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501)
501화. 본방사수
마음 같아서는 코치답게 호루라기라도 준비하고 싶었지만 결국 단념했다.
집 앞 공원인 만큼 소음공해가 될 수 있으니까.
“출발!”
대신 내 우렁찬(?) 목소리로 대신했다.
그에 따라 달려오기 시작하는 연두.
와다다!
동시에 나는 깨달았다.
평소 연두의 달리기가 느리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던 이유가 뭔지.
‘.. 똑같잖아.’
전력질주도 평소의 와다다 달리기와 별로 다르지 않다.
일단 가장 큰 문제점.
몸의 균형이 잡혀있지 않아서 빠르게 달리기 어려워 보인다.
탁!
연두가 멈췄다.
주파한 거리는 대략 50M 정도였다.
‘15.6초.’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빠른 건 절대 아니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그랬고, 뒤에서 2등이라는 객관적인 지표가 있었으니까.
연두가 마른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 아빠.”
“응, 연두야.”
“연두 몇 초에요..?”
소수점은 잘 모를 거 같으니 반올림해서 나는 답했다.
“16초 정도.”
“16초…”
연두도 감이 잘 오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나지막이 말했다.
“빠른 편은 아니야.”
굳이 짚어주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항상 첫 단계는 항상 스스로의 위치를 객관화하는 거니까.
달리기의 경우 그건 기록이었다.
“맞아요.. 연두는 느려요…”
이번엔 느림보는 안 나와서 다행이네.
당연하지만 자책하라고 한 얘기는 아니었다.
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느려도 괜찮아.”
“.. 네?”
“이렇게 아빠랑 나와서 연습하다 보면 16초가 15초가 되고, 15초가 14초가 되고…… 그렇게 점점 더 빨라질 테니까.”
확실히 재능이란 존재한다.
내가 생각할 때 연두는 피아노에 커다란 재능을 가지고 있다.
길고 얇은 손도 피아노를 치기에 적합한 데다가, 피아니스트의 요건인 음감이나 타고난 리듬감도 뛰어나니까.
‘그래.’
그건 재능의 영역이었다.
굳이 부정하고 싶지도 않고 그럴 이유도 없다.
하지만 연두는 음악과 달리, 순발력이 필요한 달리기에는 재능이 없을지도 모른다.
굳이 연습하지 않아도 빠른 아이들도 많을 테니까.
월이랑 시은이.
연두에게 들은 5반 계주였다.
월이는 서울에 오기 전 환경의 영향이 클 수 있다고 해도 시은이는 아니었다.
딱 봐도 상상이 안 가지 않는가.
계주가 되기 위해 시은이가 따로 단거리 달리기를 연습하는 모습은.
‘좋아하지도 않고.’
내가 알기로는 그랬다.
딱히 시은이는 달리기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 어떻게 계주가 된 걸까.
생각할 것도 없다.
그냥 별생각 없이 달렸는데 남들보다 빨랐던 거겠지.
보통 그걸 ‘재능’이라 한다.
더 깊숙이 파고들면 훨씬 복잡한 면이 존재하기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내가 연두를 데리고 나온 이유는 간단하다.
숨겨진 재능같은 게 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연두는 할 수 있어.”
알려주고 싶었다.
재능이 없는 영역일지라도 노력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걸.
사실 우스운 일이다.
‘나도 제대로 체감해 본 적 없으니까.’
도전을 즐기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게 내가 자신없는 분야일 경우에는 더더욱.
잘하는 걸 하면 되는데 굳이 다른 걸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다.
의미가 있었다.
톡톡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에 구멍을 만들고 결국 산산조각내듯이.
결코 넘을 수 없을 거 같은 벽을 허물어냈을 때의 승리감.
그걸 알려주고 싶었다.
‘나도 마찬가지고.’
더 다양하게 도전해보고 싶었다.
작화팀도 마찬가지다.
예전이라면 겨우 나같은 녀석이 작화팀을 만들겠다는 건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터.
지금은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건 나와 연두가 함께하는 도전이었다.
“하루에 조금씩, 아주 조금씩만 줄여 보자.”
그걸 보며 나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생각이었다.
빤히 나를 바라보다가 연두는 마음을 다잡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네!”
입을 앙다문 연두는 곧이어 한마디를 덧붙였다.
“연두는 할 수 있어요..!”
“하하, 그래.”
그 뒤로 연습이 이어졌다.
더 좋은 자세를 알려주고, 함께 달리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더 빨리 달릴 수 있을지 이야기도 나눴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연습이었다.
“준비됐어, 연두야?”
아까와 같은 거리에서 나는 소리쳤다.
힘찬 대답이 들려온다.
“준비 돼써요!”
가볍게 웃은 나는 재차 외쳤다.
“그럼.. 출발!”
와다다!
연두가 달린다.
여전히 엉성한 달리기 폼이지만 표정에는 자신감이 묻어난다.
그래. 그럼 된 거지.
이윽고 연두가 목적지에 도달하는 순간,
달칵.
스톱 버튼을 눌렀다.
화면에 떠오른 숫자를 본 내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15.3(초)
톡.
물방울이 바위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
달리기 연습을 시작한 연두.
그와 비슷한 타이밍에 나도 한 가지 도전을 시작했다.
그건 바로 마술이었다.
손재주가 좋으니까 쉬운 분야 아니냐고?
결코 그렇지 않다.
우선 마술은 손재주만 있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아닌 이윤결선생님의 말씀이다.
이호연이 요리 스승님이라면, 마술 스승님은 이윤결이니까.
-마술사 이윤결
최근에 연두튜브 구독 목록에 추가된 채널명이었다.
마술을 알려주는 채널.
그는 훌륭한 마술사의 요건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여러분~ 마술사가 갖춰야 할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아세요? 손재주? 놉! 왜냐? 손재주만으로 하는 마술은 반쪽짜리 마술이거덩.”
그는 입을 가리키며 말했다.
“요거! 대답해 보세요, 여러분. 요게 뭐죠?”
“입이요.”
어느새 대답하며 듣고 있는 나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윤결의 말은 흡입력이 있었다.
내 대답을 듣기라도 한 듯이 그는 익살스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맞아요. 입이에요.”
“…”
“요걸 잘 털어야 해요. 그냥도 아니고 아주 잘.”
필터링 없이 말하자면 입을 아주 잘 털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이거야말로 내가 자신없는 분야다.
손동작이야 연습하면 따라할 수 있지만, 발표도 어려워하던 내게 마술사의 입을 갖추는 건 결코 쉽지 않았으니까.
‘해 보자.’
그래서 극복해 보기로 했다.
우선 하루에 간단한 마술을 하나씩 마스터할 생각이다.
단, 연습하는 건 마술만이 아니다.
‘오늘은 이건가.’
참고로 콩쿠르 때 봤던 동전 마술은 마스터했다.
설마 엄지와 검지 사이에 숨긴 채로 손바닥을 펴는 동작을 취해 안 보이게 할 줄이야.
간단한 눈속임이었다.
“교란해야 해요! 요걸 끊임없이 털어서 집중하지 못하게 해야 돼! 간단한 마술을 하더라도 요걸 잘 털면 들킬 확률이 현저하게 줄어들죠.”
그는 끊임없이 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따라서 내가 연습해야 할 건 마술만이 아니었다.
괜히 주위를 둘러본 다음,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나는 입을 열었다.
“이건 진~짜 간단해요! 하하하! 알아요, 알아! 이렇게 말하면 보통 안 믿으시더라구! 너한테나 간단하지! 이러면서. 근데……”
모방은 창작의 어머니이다.
그 말을 받들어 지금 그대로 따라하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허나 멘트는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 못 하겠어.’
차라리 극악의 난이도 마술을 연습하라면 하겠다.
허나 관객 하나 없이 하는데도 얼굴이 화끈거려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했다.
잠깐이지만 진지하게 스승님을 바꾸고 싶은 강렬한 충동이 들었다.
그러나 그 말이 떠올랐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천국은 없다.
탁.
다시 동영상을 재생했다.
끝까지 보고 카피한 뒤에야 나는 마우스를 내려놨다.
동시에 깨달았다.
마술사의 길은 멀고도 험하구나.
***
[연두의 카카오톡!(feat. 연두부콘)]이번 영상은 다소 특별했다.
메신저를 사용하는 연두와 채팅 내용을 교차해서 편집한 영상이었다.
물론 허락은 구했다.
‘특별한 내용은 없었으니까.’
영상에 들어간 건 연두의 채팅에 반응하는 메신저 내용뿐이었다.
다들 재미있겠다며 되려 빨리 올려달라 난리였지.
참고로 지금은 성인이 된 고딩녀석들과 할머니 말고도 연두가 침투한 단톡방은 더 있었다.
-너네 연두랑 톡한 거 연두튜브에 올린다.
부탁이 아니었다.
녀석들에게는 통보로 충분했다.
유성현 : 우리 또 연두튜브 타는 거냐 ㅋㅋㅋ
최윤우 : 대신 연두랑 단둘이 데이트권 1회.
어림도 없지.
나까지 동반이라면 생각 좀 해 보고 거절하겠지만.
결국 거절이라는 뜻이다.
박준수 : 근데 연두튜브에서 내가 제일 호감캐더라. 연두도 나를 제일 좋아하고 ㅋ
유성현 : 마지막에 ‘ㅋ’ 진짜 킹받네 ㅋㅋ
최윤우 : 뒤에는 완전 개소린데 민심 좋긴 좋더라. 도대체 왜지??
박준수 : 왜긴. 잘생겨서 그러지 ㅋㅋ
최윤우 : ㅁㅊ놈
유성현 : ㄴㄴ 내가 분석해봤는데 그냥 감자삼촌 밀고 나간 게 우연히 먹혀들어서 그럼. 감자소년 감자삼촌 어쩌고 하면서. 순박한 별명 때문에 이 ㅅㄲ 시커먼 속내를 모르는 거지.
한편으로는 대단하다.
그게 뭐라고 분석까지 한 거야.
최윤우 : 안 되겠다. 나도 별명 하나 추천좀.
유성현 : 오 좋은 거 떠올랐다.
최윤우 : 뭔데.
유성현 : 바보삼촌.
최윤우 : ㄲㅈ 모쏠삼촌.
유성현 : 뭐라고 했냐?
버튼을 건드렸으니 또 한바탕 하겠구만.
한숨을 쉬며 나는 단톡방을 나왔다.
시간이 지나서 확인한 영상 반응은 생각 이상이었다.
-하윽.. 꼬물거리는 손으로 채팅치는거 봐. 너무 귀여워 ㅠㅠ
┖저게 생상스 곡 친 손 맞냐고 ㅋㅋ
┖ㄹㅇ 갭모에 미쳤다. 피아노는 그렇게 잘 치면서 핸드폰 타자는 어르신 독수리 타법 그 자체 ㅋㅋㅋ
┖진짜 딱 5분만 연두랑 카톡해보고 싶다…
┖그럼 답장 두 번밖에 못 받음.
┖앜ㅋㅋㅋㅋㅋㅋㅋ 그러네. 그래도 두 번이 어디야.
┖답장 하나 하는 걸 빨리감기하는 거에서 빵터졌네 ㅋㅋ 역시 초록님 센스.
역시 나랑 비슷한 포인트에서 재미를 느낀 연두부가 많았다.
피아노를 칠 때와 타자를 칠 때의 갭 차이.
피식 웃으며 커서를 내렸다.
-다 모르겠고 단톡방 멤버 너무 부럽다.
┖진짜 영상으로 봐도 이런데 실시간으로 메시지 보면 얼마나 귀여울까 ㅠㅠ
┖포브스 선정)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오타.
┖그래서인지 다들 정신을 못 차림 ㅋㅋ
┖아니 ㅋㅋ 그 와중에 연두 이모티콘 활용력 뭐냐고. 채팅은 세상 힘들게 치는데 연두부콘 활용은 완벽하네.
┖연두티콘 때 다져져서 그럼.
┖그만큼 우리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거지~
반응을 보니 연두의 카카오톡 시즌 2를 제작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아마 그즈음에는 나와있지 않을까.
연두부콘 시즌 2도.
달칵.
씩 웃으며 나는 댓글창을 닫았다.
***
“행님!”
익숙한 목소리.
동건이를 선두로 아이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다들 어서 와.”
“우와.. 행님은 못 본 사이에 더 잘생겨지셨네요.”
“하하, 고맙다.”
동건이, 예림이, 범재, 그리고 우영이까지.
주연이를 제외하고 전부 모였다.
‘오랜만이네.’
따로는 종종 보지만 이렇게 다같이 모이는 것도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오늘은 주연이가 참가한 ‘프로젝트 101’의 첫 방영날이었다.
그런 만큼 다같이 보기 위해 모인 거고.
왜 당사자는 오지 못했냐고 묻는다면 이유는 간단하다.
‘연락도 안 되는 상황이니까.’
프로젝트 101의 방식은 투표제이다.
첫 방송부터 탈락자가 발생할지는 모르겠지만, 방영도 되지 않은 지금 탈락자가 발생할 리는 없다.
그리고 사전에 들은 얘기였다.
첫 방송은 101명의 연습생들이 방송국에서 다같이 보게 된다고.
‘그런 거지.’
자세한 건 아무것도 몰랐다.
비밀유지 조항도 있으니 연락이 닿는다고 해도 물어볼 수도 없고.
예림이가 두리번거리더니 묻는다.
“오빠.. 연두는요?”
그 말과 동시에 연두가 모습을 드러냈다.
반가움이 가득 찬 눈빛.
“.. 연두야!”
그 뒤로는 말할 것도 없었다.
부둥켜안고 뽀뽀세례를 퍼붓는 예림이와 헤벌레 웃는 동건이와 범재.
우영이는 한 발자국 떨어져 있다가 뒤늦게 입을 뗐다.
“땅콩.”
“네!”
“너는 어떻게 그동안 키가 하나도 안 큰 거 같냐.”
역시나.
이래야 우영이지.
다섯살 때처럼 당하고만 있을 연두가 아니었다.
“오빠도요! 우영이오빠도 똑가타요! 하나도 안 컸어요..!”
흠칫한 우영이가 반박했다.
“나는 당연한 거고!”
“왜 당연해여..?”
“나는 성인이잖아. 키가……”
망설이는 듯 하다가 우영이는 덧붙였다.
“…… 키가 멈췄다고.”
세상 순수한 얼굴로 연두는 물었다.
“성인이면 키가 멈춰요..?”
“.. 그래.”
“그럼 연두는요?”
“땅콩 너는 성장기니까 키가 멈추면 이상한 거지. 그것도 모르냐, 바보야?”
“으으…”
이런 게 그건가.
논리로는 이겼는데 결국 패배했다는.
분명히 바보라는 말에 분해하는 건 연두인데, 정신적 타격은 우영이가 큰 거 같았다.
동건이는 옆에서 낄낄거리며 웃고 있고.
“풋.”
예림이도 웃음을 터트린다.
다 웃어놓고 슬쩍 우영이의 눈치를 보긴 했지만.
아직 어사(어색한 사이)인 게 티가 난다.
“그럼 슬슬 볼까?”
리모컨을 들어 TV를 켰다.
아직 시간은 안 됐지만 미리 켜 둬서 나쁠 건 없으니까.
간식거리와 과일은 이미 세팅해 둔 상태였다.
“와.. 기가 막히네요, 행님!”
“그니까. 과일을 어떻게 이렇게 반듯하게 자르지.”
“흐흣. 여기 소시지도 있다.”
자리에 앉으며 녀석들은 한 마디씩 뱉었다.
피식 웃으며 나는 말했다.
“소시지는 연두를 위해 준비한 거긴 한데.. 많으니까 먹고 싶으면 먹어도 돼.”
“네!”
나도 연두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광고가 지나간다.
지루하다는 생각보다는 주연이에 대한 걱정 때문인지 점점 긴장감이 더해지는 기분이었다.
표정을 보니 나만 그런 건 아닌 거 같다.
“오늘.. 탈락자는 안 나오겠지?”
예림이의 말에 범재가 답했다.
“설마. 첫방은 다같이 본다는데 그중에 탈락자가 나오는 건 너무 잔인하잖아.”
“그렇긴 하네.”
조금 있다가 예림이는 또 말했다.
“주연이.. 잘 했겠지?”
걱정이 잔뜩 묻어나는 대답이다.
생각해 보니 여기서 주연이 자작곡을 들어본 사람은 나밖에 없구나.
이번에는 동건이가 답했다.
“뭐, 그렇겠지. 몸치긴 해도 연습은 열심히 했으니까.”
장난스러운 멘트처럼 보이지만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셔 있었다.
연두도 마찬가지였다.
내 손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보니 많이 떨리는 모양이다.
“괜찮아.”
가볍게 연두의 등을 토닥였다.
그렇게 안심시킨 후 다시 고개를 돌려 TV 화면을 바라보는데,
틱.
정지되는 광고.
이윽고 그 화면 위를 한 문구가 가득 채웠다.
-PROJECT 101
드디어 첫 방송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