬다.
연두 주변으로 친구들이 몰려들어 말하고 있었지.
“.. 하연아.”
역시나, 가 아니었다.
방금 연두가 아니라 하연이라 부른 거 같은데.
고개를 돌린 하연이의 귀에 들려왔다.
“미안해..”
“.. 응?”
“어제 하연이한테 나쁘게 말한 거. 정말정말 미안해..”
고개까지 숙이는 여자아이.
함께 서 있는 친구들도 한 마디씩 사과를 건넸다.
“나, 나도.”
“잘못했어..”
“나도 미안해. 유석호! 너도 사과해!”
사실 석호로서는 조금 억울한 부분이 있었다.
정황은 이러했다.
어제 친구들이 연두에게 다가가길래 슬쩍 그 틈에 껴서 서 있었다.
연두를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에.
‘우와.. 예쁘다…’
석호의 8년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또래 친구를 보고 넋이 나간 건.
자리를 에워싼 탓인지 수줍은 표정을 짓는데 순간 천사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때 들려온 거다.
‘야, 유석호! 거기 밟지 마! 임하연이 토한 자리야!’
입학식 날 친해진 재호의 말이었다.
분위기상 호응을 해야 할 거 같아서 ‘우앗!’ 하며 발을 뺐다.
그게 전부였다.
절대로 하연이의 마음을 상하게 할 의도 같은 건 없었단 말이다.
오히려 하연이 토했을 때 마음 아팠다고!
‘연두가 안 좋게 생각하겠지..’
분명히 그럴 거다.
천사가 화를 내는 것도 태어나서 어제 처음 목격했으니까.
생각해 보면 전부 이 녀석 때문이다.
정재호.
어제의 일도 재호의 유도 때문이었는데 심지어 지금도 사과를 독촉하고 있다.
지는 뭘 잘했다고!
부글부글 끓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사과를 해야만 할 거 같은 상황이었거든.
그렇다. 석호는 분위기에 휩쓸리는 타입이었다.
“나는 아무 말 안 했지만 ‘우앗!’이라고 해서 미안해. 하연이 너를 놀리려던 건 아니야. 정재호가 피하라고 해서 깜짝 놀라서……”
사과라기에는 정말 구구절절했다.
석호 딴에는 의도가 없었다는 걸 어필하며 은근히 재호 탓으로 돌리고 싶은 의도였다.
가만히 있을 재호가 아니었다.
“야! 거짓말하지 마! 피하라고는 안 했어!”
“했잖아!”
“밟지 말라고 했거든!”
“그게 그 말이지!”
5반의 첫 싸움이 벌어지기 직전이었다.
아직 어린 만큼 여러모로 서투른 아이들이었다.
그때 입을 연 건 다름 아닌 시은이였다.
“그만해.”
차가운 한 마디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두 녀석.
오해에서 비롯된 시은이 짝꿍의 썰 때문인지 5반 내에서 시은이는 꽤나 무서운 이미지였다.
지금의 싸늘한 표정과 목소리는 그 이미지에 힘을 실어줬고.
“그렇게 사과할 거면 안 하는 게 나아.”
“그, 그게……”
“사과는 탓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잘못한 걸 얘기하는 거야. 엄마가 그랬어.”
깨알 같은 출처 표기.
시은이가 화 난 이유는 간단했다.
사과하러 와서 이렇게 다투는 건 오히려 하연이를 불편하게 만드는 거라 생각했으니까.
한편 석호와 재호의 머릿속에 동시에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이게 아닌데.
그때 들려오는 목소리.
“.. 괜찮아.”
놀라서 고개를 들자 작게 웃는 하연이의 얼굴이 보였다.
“사과해줘서 고마워. 나는 괜찮아.”
“.. 정말?”
“응.”
이윽고 하연이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으면..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으, 응!”
대답하며 석호는 생각했다.
5반에 천사는 연두만 있는 게 아니었구나 하고.
***
근래 들어 처음이었다.
연두를 학교에 보내고 이렇게나 마음이 편안한 건.
새 친구가 생겨서 그런가.
‘그건 그렇고.’
최근 들어 나는 한 가지 고민에 봉착해 있었다.
어떤 일을 할지.
충분히 휴지기를 가진 만큼 슬슬 일을 시작해야 할 때였다.
전부터 목표로 하던 작화팀을 만들고 싶기도 했지만 아직은 조금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작화팀의 이미지는 머릿속에 존재했다.
꼭 넣고 싶은 멤버도 있고.
다만, 그리 간단히 시작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작화팀을 만들고 소속되는 사람이 생기는 순간, 나는 막중한 책임감을 안게 되니 말이다.
‘아직은 부족해.’
확신이 필요했다.
내가 만들 작화팀에 소속될 사람들을 책임질 수 있을 거란 확신이.
그게 아직은 부족했다.
더 나아가 시스템적인 면에서도 더더욱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뒤로 미룰 생각은 없다.
늦어도 내년.
최소한의 마지노선이었다.
그때까지는 목표를 현실로 만들 계획이다.
내가 해야 할 건 두 가지였다.
지금까지 한 것처럼 정진하는 것에 더해, 좀 더 작화팀의 이미지를 구체화해야 했다.
‘추상적인 이미지로는 안 돼.’
단순히 좋은 작화팀을 만들자는 목표로는 부족했다.
모든 걸 생각해야 했다.
작화팀이 어떤 일을 할지, 어떤 체계로 운영할지, 어떤 시스템을 차용할지 등의 문제를 하나도 빠짐없이 말이다.
필요에 따라 조언을 구할 필요성도 있었다.
‘경험이 없으니까.’
아르바이트 외에 나는 회사생활을 해본 적도 없다.
어떻게 보면 작화팀은 팀이라고는 하지만 작은 회사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나 혼자의 구상으로는 부족했다.
경험자의 조언이 필요했다.
다행히 내게는 있었다. 실질적인 조언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뭐, 그건 나중 일이고.’
지금 당장의 내 목표는 하나였다.
근래 외주를 통해 자잘한 활동에 참여하며 많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번에는 추구하는 바가 조금 달랐다.
임팩트를 주고 싶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확실히 각인시킬 수 있는 그런 임팩트를 말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연두티콘과 소환숲 정도를 들 수 있겠네.
다른 게 없는 건 아니지만 그 두 개는 전국적으로 열풍을 불러일으켰으니 말이다.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스르륵. 스륵.
오늘도 꽤나 긴 시간 메일함의 제안들을 살폈다.
‘.. 꽂히는 게 없네.’
사실 행복한 고민이었다.
이렇게 많은 제안들을 두고 저울질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허나 거짓말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목표에 부합하며 팟 하고 꽂히는 제안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너무 욕심이 큰 건가.’
그럴지도 몰랐다. 생각해 보면 연두튜브와 소환숲 역시 그랬다.
특히나 소환숲.
연두가 꼽은 쪽지를 열어보고 원고가 좋다는 단순한 이유로 작화 참여를 결정했다.
큰 욕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작화가 조은서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애초에 동화책이었다.
어린아이들을 타깃으로 제작하는 동화책.
아이들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동화책을 만들자는 게 당시로서는 욕심이라면 큰 욕심이었다.
나를 포함해 그 누구도 알지 못했지.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전국적으로 소환숲 열풍이 불 거라고는.
‘굿즈도 엄청나게 흥행했고.’
심지어 해외에서도 소환숲은 큰 성공을 거뒀다.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간단했다.
처음부터 큰 욕심을 갖고 야심 차게 시작하는 건 오히려 실망스러운 결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
반대로 가볍게 시작한 게 말도 안 되게 터지기도 하고.
‘과정이 가벼웠던 건 아니지만.’
어느 한 장면도 허투루 그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무튼간에 그랬다.
처음부터 너무 큰 욕심을 갖고 시작하는 건 독이 될 확률이 높았다.
메일함을 닫은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욕심을 버리자.
완벽히 조건에 부합하는 걸 찾기 이전에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뭔지 먼저 생각하는 거다.
그럼 마법같이 답이 보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을 전환하고 다시 메일창을 열려는데 문득 떠올랐다.
어제 제이디와 나눴던 통화 내용이.
내용은 언제나와 같았다.
‘아직 이모티콘 제작은 생각 없으세요, 초록님?’
사실 좋은 제안이었다.
세계적인 플랫폼이고 무난하게만 만들어도 수익적으로는 가장 좋을 확률이 높으니까.
하지만 그건 내가 추구하는 게 아니었다.
이모티콘은 아이디어 싸움이었다.
‘연두티콘도 마찬가지야.’
내가 잘난 게 아니었다.
사랑스러운 연두의 이미지를 그대로 차용해 이모티콘 형식의 그림으로 옮긴 것뿐이니까.
물론 그 이미지를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건 나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결국은 아이디어였다는 뜻이다.
‘그게 없는 이상.’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없는 이상 나는 거절의 말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으로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몇 번이고 제이디와 같은 내용의 통화가 반복되고 있는 이유였다.
‘가능해.’
아까 말했듯 얼마든지 가능했다.
무난하게 귀엽거나 무난하게 병맛스러운 이모티콘을 만드는 건.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 색을 드러내고 싶었다. 임팩트를 주고 싶었다.
오랜 시간 제안을 건네 온 제이디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연두티콘만 한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으니까.
그때였다.
‘… 어?’
머릿속을 번뜩이는 생각.
탁!
흥분한 나머지 책상을 치고 일어났다.
…… 있었다.
연두티콘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에 걸맞은 임팩트가 느껴지는 아이디어가.
‘왜 생각 못 했지?’
지금껏 생각 못 한 게 바보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으면서, 생각만 해도 웃음 짓게 만드는 귀여운 이미지.
수많은 감정을 드러낼 수 있고 주접을 통한 재미까지 줄 수 있는 이미지.
‘무엇보다도.’
그 누구와 비교해도 ‘이것’에 대해서만큼은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마치 연두처럼.
그야, 하루도 빠짐없이 일상을 함께하고 있는 소중한 존재니 말이다.
이쯤 되면 알아챘으려나.
날아갈 듯한 기분과 함께 나는 씩 웃으며 종이 위에 적었다.
생각한 이모티콘의 가제를.
-연두부콘
이름하여 연두부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