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473)
473화. 시그널
“.. 마술?”
“네!”
연두는 세상 설레는 눈으로 덧붙였다.
“마술이 보고 싶어요..!”
전혀 생각 못한 단어에 놀랐으나 곧이어 떠오르는 게 있었다.
꽤 지난 얘기였다.
연두와 함께 앉아서 TV를 켰는데, 처음 보는 예능 프로그램이 방영중이었지.
그와 별개로 들어본 제목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섭외가 온 적 있으니까.’
우스운 일이었다.
한 번도 시청하지 않은 프로그램인데 섭외를 먼저 받았다니.
사실 그럴 만도 했다.
왜냐고? 그 프로그램은 파일럿 방송이거든.
파일럿 방송.
달리 말하면 시험 프로그램.
보통 한 예능이 매듭을 지으면 그 텀에 방송하는 프로그램이다.
목적은 한 가지.
시범 방송을 통한 시청자의 반응을 토대로 정규 편성을 할지 말지를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다.
즉, 프로그램의 생사가 그 반응에 달려있다는 것.
‘잔인한 얘기지.’
말로는 간단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잔인한 얘기였다.
아무리 파일럿 예능이라도 그 포맷을 구상하고 출연진을 섭외하는 등 많은 예산과 심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니까.
준비하는 과정에서 애착도 생길 테고.
그 모든 게 시청자의 반응, 즉 시청률 하나에 깡그리 엎어질 수 있다는 얘기였다.
결국 예능의 존재 자체가 시청자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것이니 당연한 일이지만 말이다.
뭐, 내가 생각할 문제는 아니었다.
연두가 말한 파일럿 예능의 제목은 알고 있었다.
단판승부.
포맷은 간단했다.
서로 다른 분야의 두 스페셜리스트가 나와 각자의 쇼를 펼치고 경쟁을 하는 것.
그리고 나와 연두가 방송을 볼 때 출연한 게 바로 마술사이다.
방송은 무척 재미있었다.
정확히는 그때 등장한 마술사가 재미있었다.
이게 크나큰 문제였다.
오해할까 봐 얘기하자면 방송을 디스하려는 게 아니다.
제목에서도 느껴지겠지만, ‘단판승부’는 마술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그때 섭외한 스페셜리스트가 마술사였을 뿐.
확실히 연두에게 마술은 새로운 분야였다.
더군다나 방송에 나온 마술사가 무척 재미있는 사람이었고.
그래서인지 나도 배꼽을 잡게 만드는 장면이 많았다.
‘연두는 말할 것도 없고.’
입을 헤 벌리고 눈을 반짝이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러다 어떻게 저게 가능하냐는 듯이 나를 바라보는 건 덤.
단순 눈속임이라고 말해줄 수도 있었으나, 원리도 설명 못하겠고 그 표정이 너무 귀여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그럼 뭐해.’
방송을 본 건 불과 몇 주 전이었다.
그런 짧은 텀을 두고 같은 분야의 스페셜리스트를 또 초청할 리는 없지 않은가.
재미를 직감한 듯 방송 말미에 MC의 그런 말이 있긴 했다.
‘히야, 역시 이윤결! 너무 즐거웠어요. 이윤결씨는 조만간 또 나올 수도 있겠는데요?’
그 말에 마술사 이윤결은 짓궂은 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후후… 과연 그럴까요?’
‘네? 무슨 뜻이죠?’
‘아닙니다! 뭐, 그럴 수도 있겠죠! 그때까지… 이 프로그램이 숨을 쉬고 있기만 한다면요?’
‘.. 아앗!’
MC를 포함한 방청객 모두가 웃음을 터트리게 만드는 한 마디였다.
파일럿 예능.
그 특성상 이런 식으로 프로그램의 명운에 대해 데드립(?)을 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드립을 게스트가 쳤다는 게 엄청난 담의 소유자이긴 하지만.
‘마술사라 그런가.’
타이밍도 예술이었지.
확실한 건, 그는 분위기를 주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 방송이 끝나고도 몇 번 TV를 켜서 ‘단판승부’를 본 적이 있었다.
‘애매했지.’
우선 섭외한 스페셜리스트에 따른 재미의 차이가 컸다.
파일럿 예능이라 그런지 포맷이 바뀌기도 했다.
연예인으로 구성된 방청진이 관객 방청단으로 바뀐다거나, 세트장 디자인이 바뀐다거나.
그래.
어딘가 정돈되지 않은 분위기였다.
방송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내가 그렇게 느낀다면 문제가 있긴 한 거 아닐까.
…… 그 방송만큼은 진짜 재밌긴 했지만.
포맷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방송에는 스페셜리스트를 제외한 메인 게스트가 없었다.
게스트는 모두 쇼를 감상하는 관객이었다.
우리에게 온 섭외 연락도 연예인으로 구성된 방청단의 일원이 되어달라는 말이었다.
‘어쩌면 그게 더 좋을지도.’
분량이 많지는 않겠지만 부담은 줄어들 테니.
…… 아닌가? 그 정도로는 연두부를 만족시킬 수 없으려나.
잠시 생각하다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의미 없잖아.’
연두가 보고 싶어하는 건 마술이고, 마술사 이윤결은 고정 출연진이 아니다.
그것만으로 가능성은 없는 문제였다.
달리 출연할 마술 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난감하네.’
전적으로 연두 의견을 따르려 했는데 이건 예상 밖이었다.
혹시나 마지막에 MC가 한 말처럼 마술사가 또 나온다면 모를까.
나는 그 점을 연두에게 이야기했다.
역시나 납득은 한 거 같지만, 조금은 풀이 죽은 표정이다.
“마술사아저씨.. 진짜진짜 바쁜가 보다…”
“응?
“괜찮아요! 마술사아저씨는……”
잠깐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연두의 머릿속에서 마술사는 생각 이상으로 더 대단한 존재라는 것.
그렇게 생각하게 된 데에는 마술사 이윤결의 허세 섞인 말들이 한 몫 한 거 같았다.
‘이건 세상에서 저밖에 못 하죠.’
‘마술사에게는 일반인이 볼 수 없는 많은 것들이 보여요. 다른 세상이 보이는 거죠. 지금 유화씨 앞에도 물의 요정들이 날아다니고 있어요.’
‘그럼 저는 세계평화를 위해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세계평화를 위해서는 제 마술이 필요하니까요. 여러분, 안녕!’
비록 마지막 멘트를 제외하면 전부 마술을 성공적으로 하기 위한 페이크처럼 보이긴 했지만.
그 말들을 연두는 손을 꼭 모으고 입을 벌린 채로 바라봤다.
…… 믿었다는 거다.
‘마지막 말도 믿었겠지.’
세계 평화.
정말 그 여정을 위해 마술사가 떠나는 거라 생각했을 터였다.
그러니 이런 말을 하는 거 아닐까.
실상은 그저 일을 마치고 퇴근했을 뿐인데.
“흐흡. 흣.”
그 순수함에 결국 입가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연두야.”
“네에.”
“많이 보고 싶어, 마술쇼?”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걸 어쩐다.
마술 공부라도 해야 하나 진지하게 갈등이 되는 순간이었다.
***
어떤 예능이라도 당장 출연할 계획은 아니다.
더 중요한 걸 앞두고 있으니까.
‘콩쿠르.’
콩쿠르 날까지는 연습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첫 콩쿠르인 만큼 뜻깊기도 하고.
레나와 함께 출전한다는 점에서 어떤 연주가 나올지 무척 기대가 됐다.
둘이 함께하는 연주를 들어볼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 역시 하나의 관객으로서 무대를 감상하고 싶었거든.
아, 참.
그러고 보니 그 아이, 유리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연두를 데리러 가서 건넨 물음.
‘정말? 오랜만에 보니까 어땠어?’
그 물음에 레나가 빠득 이까지 갈며 답했지.
‘진짜 짜증나요, 미뉴리…’
한 마디로 모든 상황이 이해가 갔다.
하기야 자그마한 아이가 2년 만에 눈에 띄게 변하기를 기대하는 게 어불성설이었다.
약이 바짝 오른 레나와 달리 연두는 배시시 웃고 있었다.
그러고선 내게 말했다.
‘오기로 했어요..’
‘응?’
‘보러 오기로 했어요. 레나랑 연두 콩쿠르…’
그렇게 집에 돌아온 뒤, 연두는 전보다 훨씬 더 열심히 연습하고 있었다.
무언가가 연두의 의지를 불태운 거 같았다.
그걸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따란. 딴.
오늘도 늦게까지 연두는 연습에 매진했다.
나는 그저 그 옆을 지켜줄 뿐이었다.
잠깐 연주를 쉬는 틈을 타서 나는 넌지시 말을 건넸다.
“연두야.”
손이 욱신거리는지 자그마한 손으로 다른 손을 조물거리고 있다.
“네, 아빠!”
해맑은 대답.
그 모습이 괜히 짠해서 실소를 뱉으며 말했다.
“손 아빠한테 줘 볼래?”
“손이요..?”
“응.”
“여, 여기…”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손을 건네는 연두.
하얗고 조그맣다.
나는 능숙하게 그 손을 잡고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 아!”
“미안. 아팠어?”
“시, 시원해애……”
“풋.”
황홀한 표정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럴 만도 하지.
이건 무려 군대에서 배운 손 지압법이니까.
‘캬, 주원이 너한테 이거 한 번 받고 나면 피로가 확 풀린다니까?’
‘하하, 그렇습니까?’
…… 떠올리고 나니 그렇게 즐거운 추억은 아니군.
물론 그때에 비해 마사지의 강도는 많이 줄인 상태였다.
그런데도 워낙 연약한 손이라 한 순간 한 순간이 조심스럽다.
행복해하는 연두를 보며 나는 살며시 입을 뗐다.
“연두야.”
“헤헤.. 네에.”
“이렇게 열심히 연습하는 이유가 뭔지 물어봐도 돼?”
사뭇 진지한 내 물음에 연두는 작게 몸을 들썩이더니 말했다.
“연두는 부족해요.”
“응?”
“선생님처럼 멋진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은데.. 연두는 많이.. 진짜 많이 부족해요.”
평소라면 말했을 거다.
아니라고.
연두는 부족하지 않다고. 아빠 눈에 연두는 최고의 피아니스트라고.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지금 연두가 하는 말은 자신감이 결여되어 하는 말로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러니까.. 더 열심히 연습해야 해요..!”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열심히 해도 유리보다 잘 칠 수 없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평생이 아닌 지금 당장은 유리보다 잘 칠 수 없다는 얘기겠지.
나는 말을 받았다.
“없지만?”
“멋진 콩쿠르 무대 만들 수 있어요. 연습하고 또 연습하면… 연두도 할 수 있어요.”
배시시 웃으며 연두는 덧붙였다.
“…… 할 수 있다고 말했으니까.”
앞에 생략된 주어는 굳이 듣지 않아도 알 거 같았다.
그래도 다시 한 번 말해주기로 할까.
빙긋 웃으며 말했다.
“맞아.”
“.. 네?”
“연두는 할 수 있어. 분명히.”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
며칠 동안 연두는 개인 연습에 매진했다.
레나도 그렇다는 거 같고.
연두와 마찬가지로 유리를 만난 그 날을 계기로 연습량이 대폭 늘었다는 듯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어쨌거나 아직 두 아이는 제대로 호흡을 맞춰보지는 않은 상태였다.
‘뭐, 시간은 충분하니까.’
콩쿠르 날짜가 가까워지긴 했지만 호흡을 끌어올릴 시간은 충분했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으니 말이다.
호흡을 맞추는 건.
‘단, 악보가 완벽히 숙지되어 있기만 한다면.’
그리고 나는 들었다.
연습을 통해 이제는 완벽에 가까워진 연두의 연주를.
물론 쥐뿔도 모르긴 하지만, 나름 전에 본 콩쿠르에서 수상작을 맞추지 않았던가.
‘귀는 나름 자신 있다 이거지.’
역시 연습을 이기는 건 없었다.
며칠 내내 연두는 피아노와 붙어살았고 나는 그 옆을 지켰다.
같은 악보의 연주를 수없이 들었다.
가만히 있기는 뭐하니 그 과정을 때때로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비교해 봤지.’
초기의 연주와 지금의 연주를 비교해 봤다.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내 귀에 느껴진 차이라면 전문가의 시선에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겠지.
비록 그들이 듣게 되는 건 후자의 연주뿐이겠지만.
‘레나는 걱정할 것도 없고.’
2년 전, 단비어린이집에 처음 왔을 때부터 레나는 완성형이었다.
악보는 진작에 완벽하게 숙지했을 터.
그럼에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연습하고 있다고 하니 우려가 되는 건 없었다.
그래. 나는 확신했다.
‘최고의 연주가 될 거야.’
노력은 배신하지 않을 터였다.
이제 남은 건, 두 아이가 함께 연습하며 호흡을 끌어올리는 것뿐이었다.
당장 내일부터 시작한다고 했지.
그 연습을 돕는 건, 다름 아닌 이은경이었다.
딸과 첫 제자의 콩쿠르.
그녀 입장에서도 무척 기대가 되지 않을까.
오늘은 쉬어가는 타임이었다.
연두와 나는 나란히 데스크톱 앞에 앉아있었다.
“그럼 켜 볼까, 연두야?”
“네에!”
저번에 스트리밍으로 연두부 이상형 월드컵을 하고 정확히 일주일이 지났다.
그날, 나는 방송을 예고했다.
마이 크래프트와 관련된 시청자 참여 이벤트를.
‘엄청나겠지.’
미리 예고한 만큼 시청자 수도 엄청날 터였다.
늘어난 구독자 수에 따라 시청자 수도 늘어나는 건 당연한 이치니까.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새로운 형식의 시참 이벤트인 만큼 동시에 기대도 됐다.
궁금하네.
어떤 시청자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방송 시작]숨을 크게 들이쉰 후 나는 버튼을 클릭했다.
달칵.
동시에 떠오르는 화면.
이윽고 나는 볼 수 있었다.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속도로 치솟는 숫자의 향연을.
***
실소가 흘러나온다.
시작부터 시청자 수는 하늘을 뚫었다.
이 기세라면 금방 지구를 뚫고 은하계로 치솟을 거 같지만.
“안녕하세요, 연두 아빠 초록입니다.”
최대한 태연하게 인사했다.
그러자 연두도 생긋 웃으며 말을 받는다.
“안녕하세요, 연두입니다..!”
짤막한 인사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채팅이 터져나왔다.
-와, 인사 따라 하는 거 봐. 졸귀다 진짜…
-오늘만을 기다렸다…
-흐억.. 드디어 안 놓쳤다 ㅠㅠ 매번 알림 안 떠서 놓치고 광광 울었는데.
-극! 락! 극! 락!
-행복해애…
뜸을 들이지는 않았다.
나는 바로 마이크래프트에 접속했다.
[멀티 플레이]방을 만들었다.
저용량 게임인 만큼 20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시청 인원에 비해 너무 적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마이크래프트는 관전자 입장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게임이었다.
괜히 많은 방송인들이 즐겨하는 게임이 아니다.
먼저 그 점을 고지했다.
“콘테스트에 참여하실 시청자 분들은 선착순으로 정할 수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모든 분들이 참여하실 수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극악의 확률 ㅋㅋㅋ
-새삼스럽게 왜 그래. 연두튜브의 확률은 언제나 극악이었다구!
-선택받은 연두부 ㄷㄷ
-연두와 초록님과 함께하는 온라인 팬미팅 ㄷㄷ
-채팅 칠 시간도 없어! 마우스에 손 올려!!
재미있는 반응이었다.
방 만들기 준비는 끝난 상태.
나는 연두를 향해 말했다.
“비밀번호는 연두가 정할래?”
“.. 연두가요?”
“응. 숫자 네 개로 된 비밀번호.”
곰곰이 생각하던 연두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공일일구!”
순간 생각했다.
공일일구가 뭔가 하고.
그러다 엄청난 사실을 알아냈다.
‘내 생일이구나?’
1월 19일.
원래 우리집 비밀번호는 연두의 생일인 0306이었다.
언젠가 연두가 말했다.
‘아빠..’
‘응, 연두야.’
‘연두 생일은 공삼공육이잖아요. 그럼.. 아빠 생일은 뭐라고 해요..?’
‘공일일구.’
‘.. 공일일구?’
‘응.’
대단한 걸 알아낸 듯이 웃더니 그걸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여담이지만 지금은 비밀번호를 바꾼 상태였다.
네 글자에 생일은 보안에 취약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으니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아.
그래서 뭐로 바꿨냐고?
후후.
새로 바꾼 비밀번호는 무려 여덟글자였다.
공삼공육공삼공육.
‘아무도 예상 못할 거야.’
설마 생일을 반복할 거라는 발상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나저나 기쁘네.
이 상황에 내 생일을 생각해주다니.
-우리 연두 진짜 효녀다 ㅠㅠ
-와.. 저 상황에 자기 생일이 아니라 아빠 생일을 말하네.
-마음까지 이렇게 예쁜 건 반칙 아니냐고!
-연두부가 하얄 수밖에 없는 이유..
뿌듯한 마음을 머금고 나는 말했다.
“그럼 방 만들겠습니다. 연두 말대로 비밀번호는 공일일구로 하겠습니다.”
방 만들기 버튼을 눌렀다.
눈을 깜빡였다.
“…?”
빈 공간이 보이지 않았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눈을 깜빡이는 사이에 20개의 칸이 꽉 찬 거다.
-ㅁㅊ
-개빨라 ㅋㅋㅋㅋㅋ
-엌ㅋㅋ 저 지금 마우스도 못 눌렀는뎁쇼?
-실화냐??
-초록님도 당황한 듯 ㅋㅋㅋ
나만 당황한 게 아니다.
방에 들어오는 데 성공한 연두부도 게임 내에서 채팅을 쏟아냈다.
Yunsamo daepyo : 뭐야, 나 들어온 거야?
닉네임이 뭔가 했는데.
천천히 읽어보니 무슨 뜻인지 알 거 같았다.
연사모 대표.
연두를 사랑하는 모임 대표라는 뜻이다.
저렇게 쓰는 게 아닌 거 같은데.
비루한 영어실력을 가진 동지를 만나 동질감이 일었다.
그 밖에도 ‘큐티뽀짝연두’, ‘절때연두해.’ 등의 영어로 된 닉네임이 보였다.
-닉네임 하나같이 악질이네 ㅋㅋ
-어휴. 신선하게 좀 하지.
-ㅇㅈ 나라면 닉네임으로 진짜 큰 웃음 주고 시작했다.
-연사모 대표는 좀 웃긴데 ㅋㅋ 영어 개떡같이 쓴 게 웃음 포인트.
-쟤들이라고 뽑힐 줄 알았겠냐.
-그저 부럽다 ㅠㅠ
나는 피식 웃으며 게임에 접속했다.
캐릭터가 생성되고 각기 다른 패션의 캐릭터들이 눈에 들어온다.
참고로 이건 내가 손수 만든 맵이었다.
그래서인지 게임상의 화면을 통해서도 얼떨떨함이 전해진다.
“이건 제가 만든 맵입니다. 정확히 같은 크기로 스무개의 공간을 나눠뒀습니다. 여러분은 그 안에 건축물을 지어주시면 됩니다.”
“…!”
그러자 게임 속 캐릭터들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와중 총총 뛰는 한 캐릭터.
그 움직임을 본 연두가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우아. 아빠, 뛰어다녀요..!”
“그러게. 연두부가 기분이 좋은가 본데?”
“히히.”
그러자 진귀한 장면이 이어졌다.
총! 총! 총!
20개의 나무인형 캐릭터가 너나 할 것 없이 눈앞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누가 더 경박하게 뛰나 경쟁이라도 하는 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레전드네.
-연두가 죽으라면 바로 자결할 듯.
-아니, 시트콤 찍냐고 ㅋㅋㅋㅋㅋㅋㅋ
-아아.. 벌써부터 그들의 경쟁은 시작된 것인가.
온몸으로 연두에게 시그널을 보내는 연두부들.
그렇다.
연두의 마음에 들기 위한, 선택받은 연두부의 경쟁은 벌써부터 시작된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