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465)
465화. 선화초 음악 동아리
믿기지 않았다.
연두와 시은이, 그리고 레나가 눈앞에 있다는 게.
“화이트데이 선물이야..!”
시은이와 레나도 각자 준비한 선물을 지우를 향해 내밀었다.
“얘, 얘들아..”
친구라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야, 연시레는 지우를 진심으로 대해 준 첫 또래 친구였으니까.
그럼에도 지우가 놀란 이유.
그건 다름아닌 자기 자신에게 있었다.
‘.. 좋은 친구가 아니야.’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은 좋은 친구가 아니었다.
성격부터가 그랬다.
재미있는 것도 아니고 소심하고 겁은 많아서 못 미더운 구석이 많았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놀이터에서의 첫만남 이후로, 흐른 시간에 비해 그리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입학이 다가올 수록 해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더 많은 학습지를 풀어야 했고, 학원에 다니게 됐고, 악기도 배워야 했다.
‘나가고 싶었어.’
종종 엄마를 통해 전화가 왔다.
놀이터에서 다함께 놀 생각인데 지우도 함께 놀면 좋을 거 같다고.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안 될 거 같네요. 지우는 해야 할 게 있어서요.’
부정하고 싶었다.
따분한 것들은 전부 던져버리고 놀이터에 나가서 놀고 싶었다.
진심으로 대해주는 친구들과.
허나 그러지 못했다.
엄마는 때때로 무서웠고, 그렇게 말했을 때 엄마가 지을 표정을 그릴 수 있었으니까.
따라서 가끔, 아주 가끔 함께 노는 게 전부였다.
무엇보다도 걸리는 건 얼마 전이었다.
‘연두 생일날.’
가지 못했다.
꼭 가겠다고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3월 6일은 평일이었고 학원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어, 엄마.. 나 연두 생일파티 가면 안 돼..?’
용기를 내서 꺼낸 말에 엄마는 단칼에 대답했다.
‘안 돼.’
‘어, 엄마…’
‘지우 너를 위해서 뭐가 더 중요한지 생각해 보렴.’
그 목소리가 너무 차갑게 느껴져서 더 고집을 피울 수 없었다.
그래. 고집이었다.
지우에게 ‘해야 할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건 모두 고집이었다.
허용된 건 잠깐의 통화였다.
‘여, 연두야..’
‘지우야!’
‘미, 미안해. 생일파티.. 못 갈 거 같아. 학원에 가야 해서……’
감정을 꾹 억누르며 지우는 말했다.
학원 말고 다른 이유를 들까 생각도 했지만 그러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거짓말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을 진심으로 대해준 연두에게만큼은 솔직하고 싶었다.
‘그렇구나…’
조금 처진 목소리.
화를 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미리 꼭 가겠다고 약속까지 해 놓고 일방적으로 파기했으니.
그것도 학원을 핑계로 말이다.
하지만 연두는 그러지 않았다. 웃으며 괜찮다고 이야기해 줬다.
‘새, 생일 축하해, 연두야…’
‘헤헤, 고마워…’
지우는 생각했다.
정말 괜찮았던 걸까.
생일조차 함께 축하해주지 못하는 내가 연두의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 연두는 나를 친구라고 생각할까.
‘… 생각, 했구나.’
눈부신 미소.
친구가 아닌 사람에게 이렇게 환한 미소를 지을 리 없었다.
신기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연두의 미소를 보면 따라서 웃게 됐다.
“고, 고마워.. 연두야, 시은아, 레나야.”
***
한편 1반 내부는 떠들썩해진 상태였다.
연시레의 깜짝 등장에.
“뭐야. 지우 보러 온 거였어?”
“우와, 대박!”
“초콜릿 줬는데? 윤지우 쟤네랑 친한가 봐…”
어린 아이들이었다.
연시레는 누가 뭐래도 선화초 최고의 유명인사였고.
친하다는 것만으로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더군다나 지우가 평소에 워낙 조용한 아이였던 만큼, 아이들은 생각지도 못했을 친분이었다.
막상 지우는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자, 잠깐만..”
뒤늦게 떠올랐다.
친구들에게 주려고 가져온 초콜릿이 가방 안에 들어있다는 걸.
곧 쉬는시간이 끝날 터였다.
그런 생각에 지우가 다급한 마음으로 가방을 뒤적이는데,
“서연두!”
한 아이가 등장했다.
얼굴을 본 연두가 반가운 표정으로 외쳤다.
“미누야!”
아이들의 눈은 또 한 번 확장됐다.
민우의 경우는 또 달랐다.
입학한 후에 연시레가 선화초에 입학했다는 사실이 화제를 끌었을 때 민우는 말했다.
‘나 서연두랑 친한데. 연시은이랑 이레나랑도.’
‘…’
우스운 건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린이집 때와 비슷했다.
대체적으로 민우의 말은 설득력을 가지지 못했다.
‘지, 진짜라고! 연두랑 시은이랑 나랑 합쳐서 삼총사였어! 같이 문제도 해결하고, 악당도 무찌르고……’
사실 스스로 초래한 결과였다.
말하는 게 대부분 사실인데도 악당 퇴치같은 소리를 하니 설득력이 있을 리가 없지.
민우로서는 억울해 죽을 노릇이었다.
…… 진짜 친한데.
“흐흐.”
지금이 기회였다.
모두의 앞에서 그 친분을 증명할 절호의 기회.
민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야, 서연두.”
“으응!”
“너 나랑 친하지?”
상당히 킹(?) 받는 말투였다.
으스대는 모습이 어머니가 봤다면 꿀밤을 먹였을 정도로 얄미웠다.
실제로 시은이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다.
“휴우..”
허나 1반 아이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방금 연두가 세상 반갑게 외친 ‘미누야!’로 인해 민우의 말은 엄청난 설득력을 얻은 상태였으니까.
그리고 연두의 답이 이어졌다.
“응! 엄청..!”
“흐흐.”
봤냐는 듯 친구들을 한 번 돌아봐 준 후 민우는 또 말했다.
“너랑 나랑 연시은이랑 삼총사였지?”
“..!”
연두와 시은이의 볼이 빨개졌다.
분명히 그랬던 적이 있었다.
삼총사로서 문제를 해결하고 손을 겹쳐 크로스까지 하던 게 머릿속에 생생했으니까.
심지어 그건 꽤나 즐거웠던 기억이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으응.”
1반 아이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삼총사라는 말을 듣고 유치하다며 깔깔대며 비웃었는데 그게 진짜였다니.
심지어 회장인 철호마저도 넋이 나간 표정으로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앞의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층 더 높아진 민우의 콧대.
이제 종지부를 찍을 마지막 질문이었다.
“같이 악당도 무찌른 적 있지?”
“.. 으응?”
연두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적은 없었다.
시은이도 떠오르는 게 없는지 덧붙였다.
“…… 악당?”
“있잖아! 치사빤스 악당!”
치사빤스.
그 말을 들으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우영이오빠.
연두가 부정하기 전에 시은이가 일침을 꽂았다.
“적당히 해, 멍청아.”
민우가 붕어 입처럼 눈을 끔뻑였다.
안 하느니만 못했던 마지막 질문이었다.
이윽고 사태가 마무리된 후, 초콜릿 전달이 이어졌다.
“자, 연두야, 시은아, 레나야.”
지우는 연시레에게,
슥.
그리고 연시레는 민우에게 초콜릿을 내밀었다.
1반에 온 건 지우와 더불어 민우에게 초콜릿을 주기 위한 것도 있었으니까.
시은이는 그리 내키지 않는 표정이긴 했지만.
“흐허, 감사요.”
그 뒤에 민우는 지우를 빤히 바라봤다.
사실 둘은 초면이 아니었다.
한참 전이긴 하지만 같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한 적이 있으니까.
입학식 날에도 서로를 알아봤다.
그럼에도 서로 알은체 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의외로 민우는 낯을 가렸다.
장난기가 많을 뿐.
더군다나 지우는 여자아이였고 다가가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연시레가 있으니 자연스럽게 말을 붙일 수 있었다.
“크흠..”
헛기침을 한 번 내뱉고 민우는 말했다.
“야, 윤지우.”
“으, 응?”
“연두 친구면 내 친구다. 그러니까 위험에 처하면 내가 구해준다… 원숭.”
괜히 어색했는지 주드로 변해 원숭을 덧붙인 민우.
지우는 그걸 바로 알아챘다.
몇 번이고 읽은 터라 소환숲의 내용은 하나도 빠짐없이 알고 있었으니까.
가늘게 웃으며 지우는 말했다.
“고, 고마워, 민우야…”
민우는 멋쩍은 듯 허공을 응시했다.
그때 울리는 종.
눈이 동그래진 연시레는 화들짝 놀라 말했다.
“조, 종 쳤다!”
“빨리 가자! 지우야, 안녕!”
“미누도!”
세 아이는 후다닥 교실 밖으로 나가 5반으로 달려갔다.
짧았던 만남.
하지만 그건 지우에게 꽤나 큰 변화를 일으킬 거 같았다.
***
“하하…”
실소가 흘러나왔다.
초콜릿으로 가득 채워 보낸 가방이 더 빵빵해져서 돌아왔다.
사탕과 초콜릿으로.
“이걸 다 받은 거야, 연두야?”
세상 순수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단톡방을 보니 시은이와 레나도 상황이 크게 다른 거 같지는 않다.
정말이지 두고두고 먹게 생겼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초콜릿과 사탕 말고도 종이 비슷한 것들이 보였다.
‘진짜 종이네?’
하나를 꺼내들었다.
펼쳐서 보니 글씨가 적혀있다.
자연스레 소리내어 읽다가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연두 너를….”
…… 좋아해?
이 녀석, 누구야!
설마 했는데 진짜 고백 편지였다니.
조성진.
…… 이름, 기억했다.
아무리 연두가 예쁘다고 해도 입학한 지 거의 열흘차에 좋아한다고 하는 건 선 넘었지.
이 금사빠 녀석.
그대로 고 백(go back)하는 게 심신에 이로울 거다.
엄청난 라이밍과 함께 나는 애써 미소를 띠며 말했다.
“연두야. 이런 편지는 전부 읽어본 거야?”
“아니여..”
고개를 저으며 연두는 말했다.
“몇 개밖에 못 읽어써요.”
“그렇구나. 어떤 내용이었어?”
“6학년 언니가 독서 동아리에 들어오라고 했어요! 그리고……”
다행히 고백에 관한 내용은 없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쪽지들은 연두가 읽기 전에 최소 한 번의 검열은 필요할 거 같으니.
‘쉽지 않구만.’
너무 완벽한 딸을 둔 아빠의 고충이 이런 건가.
한숨을 쉬며 나는 말했다.
“연두야.”
“네에.”
“적당히 예뻐.”
“.. 으응?”
그 말에 연두의 표정에 아리송함이 떠오른다.
나는 울상을 지으며 덧붙였다.
“아빠 걱정된단 말이야.”
내가 봐도 못 말리는 딸바보였다.
***
동아리 시간.
학년에 관계없이 동아리에 따라 한 장소에 모여있었다.
선화초등학교의 특징이었다.
동아리 활동을 통해 선후배 간의 교류를 도모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따라서 초등학교임에도 불구하고 동아리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편이었다.
음악 동아리의 활동 장소는 물론 음악실이었다.
“다들 앉아봐!”
6학년 1반 최예나.
1반의 부회장이자 음악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었다.
“휴우..”
학기초인 만큼 모든 동아리의 공통된 관심사가 있었다.
신입 부원을 뽑아야 했다.
곧 모집기간이었고 보통 그전에 동아리에 어울리는 부원을 포섭해 놓는 경우가 많았다.
회장으로서 예나는 고민이 많았다.
‘떠나 버렸어.’
한 번 정해진 동아리가 끝날 때까지 가는 건 아니었다.
학기가 바뀔 때마다 이동이 가능했다.
그에 따라 기존에 있던 많은 부원들이 동아리를 이동했다.
‘보충해야 해.’
이탈한 인원을 보충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영업을 할 필요가 있었다.
벌써 다른 많은 동아리에서는 신입 부원 포섭에 나섰다는 거 같았다.
‘빠르기도 하지.’
음악 동아리는 좀 더 뽑기 까다로운 구석이 있었다.
얼굴만 보고 노래를 잘하거나 악기를 잘 다루는 아이를 구별하는 건 어려웠으니까.
그렇다고 한 명 한 명 다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꼭 음악 동아리에 오리란 법도 없었다.
‘다른 재미있는 동아리도 많으니까.’
동아리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선생님이 오기 전에 대책회의를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럴 때마다 꼭 삐딱선을 타는 녀석이 있었다.
띵. 띵.
앉은자리에서 꼼짝도 안 하고 줄을 튕기는 녀석.
예나가 주먹을 꾹 쥐었다.
그걸 본 유준이가 허걱 하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선재는, 빨리 와야 해! 안 오면 회장누나 화 나는 거야!”
아직 입에 남아있는 버릇이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연두와 선동이를 만나서 선화음악대를 만들었던 유준이.
이제는 3학년이었다.
“빨리 와야 하는 거야! 킁!”
참고로 비염은 아직 낫지 않았다.
거듭되는 유준이의 외침에 결국 선재는 몸을 일으켰다.
“Yo~ 어차피 나는 도움이 안 될 텐데, Yo~”
“.. 빨리 오기나 해.”
끓는 속을 가까스로 가라앉히며 예나는 말했다.
보는 그대로였다.
선화초 음악 동아리에는 괴짜가 많았다.
“Yo~ 도착했어, 테이블. 자세는 삐딱~”
가사에 맞게 선재는 삐딱하게 자리에 앉았다.
익숙한 듯 아무도 트집을 잡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 뒤에야 예나는 안건을 꺼냈다.
“곧 동아리 모집이야. 그래서 우리도 동아리원을 보충해야 해.”
그 말에 선재가 양손으로 브이자를 만들며 말했다.
“질문있어, Yo~”
“.. 뭔데.”
“나는 지금으로 만족! 꼭 보충해야 하나, Yo~”
예나는 주먹을 꾹 쥐고 답했다.
“보충해야 해. 안 그래도 우리는 다른 동아리에 비해 인원이 적으니까.”
유준이가 해맑게 물었다.
“어떻게 보충하는 거야?”
“해 봤잖아. 음악을 잘 하거나 관심이 많은 애들한테 가서 얘기하는 거지. 우리 동아리에 들어오지 않겠냐고.”
“아하! 이해한 거야!”
“…”
같은 3학년인 유준이와 선재.
둘 다 괴짜였지만 1학년부터 줄곧 음악 동아리에 몸담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부원 모집을 맡긴 적도 있었다.
성공률은 0%였다.
“우리 동아리 재밌는 거야! 안 오면 후회하는 거야!”
“Yo~ 우리 동아리에 와, Yo! 안 와도 상관은 없구, Yo!”
굳이 이유를 생각할 것도 없었다.
처음 보는 녀석들이 다짜고짜 이러는데 가고 싶은 애들이 어디 있겠어.
그 이후로 둘에게는 신입 모집을 맡기지 않은 예나였다.
“특히 데려와야 하는 건 피아노를 치는 애야.”
이유는 간단했다.
기존에 피아노를 맡고 있던 아이가 다른 동아리로 이동했다.
그에 따라 공석이 된 피아노 의자였다.
“혹시 피아노를 칠 줄 아는 애가 있으면 우리 동아리로 데려왔으면 좋겠어. 물어봐도 되고.”
그때였다.
유준이가 번쩍 손을 들었다.
“나! 나!”
“유준이 왜?”
“나 피아노 잘 치는 애 아는 거야, 킁!”
“.. 네가?”
“응! 피아노도 잘 치고 얼굴도 엄청 예쁜 거야!”
믿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밑져야 본전이었다.
똘망똘망한 유준이의 눈을 보며 예나는 말했다.
“그럼.. 그 애, 다음 동아리시간에 데려올 수 있어?”
“있는 거야!”
“오케이. 그럼 다음 동아리시간에 꼭 데려와 줘.”
“킁!”
코를 들이마시는 걸로 대답을 대신하는 유준이.
머릿속에는 한 아이가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 찾아온 다음 동아리 시간.
스르륵.
문이 열렸다.
음악실 안에 앉아있던 예나의 시선이 문을 향했다.
흔들리는 눈동자.
“데려온 거야, 킁!”
유준이 뒤로 한 여자아이가 수줍게 서 있었다.
정말 예쁜 아이.
그리고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아, 안녕하세여..”
끝이 아니었다.
뒤에도 몇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서 있었다.
한 명이 아니라 한 무리의 신입부원들을 데려온 유준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