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505)
505화. 노력
“독일, 갈 수 있어요?”
“…?”
갑작스레 튀어나온 두 글자.
잠깐이지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금껏 나눈 대화가 모두 깜짝 몰래카메라가 아닐까 하고.
허나 그럴 리는 없었다.
사실상 하파엘과의 첫 통화였다.
아직 얼떨떨하긴 하지만, 그가 한 말이 장난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우습지만 뒤늦게 떠올랐다.
하파엘의 조국이 독일이라는 사실이.
‘독일이 어디였더라.’
다행히 아예 감을 잡지 못할 정도로 가방끈이 짧지는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이렇게 놀라지도 않았겠지.
독일은 서유럽 국가였다.
생각해 보면 하파엘이 거짓말을 한 건 없었다.
같이 놀러가자.
그런데 차 타고 갈 수는 없다.
조금 멀다.
‘잠깐만. 조금..?’
정정한다.
한국말의 미숙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가 한 거짓말이 하나 있긴 했다.
조금 먼 게 아니다.
내가 알기로 독일은 많이, 그것도 아주 많이 멀었다.
“.. 독일 말인가요?”
사실 되물을 것도 없긴 했다.
그래도 이럴 때는 예의상으로라도 확인이 필요했다.
제주도에서 독일.
스케일이 커져도 너무 커졌으니까.
“네, 독일! 독일 맞아요! 저가 태어난 나라!”
하파엘은 해맑았다.
너무 해맑은 탓에 조금은 얄밉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동시에 생긴 의문.
왜 갑자기 독일에 가자는 걸까.
‘시은이는 아직 안 정해졌다고 했지.’
가능성은 두 가지다.
세연씨가 결정을 보류했거나, 아니면 아직 연락하지 않았거나.
그런데 느낌상 후자일 거 같았다.
“하하, 조금 갑작스러워서요. 갑자기 독일은 왜 가시려는 건가요?”
애써 침착하게 물었다.
그러자 한국과 독일의 거리만큼이나 긴 대답이 이어졌다.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독일에서 소화해야 하는 일정이 생겼다.
그런데 혼자 가기 싫었다.
레나에게 같이 가자고 말하니 단칼에 거절당했다.
‘여기까지가 배경.’
핵심은 그 다음이었다.
딸의 마음을 돌릴 방법을 생각하던 와중 떠오른 게 바로 우리였다는 거다.
일정이 빠듯하지 않으니 여행하듯 함께 다녀오면 즐거울 거라 생각했고.
그는 덧붙였다.
“가이드. 해 줄 수 있습니다!”
사실 아까도 생각하긴 했다.
해외여행을 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로 꼽았던 게 의사소통의 어려움이었다.
언어가 달랐으니까.
그러나 하파엘이 가이드를 해 준다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였다.
‘독일이라는 게 문제지.’
나라가 아닌 거리의 문제였다.
아니, 잠깐.
그런데 그게 정말 그렇게 커다란 문제인가?
‘어차피 유럽은 멀어.’
유럽에 속한 국가라면 어디든 멀었다.
그리고 한 번쯤은 반드시 가 봐야 한다고 들은 게 유럽여행이었다.
이제 다시 생각해 보자.
이런 기회가 흔할까?
첫째로 일정을 계획할 필요가 없다.
아무리 내가 머리를 싸매고 계획해 봐야, 독일에서 태어나 살다 온 하파엘보다 잘 알지 못할 테니.
즉, 그냥 따라다니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다.
‘의사소통 문제는 자연스럽게 없어지고.’
또 하나는 일행이었다.
멋모르고 낯선 사람들과 함께하는 여행보다는 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여행이 훨씬 더 마음이 편할 터였다.
나도 그렇고 연두도 그렇고.
그 밖에도 떠오르는 좋은 점이 너무 많았다.
생각할수록 점점 마음이 기우는 기분이다.
그러나 속단은 금물이었다.
연두랑 얘기도 해 봐야 하고, 일정도 다시 한 번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세연씨 의사도 아직 모르는 상태고.
“하파엘.”
“네.”
“같이 가면 정말 즐거울 거 같네요. 그런데……”
천천히 덧붙였다.
“조금만 생각해보고 말씀드려도 될까요?”
결국 내 선택은 보류였다.
아직 출국일자는 어느 정도 남아있었고 조금은 시간이 필요한 결정이었으니까.
다행히 하파엘은 쿨하게 답했다.
“물론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최대한 빨리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전화가 끊겼다.
***
결국 의논상대는 연두였다.
학교에 다녀온 뒤.
누렁이에게 간식을 주며 연두는 줄곧 언니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유.. 잘 먹네, 우리 누렁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정말이지 이런 구수한 말투는 어디서 배운 건지 모르겠다.
할머니가 이렇게 살가운 스타일도 아닌데.
짭. 짭.
결국 승자는 누렁이였다.
언니에게 잔뜩 예쁨도 받고 간식도 먹고.
쪼그려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는 연두를 향해 넌지시 말을 건넸다.
“연두야.”
“네, 아빠.”
“저번에 연두가 얘기했지? 교장실에서 지구본 본 거.”
채 며칠도 안 된 일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연두는 교장실에서 본 지구본에 대해 얘기해줬다.
그 와중에 독일 얘기도 나왔고.
‘아빠.. 그런데 왜 모이또는 업는 나라라고 해요..?’
‘.. 응?’
‘교장선생님이 모이또는 업는 나라래요…’
애먼 곳에 초점이 맞춰진 탓에 정작 해야 할 얘기를 못하고 흐지부지된 느낌이긴 했지만.
내 탓이었다.
연두의 반응이 재밌어서 장난을 쳤다가 정정하는 걸 까먹고 있었으니까.
‘아, 아빠…’
수습하느라 꽤나 애를 먹었지.
생각해 보면 연두는 그 전에 독일에 관해 무언가를 얘기하려 했던 거 같다.
아마 그건 독일에 가 보고 싶다는 말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지금 확인해보려 한다.
“독일이 어디 있는 나라였는지 기억해?”
독일 얘기에 반응한 연두는 고개를 돌려 답했다.
“네, 기억해여!”
“그래?”
“독일은.. 엄청 머러요!”
그래, 이거지.
조금이 엄청이 되니 조금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다.
연두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독일에 가려면 비행기를 타야 해요.”
“비행기?”
“네. 아빠가 태워주는 비행기 말고 하늘 위를 나는 비행기여. 커다란 비행기.”
왜인지 조금 찔리는 기분이다.
애써 웃으며 물었다.
“연두는 타 보고 싶어? 커다란 비행기.”
“네에.”
생각만 해도 설레는 듯 연두는 미소를 띠며 얘기했다.
“레나가 그랬어요..”
“뭐라고?”
“비행기를 타고 높이 올라가면.. 엄청 커다란 건물이 점처럼 보인대요.”
“하하, 그래?”
“네!”
아직이라는 듯 연두는 눈을 반짝이며 덧붙였다.
“그리고.. 비행기는 구름 위를 난대요!”
확실히 설렐 만 하네.
동심에 가득 찬 여덟살 연두이다.
그런 연두가 듣기에는 설렐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렇다면 알 거 같았다.
이어질 내 말에 연두가 어떻게 대답할지도.
“그럼 연두야.”
“네.”
“독일에 갈 수 있다면 가고 싶어?”
그 말에 왜인지 연두는 침을 꼴깍 삼키더니 대답했다.
“가고 싶어요!”
예상한 답이긴 하다.
그러나 뭔가 미묘한 느낌이 들어 다시 물었다.
“그래?”
“네! 쏘시.. 아니, 독일 가고 싶어요!”
“풋.”
뭔가 어떤 단어가 완성되려다 만 거 같은데.
입맛을 다신 이유가 그래서였나.
하기야 소시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국가가 독일이긴 했다.
‘그 얘기도 했나 보네.’
완전 반칙이잖아.
안 그래도 가고 싶어할 텐데 소시지 얘기까지 하면 끝이라고 봐야지.
이윽고 들려오는 연두의 한 마디.
“아빠.. 우리 독일 가여..?”
도저히 아니라고는 대답할 수 없는 눈망울이었다.
***
저녁에 집을 나섰다.
요즘 매일같이 하고 있는 연두의 달리기 연습을 위해서였다.
물론 꼭 그것만을 위한 건 아니다.
‘좋으니까.’
나가서 저녁 공기를 맡는 것만으로도 좋은 일상의 한 요소였다.
유독 밝은 연두의 표정.
“헤헤.”
난감하네.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일러두긴 했는데 그것만으로도 세상 설레는 모양이다.
이렇게나 좋아하는 걸 보면.
후릅.
배시시 웃다가 한 번씩 입맛을 다실 때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소시지 생각을 얼마나 하는 거니.
혹시나 몰라 달력을 확인했지만 다행히 일정은 없었다.
‘휴식기니까.’
프리랜서의 좋은 점이었다.
하루이틀이 아니니 직장인이었다면 꿈도 못 꿨겠지.
그리고, 그게 가장 우려가 되는 점이었다.
‘세연씨.’
어떤 일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높은 확률로 직장인이었다.
어린이집 때도 그랬다.
한 번씩 늦은 시간에 시은이를 데리러 왔던 걸 보면, 꽤나 가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어떻게든 시간을 내고 있는 거 같긴 하지만, 며칠 휴가를 내는 건 무리가 아닐까.
아무튼 시은이네가 관건이었다.
여러모로 생각해 본 결과, 나는 어느 정도 마음을 굳혔으니 말이다.
어느새 도착한 산책로.
길게 이어진 하천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였다.
이사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원래 집 근처에는 없었던 장소였으니까.
“그럼 오늘도 시작해 볼까, 연두야?”
“네!”
파이팅이 넘치는 대답.
허나 그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 주원씨?”
돌아본 그 곳에는 놀랍게도 세연씨가 서 있었다.
“세연씨가 여긴 어쩐 일이세요?”
방금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만남이 더더욱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그녀 역시 놀란 표정으로 답했다.
“저는 시은이랑 산책 나왔어요.”
“아, 시은이랑……”
그 말대로였다.
미처 보지 못하고 있던 시은이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뒤늦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시은아.”
“안녕하세요.”
뒤늦게 놀란 연두가 소리쳤다.
“시, 시은이다!”
“푸흣.”
뻘하게 웃음이 터졌다.
한 발 늦은 타이밍도 그렇고 화들짝 놀라는 모션도 그렇고.
무표정이던 시은이의 입꼬리가 싱긋 올라간다.
“연두야..”
순전히 우연이었던 모양이다.
하기야 미리 얘기를 한 것도 아니니 그럴 수밖에 없지.
마침 세연씨가 물어왔다.
“주원씨는요?”
내가 한 물음과 동일한 거 같았다.
“저도 비슷해요. 산책 겸 달리기 연습하러 나왔어요.”
“달리기 연습이요?”
“네. 요즘 연두랑 매일 나와서 달리기 연습하고 있거든요.”
이어서 대강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그녀는 납득한 듯 쿡쿡 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네?”
“훈련의 효과는 좀 있나요?”
“글쎄요.”
빙긋 웃으며 나는 물었다.
“직접 한 번 보실래요?”
“오, 정말요?”
그렇게 시작됐다.
세연씨와 시은이를 관전자로 둔 채로 시작되는 연두의 달리기 연습이.
***
시작된 달리기 연습.
반복되는 장면을 보며 시은이의 얼굴에는 안타까움이 번졌다.
‘처음이야.’
처음인 거 같았다.
무언가 열심히 하면서도 저렇게나 헤매는 연두의 모습을 보는 건.
그럴 만도 했다.
‘피아노, 그림, 요리 등등.’
연두는 다재다능한 친구였다.
시은이가 가지고 싶어하는 재능도 많이 갖고 있었다.
그 중 1위는 단연 그림이지만.
“헉.. 헉..”
숨을 몰아쉬는 연두.
시은이가 안타까운 기분을 느끼는 이유는 간단했다.
계속 지켜봤지만 연두는 조금도 빨라지는 거 같지 않았다.
이어지는 휴식 시간.
연두가 엄마와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 아저씨가 다가왔다.
물을 건네며 말한다.
“자, 여기.”
“감사합니다.”
“아, 참! 계주 된 거 축하해. 시은아.”
“감사합니다.”
어쩌다 보니 감사하다는 말을 두 번 반복해버렸다.
머쓱한 표정을 짓는 아저씨.
사실 시은이에게 있어서 계주가 된 건 그렇게 축하받을 만한 일은 아니었다.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니까.’
빠르게 달리라 해서 달렸을 뿐이다.
그런데 그렇게 달리고 나니, 선생님은 2등이라고 말했다.
월이 다음이었다.
그때 시은이는 처음 알았다.
생각보다 자신이 달리기가 빠르다는 걸.
연두도 마찬가지로 2등이었다.
뒤에서 2등이라는 점에서 시은이와는 달랐지만.
시은이는 딱히 계주가 되고 싶은 욕심이나 승부욕같은 건 없었다.
그래서 속상해하는 연두를 보며 생각했다.
차라리 내가 아니라 연두가 달리기가 빨랐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연두는 계주가 되고 싶어하니까.’
하지만 달리기 실력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마음이 쓰였다.
엄마와 웃으며 대화하는 연두를 보니 더더욱 싱숭생숭한 기분이었다.
괜히 생각이 깊어진 시은이의 귀에 들려오는 목소리.
“연두도 계주가 되고 싶대.”
“네.”
알고 있었다.
그 자리를 뺏은 거 같아서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으니까.
연두는 엄청 축하해줬지만.
사실은 계주가 되지 못해서 많이 속상하지 않을까?
그때였다.
“시은이랑 같이.”
조금 이상한 얘기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아저씨는 피식 웃으며 장난스레 얘기했다.
“이건 비미리긴 한데… 연두가 왜 이렇게 달리기 연습을 열심히 하는지 알아?”
“그건…… 어?”
“계주가 정해졌는데도.”
생각해 보니 그랬다.
이미 계주는 뽑았고 한 번 정해진 계주는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도 연두는 열심히 연습하고 있었다.
뭘 위해서일까.
‘나랑 같이?’
아저씨는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의 의미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2학년 때.”
“.. 네?”
“열심히 연습해서 빨리 달릴 수 있게 되면, 2학년 때 또 계주가 할 수 있는 기회가 오니까.”
“2학년이요?”
“응. 연두가 얘기했거든. 그때는 꼭 시은이랑 같은 편이 돼서 달리고 싶다고.”
콩.
심장에 작은 조약돌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2학년.
그렇게나 멀리 바라보고 연두는 연습하던 거였구나.
지금은 엄청나게 느린데도.
시은이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짝꿍이 그림 그리는 걸 보는 것도 재미있었고, 연두가 가르쳐준 방법으로 연두부를 그려냈을 때는 뿌듯함에 웃음까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따로 연습을 하지는 않았다.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아무리 열심히 연습해봐야 잘 그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항상 엄청나게 예쁜 그림을 그리는 아저씨는 물론이고, 연두만큼도 그릴 수 없을 게 뻔하다고.
생각해 보면 연두도 처음부터 그림을 잘 그린 건 아니었다.
‘처음 만났을 때.’
연두의 그림은 분명 이상했다.
또렷이 기억났다.
곶감을 들고 호랑이로부터 아빠를 지키는 그림이었는데, 쿡쿡 웃음이 난 것과 별개로 잘 그린 그림은 아니었다.
그래.
분명히 그때까지만 해도 연두의 그림실력은 시은이보다 아래였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발전하기 시작했다.
무척 빠른 속도로.
어느새 친구들을 뛰어넘고는, 어린이집에서 가장 잘 그리던 유라보다도 더 잘 그리게 됐다.
시은이는 그게 재능이라고 생각했다.
지레 안 될 거라 생각해서 포기한 이유도 그래서였다.
‘.. 연두는 달라.’
그게 연두에게는 달리기일 게 분명했다.
연두는 느렸다.
굳이 시은이가 아니더라도, 평범한 친구들과 비교해도 한참이나 더 느렸다.
아무리 노력해도 뒤집을 수 없는 격차라 생각될 정도로.
그런데도 연두는 노력하고 있었다.
‘나랑 같이 계주가 되고 싶어서.’
그게 아저씨가 말한 이유였다.
마음이 이상했다.
그렇게나 연두가 간절하게 바라는 계주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러니까 아저씨는 시은이가 2학년에도 계주를 했으면 좋겠어.”
“…”
“보고 싶거든. 연두랑 시은이가 같이 달리는 거.”
끝이 아니었다.
아저씨는 핸드폰을 꺼내며 말했다.
“맞다! 아저씨가 재미있는 거 하나 보여줄까?”
“.. 재밌는 거요?”
“응.”
궁금했다.
이 상황에 보여줄 재밌는 게 뭘까.
얼마 지나지 않아 무언가를 띄운 아저씨는 핸드폰을 눈앞에 내밀었다.
“자, 한 번 볼래?”
시은이의 눈에 들어온 건 영문 모를 숫자였다.
[50M]-15.6(초)
15.6초.
그게 50M 기록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시 보니 왼쪽에 나열된 날짜도 보인다.
그리고 아래로 쭉 나열된 숫자.
-15.3(초)
-15.0(초)
-14.8(초)
-14.9(초)
-14.7(초)
기록이 역주행할 때도 있었지만 분명히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마지막 날짜의 숫자를 본 시은이의 입이 자그맣게 벌어졌다.
-14.1(초)
몇 번을 연습해도 그대로인 것처럼 보였다.
아니었다.
연두는 빨라지고 있었다.
처음 연습을 시작한 날부터 정확히 1.5초나 빨라진 상태였다.
“어때? 우리 연두 대단하지 않아?”
“대단해요.”
“어…”
깔끔한 인정에 되려 당황해서 어버버하는 주원.
이윽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저씨.”
“응?”
“이렇게 열심히 연습하면.. 연두는 2학년 때 계주가 될 수 있을까요?”
시은이는 고개를 들어 주원의 눈을 보며 재차 물었다.
“저랑 같이, 달릴 수 있을까요?”
아저씨는 웃었다.
그건 꾸며서 짓는 웃음이 아니었다.
동시에 들려왔다.
“아저씨는 그럴 거라 생각해. 그러니까 조심해라?”
“.. 조심이요?”
“응. 이렇게 연습하다 보면 시은이보다 빨라질지도 모르거든.”
“풋.”
시은이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와 별개로 충분한 대답이었다.
시은이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연두에게 다가갔다.
“일어나, 연두야.”
“으응?”
“달리기 연습하자. 나랑 같이.”
그 말과 함께 내민 손.
연두는 짐짓 놀란 듯 하다가, 이내 환한 웃음을 지으며 시은이의 손을 잡았다.
“.. 응!”
“내가 빨리 달릴 수 있는 법 알려줄게.”
“아, 아빠가 알려줬는데..”
“아저씨는 잘 몰라.”
살짝 장난기가 묻어나는 표정으로 시은이는 고개를 돌려 주원을 보고서 말했다.
“나보다 느릴 수도 있어.”
그렇게 시은이와 연두는 나란히 손을 잡고 출발선으로 향했다.
한편 갑작스레 디스를 당한 주원.
“.. 허.”
벙찐 표정 뒤에는 잔잔한 미소가 드리웠다.
아무래도 연두의 좋은 스승이자 든든한 동료가 생길 거 같았다.